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30화 (430/444)

제430화. 물결 (4)

“무각주님! 종남파의 제자들이 탄 배가!”

“나도 보고 있다. 호들갑 떨지 말고 정무학관 조가 탄 배와 거리를 벌려라.”

“예!”

“…창량이 거리를 띄우고 있는 것에서 의심해봤어야 했는데. 종남의 장문인이나 나나 마음이 급했군.”

종남파의 참가자들이 타고 있던 배가 가라앉는 것을 목격한 곤륜파는, 우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 사이 정원해는 우리 배로 유유히 헤엄쳐 돌아왔다.

“푸하.”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수고하셨습니다.”

내 손을 잡고 다시금 배에 오른 정원해는 멋쩍게 웃었다.

“수고랄 것도 없습니다. 다들 앞에 가는 맹주님의 배와 이 배의 선수에 서 있는 괴룡을 주시한다고 수면 아래를 경계하지 않았으니까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라 그렇죠. 뭐.”

“예. 기실 처음 한 번이나 통하지, 경계를 하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막아 낼 수 있을 텐데도 저렇게 물러나 주는군요. 아, 지금부터 키는 제가 잡겠습니다.”

은하연은 잡고 있던 키를 정원해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우리가 탄 배는 한층 더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갈라내기 시작했다.

그에 당옥기는 입을 동그랗게 말며 정원해를 칭송했고.

“오오오오. 확실히 소궁주님이 다르긴 다르네. 하연이가 키를 잡고 있을 때보다 훨씬 빠른데? 성능 확실하구만!”

은하연도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이야. 장강에서 조운선을 운용하다 만난 수적을 따돌린 적도 있는 난데. 진짜는 다르네.”

그렇게 배를 다루는데 이골이 난 이가 키를 잡고.

다른 참가조들은 우리를 경계하며 뒤에 서길 자처하니.

우리는 단강구의 호수를 선두로 가로지른 끝에, 첫 번째 지점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언 형! 저기 대학원생 선배님이 깃발을 들고 서 계신 곳인 첫 번째 지점이죠?!”

“그래.”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조원들이 숙지해야 할 사항을 주지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서둘러야 한다. 배가 저편에 닿자마자 튀어 나갈 수 있도록 준비들 해.”

그런 내 말에, 독고철은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질문을 해왔다.

“맹주님의 행군 속도는 말단이던 시절부터 유명하셨다죠? 그 때문입니까?”

“그것도 맞고. 경쟁자들도 생각해야 하니까.”

나는 말하며 뒤따르는 경쟁자들을 확인했다.

“화산과 곤륜이 바짝 쫓아오고 있고. 종남은… 검령문(黔靈門)의 배에 얹혀 탔네. 저게 창량 교수님이 말씀하신 유구한 역사를 가진 대파의 강점이겠지.”

그렇게 뒤따르는 경쟁자들의 현황을 확인한 나는 다시금 언동생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소궁주 덕분에 거리를 좀 벌리긴 했지만… 화산, 곤륜, 종남. 이 세 곳은 저마다 경신술에 일가견이 있는 곳들이다.”

그러자 남궁영이 답했다.

“화산은 암향표. 곤륜은 운룡대팔식. 종남은 무염보. 모두 천하일절로 이름난 경신술들이죠.”

“그래. 우리 중 몇은 저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경신술을 갖고 있긴 하지만, 전원이 결승점에 들어가야 한다는 과제를 생각하면 뭍에 닿는 순간 우리에겐 불리한 지형이 된다. 그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해.”

그런 내 말에, 독고철은 밧줄을 챙겨 들며 입을 열었다.

“예! 배가 닿자마자 정박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선아 네가 닻을 좀 맡아!”

“알았어!”

그렇게 내 지시에 따라 언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덕분에, 우리는 순식간에 정박을 마칠 수 있었고.

그 덕에 먼저 산자락을 올라가기 시작한 공손무결의 뒤를 바로 쫓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 전원이 상승 신법을 사용하는 집단들의 추격은 매서웠다.

가장 먼저 우리의 배후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곤륜의 제자들이었다.

