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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412화 (412/444)

제412화. 가관 (1)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진괴량의 신형이 흩어지듯 쇄도했다.

팟-

안광을 늘어뜨리며 달려드는 놈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효시가 되었다.

“교주님을 보좌하라!”

“쳐라!”

양측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내달리니.

삽시간에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단말마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는데.

나와 명영은 그 전열의 선두에서, 비동 에서 그래왔듯 합을 맞추어 진괴량의 일격을 받아냈다.

카아아앙!!!

그렇게 우리가 진괴량을 떨쳐내자마자.

독고철의 홍군과 무당의 제자들이 뒤따라와 각기 익숙한 대형을 펼치려 했다.

채채채챙!!

그걸 확인한 나는 명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배님!”

명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무당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방금 보았겠지만, 혈마가 쏟아내는 강기와 강환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네. 지금 진무칠절진을 펼치는 건 불가해.”

명일을 필두로 한 무당의 제자들은 바쁘게 송문검을 휘젓는 와중, 되물어 왔는데.

“하면 이들을 상대로 막무가내로 싸우자는 것입니까?”

내가 그 말에 답을 하니.

“홍군의 여섯 고수와 짝을 이루십시오.”

명영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와 괴룡이 했던 것처럼. 사제들은 혈마의 검초를 막게. 강기를 막는 일과 반격의 틈을 노리는 일은 진혈단이 맡도록 하고.”

그런 우리의 말에, 먼저 반응한 건 정현과 독고철이었다.

“빈도는 정무학관이라는 인연 덕에 진혈단주님과 호흡을 맞춰온 지 제법 되었으니, 단주님과 합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그중 정현은 무당의 제자들의 틈에서 빠져나와 독고철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고.

독고철은 입을 열어 내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괴룡의 의견에 동의하겠습니다.”

캉! 카앙!

카아앙!

한창 대도를 휘둘러내던 사겸이, 입을 연 건 이때였는데.

“평생 맑은 마음을 유지하려 도를 닦아온 당신들 눈엔 우리 역시 마인으로 비칠 테지, 탐탁지 않은 그 마음을 이해하오만. 상황이 상황 아니오?”

명일은 눈앞의 마인 하나를 베어내고는,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반장(半掌)하며 답했다.

촤악!!!

“원시천존. 빈도 역시 선도에 닿지 못하고 굽이진 속세를 헤매는 중생입니다. 제가 뭐라고 뜻을 세운 귀하와 진혈단원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겠습니까.”

“묵묵부답으로 있으시길래.”

“갑작스레 합을 맞춰 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뿐입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애초에 철전 몇 푼에 칼을 팔던 것에서 시작하여 온갖 바닥을 다 거친 게 우리요. 최소한 발목을 잡지는 않을 거요.”

그렇게 진혈단과 무당의 합공이 시작됐다.

“명영 선배님과 제가 진괴량의 주공을 전담하겠습니다. 다른 선배님들은 저자의 수하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에 중점을 두시되, 여유가 있으시면 차륜전을 하듯 돌아가며 가세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독고철·정현조나 나를 제외하면, 기실 갑작스럽게 합을 맞추게 된 터였으나.

“난리 통에 인사가 늦었습니다. 명일이라 합니다.”

“사겸이요. 갑시다!”

사겸과 손청정을 비롯한 진혈단의 고수들은 장담한 대로 본인들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움직여 주었는데.

무당 특유의 부드러운 검이 그들의 가세를 받아들이니.

단 몇 합 만에 그럴싸한 짜임새를 갖추고는 나와 명영을 지원해 왔다.

캉! 캉!

카카카카아아앙!!!

그 모습에 사부님께서는 작게 감탄하셨는데.

- 무당의 말코들이야 명영을 빼놓더라도 하나하나가 절세고수를 논할 때 이름을 올릴만한 이들이지. 그들이 기본적으로 받쳐주니 이렇듯 합이 딱딱 맞물리는 것이겠지만… 진혈단 녀석들도 제법이로구나.

‘사겸이 말했듯. 매검(賣劍)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니까요.’

매검자.

미래로 치면 용병이다.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며 온갖 상전의 비위를 맞추다가, 마도까지 흘러 들어간 이들인 만큼… 열악한 상황에서 합을 맞추는 능력과 눈치만큼은 발군인 듯합니다.’

그렇게 일곱 조로 나뉜 우리는 진괴량을 본격적으로 압박해 나갔다.

캉! 카앙!

카카카캉!!

