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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420화 (420/444)

제420화. 직시 (1)

중천에 피어난 먹구름과 함께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깔리며 시작된 백귀야행의 시.

모여든 음기에 시퍼런 도깨비불이 여기저기에서 피어나자.

영환은 동공을 빛내며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사방에 음기를 충만케 하고 한낮을 밤처럼 만들어버리는 술법.”

다른 연구실에 틀어 박혀있던 모산의 제자들이 줄줄이 밖으로 나온 것은 이때였는데.

“느끼셨습니까? 갑자기 천지에 음기가 가득해졌습니다.”

“나도 그래서 나와본 걸세. 아무래도 갑자기 어둑해진 것과 관련이 있는 성싶은데?”

“일식의 징후는 없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원.”

그중 실장을 맡고 있는 대제자 형운은 나와 영환을 알아보고 놀란 눈을 떴다.

“영환 사숙이랑 언 회장? 설마 지금 일어난 현상이 그럼… 연구가 성공한 것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백귀야행의 시라는 술법입니다. 일정 구역 안에 발을 딛고 있는 술사와 권속들의 역량을 증가시켜주죠.”

나름대로 연구실에서 구른 시간이 제법 되었다 이건지.

형운은 곧바로 다른 모산의 제자들을 보며 명을 내렸다.

“자네들 지금 당장 빙고(氷庫)에 가서 강시들을 꺼내오게!”

그에 모산의 제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때.

형운은 허리춤에서 사인칠성검을 뽑아들었다.

스렁-

검면에 북두칠성의 문양을 새겨놓은 저 검은 그 자체로 모산파의 최고전력 상청검수를 상징했지만.

단순히 상징하는 역할을 넘어, 퇴마와 술법을 돕는 무구(巫具)이기도 했는데.

형운은 그 검에 음기를 감아내고자 중얼중얼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급급여울령. 급급….”

그러나 형운의 검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에 사부님은 질문하셨다.

- 저 모산의 젊은 말코 놈이 전대 괴룡 아니었더냐? 너를 제외하면 백도에서 그나마 술법에 일가견이 있는 놈이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 하면 역량 부족은 아닐 텐데, 이리도 충만한 음기를 어찌 검에 감아내지를 못하는고? 술사의 역량을 증가시켜준다면서?

형운과 영환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는지, 그들도 나를 향해 각각 질문해왔다.

“음기가 사방에 가득한데, 어찌 칠성검에 이 기운이 감기지 않는가?”

“흠. 언 회장이 술법을 시작하기 전에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실패를 한 모양이다. 그래도 인위적으로 태양을 숨겨 강시의 약점을 봉했으니 절반은 성공인가?”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개나 소나 이 술법의 영향을 받으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러자, 모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흠칫했는데.

“…개나 소.”

내가 개와 소에 비유한 대상은 저들이 아니었기에,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들이 아니라 천마신교의 술사들을 생각하고 한 말입니다. 적아(敵我)가 동시에 이로우면 그게 어찌 제대로 된 술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안 하는 것만 못한데요.”

“…아. 적을 향하는 말이었구만.”

“괜히 찔리셔서는?”

“…….”

“그러니까 평소에 열심히 좀 하십쇼. 열심히 안 하니까 찔리지. 영환 교수님이 배분으로 보나 직분으로 보나 제일 높으신데, 가장 올바른 연구 태도를 보이고 계십니다. 당장에 옷차림만 봐도 구별이 되네요.”

그에, 사부님께서 혀를 차오셨고.

- 하루에 한 시진도 제대로 못 잔 듯한 웅묘 같은 눈두덩이에… 갈아는 입었나 싶었을 법한 의복을 두고 올바르다니. 너어는 진짜…

형운은 항변을 해왔다.

“우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네. 자네가 들고 있는 논문을 사숙 혼자 정리했다고 생각하는가? 방금까지도 고서와 갑골문들 사이에서 먼지를 마시다 오는 길이라네… 애초에 재능의 한계가 있잖나. 자네와 비교하면 어지간한 술사는 모두 개나 소가 되니 무심코 그리 생각했을 뿐일세.”

엄밀히 말해 형운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상단전을 사용하는 만큼 술법을 시전하는 역량은 재능의 영역이긴 하죠. 하지만, 이 술법이 그걸 좁혀 줄 겁니다.”

나는 말과 함께 왼손 검지에 자그마한 상처를 냈고.

이어 형운을 향해 다가오라 손짓한 뒤.

