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2화. 직시 (3)
언용운은 곧바로 원철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우선은 원철 스님 혼자.”
그 말에 원철은 호흡을 골랐다.
“후우.”
그리고 상체를 비스듬히 틀며 반장(半掌)을 앞으로 내뻗는 소림 특유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렇게 원철의 몸은 평생을 수련해온 방식대로 싸울 준비를 마쳤으나.
“……!”
그러고 나자 되레 몸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언용운은 애초부터 버거운 상대이긴 했다.
정진대회에서 처음 합을 섞어봤을 때부터 그랬다.
하나 시간이 흐른 지금, 눈앞의 언용운은 그저 버겁다는 말로는 수식할 수 없는 상대가 되어 있었다.
‘…이런 느낌은 스승님에게서만 느껴보았는데.’
물론, 상대로 하여금 천년고목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본인의 스승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었으나.
분명한 건, 그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또 한 걸음을 내디뎌내셨는가.’
그에, 원철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는 때.
언용운이 입을 열었다.
“대련하기로 한 사람 어디 갔나.”
그러자마자 언용운의 신형이 흩어지는 듯한 잔상과 함께 원철을 향해 쇄도했다.
쌔애애애애액!!!
오감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게 된 언용운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원철은 그물을 던지듯 마구잡이로 권기를 쏟아냈다.
쌔액! 쌔액! 쌔액! 쌔액!
그리고 오로지 수세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간격을 보수적으로 잡으려 했는데.
‘지금의 나로선 반격을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다.’
이 순간.
언용운의 좌수에서 시커먼 소용돌이가 회전한다 싶더니.
슈애애액!
원철이 쏟아낸 금빛 권기가 언용운의 손을 향해 빨려 들어가듯 일그러졌는데.
“…무, 무슨?!”
그러자마자 언용운은 소용돌이를 흩어버리고는, 비게 된 공간을 헤집고 들어왔다.
샥-
그리고 원철을 향해 주먹을 쏟아냈다.
퍽! 퍽!
퍼퍼퍼퍼퍽!!!
원철은 그런 언용운을 떨쳐내기 위해 백보신권을 뻗어냈다.
“아, 아미타부울!!”
하나, 언용운은 벼락같이 몸을 틀더니, 걸음을 물려 유유히 원철의 간격을 빠져나갔다.
“허억. 허억.”
원철은 단 일 합 만에 진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이는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실제로 원철은 언용운을 떨쳐내기 위해 공력을 마구 퍼내야 했으니까.
“헉. 허억.”
일찍이 소림을 이어나갈 동량으로 점찍혀 온갖 영약과 대법들을 지원받은 원철이었다.
덕분에 나이에 비해 심후한 공력을 가지고 있는 그였으나, 이런 식으로 싸우다 보면 바다 같던 단전도 순식간에 가물은 날의 논바닥처럼 텅 비게 될 터였는데.
‘괴룡시주는 심지어 검수인데.’
그렇게 원철이 숨을 몰아쉬고 있던지 잠시.
멀찍이 물러나 있던 언용운이 입을 열었다.
“내가 진짜 마인이었으면. 방금 원철 스님은 죽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알고 있는 게 맞습니까? 방금 스님이 쏟아낸 공격의 궤적을 휘게 만든 무공은 혈마가 사용했던 흡성대법을 제 식으로 체득한 겁니다.”
“…….”
“마인이 사용했다면 원철 스님의 진기를 빨아갔겠지요. 혈교는 결국 천마신교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앞으로의 싸움에서 마주하게 될 마두들도 같은 수법을 써올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런 식으로 당황하시면 안 됩니다.”
“…송구합니다. 소승은 마인들을 제대로 상대할 기회가 없었는지라.”
“예. 없으셨지요. 수학여행 때도 내륙조셨고. 지금껏 대련해온 상대는 가문의 내력(來歷)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백도무림의 고수들 뿐이었고요.”
“…….”
“그래서 이제 알려드리려 하는 겁니다. 호흡은 다 고르셨습니까?”
그렇게 이어진 언용운의 물음에, 원철은 이곳저곳 욱신거리는 몸으로 다시 한번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자 언용운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은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생각으로 원철 스님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방식의 공격을 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알려드리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회한을 뽑아 들며 왼손에 상처를 냈다.