휙! 휙! 휙! 휙!

그들은 특유의 기다란 소매를 펄럭이며, 구름을 헤치는 용과 같은 걸음으로 우리를 앞질러 갔고.

그 뒤를 바싹 따라붙어 있던 창량과 매화검수들도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휙! 휙!

휙! 휙! 휙!

그렇게 두 조를 앞세운 지 잠시.

지도상에 표시돼있던 두 번째 지점에 이르렀을 때.

“언 형! 종남이 거의 다 따라왔어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종남의 제자들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이며 우리를 따라잡았는데.

종남의 조가 우리를 앞지르는 순간.

장문인 황백월이 한마디를 뱉어내곤 스쳐갔다.

“먼저 가겠네!”

그렇게 멀어져가는 황백월의 모습에 팽소천과 은하성이 차례로 입을 열었는데.

“장부답지 못하군. 용운이가 ‘용운’했을 뿐인데. 어른이 그걸 돌려주다니.”

“장부는 맞죠. 졸장부도 장부의 일종 아닙니까?”

“아?”

듣고 있던 언용명이 마른 웃음을 짓는 때.

“…어지간히 부아가 치미셨나 봅니다.”

정원해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기실 제가 경신술에 조예가 부족하여 이리된 듯합니다.”

나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할 것 없습니다. 소궁주에게 조원이 돼달라고 한 게 납니다. 어차피 우리 중엔 나랑 소릉이 그리고 제갈 소저 정도를 제외하면 경신술로는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애초에 제가 불리해질 거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리고 뒤처지는 걸음은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친구들이 앞질러 갈 때 가만히 있었던 거기도 하고요.”

그런 내 말에, 남궁영이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아! 마지막에 결국 호수로 돌아가야 하니까. 거기서 만회하면 된다는 생각이신가요?”

“그것도 복안 중 하나이긴 한데, 그건 정말로 마지막 방법이고. 우선은 질러간다.”

나는 말을 하며 가까워지고 있는 앞쪽의 절벽을 가리켰다.

그러자, 천장호가 기겁하며 입을 열었고.

“질러가요? 설마 저 험곡을 질러 가자고요?!”

이어 제갈설지도 아미를 좁혔다.

“하지만 그러면 총장님이 말씀하신 규칙에서 어긋나지 않나요? 지도에 길을 표시해주셨는데요?”

“붉은 선으로 길을 표시해 놓긴 하셨지. 하나 그건 맹주님이 그렇게 이동하는 행로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하오. 왜냐. 과제라면서 하신 말씀은 ‘지점’을 통과하라는 거였으니까.”

“아? 그렇네요? 어떤 행로든 지점만 통과하면 되겠네요.”

“애초에 만인혈을 되찾는다는 게 주제고. 예의 바르게 뒤를 쫓아서 될 일이 아니지.”

듣고 있던 팽소진이 입을 연 건 이때였는데.

“험곡을 질러서 가면 따라잡을 수 있긴 하겠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움직이는 걸 보면 다른 경쟁자들도 따라 할 수 있지 않을….”

질문을 하는 듯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 스스로 답을 내렸다.

“…아. 이 짓거리를 함부로 따라 할 사람은 없으려나?”

그에, 나는 씩 웃으며 소매를 걷었다.

“알아들었으면 갑시다.”

*    *    *

한편, 단강구의 선착장 인근에 마련된 귀빈석엔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등에 이(二)자가 쓰인 이 전서구는 참가자들이 꼭 거쳐야 하는 지점 중 두 번째 지점에서 날아오는 녀석들이었다.

당연히 그 발에 매달린 소식은 천무대회의 현황에 관한 것이었는데.

자리한 빈객들이 모두 숨을 죽이는 가운데, 경혜는 전서구가 운반해온 소식을 펼쳐 들었다.

“두 번째 지점의 통과순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일 위는 곤륜. 이 위는 화산. 삼 위는 종남. 사 위는 정무….”

이후로도 소림을 비롯해 다른 참가조들의 등위가 불렸으나.