거리낄 것이 없어진 나와 명영은, 진괴량의 몸에 자그마한 상처라도 내기 위해 저돌적으로 공격해 들어갔는데.

진괴량이 강렬한 강기를 쏟아내며 반격할 때면.

쐐애애애액!

귀신같이 끼어든 사겸과 손천정이 그 강기를 퉁겨냈고.

두 사람의 짝인 명일과 명한은 푸른 강기가 일렁이는 송문검을 내뻗어 진괴량으로 하여금 걸음을 물리게 만들었다.

파바박!

그렇게 놈이 걸음을 물린 자리엔, 다른 무당의 제자와 진혈단의 고수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엔 독고철과 정현이었다.

쌔액!

쌔애액!

그렇게 푸른 강기와 붉은 혈기가 뒤섞인 태극이 일곱 방위에서 그려지며 차륜전을 하듯 공격을 쏟아내니.

주화입마를 무릅쓰고 무리를 하던 진괴량의 입가에 검붉은 핏불이 주륵- 흘러내렸다.

“…큭.”

순식간에 아군을 휩쓸어 버릴 것 같았던 진괴량의 투기가 한풀 꺾이게 된 것을 확인한 나는 웃음을 머금었는데.

‘무리한 여파가 없진 않지? 곧이다. 진괴량.’

이때.

사부님께서 다른 곳의 전황을 읊어주셨다.

- 그 쥐새끼를 닮은 마두 놈이 하오문의 배를 노리는 것 같은데?

그 말에 힐끔 시선을 옮겨보니.

자왕이 휘하의 마인들과 함께 쐐기의 형태를 취하며 아군이 쳐놓은 포위망 중 한 곳을 돌파하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자왕은 어떻게든 퇴로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제대로 된 아군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 진괴량의 상태도 좋지 않으니 어찌 보면 옳은 판단일지도 몰랐는데.

- 저런. 뚫려버렸구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자왕이 이끄는 혈교의 별동대가, 아군의 포위망 중 가장 약하다 할 수 있는 하오문의 포위선을 뚫어내고 강변에 있는 배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게 보였다.

‘…어쩔 수 없죠.’

이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오문의 전력 중에 고수라 할 수 있는 이는 애초에 극소수였는데, 그들의 최우선 목적은 하오문주를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자왕이 그녀를 노리니 일시적으로 진형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거지.’

그렇게 고수들이 빠져버리니.

그저 허장성세의 일부로 깃발만 흔들고 있던 어부와 뱃사공들이 혼비백산하며 길을 열어버린 것이다.

뭐, 나쁠 것은 없었다.

‘어쨌거나 진괴량은 제 앞에 있습니다.’

결국 진괴량을 잡아두기만 하면 배를 빼앗긴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진괴량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려 했는데.

펑! 펑!!!

하오문이 이끌고 온 배들에서 천지를 진동시키는 굉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타고 온 배 아래 폭약을 실어두었다가 터트린 모양이었다.

- 허. 목염약이라는 이가 나름대로 수완이 있는 이였구나.

‘한방이 있네요.’

가루가 되어 비산하는 배와 마인들의 모습에, 나와 사부님의 입에선 헛웃음이 새어 나왔는데.

이때.

진괴량은 본인의 수하 중 한 명의 머리통을 틀어쥐더니.

“…교, 교주님?”

흡성대법을 통해 진기를 빨아내곤, 거죽만 남은 시신을 집어 던졌다.

꽈드드득-

쿵.

나는 머금고 있던 웃음을 털어내고 회한을 고쳐 쥐었다.

“…갈 데까지 갔군.”

*    *    *

동도회와 혈교의 싸움.

이 싸움은 시종일관 동도회의 우세 속에 포위망의 크기가 점차 줄어드는 형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하오문주의 기지로 전황이 크게 기우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양측의 주 전력이 맞붙고 있는 중앙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추잡스러운 기운이 일대를 뒤덮을 정도다.”

그 묘한 기운을 불길하게 받아들인 남궁윤은 입술을 짓씹었다.

“어서 이쪽을 정리하고 언용운을 도와야 할 것 같은데….”

하나, 막상 남궁윤이 선 전장도 녹록지 않았다.

이 전장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 인왕은 외팔이 된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퍼퍼퍼퍽!

퍼퍽! 뻐어어엉!!!!

미쳐 날뛰듯 동도회의 무인을 절명시키고 있었다.

“컥!”

“커흑!”

본디 허옇던 인왕 특유의 호랑이수염이 아군의 피를 뒤집어쓴 탓에 시뻘겋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며.