“지금부터 혈조술을 사용할 건데, 보통의 강기와는 다를 겁니다.”
다시 한번 언용운의 몸이 흩어지듯 움직이는 순간이었는데.
쌔액! 쌔액!
쌔액!
한 수를 접어준 것인지.
언용운의 움직임 자체는 조금 느려졌지만, 동시에 휘둘러지는 회한에 휘감긴 혈기들은 예고했듯 마구잡이로 형태를 바꿨다.
펑! 펑!
펑! 펑! 퍼엉!!!
그에, 원철은 바쁘게 권장을 뻗어내는 와중 질문을 던졌다.
“강기가 생명이 있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뻗어오는군요. 혈교의 무공이 이런 식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겁니까?”
“놈들의 것은 이것과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조금 더 꺼림칙하고 위험하죠. 베어져 나오는 혈향이 감각을 마비시키는 데다, 여차하며 혈맥을 폭주시켜 자폭을 해오니까요.”
“…하지만 혈마는 토벌되지 않았습니까?”
“토벌하긴 했지만, 혈교의 뿌리는 천마신교를 지탱하는 귀성팔족 중 하나인 진가죠. 그 가문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언용운의 답에.
원철은 아쉬움을 느꼈다.
물론, 답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다.’
소림이 중원을 지키고 있어 줘야 토벌계획이 성공할 것이라는 이유가 있었으나.
‘어쨌거나 나는 천하를 구하는 일선에 서지 못했다.’
하나, 원철은 그것을 감내해내는 것이 소림의 제자 된 자의 의무라는 것을 알았다.
천하를 지켜내고 민초들을 편안케 하려면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른 법이라는 것을.
다만, 소림이 제 역할을 다해내려면 지금까지의 소림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함께 직시하게 되었다.
‘물 위를 고고히 헤엄치는 백조도 물 아래에선 가열차게 발을 휘젓는다고 하였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마자 원철은 입을 열었다.
“다른 소림의 제자들도 이를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말에, 언용운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와 반대로, 언용운의 손속은 더욱 매서워졌다.
“그건 차차 교류전이든 뭐든 추진을 하도록 하고, 우선은 원철 스님 본인 앞가림이나 합시다. 정현!”
“예! 언 소협!”
“이제 너도 가세해라! 두 사람이 합공해!”
“예!”
그렇게 정현까지 가세하며 대련이 이어지길 한참.
두 사람의 의복은 넝마가, 몸은 녹초가 되었을 때.
딸깍.
회한을 허리춤으로 돌려 넣은 언용운이 원철을 향해 질문 던졌다.
“어떻습니까?”
“…흐억. 헉.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부족함과 소림의 부족함도 직시하게 되었고요.”
“원철 스님 말고 나 말입니다.”
“괴룡… 말씀입니까?”
“다른 언동생들은 대련을 하고 나면 괴물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만 하고. 정현 이 녀석도 솔직하게 말을 안 해주고. 스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나를 상대해보니 어떻습니까?”
“무공이 진일보하신 것이 느껴집니다.”
“그것뿐입니까?”
되돌아온 언용운의 물음에 원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현 도장과 합공을 하고도 나가떨어진 지금이고. 성취도 부족한 제가 감히 괴룡 시주한테 어쭙잖은 말을 주절거려도 될지….”
“원철스님은 무의 극에 다다른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남들과는 다른 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여쭙는 겁니다.”
“…정 그러시다면 드릴 말씀이 있긴 합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사지(死地)를 찾아다닌다고 하여 무공이 상승하는 것이 아닐진대. 어느새 소승과 또 한 걸음 멀어져 있는 괴룡의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한데요?”
“…딛고 계신 경지에 비해 몸이 조금 무거워 보입니다.”
원철은 그렇게 말하며 어찌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무극검의 격체전공.’
당금 무림인 중에 언용운이 무슨 기연을 어찌 얻게 됐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갑작스레 늘어난 내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마음 자체가 무거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안다고 해서 쉬이 입으로 꺼낼 수 있는 주제도 아니었기에, 원철은 그저 소감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는데.
그 사이 언용운이 엷은 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역시 그렇군요. 뭐, 일단 오늘 대련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합시다.”
그런 언용운의 어깨는 일견 넓어 보이면서도 무거워 보였다.
