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19화 (419/444)

제419화. 회자정리 (3)

독고철을 향한 이야기야 진즉에 천하에 파다하게 퍼졌을 것이다.

‘귀면옹의 가면을 벗어던진 순간부터 내 이야기는 장안의 화제 중 하나가 되었겠지.’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바꾸고, 광인이 되는 무공의 부작용을 개선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초개회의 뿌리가 되는 곳은 혈교였다.

당초 독고철은 그 사실을 숨기고 입관 시험에 응했으니.

날카로운 잣대를 대자면 독고철은 마인이었다.

‘사겸 부회주가 괜히 마음을 굳건히 하라 한 것이 아니지.’

하여, 독고철을 두고 온갖 이야기가 쏟아지리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예견한 바였다.

다만 이런 형태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배신감. 멸시. 기겁, 힐난. 뭐, 그런 종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독고철에게 향하는 관심들은 넉살 섞인 장난과 동경 또는 동정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독고철을 향하는 이야기들이 그런 모습을 띠게 된 데엔 네 사람의 도움이 있었는데.

그중 세 사람이 오늘도 정무학관의 대학원생들과 생도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천지에 살기를 뒤덮으면서 내려선 혈마가 눈알을 희번뜩 굴리니까 오금이 그냥 후덜덜덜 저려오는데!”

“그런데?!

”거기서 철이가 딱 한 마디를 하더란 말입니다. 우리를 죽일 수는 있을지언정 이 귀면을 빼앗을 수는 없다! 하고 말입니다.”

“언 회장도 아니고 독고철 생도가 말인가?”

“그렇다니까요 안 그래, 소릉 동생?”

“맞아요! 저는 선배인데도 이젠 철이가 어른처럼 느껴져요. 저도 모르게 이따금 존댓말을 하게 된달까요?”

“이 천장호도 보증합니다.”

“…음? 근데 천장호 자네는 뒤늦게 뱃길을 따라 합류했다 하지 않았나? 자네가 어찌 보증을 하나. 이거 순 허풍이로구만.”

은하성, 우소릉, 천장호.

본디 호사가의 기질이 있던 세 사람은 틈만 나면 다른 생도들에게 무용담을 늘어놓았는데.

“아이 진짜라니까요? 장호 너는 왜 괜히 끼어들어서 선배님들 혼란스럽게 하고 그래?!”

“어?! 저기 당사자가 지나가는데요?”

그 이야기들이 꼬리의 꼬리를 문 결과.

“오! 철아! 이리 와서 그날 이야기 좀 하고 가라!”

“…하하. 저는 언 회장님께서 맡기신 일을 처리하고 오는 길이라. 보고를 하러 가봐야 합니다.”

“앗. 그러면 빨리 가봐야지. 가보십쇼 초개회주님!”

“잘 좀 살펴주십시오. 차기 청죽관의 자치회장님!”

“독고세가의 가주님!”

독고철은 언용운의 후인이자, 혈교의 진정한 주인이며, 본인의 가문까지 거느린 실력자가 돼 있었다.

‘마인이라고 기겁하는 것보단 낫지만….’

허명은 본디 빨리 몸집을 불리는 법.

독고철은 자신의 이름에 붙는 수식어가 길어짐에 따라,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야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그 걱정이 향하는 대상은 독고철 자신이 아닌 언용운이었다.

‘하나, 이건 회장님께서 자신의 명성을 나와 초개회에게 빌려주신 것인데.’

언용운의 성정상 은하성이나 다른 언동생들이 떠벌리고 다니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딱밤을 먹이든 얼차려를 주든 진즉에 입을 막았을 터였다.

그런데도 내버려 두고 있다는 건

‘일대종사의 자질을 지녔다는 천하제일 후기지수로서의 명성, 그리고 천하를 근심하고 백성들을 평안케 한다는 신진제일협의 명성.’

언용운은 지금 누구도 초개회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그 이름들을 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 초개회의 일원들이 조금이라도 엇나가거나 내가 세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비난의 화살이 회장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다.’

독고철로서는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떼려는 초개회로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그렇다고 언용운에게 멈춰달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여, 마음만 무겁게 먹은 채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었고 며칠이 되었다.

그리하여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넘어간 끝에.

사학년 생도들의 졸업식 날이 되었다.

*    *    *

이번 졸업생 중엔 몇 해 동안 청죽관의 자치회장을 맡아온 진경룡이 있었다.

독고철이 진경룡을 향해 축하인사를 건네는 때.

“졸업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고맙네, 독고 후배. 올해에는 아마 자네도 중역을 맡겠지? 고생하도록 하게.”