남궁윤은 자책했다.

‘나 대신 아버님이나 할아버님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저자의 한쪽 팔을 자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목을 베었겠지.’

그저 심계천하를 품으라는 말만 믿고 착실히 스스로를 닦아온 남궁윤이었다.

그런 남궁윤에게, 당신들이 움직이지 않아야 적을 잡아 둘 수 있다는 어른의 사정은 여전히 속상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였다.

꽈악.

그에 검을 쥔 남궁윤의 손에는 절로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캉! 캉!

카아아앙!!

이때.

아군 중 한 명이 불쑥 다가와 등을 맞댔으니.

다름 아닌 녹림왕 도중광이었다.

“남궁가의 애송이.”

“…선배님.”

도중광은 언월도의 대를 길게 잡고 덤벼오는 적들을 저지하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표정을 보니, 네놈 때문에 아군의 희생이 크다는 뭐 그런 같잖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고 있는 도중광이었으나.

동도회의 전력 중 하오문 다음으로 약한 이들이 녹림의 무리였다.

시시각각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전황 속에 도중광은 많은 수하를 잃을 수밖에 없었고.

그중엔 심복 중 하나인 편목금강이 있었다.

“…….”

하여, 남궁윤은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는데.

그러는 사이 도중광이 재차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다 좋은데 그게 문제야. 태어난 김에 사는 건데 뭔 책임을 느끼고, 어쩌고저쩌고. 에이 나도 뭔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네.”

“…….”

“아무튼 함부로 측은해하지 마라. 나름대로 우리도 속에서 천불이 나서,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이 싸움에 나선 거니까.”

그렇게 한 마디를 남긴 도중광은 다시금 언월도를 꼬나 쥐고 인왕을 향해 달려 나갔는데.

그렇게 달려 나가는 도중광의 어깨를 보며 남긴 말을 곱씹고 있자니.

“…함부로 측은해하지 마라.”

찰나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남궁윤의 시야에 모르고 지나치던 전장의 면면이 새삼스럽게 스쳤다.

“…….”

바닥을 구르다 손에 쥐게 된 흙을 마인들을 향해 내뿌리는 녹림도.

가슴이 꿰뚫려 피를 토하는 와중에도 마인 하나를 베어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뒤로 넘어가는 타격대원.

숨을 거두는 와중에도 떨어뜨린 귀신가면을 기어코 다시 손에 쥐는 홍군의 진혈단원들.

마인들에 맞서는 이들의 동공엔 누구를 막론하고 두려움이 서려 있었지만, 그네들은 그를 무릅쓰고 걸음을 디뎌내고 있었다.

“…나는 오만한 남궁가의 도련님이 맞았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관조하고 나니.

“호랑이 똥에 손을 대는 일 따윈 할 수 없다고 지껄이던 순간에서, 채 한 걸음을 못 나아가고 있었던가….”

검을 쥔 손에 들어가 있던 힘이 자연스럽게 덜어졌는데.

이 순간.

파치치칙-

남궁윤의 검에 전에 없이 강렬한 뇌기가 휘감겼다.

그 검을 고쳐 쥔 남궁윤은 앞서 마인들의 틈을 파헤쳐 들어간 도중광의 걸음을 쫓아 들어갔다.

그런 남궁윤의 걸음을 막아서는 마인들이 있었으나.

촤악! 촤악!!

반경을 오롯이 장악한 채 제왕검형을 휘둘러내기 시작한 남궁윤의 상대는 아니었는데.

촤아아악!!!

그렇게 다시금 인왕의 지근거리에 다다르게 되니.

어지럽게 합을 교환하고 있는 도중광과 인왕의 모습이 남궁윤의 눈에 들어왔다.

“선배님!”

한데, 눈앞의 싸움은 도중광의 열세가 분명했다.

아니, 열세라는 말로는 부족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쌔애애애액!

교환되는 합 속에, 인왕이 내질러낸 손날이 도중광의 옆구리를 꿰뚫는 순간이었으니까.

푸우욱!

“도적놈아, 내게 같은 수법이 두 번이나 통할 줄 알았느냐?”

하나, 그 상황에서 되레 걸음을 앞으로 내디뎌 인왕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도중광의 모습에.

어떤 의지를 확인한 남궁윤은, 도중광을 걱정하는 대신 인왕을 향해 단숨에 치달아 손에 쥔 검을 내리그었다.

촤아아아악!!!

벽력이 감긴 남궁윤의 검이 인왕의 몸을 깔끔하게 가르고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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