‘무극검의 평생을 짊어진다는 것의 무게는 얼마쯤일까.’
원철은 그 무게를 나눠 들고 싶다고 생각하며, 어쩐지 초라하게 느껴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사천과 섬서를 나누는 대파산맥의 북편.
험준하기로 이름난 이 산맥의 틈바구니엔 천하 일흔둘 녹림채를 통솔하는 녹림왕의 본거지가 있었는데.
녹림산장이라 부르는 이곳에, 온몸이 새하얀 매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호루룩!!
본디 신기한 것을 보면 첫째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둘째로는 활을 겨누는 게 산적들 인지라.
산장을 지키고 있던 산적들이 무의식적으로 활을 겨누는 때.
끼기긱.
녹림왕 도중광의 왼팔이라 할 수 있는 쌍도귀가 급히 입을 열었다.
“야이 새끼들아! 활 내려! 우리 편이다!”
“편이요? 미물에 니 편 내 편이 어딨습니까?”
“미물? 쟤가 너보다 똑똑할 거다, 이 새끼야.”
반문을 던지는 졸개 놈의 뒤통수를 후려친 쌍도귀는 육포 하나를 급히 챙긴 뒤.
채주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대두령! 궁윤 도령! 응용이가 왔습니다!!”
그렇게 채주전에 도착하니.
이미 남궁윤의 어깨에 내려앉은 응용이는 졸개들 관리를 똑바로 하라는 듯이 노려보고 있었고.
호룩!
“그, 쏘지는 않았잖냐. 너도 쪼지는 마라.”
남궁윤은 서신을 읽고 있었는데.
금세 서신을 훑어낸 남궁윤은 뿌듯한 표정으로 서신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이 정도입니다. 언용운. 그 친구에게 있어 없어선 안 될 그런 벗 중 하나라고 할까요.”
한데, 그렇게 남궁윤이 흔드는 서신의 내용은 지극히 사무적인 투였다.
『고생 많다.
사도련주의 심사가 편치 않을 상황이고, 마교의 소교주 쟁탈전의 여파가 있을 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라.
사소한 일이라도 자주 보고하도록 해라.
부탁은 처리하마.』
그에 쌍도귀는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그냥 보고하라는 거 아닙니까? 관아에서 저희 같은 놈들 잡아오라고 배부하는 수배서에 쓰인 거랑 문구가 비슷한뎁쇼?”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군. ‘사소한 일’ 그리고 ‘자주’라는 표현이 안 보이나? 대저 사소하다는 것엔 개인사가 포함되는 법이다. 물론 내가 그런 것을 시시콜콜 써 보내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이 남궁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도중광은 그런 남궁윤을 향해 너 잘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받은 서간을 내밀었다.
“그래 축하하고. 이것도 좀 해석해봐라.”
그렇게 도중광이 내어준 서신은 발신인이 공손무결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도중광의 몸 상태를 묻는 내용만이 가득했기에 딱히 내용이랄 것은 없었다.
“선배님의 안위를 걱정해주시는 내용이군요. 혹 글을 모르시면 지내는 동안 제가 가르쳐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새끼야 나도 천자문은 뗐어! 내 말은, 나는 서신을 써 보낼 적에 금분세수 이야기를 써 보냈는데. 왜 이딴 이야기만 적혀 있냐 이거지.”
“…큼. 금분세수도 선배님께서 만전을 되찾아야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제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인질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에라이. 검황의 손자를 인질로 잡았다가 무슨 꼴을 당하라고! 이 자식이 무서운 소리를 잘도 하네? 그냥 너도 가! 뭐 하려고 아직도 여기에 붙어있냐?!”
“아무튼 약속은 지켜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단지 언젠가라는 말이 빠졌을 뿐.’
그렇게 남궁윤이 이 정도는 언용운이 치고 다니는 사기에 비하면 거짓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때.
채주전 밖에서 묘한 웅성거림이 들여온다 싶더니.
“…는데?”
“…하자고! 내가 다녀옴세!”
졸개 하나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두려어어엉!!!!”
“이 새끼야. 손님도 있는데 그렇게 문을 벌컥벌컥 쳐 열면 내 체통이 뭐가 되냐?! 그리고 옆구리가 뚫린 거지 귀가 먹은 건 아니니까 살살 말해. 귀청 떨어질 뻔했네!”
