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24화 (424/444)

제424화. 직시 (5)

우소릉은 크게 호흡을 내쉬었다.

“후우. 가, 갑니다!”

그리고 내 지시에 따라 엄청난 속도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

그에, 우리를 실은 배가 호수에 포말로 된 하얀 선을 만들어 내는 때.

사도련의 선단에서 뿔나팔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뿌오오오오!

전열을 담당하던 배들이 닻을 들어 올리며 몸체를 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당옥기가 입을 열었는데.

“바로 걸렸네!”

“그럼 안 걸리겠냐. 이렇게 날씨가 맑은데.”

“내 말은 잠입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냐는 이야기지.”

“저 많은 배 중에 백광호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잠입을 해? 그래 가지고 어느 세월에 찾냐?”

“…그건 그렇네.”

“방금도 말했지만 일단 한바탕 휘저어놓는 게 맞아.”

한참 노를 젓고 있던 우소릉이 질문해왔다.

“언 형! 저기 저희 배가 들어갈 만한 틈이 보이는데요?! 진입할까요? 아니면 사도련의 배에 저희가 올라타나요?”

나는 곧바로 되물었다.

“이건 군진(軍陣)의 일종이다. 학관의 수업시간에 군진에 갇히게 되면 중심을 어찌하라고 했냐?”

“진에 휩쓸리지 말고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진입할게요!”

그렇게 우리를 실은 배가 적의 선단에 생겨난 틈을 향해 나아가는 때.

팽소진이 허리춤에서 청홍검을 뽑아들었다.

“용운이 네가 어떤 생각인지는 알겠어. 이 방법이 제일 빨리 백광호를 불러내는 법이고, 추후에 가장 안전하게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이라는 것도. 하지만 상대는 흑도야.”

“하시고 싶은 말씀이 정확히 뭡니까?”

“눈 돌아가면 이성적이지 못한 결론으로 치달을 수가 있다고. 되도록 살상은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대저 흑도의 무리가 그렇긴 했다.

규율, 합리, 도덕 같은 것보다는 이해득실을 따지지만.

그렇다고 철저하게 이해관계에만 입각한다고 하기엔, 내키는 대로 움직이기도 하는 것이 저들이었다.

‘좋은 예는 하오문주님과 도중광 선배지만… 나쁜 예가 나올 수도 있지.’

나와 언동생들을 잘못 건드리면 무림 공적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복수에 눈이 먼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게 저들이었으니.

팽소진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되도록 살상은 삼가는 것으로.”

하여, 고개를 끄덕이는 때.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사도련의 선단 틈바구니로 진입했다.

“…….”

그로 인해 거함이 시야를 가려버리니, 일순 우리 위로 어둑하게 그늘이 졌는데.

“…….”

동시에 찾아든 묘한 고요함이 이어지길 잠시.

그 고요는 사실 폭풍전야의 전조였다는 듯, 백광호의 졸개들이 내던진 작살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슉! 슉! 슉! 슉!

슉! 슉! 슉!

나는 신속하게 배의 측면으로 옮겨가며 입을 열었다.

“전면은 내가 담당한다!”

그러자, 우소릉이 귀신같이 알아듣고 노를 한쪽만 저어 배를 틀었다.

그렇게 본래 측면이던 부분이 전면이 되는 사이.

언동생들도 일사불란하게 위치를 잡았고.

“소진 언니, 제가 오른쪽이요.”

“그럼 나는 왼쪽.”

“이 천장호는 그럼 후면을 지키겠습니다!”

나는 무수히 쏟아지는 작살을 응시하며 회한을 고쳐 쥐었다.

‘여기서 순수한 파천의 검을 펼치면… 그 기운에 튕겨 나간 작살이 난반사를 일으키듯 날아가 살겁을 일으키겠지.’

그렇다면 순수한 파천의 검이 아닌 다른 검에서 목도했던 묘리를 접목해본다.

‘무당의 검.’

혈교와의 싸움에서 보여주었던 명영의 검.

나는 그 검을 상기하며, 회한을 휘둘러 나갔다.

쌔액! 쌔액!

쌔액! 쌔애액!

물론, 무당의 제자가 아닌 내가 명영의 검을 오롯이 재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겐 흡성대법을 보고 떠올린 역천흑동(逆天黑洞)이 있었다.

슈애액!

그렇게 왼손에는 쏟아지는 작살들의 궤적을 일그러뜨리는 기운을.

오른손엔 태극의 묘리를 흉내 낸 검을 휘둘러 내길 잠시.

차차차차착!

내 왼손엔 어느새 적이 던진 작살이 한아름 들려있게 되었다.

나는 벼락같이 회한을 선창에 꽂아 넣은 뒤.

“일단은 저 배부터.”

