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31화 (431/444)

제431화. 물결 (5)

공손무결이 손을 까딱이는 순간, 휘하의 타격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펼쳤다.

처처처척.

그렇게 타격대원들이 펼친 대형은 익히 보아온 채작진의 대형 중 하나였는데.

평소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공손무결이 적과 맞붙는 최전선인 양날개가 아니라 핵의 위치에 들어있다는 점이었다.

- 채작진은 양익에 최고 전력이 들어가야 파괴력이 강한 것 아니더냐?

사부님께서도 그 점이 의아하신모양이었다.

‘음. 맹주님께선 지금 만인혈을 지키는 마인이시니까. 그 역할에 충실하시려는 모양입니다.’

하여, 공손무결의 품 안에 있을 목함을 손에 넣으려면 타격대의 채작진부터 헤집어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채작진이라면 우리 역시 이골이 나도록 연마해왔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은하연은 타격대가 취하고 있는 대형에 맞춰 언동생들의 대형을 골랐다.

[만인혈을 지킨다는 역할에 충실할 예정인지, 수비력이 강한 폐익 대형을 하고 있네요? 그럼 저 날개를 벌리려면… 저희는 양 날개를 앞으로 세운 극익 대형으로 갈까요?]

[그게 좋겠소. 나랑 소릉이는 오른쪽을 맡지.]

[정현 도장이랑 원철 스님은 왼쪽으로 보낼게요.]

그에 따라 약속된 수신호를 보내자.

언동생들은 촤르륵 대형을 만들었고.

“가자!”

내가 회한을 뽑아 드는 것을 신호로, 언동생들은 동시에 땅을 박찼다.

챙! 챙!

채채채채챙!!

그렇게 우리와 타격대가 맞붙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타격대가 유지하고 있던 수비진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에, 공손무결은 너털웃음을 지었는데.

“허허허허. 이거 가르쳐준 보람이 있구만.”

다른 타격대원들도 덩달아 기꺼운 표정을 짓는 와중.

우리에게 채작진을 전수해준 장본인인 명태성이 입을 열었다.

“예. 다들 대단한 고수들이 된 터이니. 개인 기량에 의존할 법도 한데 채작진의 원리를 지독하게 파고 들어오는군요.”

그런 명태성을 향해 공손무결은 눈을 흘겼다.

“명각주, 지금 웃게 돼 있나?”

“…예?”

“나야 무림 전체를 생각하는 입장이니 후기지수들의 약진에 기꺼울 수 있지만, 자네들은 지금 채작진의 종가로서 명성이 흔들릴 판인데,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되지. 집중들 하게.”

“아. 예!”

그렇게 타격대원들을 다잡은 공손무결은 동시에 진영에 명을 내렸다.

“이러다 진영이 완전히 헤집어진 상태에서 다른 참가조들까지 나타나면 상당히 곤란해지네. 날뛰는 놈들 들여보내게. 내가 제압할 테니.”

그런 공손무결의 명에 따라 조금 더 열리게 된 틈.

그 덕분에 오른쪽 날개에서 주공을 담당하던 나와 우소릉, 왼쪽 날개에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던 정현과 원철은 핵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는데.

“소릉이 너는 지금부터 후방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거다?”

“…예? 아! 예!”

내가 우소릉에게 뒤를 맡기고 있는 때.

공손무결이 청홍검을 뽑아 들며 입을 열었다.

“오호. 그렇게 셋이서 나를 상대하려고?”

“맹주님이 평범한 핵은 아니시니까요. 셋 정도는 붙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내 생각이랑은 조금 구성이 달라서 말이야. 나는 소릉이가 다른 밀명을 받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거든.”

“…….”

“하기야. 아직은 때라고 보기 힘든가? 소릉이가 움직인대도 셋이서 나를 정신없게 만든 뒤에나 움직일 테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그런 공손무결의 말을 일축한 나는 곧바로 회한을 휘두르며 공손무결에게로 달려들었고.

쌔애애애액!

정현은 그런 내 보조를 맞춰 새파란 태극을.

쌔액! 쌔액! 쌔액!

쌔애액!

원철은 황금빛 불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만겹산에서 돌아온 이래, 두 사람과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붙어서 서로의 무위를 견주고 호흡을 맞춰왔다.

하여, 우리 세 사람은 아귀가 딱 들어맞는 기관진식의 태엽같은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는데.

쌔애애애액!

패도적인 내 초식이 지나가면 곧바로 원철의 강격이 쏟아졌고.

“괴룡 시주!”

“옙.”