“사도련주가 보낸 사자가 당도했습니다!”
“뭣이? 사자? 살수가 아니고?!”
* * *
입관 시험은 별 탈 없이 치러졌다.
“여러분은 이 시각부로 응시생 신분을 벗어나 후보생이 되었소이다.”
천마신교도 당장에 내부 단속과 기존의 동맹을 유지하는 게 급선무였던 모양인지, 입관시험에 수작을 부려오지는 않았고.
“앞으로 봄방학 기간을 거친 뒤에 입학식이 있을 것이오. 후보생 신분은 언제든 입관불허 통보를 받을 수 있으니, 입관처의 안내를 숙지하고 몸가짐을 각별히 조심해주길 바라오이다.”
급히 준비하게 된 ‘사령술 적성’ 관문이었지만, 모산의 제자들과 내가 철야를 무릅쓰며 준비한 덕분에 스무 명의 특채인원도 무사히 뽑을 수 있었는데.
나와 언동생들을 비롯한 언동생들과 교직원들이 또 하나의 기수를 잘 받아냈음에 미소를 짓고 있는 때.
호루욱!
남궁윤에게 보냈던 응용이가 날아와 내 어깨 위에 앉았다.
나는 곧바로 녀석의 다리에 메인 서신을 확인했다.
서신엔 백광호가 도중광에게 사람을 보내, 창록도로 찾아오라는 말을 전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선배님들. 교수님들이 찾으면 저희는 총학생회에서 다룰 일이 있다고 전해주십쇼.”
“알겠네. 그리 전하도록 하겠네.”
곧바로 대학원생 선배님들께 뒷일을 맡긴 나는 언동생들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낸 뒤.
총학생회실에 당도해서는 녀석들에게 서간을 돌렸다.
그렇게 돌린 서신이 다시금 내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곧바로 서간 하나를 작성하며 입을 열었다.
“봤겠지만 백광호가 움직였다고 한다. 은하성.”
“예?”
“너는 지금 즉시 본관으로 가서 동도회주님한테 내 서신 전해. 전하면서 총장님한테 둘러달라고 전하고.”
그런 내 말에, 제갈설지가 아미를 좁히며 입을 열었고.
“할아버님께서 총장님께 둘러대주셔야 할 일이면… 위험한 일이겠네요.”
이어서 은하연과 당옥기도 입을 열었는데.
“직접 가시려는 것이겠고요?”
“캭!”
“직접 가야지. 직접 가야 하는 일이오. 마침 봄방학이기도 하군.”
“그럼 저도….”
나는 뒤를 이은 은하연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은 소저는 청죽의 자치회장 아니오. 신입생 받아야지. 제갈 소저도 같은 맥락으로 총학생회 좀 챙겨주시고.”
그리고 사대기숙사의 생도를 한 명씩 골라냈는데.
“소릉이랑 장호, 옥기랑 소진 누님. 이렇게 사대기숙사 생도를 한 명씩 뽑아가면 교수님들께 둘러대기 좋겠지.”
이때.
원철이 번쩍 손을 들고 나섰다.
“소승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구색으로도 전력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고 호명된 언동생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름 불린 사람들은 반다경 내에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행랑 단출하게 꾸려서 집합.”
녀석들은 일사불란하게 내 지시에 따라 집합을 마쳤고.
“한시가 급하다. 달린다.”
우리는 경신술을 일으켜 남하를 시작했는데.
단강구에서 남쪽으로 향할 때 마주하는 세 갈래 길에서, 잘 택하지 않던 가운데 길을 택하자.
팽소진이 질문해왔다.
“지금 장강을 통하려는 건 알겠어.”
“그런데요?”
“근데 하오문의 본단은 항주에 있으니 무창을 통하는 게 빠르잖아? 그럼 왼쪽 길로 가야 하고. 녹림산장이 있는 대파산맥으로 가려면 사천으로 통하는 동쪽이 빠른데 왜 가운데 관도를… 설마 우리 지금 동정총호한테 가는 거니?”
“예.”
내 대답에 언동생들이 동시에 헛숨을 삼키는 때.
“백광호는 이렇게 대놓고 움직이는 자가 아닙니다. 이건 저를 부르고 있는 겁니다.”
나는 씩 웃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어쩌면 사도련의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도 있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말씀드릴 테니 일단 서두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