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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413화 (413/444)

제413화. 가관 (2)

도중광은 반으로 갈려 절명한 인왕을 향해 비웃음을 돌려주었는데.

“까불고 있어.”

그러자마자 휘청하는 걸음을 남궁윤이 부축했다.

“선배님!”

그렇게 한쪽 어깨를 도중광에게 내어준 남궁윤은 검을 휘저으며 걸음을 물렸다.

촤악!

촤아악!!!

그리고 중앙의 전장을 응시했다.

여전히 사특한 기운이 운집해 있었으나, 언용운이 이따금 보여주곤 했던 사령술의 진이 하늘에 걸려있는 게 보였는데.

‘…잘 버티고 있는 것인가.’

이때, 도중광이 입을 열었다.

“후우. 나는 이 꼴이 나서 도움이 안 될듯하니. 너라도 가봐라.”

남궁윤은 그런 도중광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도중광의 몸에 점혈을 하더니.

팟. 팟.

팟. 팟. 팟.

“지금 이게 뭐 하는…?”

이어진 도중광의 말도 깔끔하게 무시하곤 주변의 녹림도를 불러들였다.

“선배님께서 부상을 당하신지라, 후방으로 모실까 하는데. 엄호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도중광을 들쳐메고서, 전열에서 이탈해 내달렸는데, 큼지막한 나무둥치를 발견하고서야 그를 내려놓더니.

“……?”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도중광의 손에 쥐여주며, 피가 번져 나오는 옆구리를 틀어막게 했다.

“???”

얼결에 그런 남궁윤의 손길을 받아들이게 된 도중광이었으나.

테두리에 금실로 수를 놓은 테가 둘린, 선혈이 낭자하는 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얀 손수건을 보고 있으니.

문득 현실감이 찾아들며 미간이 좁혀졌다.

“이게 뭔 지랄이냐는 데도?!”

“여기서 잠시만 이러고 계십시오.”

“지금 팔자 좋게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지 않… 윽.”

남궁윤은 통증으로 미간을 좁히는 도중광을 향해 담담하게 답했다.

“선배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수하들을 생각해서라도 잠시만 이러고 계십시오.”

“그건 또 뭔… 평생을 함께해온 애병과 수하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뒤에서 이러고 있는 게 어찌 수하들을 생각하는 일이 되냐? 그런 궤변이 어딨어.”

“오늘 흘린 피. 그 피의 대가를 얻어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

“이 싸움은 어떻게든 끝이 날 것입니다. 이후엔 손실과 미래를 논하는 자리가 따를 테지요. 그 자리에 일개 채주나 녹림도를 나가게 할 생각이십니까?”

“…….”

“하늘과 땅 차이가 날 겁니다.”

“…남궁세가의 도련님 아니랄까 봐. 명분을 들이미는 솜씨 한번 고약하네.”

“저는 남궁세가의 도련님이 맞습니다. 그러니 녹림왕 되시는 선배님께서는 상처나 틀어막고 계십시오. 당옥기를 찾아 데려오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남궁윤은 허리를 세우고 전장을 훑더니, 한곳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남궁윤과 건네받은 손수건을 번갈아 응시하던 도중광은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백도 놈들은 열에 여덟 놈이 밥맛이어도 저런 놈들이 꼭 하나씩 있단 말이지… 그래서 싫어.”

*    *    *

한편, 당옥기는 노삼과 은하연이 이끄는 제대에서, 은하성 그리고 우소릉과 함께 축왕이 이끄는 평천우마군과 싸우고 있었다.

이 제대의 목표는 축왕과 휘하의 마인들이 언용운의 싸움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것이었다.

하여, 적의 섬멸보다는 전열을 유지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거듭해 말합니다! 흥분하지 마세요! 적들의 틈을 너무 파고 들어가시면 못 구해드립니다!”

은하연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 때.

달려온 남궁윤이 이들의 틈에 끼었다.

“당옥기! 저기 네가 봐줘야 할 환자가 생겼다.”

“캭! 당연히 있겠지! 다친 사람이 한둘이야? 지금 이쪽 싸움도 빡빡한 거 안 보여?!”