퍼어어엉!!

“호오. 너희와 직접 검을 맞대보는 건 실로 오랜만인 듯한데, 그 사이 제법….”

그렇게 이어진 공세를 막아낸 공손무결이 반전을 꾀할라치면.

정현이 부드럽게 공손무결의 검식을 흘러내는 상황에.

“두 분 빠져나오십시오!”

캉! 캉!

카아아앙!!!!!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공손무결은, 어느 순간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후. 젊은이들 무섭다는 소리는 요순시대부터 있어 온 말이라던데, 남의 이야기가 아니로구만. 설렁설렁 봐주면서 해도 충분하던 게 어제 같은데… 이리도 버거운 상대들이 되었어.”

그 말에, 나도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러는 맹주님이야말로 그사이 성취를 보신 것 같은데요? 일전에 보았을 때보다 무공이 진일보하신 게 여실히 느껴집니다.”

“젊은 친구들이 이토록 열심이고, 마교 놈들도 놈들대로 칼을 시퍼렇게 갈고 있는데. 내가 게으름을 피울 수야 있나.”

그렇게 나와 공손무결 사이에 몇 마디 대화가 오가길 잠시.

타격대가 우리를 둘러싸지 못하게 하려고 격전을 벌이고 있던 언동생들 틈바구니에서, 제갈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운 님! 후방에 매화검수들로 보이는 움직임이 포착되었어요. 잘못하면 저희 사이에 끼겠는데요? 차단조를 따로 빼서 저지할까요?”

그런 제갈설지의 말에, 나는 빠르게 생각을 곱씹어보았다.

‘만인혈을 탈취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참가조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일은 이번 대회의 과제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더욱이 맹주님은 마인에게 수하가 없을 리가 있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은 지점에 표시된 숫자가 늘어가고, 만인혈이 결승점에 돌아가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맹주님 쪽에도 다른 지원군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했다.

‘당장 여기 있는 타격대는 두 개 각밖에 안 되고.’

그렇게 다른 참가조와 검을 맞댈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나는 곧바로 후방을 향해 입을 열었다.

“창량 교수님!”

“…듣고 있다.”

“일단은 마인들에게서 만인혈을 되찾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저희끼리 싸울 때는 아닌 것 같은데요?”

“해서?”

“이 생각에 동의하시면 언동생들보고 길을 트라고 하겠습니다. 함께 싸우시겠습니까?”

그런 내 말에, 창량교수님은 짧은 답을 내놓으셨다.

“가세하겠네.”

창량을 필두로 한 화산의 제자들이 타격대와의 싸움에 끼어드는 순간이었는데.

쌔액! 쌔액! 쌔액!

쌔애애액!!!!

애초에 우리만으로도 팽팽하던 싸움이었다.

매화검수라 불리는 이들이 매화향이 물씬 풍기는 특유의 검기를 흩뿌리며 가세하자.

전황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에, 공손무결의 손과 발에 여유가 없어지기 시작한 때.

샥-

우소릉이 내 뒤를 번개같이 돌아 공손무결에게 접근했다.

하나, 공손무결은 알고 있었다는 듯 콧방귀를 끼며 우소릉을 향해 검초를 뻗어냈다.

“아까부터 네 녀석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디 수작을 부리려 하느냐!”

하나, 사실 우소릉의 움직임 자체가 함정이었다.

이번에 한해선 녀석이 허패였고 내가 진패였으니까.

덕분에 공손무결의 균형이 살짝 쏠린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흡성대법의 묘리를 내 식대로 응용한 비술인 파천흑동을 시전했다.

슈애애액!

그에, 좌수에 생겨난 새카만 점에서 인력이 발생하며 공손무결의 목에 걸려있던 목함을 끌어당겼고.

착.

그게 손에 감겨 들어오자마자 힘을 주어 목걸이를 끊어내니.

공손무결의 놀란 눈이 내 쪽으로 향했다.

“???”

나는 그런 공손무결을 향해 씩 웃어주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 않습니까? 만날 보다 보니까 어렴풋이 흉내를 낼 수 있게 되더라고요?”

*    *    *

한편, 출발점이자 결승점에 해당하는 단강구의 북편 선착장에선.

네 번째 지점의 도착 등위를 알리는 경혜의 음성이 한창이었는데.

“네 번째 지점입니다. 일 위는 정무. 이 위는 화산. 삼 위는 곤륜. 사 위는 소림. 오 위는….”

그 발표가 끝날 때까지 종남의 이름이 불리지 않자.