빈객으로 학관을 찾아온 탁가철방의 대야장 탁장명이, 진경룡에게 직접 벼린 한철검 한 자루를 선물했다.

“졸업 축하드립니다. 자치회장님.”

“와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이런 귀물을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저희 철방과 청죽의 인연이 보통 인연입니까? 옳은 일에 써주십시오. 청죽의 졸업생이신 만큼,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는 독고철이 맡겼던 검을 돌려주었는데.

“아, 독고철 생도가 맡겼던 검의 수리도 끝났습니다.”

그렇게 돌려받은 검의 검집엔 칠보자개로 조각한 귀면(鬼面)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문양은?”

“아. 과거에 언 회장님이 그런 문양을 새긴 물품을 종종 주문하셨는데. 독고철 생도의 이야기까지 전해 듣고 나니, 초개회의 기치를 상징하는구나 싶어 새겨봤습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닙니다. 마음에 듭니다.”

“괜한 짓을 했나 했는데, 다행입니다만. 혹여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거면 원래의 검집처럼 돌려 드리겠습니다.”

“귀면문은 초개회의 기치나 다름없지요. 정말로 마음에 듭니다.”

이어진 독고철의 답에.

탁장명은 가볍게 포권을 하고 다른 졸업생을 향해 나아갔는데.

이때, 진경룡이 독고철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내가 보기엔 분명히 흠칫하는 표정이었는데? 대야장도 그래서 한 번 더 물은 것 같고?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정말로 이 문양은 마음에 듭니다. 단지 요즘 생각이 좀 많아져서 그렇습니다.”

“흐음. 후배님을 향한 이야기들 때문인가?”

“그게… 예. 실은 그렇습니다. 제 이름이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지고 있는 느낌이라….”

“뭐 그런 것으로 고민을 하고 그러나. 만겹산을 다녀온 일은 피가 아니 흐를 수는 없는 일이니, 그만하면 대공을 세운 것이고. 자네를 향하는 이야기들도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닐 텐데?”

“…….”

“독고세가의 가주이자, 초개회의 회주. 모두 맞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언 회장님께 혹여라도 누가 될 것 같아 그렇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독고철의 답에.

진경룡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사과를 했다.

“쉽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구만. 독고 후배가 짊어진 것들이 참으로 많은데, 내가 실언을 했네.”

“아닙니다.”

그리고 독고철의 어깨를 두드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자네는 청죽관의 생도일세. 이끌어줄 교수님과 선배들이 있고, 함께 일어서줄 동기들도 있네. 무엇이 됐든 두려워하지 말게. 자네 곁엔 우리가 함께 있을 것이니.”

“…조언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학생회 간부들을 통솔하고 있는 언용운을 응시했다.

“좋구만. 언 회장이 걱정이었는데. 홀가분히 떠나도 되겠어.”

“하성 선배나 옥기 선배가 들으면 걱정할 사람을 하라고 할 말씀이시네요.”

“기본적으론 그렇지, 내 주제에 화경의 고수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안 맞기도 하고.”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닙….”

“알고 있네.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라는 거. 아무튼. 내가 언 회장을 걱정하는 건 너무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일세. 너무도 빛이 나는 것 같은 사람이라, 그 빛을 보고 모여든 이들도 있지만. 덤벼드는 부나방과 밀어내려는 어둠도 모일 테니까.”

“…….”

“하나, 언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또 근심하는 자네 같은 후배들이 있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청죽관을 떠날 수 있겠어.”

말을 마친 진경룡은 정무학관의 모습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학관의 전경을 훑은 진경룡의 시선은 마침내 청죽관에 이르러 멈추게 되었는데.

“청죽관을 택해서 다행이야.”

진경룡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 맺히며 눈가에 물이 고이는 때.

언용운의 음성이 진경룡을 향했다.

“경룡이 형! 마지막까지 짜고 계시네! 예 선배! 저 모습은 꼭 그림으로 남겨 놔주십시오.”

그런 언용운의 말에, 진경룡은 미소 지으며 볼멘소리를 내질렀다.

“오늘 정도는 좀 봐주게!”

*    *    *

진경룡은 누가 뭐라 해도 청죽관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 이가 졸업을 하니, 내 마음 한쪽에도 괜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경룡이 형이 있으니, 청죽관을 맡겨 놓고 외유를 다닐 수 있었는데.’

그에 새삼 많은 인연이 내 삶에 녹아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잃을 게 없던 시절에서 아득히 멀어진 지금의 상황에.

내 머릿속에 냉철함이 찾아 들었다.

‘천마신교.’