손가락을 뻗어 그의 이마에 핏방울을 찍었다.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를 겁니다.”

이는 술진으로 하여금 형운을 내 권속으로 인식하게 하는 조치였는데.

톡.

그렇게 형운의 이마에 내 피가 묻자, 일순 그의 눈동자에 맺혀 있던 푸른 기운이 크게 일렁이며 이글이글한 안광으로 화하더니.

그가 쥐고 있던 칠성검에 음기가 빨려들듯 모여들기 시작했다.

슈애애액!

형운은 곧바로 검결지를 쥐었다.

그리고 다른 모산의 제자들이 막 꺼내오던 관을 향해 칠성검을 뻗었다.

“망자는 일어나시오. 급급여울령!”

꽝! 꽝!

꽝! 꽝! 꽝!

그러자 강시들이 일제히 관뚜껑을 박차고 나왔고.

“돼, 됐다!”

자신이 부적이나 진법석 없이 강시들을 일으켜 낸 것에 감격한 형운은 벅찬 소리를 냈다.

“됐습니다! 사숙! 됐어요!”

“그래! 성공이구나!”

그리고 자신의 연구가 성공했다는 사실에 감격한 영환과 서로를 부둥켜안고 빙빙 도는 때.

나는 마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연습이 좀 필요하겠네요.”

그에, 빙빙 돌던 걸음을 멈춘 형운이 입을 열었는데.

“제대로 강시가 움직이지 않았는가?”

“실전에서 사용할 때를 생각해야죠. 일단 그렇게 주절주절 길게 주문을 외울 필요 없습니다.”

“…아.”

“간결하게 해야 하고. 그 외에 다른 연습도 필요하겠네요. 술진도 좀 더 개량해야 할 것 같고.”

내가 그 말에 답하고 있는 사이, 학관 곳곳에서 벌어진 졸업식 뒤풀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던 이들도 새카만 하늘을 보았는지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중 언동생들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때.

“거봐, 내가 언용운이라고 그랬잖아!”

“아무리 용운 님이라도 오늘 같은 날까지 마방연에 와계실 줄은 몰랐네.”

경혜사태는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사이 어딜 갔는지 안 보인다 싶었는데, 여기에 와있었군요? 그나저나 이게 다 무슨 일인가요?”

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 마방연에서 해오던 사령술 연구가 있는데, 성과가 있을 듯하여 확인을 좀 하려고….”

한데, 모여든 이들 중 동공에 도깨비불이 맺힌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난 사람은 일부였는데.

그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걸로 상단전이 열리는 체질도 구분할 수 있겠는데?’

이를 활용하면 사령술에 재능이 있는 후기지수들을 쉽게 가려낼 수 있을 듯했다.

‘그건 장차 귀왕부를 상대하는 일과 사령술을 다듬어 내는 일이 수월해진다는 이야기야.’

나는 머릿속에서 결론을 내고, 경혜사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총장님. 이 술진을 사용하면 상단전이 열린 후기지수들을 쉬이 가려낼 수 있을 듯합니다.”

“그 말을 지금 하는 이유는….”

“입관시험에 그걸 검사하는 관문을 하나 늘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야 어렵지는 않지요. 뽑기로 한 인원 외에 특채 자리를 만들고, 등급 부여 관문에서 고지하면 될 겁니다. 한데, 준비하는데 시간이 촉박하진 않겠습니까?”

이어진 경혜사태의 물음에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되게 하는 거죠. 완벽히 준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경혜사태는 빙그레 웃었고.

모산의 제자들은 헛숨을 삼켰는데.

“…….”

“…….”

“…….”

나는 그들 중 영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 영환 교수님.”

“…어. 어. 마, 말하게.”

“저기 눈동자가 빛나는 선배님과 후배님들 말입니다. 혹시 교수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없는 듯하네만?”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재학생들은 다음 학기에 수강신청을 하도록 권유해 볼 테니까. 교수님은 졸업생 선배님들을 대학원생으로 받아주십시오.”

“…음. 졸업생들은 정한 진로들이 있을 텐데?”

“제가 기억하기론 저 중에 절반은 무림맹 지망이고, 나머지는 무창의 수군진과 저희 소식지 발행소에 오기로 했습니다.”

이럴 때 쓰려는 게 권한과 인맥인 것이다.

“즉. 본인 의사만 있으면, 어지간한 진로는 돌릴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런 내 말에.

은하연과 정현이 몸서리를 치는 때.