자리한 빈객 대부분이 관심은, 언용운의 조에 쏠려있었다.

“허. 첫 번째 지점인 반대편 선착장을 일 등으로 통과하는 걸 봤는데, 정무학관의 조가 사 등까지 쳐졌단 말입니까?”

하여, 상위 네 조가 발표되자, 모인 이들이 저마다 입을 열기 시작했는데.

“괴룡도 후기지수들을 모아놓은 학관에서나 우쭐댈 뿐, 저 정도 되는 선배들 앞에선 핏덩이인 것이지요.”

“화산의 매화검수와 종남의 유운검수, 곤륜의 운룡검수들이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니까요?”

여기저기서 새어 나오는 말에, 산서금붕 이길환이 입을 열었다.

“뱉은 말에 자신들이 있으신가?”

이길환쯤 되는 거상이 앙심을 품으면 어지간한 문파는 곤란을 면치 못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상인 집단의 좌장이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에 언용운 이야기를 했던 이들 중, 한 사람이 멋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산서금붕 어르신. 이건 그러니까….”

“언제 봤다고 내가 자네 어르신인가? 뱉은 말에 자신이 있냐니깐 딴소리는?”

하나, 이길환은 그 말을 중간에서 잘라 버리곤.

소매춤에서 전낭을 끌러 귀빈석의 앞에 놓인 각탁에 툭 던져 올렸다.

“원보랑 금전이 섞여 있는데 대충 오백 냥쯤 될 것이야. 뱉은 말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이 늙은이와 내기를 하도록 해.”

은자도 아니고 금자 오백 냥.

여기 모인 모두가 나름대로 귀빈이라고 앉아 있는 이들이었지만.

금자 오백냥을 호쾌하게 내놓을 수 있는 이는 한 손에 꼽았다.

그에, 대부분의 빈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는 때.

강남상왕 은세평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 체면이 있지 오백냥은 조금 애매한 금액 아닙니까?”

“나들이 온다는 생각으로 와서 노자를 얼마 안 챙겨 왔네. 그렇다고 전표를 써준다고 하는 건 좀 없어 보이잖나.”

돌아온 답에, 은세평은 씩 웃으며 자신의 전낭을 끌러 이길환의 옆에 놓았다.

“제가 채우지요, 자 이쪽에 천 냥이 걸렸소. 자신 있으면 반대편에 전낭을 올려서 따가 보시오. 그럴 용기가 없으시면 입을 다물도록 하시고.”

그에, 자리한 빈객들 중 어떤 이는 입을 다물었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고민 끝에 본인의 전낭을 끌러 반대편에 올렸는데.

그렇게 뜻밖의 내기판이 벌어지고 있는 때.

“흠.”

검황 남궁원이 팔짱을 끼며 엷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남궁원의 오랜 앙숙인 제갈척이 전음을 보냈다.

[뭐야, 그 땅이 꺼지는 숨소리는?]

[걱정이 돼서 그렇지. 정무학관의 조가 이번 대회에서 압도적인 승자가 되어야. 여러모로 천하에 던지는 제언(提言)이 될 텐데 말이야.]

[재수 없는 숨을 토해내길래 뭔 생각을 하나 했더만, 재수없는 생각을 하고 있구만. 초 치지 말고 그 주둥아리를 딱 봉하고 있게.]

[…뭣이?]

[혈마를 작살내고 백광호를 찜쪄먹고 온 놈이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나?]

그렇게 남궁원과 제갈척이 서로를 향해 눈을 부라리기 시작한 때.

후드득-

삼(三)자가 쓰인 전서구 한 마리가 귀빈석으로 날아들었다.

그에, 모두가 다시 한번 숨을 죽이는 때.

전서의 내용을 확인한 경혜가 입을 열었다.

“세 번째 지점의 통과순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일 위는 정무. 이 위는 화산. 삼 위는 곤륜. 사 위는 종남….”

뒤바뀐 순위에 두 거상이 흡족히 웃었고.

천금에 눈이 멀어 주머니를 털어 낸 이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는 때.

검황은 고개를 갸웃했다.