우리로서는 혈교와의 싸움으로 인해 동도회의 주 전력을 제법 잃은 데다가, 놈들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고.

놈들 역시 내부 단속을 하느라 바쁠 터.

당장 맞붙게 되지는 않을 터였으나.

피차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관계인 이상 언제고 싸움은 시작될 수 있었는데.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으려면 나아가야 한다.’

놈들과 맞붙게 되면 필연적으로 역천괴마의 괴왕부를 상대해야 했다.

‘죽은 동료가 적이 되어 공격해오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사기 저하를 부른다.’

세상이 흑도 혹은 사파라 부르는 하오문과 녹림도 동료의 죽음에 슬퍼했다.

‘삼강오륜 같은 것을 중요시하는 백도무림의 경우 정도가 더 심하겠지.’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역천괴마 구천서와 마옥군주 연옥란.’

놈들을 내가 감당해 낼 수 있다면, 천마신교와의 싸움을 풀어갈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터였다.

‘해볼 만하긴 할 것 같은데.’

흑마법의 효율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은 이 세상이지만.

‘명영 선배님 덕분에 내 내력이 크게 늘어났어.’

하니, 호식총의 술법처럼 이 시대의 술진을 접목해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사령왕이라 불리던 시절의 위용을 되찾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했다.

하여, 나는 졸업식을 치르자마자 마방연의 사령술 연구실을 찾았는데.

“…영환 교수님?”

엄청난 서류 더미 틈에서 거지꼴을 하고 있는 모산파의 영환이 보였다.

그에 인기척을 내자.

“어쩐지 졸업식 자리에 안 보이신다 했는데, 내내 여기 계셨습니까?!”

영환이 반색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 연구하고 있던 술식 하나가 풀릴 듯 말 듯 해서 집중을 하고 있다 보니 그리되었구만. 아무튼 언 회장! 마침 잘 왔네! 이것 좀 봐주시게. 뭔가를 발견한 것 같긴 한데, 이게 내 수준으론 확인을 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리고는 논문으로 추정되는 두툼한 서류철을 내게 내밀었는데.

내가 그걸 받아 장을 넘기기 시작하자, 영환은 설렌 표정으로 부연 설명을 해왔다.

“상단전을 통해 발산하는 내력의 효율을 올릴 수 있는 방도를 고민해보았네. 무엇보다도 자네가 사용하는 사령술과 술식을 짜는 법이 큰 영감을 주었네만. 자네의 방식은 엄청나게 날아가는 내력이 많지 뭔가?”

“그렇긴 하죠.”

“고대 갑골문에서부터 시작된 방술과 모산의 술법 그리고 마교의 방식까지 모두 후벼파서 그 부분을 개선할 방안을 고민해보았는데… 어떤가?”

“조금이라도 술진이 흐트러지면 내력만 날릴 정도로 복잡하네요. 개선할 점도 곳곳에 보입니다.”

“역시 그렇… 어디 가는가? 그래도 끝까지는 다 봐주시게. 그래야 발전이 있네.”

“확인을 해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손에 쥔 논문을 절반쯤 훑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계속해 종잇장을 넘겨 나갔다.

“아?! 그, 그랬지!”

“개선할 부분이 보이긴 하지만, 제가 딱 필요하다고 생각한 술진과 맥이 통합니다. 여기 이 부분이 술진의 핵이군요. 옆의 이건 확실히 빼도 될 것 같고. 이 부분은 사자의 서를 조금 응용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사자의 뭐?”

“자세한 설명은 조금 이따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마당의 연무장에 이르렀을 때.

상단전을 개방한 뒤.

우우우우웅-

내력을 뭉텅 뽑아 올려 영환이 떠올린 술법에 내 흑마법을 더한 술진을 그려 냈는데.

그렇게 왼손에 뭉쳐진 흑색구체를 하늘로 쏘아 올리자.

우르르르릉!!!

하늘에 걸린 흑색 구체를 향해 지상의 음기가 솟구치더니.

그렇게 뭉친 음기가 칠흑 같은 구름으로 화해 태양을 가리며 일종의 일식을 일으켰다.

그에 묵묵히 지켜보고 계시던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고.

- 땅에서 하늘로 솟구친 기운이 태양을 가리다니. 그야말로 역천의 술법인 듯한데… 뭐냐 이건?

나는 씩 웃으며 그 말에 답했다.

“더 네크로 폴리스.”

오롯이 사령왕의 통제를 받는 구역을 만들어 내는 궁극의 흑마술.

“이 세상 식으로 표현을 고치면. 백귀야행의 시(百鬼夜行之時)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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