“…언 공자는 진짜 악마에요.”

“…원시천존.”

시커멓던 하늘에 우지직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백귀야행의 시간이 끝나가는 모습에, 나는 마른 웃음을 지었다.

“일단은 이 정도가 한계네. 여러모로 노력이 필요하겠어.”

*    *    *

구현된 백귀야행의 시를 보고 몰려든 사람엔 공손무결과 제갈척도 있었다.

다른 이들을 모두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낸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회주님, 맹주님. 잠시 시간 좀 내어 주십시오.”

나는 그렇게 옮겨간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천하의 동향에 관해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십만대산과 백본회의 동향은 어떤지 여쭙고자 시간을 내어달라 부탁드렸습니다.”

그런 내 말에 공손무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졸업식 행사가 모두 끝나고 나면 그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마음이 통했구만. 음. 천마신교는 소교주 선발을 빌미로 내부 단속을 해왔다. 한데 후보가 둘로 압축되며 조금 숨을 고르는 중인 듯하더구나.”

이어서 제갈척도 답을 해주었다.

“혈교를 토벌한 덕에 백본회의 너구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하나, 당장에 대산으로 쳐들어가긴 무리이니라. 천마신교와의 싸움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시작을 해야 해.”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했습니다.”

“오냐. 적을 속속들이 파악해야 하고, 우리도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정마대전의 전철을 또 밟게 될 수 있느니라.”

그 말이 맞았다.

패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양패구상이 되거나 제대로 결착을 보지 못한다면 수십 년을 이어 내려가는 지난(至難)한 싸움이 새롭게 시작될 터였으니 무작정 서둘러선 안 됐다.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다.’

하나,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을 듯했다.

‘원작의 흐름이 크게 바뀌었지만, 그로 인해 당대 천마신교의 교주인 혁련강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원도 줄었을 테니까.’

그 시간을 활용해 언동생들을 성장시키고, 전력이 될 수 있는 이들도 모두 끌어들여야 했다.

‘혁련강이 혹여라도 원작대로 주화입마를 입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적기가 될 거고.’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내가 턱을 만지고 있기를 잠시.

공손무결이 재차 입을 열었는데.

“안팎으로 여러 준비가 필요할 것 같은데. 회주님은 가장 시급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제갈척이 손바닥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말을 하면 괜히 휩쓸릴 수가 있네. 나와 맹주 그리고 괴룡까지, 세 의견을 모두 수렴하는 게 좋을 듯하니… 각자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손바닥에 써보세.”

그 말에 따라, 우리는 각자의 손바닥에 글자를 하나씩 써넣은 뒤.

“획수가 나만 다른 듯하구만. 아무튼 다 쓴 듯하니 한번 보세.”

동시에 손바닥을 내밀었는데.

나와 공손무결의 손바닥에 쓰인 글자는 완전히 같았고.

흑(黑)

흑(黑)

사(邪)

제갈척의 손바닥에 쓰인 글자는 달랐다.

하나, 흑도와 사파는 같은 뜻이었으니 뜻은 통한 것이었는데.

공손무결은 제갈척을 향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회주님. 요즘은 사파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만겹산에서 함께 흘린 피가 아직도 남녘에 남아 있을 텐데요.”

“거, 의미만 통하면 되지. 나 때는 그렇게 불렀어.”

“선배님.”

단호한 공손무결의 어조에, 제갈척이 멋쩍은 표정으로 재차 입을 연때.

“…알겠네. 알겠어. 사파라고 칭하던 게 익숙해서 그랬다네. 앞으론 주의하지. 아무튼 뜻이 모두 통했구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백본회 문제는 당장 심각한 건 아니고. 뇌음사나 태양궁은 이 시점에 잘못 건드리면 되레 독이 될 테니. 손을 대야 한다면 사도련주 백광호이겠죠.”

*    *    *

한편, 동정호에 숱하게 박혀있는 호중도(湖中島)의 한 곳인 창록도.

사도련주 백광호가 똬리를 틀고 있는 이곳엔.

수백 척의 배들이 섬과 호수의 물을 바탕으로 미로를 만들 듯 정박하고 있었는데.

스윽- 스윽

스으윽-

조그마한 나룻배 하나가 겹겹이 둘려진 배의 벽을 차례차례 통과하더니.

마침내 거함 앞에 이르러 두 사람을 토해냈다.

거함의 선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백광호는 그렇게 나룻배에서 내린 이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천마신교의 대공자 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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