“허. 처음 걸음을 따라 잡혔던 것은 경신술이 다른 세파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텐데. 어찌 일 위를 되찾았을꼬?”

*    *    *

바쁘게 험곡을 가로지른 우리는 마침내 세 번째 지점이 위치한 곳의 수풀을 뚫고 들어갔는데.

촤악!

그런 우릴 맞은 건 매화검수를 필두로 한 대회 선두권이었다.

끼긱.

그들 중 대부분은 놀란 눈을 떴지만, 조장인 창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째 안 쫓아온다 싶더니. 옆에서 튀어 나오는구만.”

“맹주님은 지나가셨나 보네요.”

“그렇다네.”

창량에게 꾸벅 목례를 한 나는 다음 지점을 확인했다.

“다음 지점이 백로봉이지?”

“예!”

그리고 곧바로 맞은편 절벽을 향해 뛰어 내렸는데.

선두를 이루고 있던 중 한 무리가 그런 우리를 뒤따르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저리로 간다!”

다름 아닌 종남의 제자들이었다.

“자, 장문인. 그래도 괜찮은 것입니까?”

“안 괜찮을 것은 무어냐? 대회 운영위가 끼고 도는 녀석이다. 저놈의 행동을 따라 했다고 문제 될 건 없다!”

“하오나 그걸 제외하더라도 이곳은 단애절벽입니다…!”

“지금 겁먹은 것이냐?!”

“아, 아닙니다.”

“너희 경공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저놈들이 하는 걸 너희가 왜 못해?”

황백월은 호기롭게 말했다.

하나, 나와 언동생들이 험곡을 질러가는 방식은 그저 경신술이 뛰어나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엇!”

“조심하게!”

“죄, 죄송합니다 사형.”

종남의 제자들은 뒷사람을 생각지 않고 너무 세게 암벽에 손발을 박아 넣다 지지대 역할을 하는 지형이 무너져내리기 일쑤였다.

-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익숙하지 않은 건 익숙하지 않은 것인데. 말코가 되다만 종남의 녀석들이 마음이 급했구먼.

천 길 낭떠러지를 밑에 두고, 그런 자잘한 부주의들이 쌓이다 보니 속도가 늦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래서야 정무학관 녀석들은커녕 화산이나 곤륜보다도 늦겠다!”

그로 인해 황백월의 가슴속에 생겨난 조급증은 그가 이끄는 제자들에게 역병처럼 퍼져나갔다.

와륵-

와르르륵-

하여, 결국에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제자까지 나오고야 말았다.

“자, 장문인! 피하십쇼!”

“!?”

나름대로 고수 반열에 든 이들인 만큼 생명에 지장이 가는 부상을 입지는 않을 터였으나.

이번 대회의 과제가 모든 조원이 결승점에 도달해야 하는 것인 이상, 종남의 천무대회 우승은 물 건너 간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의 모습에 천장호가 킬킬거리며 입을 열었다.

“멍청한 놈들. 이게 아무나 하는 건 줄 아나.”

녀석의 말에 내 입에선 절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까 뛰라 그럴 때는 죽는 소리를 하던 건 어디의 누구더라?”

“그야 원체 형님 밑에서 구르던 순간이 남아 있어가지고. 이거 미친 짓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근데 생각해보니까 지금 족쇄나 무게추를 하나도 안 차고 있네요?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죠. 으헤헤헤헤.”

그렇게 멀어지는 종남의 제자들을 뒤로하고.

나와 언동생들은 미친 듯이 암벽을 올랐는데.

그렇게 네 번째 지점이 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서니.

“음? 거기서 올라오는구만?”

마침 네 번째 지점에 들어선 공손무결이 보였다.

한데, 본인 외에 타격대의 무인들도 함께 보였다.

“…….”

그에, 내가 이걸 어떻게 공격해 들어가야 하나를 고민하는 때.

공손무결이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인이라고 수하가 없을 리가 있나?”

“없을 리가 없죠. 심지어 만인혈을 운반 중이시고요?”

“쉽게 내주지는 않을 거야.”

“쉽게 가져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냐. 들어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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