들고 있던 작살 뭉치에 파천의 기운을 감았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거선의 밑단을 향해 한꺼번에 던졌다.

쐐애애애애액!!!

콰아아앙!!!!

공기를 찢으며 날아간 작살 뭉치는 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적선의 밑바닥에 큼지막한 구멍을 뚫었고.

덕분에 크게 휘청인 적선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호숫물을 감당치 못하고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한마디를 했는데.

“살상은 주의하되, 기물파손은 겁내지 말자고.”

물론, 그런 말을 하는 동안에도 작살 소나기는 계속해 쏟아지고 있었다.

하여, 다른 언동생들은 내 말에 답을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텅! 텅!

터터터텅!!

이때.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원철이 저놈은 관광을 온 것이냐?

그에, 힐끔 뒤편을 응시하니.

정말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원철이 보였다.

“괴룡 시주가 구체적인 지시를 한 것도 아닌데, 이리도 일사불란하다니… 마치 한 몸과도 같도다. 이게 실전에서의 괴룡과 언동생들이란 말인가?”

그사이 들이닥친 작살 더미를 다시 한 번 적에게 되돌려 보낸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원철 스님!”

“예? 아!”

“뭘 멍하니 계십니까?”

“소, 송구합니다. 다들 너무도 자연스럽게 움직이시길래 무언가 약속한 움직임이 있으신 것 같아, 동선이 꼬일까 봐 지시를 기다린다는 게 그만 넋을 놓았습니다.”

“약속된 건 아니고 오래 손발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건데, 아무튼 지금부턴 지시를 드리겠습니다.”

“예! 저는 뭐를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방금 제가 맡았던 역할을 하세요! 저랑 자리 교체합시다!”

잠시 넋을 놓았던 원철이었지만.

대머리독수리 소리를 들으며 구른 경험이 있는 녀석답게, 시원한 복명복창과 함께 내 쪽으로 달려왔다.

“자리교체!”

그렇게 원철에게 서 있던 자리를 맡긴 나는 곧바로 천장호가 있는 곳을 향해 내달리며 입을 열었다.

“천장호!”

“엇. 아. 옙!”

그러자 천장호는 급히 자세를 낮추고 양손을 모아 발판을 만들었다.

팟-

나는 그 발판을 딛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사도련의 선단들이 시전하고 있는 진법 배치를 확인했다.

“…천류불식(川流不息) 냇물이 흘러 쉬지 않는다. 우소릉! 남서쪽으로! 남서쪽이 생문(生門)이야!”

*    *    *

백광호의 선단이 펼치는 진법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파훼해 내기를 한참.

우리는 도합 세 척의 거선과 중형선 열 척을 가라앉혀 냈다.

“저놈들 딱히 우리에게 살초를 펼치려 하지 않는다! 당파진을 펼쳐라! 충파선들은 앞으로!”

하나, 적들도 우리가 자신들을 죽이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대응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쏟아지던 작살비와 화살비가 일제히 멈췄고.

쏴아!

쏴아아아!

충파선.

그러니까 상대의 배를 부딪쳐 침몰시킬 때 쓰는 충각(衝角)이란 뿔이 달린 쾌선들이 우리가 탄 배를 쫓기 시작했다.

“옘병. 저것들에 둘러싸였다가는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겠네. 작살공격은 안 하는 것 같으니까, 저도 노 젓습니다?!”

“그러는 게 좋겠다.”

그에, 우소릉과 천장호가 함께 노를 젓기 시작한 때.

“미꾸라지 같은 놈들! 변 조장!”

“예!”

“자네는 우회해서 길을 막게!”

“예!”

나는 뒤따르는 백광호의 수하들이 보이는 움직임에 속으로 감탄했다.

‘…이게 흑도에 속한 자들의 움직임이란 말이지.’

땅 위에서 펼치기도 쉽지 않은 게 진법인데, 그걸 물 위에서 펼쳐내는 것만 해도 그 저력을 엿볼 수 있었는데.

‘한두 가지 진법을 간신히 펼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파훼법에 어떻게든 대처를 해내고 있다.’

게다가 군기 역시 흑도의 무리라 하기엔 엄중하기 그지없었다.

‘거의 관군 수준… 아니지. 어지간한 관군보다 낫네.’

자금성이 있는 북직예나 변방의 요충지를 지키는 정예병들이면 모를까.

늘어질 대로 늘어진 후방의 관군들은 절대로 이들의 상대가 될 수 없을 테다.

‘…왜 관에서 토벌하지 못하는지 알겠다.’

내 머릿속엔 자연히 ‘과연 동정총호 소리를 들을 만하다.’라는 생각이 스쳤고.

동시에 사도련이 배후의 적이 되면 곤란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때, 우소릉이 급히 입을 열었다.