슉! 슉!

슉! 슉! 슉!

그런 남궁윤의 말에, 막 뽑아낸 암기를 적에게 던지고 있던 당옥기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말을 이었는데.

“언용운이 나랑 소릉이더러 부상자를 후방으로 빼서 살피라 했지만, 지금 이쪽도 상황이 급해서 이렇게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거기에 언용운 쪽도 분위기 이상한 것 같고!”

“나도 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살릴 수 있을 것 같고. 멀리… 그러니까 천하를 생각하면 중요한 분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어수선하게 나오는 남궁윤의 말에.

은하연이 입을 열었다.

“환자가 누군데요?”

“도중광 선배님이오.”

그런 남궁윤의 말에.

사방으로 장력을 뻗어 내던 노삼이 착잡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하는 때.

“…산적 두목 놈.”

은하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 목숨에 경중은 없다지만. 우리가 시작한 싸움의 끝엔 십만대산이 버티고 있지. 결국 이 싸움을 얼마나 적은 피해를 감내해내느냐가 관건인데… 녹림왕이라는 이름은 이 수라장을 매듭짓고 십만대산으로 가는 길에 큰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이죠.”

그에 당옥기가 되물음을 던지는 때.

“그러면 나 빠진다?”

강물과 맞닿은 곳에서부터 달려오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그에 제대를 이루고 있던 타격대원들이 일순 목청을 높였고.

“소진이? 소진이가 온다!”

“하북권웅도 계신다!”

“도제… 는 아니시고 소천인가?!”

은하연은 그 말에 안심하며 당옥기와 남궁윤에게 말했다.

“이쪽은 걱정 말고 가봐도 될 것 같네.”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나간 지 잠시.

달려온 지원군이 축왕이 군단을 이루고 있던 전열을 일그러뜨리며 합류했는데.

노삼은 바쁘게 권장을 내지르며 언정웅에게 말했다.

“팔자 좋게 인사를 나눌 때는 아닌 듯하고, 비운 자리는 괜찮은 건가?”

“예, 선배님. 하오문주의 기지 덕분에 선착장 쪽은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우소릉은 합류한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행방을 물었다.

“작은 언 형이랑 장호 형은요?”

그 말에 팽소진과 팽소천이 차례로 입을 열자.

“혹시 몰라 용명이랑 장호는 남겨두고 왔어.”

“그 대신 내가 왔잖냐! 나 혼자면 두 사람의 힘을 낼 수 있다!”

은하성이 한마디를 했는데.

“소천 형. 지금 두 사람이 빠진 거니까 대신하려면 세 사람의 몫을 내야죠.”

“아?”

은하연이 눈빛을 빛내며, 마인들을 응시한 건 이때였다.

“저희끼리 평천우마군을 뚫고 축왕을 잡는 건 무리일 듯해서 부득불 잡아두는 것에 집중했는데. 이제 작전을 바꿔도 되겠네요.”

동시에 새어 나온 말에, 언정웅은 굳은 얼굴로 답했고.

“우리도 그러기 위해 온 것이라네.”

그렇게 축왕을 상대하고 있던 동도회의 전력이 본격적으로 공세에 나서기 시작했다.

푹! 푹!

푸푸푸푹!!!

공손무결의 수제자인 팽소진이 합류한 타격대의 채작진은 더욱 날카롭게 날개를 펼쳤고.

카아앙!!!!!!

팽소천이 내지르는 도초 덕에 생긴 틈으론, 우소릉과 은하성이 뛰어들어 각각 섬전 같은 검초와 벼락같은 뇌기를 뿌려냈다.

거기에 노삼의 장심에서 뻗어나온 항룡장이 더해지니.

펑! 펑!!

퍼어엉!!!

그야말로 동도회의 파상공세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마인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한 쌍은 은하연과 언정웅이었다.

꽈드드득.

은하연이 옥녀검을 시전하며 함께 질러내는 한음지기는 혈교의 마인들에게 있어 상극 중의 상극이었는데.

거기에 내가중수법의 달인인 언정웅의 언가권이 곁들여지니.