“어, 언 형! 앞에도 충파선이 나타났는데요!?”

“아직.”

그 말에 짧게 답한 나는 적들의 움직임을 묵묵히 주시했다.

“…어. 이러다간 부딪힐 것 같은데요?!”

그러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신호를 보냈다.

“지금!”

“쏠립니다!”

내 신호에 맞춰 우소릉과 천장호는 배를 틀었고.

덕분에 우리가 타고 있던 배가 절묘하게 적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가는 순간.

우리의 앞을 막으려던 놈들과 꽁무니를 쫓아오던 놈들이 저들끼리 부딪치게 되었는데.

콰직! 콰지직!!

콰지지직!!

백광호의 부하들은 보통의 흑도와는 전혀 다른 근성을 가진 자들이 주를 이르고 있는 모양인지.

그렇게 겹쳐지게 된 배를 다리삼아 한 무리의 수적들이 우리 배로 뛰어 들어왔다.

“저놈들은 우리에게 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 올라타라!”

하나, 나는 곧바로 파천권법을 시전해 놈들의 희망사항을 부숴주었다.

퍽! 퍽!

퍼퍼퍽! 퍼어억!!!!

“살생을 삼가겠다는 것은 되도록 주의하겠다는 거지. 안 쓰겠다는 건 아니란다.”

그렇게 배에 올라타려던 놈들을 피떡으로 만들어 동정호에 던져버린 나는, 적들이 펼치는 진법의 틀이 되고 있는 거함들을 응시했다.

“슬슬 백광호 본인이 튀어나오든. 진법이 또 한 번 움직이든 할 것 같은데….”

요란하게 휘젓고 다녔으니, 백광호도 우리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인데.

여기서 배들이 더 가라앉으면 백광호의 주머니에 큰 구멍이 나게 될 터였다.

하니, 본인이 나서든 이 선단의 진짜 저력을 보이든 할 것이라는 결론이 내 머릿속에서 나는 때.

끼거거거걱-

사도련의 배들이 통로를 만들 듯 처처척 몸을 틀더니 좌우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생겨난 길 끄트머리에, 몸을 가로로 튼 채 닻을 내리고 있는 거함이 하나 보였다.

치치치칙-

그런데, 그 거함의 옆구리에 박힌 대포 위에 타들어 가는 심지도 보였다.

그걸 확인한 나는 다리에 파천의 기운으로 벼린 바람줄기를 감으며 천장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천장호! 아까 끼고 있던 광주리에 귤 몇 개나 남았냐?!”

“어. 스물 몇 개 정도 남았을 겁니다? 한데 갑자기 귤은 왜?”

“닥치고 물 위로 던져! 징검다리로 삼을 거야!”

그에, 천장호가 귤을 내던지기 시작한 때.

거함의 옆구리에 박힌 대포가 불을 뿜었다.

퍼어엉!!!!

동시에 나도 물에 떠 있는 귤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 귤들을 발판삼아 포탄이 날아드는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팟! 팟! 팟! 팟! 팟!

나는 포탄 쪽으로, 포탄은 내 쪽으로 서로가 서로를 향해 쇄도하니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는데.

쌔애애애액-

초집중 상태에 들어가며 늘어지는 시간 속에 회한을 고쳐 쥔 나는.

벼락같이 파천의 검초를 펼쳐내 포탄에 붙은 심지와 포탄을 잘라냈다.

샥! 샥!

샤샤샤샤샥!!!!

그에 썰려 나간 포환들이 물아래로 우수수 떨어지는 때.

묘한 박자로 울리는 박수 소리와 함께 백광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짝. 짝. 짝. 짝. 짝.

“오랜만이군. 못 보던 사이. 경악할 정도의 고수가 됐구만?”

*    *    *

“내 배에 오르겠나?”

백광호의 등장과 함께 양자 간의 싸움 자체는 막을 내렸다.

“예. 뭐. 그러려고 온 거니까요.”

하나, 격렬했던 싸움 탓에 언동생들도 백광호의 부하들도 씩씩거리는 상태로 마주 서게 되었는데.

그렇게 양자의 투기가 불똥을 튀기는 때.

백광호가 입꼬리를 비틀며 재차 입을 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망나니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더니만. 이제 괴룡 그리고 천하제일 후기지수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구만. 가히 천하 십검의 한 자리는 차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는데?”

그런 백광호의 말에, 나도 마주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날이 맑더라고요.”

“내 앞에서 같잖은 겸양 떨 거 없네.”

“겸양으로 한 말이 아닌데요?”

“아니라고? 안개가 꼈으면 힘들었다, 뭐 그런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고?”

“예. 안개가 꼈으면 힘들었을 것이라는 겸양이 아니라. 종일 날씨가 맑을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입니다.”

나는 온종일도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은 자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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