꽝! 꽈앙!!!

꽈아아아앙!!!!

마교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곤혹스러운 상대였는데, 두 사람의 합격에는 빈틈마저 없었다.

그에 당사자인 언정웅조차 권력을 내지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은 소저는 검을 제대로 쥔 지가 이제 고작 두 해라고 하였지?”

“예? 아, 예.”

“허허. 본인의 검을 휘둘러 내는 것만도 쉽지 않을 테고, 나와는 처음 합을 맞추는 것인데 언가권이 위력을 낼 수 있도록 돕다니. 천고의 기재가 따로 없군.”

그런 언정웅의 말에, 은하연은 마른 웃음을 머금었는데.

“언 공자가 있는데 그런 말씀은 부끄럽네요. 그리고 가주님과 합을 맞추는 건 처음이지만 언 공자의 지독… 선견지명 덕에 작은 언 공자랑 합을 맞춘 적은 많아요.”

그러면서 덤벼오는 마인들을 쓰러뜨리길 잠시.

마침내 이들은 축왕의 면전에 이르게 되었다.

휘둘러지는 축왕의 양손엔 강렬한 혈기와 함께 사람을 우습게 찌그러뜨릴 수 있는 거력이 실려 있었다.

“필히 너희들을 저승으로 데려갈 것이다!”

쐐애애애애애액!!!

하나, 이렇게 마주치게 된 순간.

이쪽의 싸움은 끝인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카아아아앙!!!

팽소천이 축왕의 거력이 실린 일격을 한 걸음도 밀리지 않고 받아 낸 것을 시작으로.

일순 사방으로 펼쳐 섰던 동도회의 고수들이 각자의 절초를 내뻗으며 압박을 해오니.

캉! 카앙!!

카아아아앙!!!

순식간에 축왕의 걸음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었는데.

콰드드드-

그 틈바구니를 절묘하게 헤집으며 한기를 뿌려내는 은하연의 검까지 피하고 나니.

언정웅이 전력을 다해 내지른 권력이 축왕의 가슴팍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뻐어어어어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축왕의 눈이 까뒤집혀지는 순간이었는데.

“컥.”

싸우던 이들의 신경 대부분이 축왕에 게 쏠려 있던 때.

강변 쪽에서부터 달려온 신형들이 축왕이 쓰러진 자리를 향해 뛰어 들어왔다.

팟! 팟!! 팟!!

그걸 가장 먼저 알아챈 우소릉은 급히 입을 열었다.

“피, 피하세요!”

우소릉의 말에 동도회의 무인들이 일제히 뒷걸음질을 치는 때.

쇄도해온 마인들 중 두 명이 혈맥을 터트려왔다.

펑!!

퍼어엉!!!

그리고 그 틈을 타.

자폭하지 않은 마인 중 하나가 축 늘어진 축왕을 들쳐메는 모습이 보였다.

마인은 온 얼굴이 익은 듯 지글거리는 상태였으나, 언동생들은 한눈에 그 마인의 정체를 알아봤는데.

“자왕!”

등장한 강적에 별동대가 다시금 병장기를 고쳐 쥐며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팟!!!

자왕은 귀신 같은 보법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전장의 중앙을 향해 내달려갔다.

“저, 저라면 쫓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제가 쫓아 볼까요?”

“…신법이야 그렇지만, 소릉이 너 혼자선 상대도 안 될걸? 분명 자왕 그 늙은이가 맞았던 것 같은데. 누님들, 제가 잘못 본 것 아니죠?”

남은 인원들은 당황하며 입을 열었는데.

“자왕이 맞았어. 배가 폭발하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던 모양이야.”

언정웅이 주먹을 쥐며 미간을 좁히는 때.

“한데, 도망을 치는 거라면 축왕의 시신은 굳이 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으니 분명 절명했을 터인데?”

은하연은 사특한 기운과 언용운이 펼친 술진이 겹쳐있는 중앙의 전장을 응시하며 말했다.

“저희도 어서 저쪽으로 가보는 게 좋겠어요.”

*    *    *

꽈드드득-

교인들을 일회용 내단처럼 흡수하며 우리에게 혈환을 날려오는 진괴량의 모습에.

“일어나라!”

나는 전장의 시체들을 일으켜 진괴량에게 던져넣는 것으로 대응했는데.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사부님께서 생각을 말씀하셨다.

- 보아하니 수하들을 딱히 아끼거나 하는 놈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제야 저런 짓거리를 하는 것일까? 진즉부터 저리 나왔다면 사정이 좀 달라졌을 성싶은데?

‘저는 사부님께 묻고 싶네요. 저희 편이 맞으시죠? 왜 괴량이 놈 걱정을?’

- 이 와중에 그걸 꼬투리를 잡는구나.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대국적으로 봤을 때 뭔 꿍친 수가 있는가 싶어 하는 말 아니냐!

‘그냥 물어본 건데 괜히 찔리셔서는? 뭐, 여러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중 하나는 야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천하를 뒤흔드는 한 축이 되고, 십만대산의 혁련강을 거꾸러뜨리는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흡성대법이라는 마공이 저런 식으로 남의 원기를 흡수해내는 마공이긴 하지만. 결국 운기를 하지 않으면 온전한 공력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신에 쌓이는 부담도 막대하고요.’

진괴량쯤 되는 대마두라 할지라도, 이미 주화입마에 든 상태로 계속해 무리를 더한 상황이니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서 이런 식으로 싸우고 있는 것 아닙니까.’

시간이 지나면 날아가는 휘발성 공력에, 스스로 제 수하를 줄여주고 있었으니.

시간을 끌며 상대하면 백도 쪽에 유리했다.

게다가 이곳은 사령술사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는 전장, 그야말로 진괴량에겐 악수가 된 상황이었는데.

쌔애애애액!

이때 측면에서부터 한 무리의 전력이 명백한 살기를 뿜어내며, 쇄도하는 게 느껴졌다.

“모두 피하세요!”

아니나 다를까.

축왕으로 보이는 거구를 들쳐멘 자왕과 함께 달려온 마인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더니.

하나둘 몸을 터트려왔다.

펑! 퍼엉!!!

퍼어어어엉!!

그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각기 검막을 펼치며, 진괴량을 조이고 있던 포위망을 늘리게 되었는데.

그사이 자왕은 들쳐메고 있던 축왕을 진괴량 앞에 내려놓고는 무릎을 꿇었다.

“신들의 보좌가 미흡해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일부나마 교단을 살려보려 했으나… 불가할듯합니다.”

“내 눈에도 그리 보인다.”

“혈염천하의 대의를 위해. 진가의 분을 혁련가와 천하에 돌려주기 위해 교주님께서는 살아나가셔야 합니다.”

“일단 살아남는다면 다시 기회가 있겠지. 혁련강의 발밑에서 지내왔던 때도 있었으니… 하나 그러려면 자왕 그대의 희생이 필요하다.”

“예. 그러시라고 이렇게 축왕의 시신을 수습해 왔습니다. 소인까지 공력으로 취하시고…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잠시동안 오고 간 대화가 끝났을 때.

진괴량의 양손이 자왕과 축왕을 향해 흡성대법을 시전했다.

고오오오오-

그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진괴량의 전신에 운집함과 동시에 지독한 살기가 우리를 향해 뿜어져 나왔는데.

수천 개의 바늘이 동시에 살갗을 찌르는 듯한 살기 때문인지, 아니면 최측근까지 제물로 삼아내는 그 잔혹함에 때문인지.

무당의 도사들이 하나같이 학을 떼는 때.

“…천하의 마귀로다.”

내가 가볍게 웃음을 머금으니.

사부님께서 질문해오셨다.

- 말코들이 입을 모아 한 마귀라는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어 보이는데, 어찌 그리 웃느냐?

‘사부님. 제가 혈조술을 어찌 쓰게 됐습니까.’

- 그야 산서에서 원혈을 흡수해서. …설마 너도 마음만 먹으면 원혈의 기운 흡수 할 수 있다는 이야기냐?

‘예. 그래서 지금부터 진괴량의 피를 빨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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