남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종남이 안 불렸지 않나? 선두권에 있던 친구들이 어디로 갔지?”

남궁원의 말을 질문으로 받아들인 경혜는 착잡한 표정으로, 등위와 함께 날아온 정보를 입에 올렸다.

“절벽에서 추락들을 한 모양입니다.”

“…추락?”

“정무학관의 조가 지점과 지점 사이의 험곡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는데. 그걸 따라하다가 그만 그리되었답니다.”

“호오. 그게 정무학관 녀석들이 따라잡힌 걸음을 뒤집은 방도로구먼. 한데, 그렇게 돌파를 해도 되는 건가?”

“예. 어디까지나 반드시 통과하라고 한 곳은 인원 확인을 할 준비가 돼 있는 지점이니까요.”

듣고 있던 제갈척이 박장대소를 한 건 이때였는데.

“푸하하! 황 장문인이 아주 사서 고생을 하는구먼. 그 친구 올해 삼재였던가?”

약왕 오균천은 그런 제갈척을 향해 미간을 좁혔다.

“웃음이 나오십니까? 사람이 다쳤는지도 모를 일인데, 하여간에 칼잡이들이란.”

그 말에, 제갈척이 웃던 것을 멈추고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고.

“크흠. 종남의 유운검수라 하면 나름대로 알아주는 고수들이오. 다칠 리는 만무하고, 고생깨나 할 것 같아 웃음이 나왔소이다. 불쾌했다면 미안하오.”

이어 남궁원이 한마디를 더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제갈가의 늙은이가 채신머리가 없어서 생긴 일이오만. 약왕도 칼잡이라는 말은 조금 조심해주시오. 병자나 부상자들과 날마다 씨름하는 그대들의 노고를 모르지 않으나… 저 늙은이야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막고자 뛰어다니는 이들 중 하나요.”

또 하나의 전서구가 날아든 건 이때였다.

숫자가 적혀있던 다른 전서구와 달리.

이 전서구에 적힌 글자는 급보를 나타내는 급(急)자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식지를 펼쳐 든 경혜의 입에선 놀라운 소식이 새어나왔다.

“정무학관의 조와 화산의 제자들이 합심하여 만인혈을 되찾았답니다!”

전해진 소식에.

산서금붕 이길환은 각탁을 쾅! 하고 내려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하나, 이내 거드름을 빼듯 수염을 쓸며 본인의 반대편에 은자를 건 이들을 능욕하기 시작했는데.

“이것 참… 우리 손주가 후기지수들이 모인 학관에서나 우쭐대지, 저 정도 되는 선배들 앞에서는 핏덩이일 것 같아서. 내가 기부하는 마음으로 금전을 조금 내놓으려 했는데. 이거 이겨버리게 생겼구만.”

곁에 있던 은세평도 질세라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특히나 유운검수는 섬서는 물론이오, 천하에 이름을 알린 이들인데. 원숭이도 아니고 똑떨어질 줄이야. 이것 참. 저희는 정말로 기부를 할 생각이었는데. 노랭이들이 이런 자리에서도 돈을 따간다고 손가락질받을까 두렵습니다.”

“에이잉. 코딱지만 한 은자는 없어도 그만이네만. 저걸 또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하면 욕을 보이는 일이 되겠지?”

“예. 그건 또 그렇지요. 내기판의 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승자가 결정되면 그 이름으로 크게 한턱을 내시지요. 이런 돈은 딴 자리에서 그냥 다 써버려야 합니다.”

“크흐흫. 그럴까?”

그렇게 두 사람이 죽을 맞추는 때.

이길환의 곁에 앉아 있던 이윤영은 이마를 싸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님.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거리상으로도 돌아오려면 제법 남았고. 애초에 매화검수와 함께 획득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리에 앉으시지요. 은 대인도요.”

*    *    *

만인혈을 획득한 우리는 공손무결과 타격대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바쁘게 걸음을 옮겨내기를 한참.

‘우리’의 범주에 속해있던 창량이 우뚝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맹주님과 타격대원들은 더 이상 쫓아오진 않는 듯하군. 이제 자네 손에 들린 만인혈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창량의 말에, 나는 목함을 아예 품 안에 넣어 고정시키며 답했다.

“음. 마인들에 대해 잘 아는 것도 대다수가 마방연의 일원인 저희고. 유사시에 더 제대로 만인혈을 빼돌릴 수 있는 것도 저희 아니겠습니까?”

“어째서 그렇지?”

“평균적으론 암향표를 사용하는 매화검수들에게 걸음이 밀리겠지만. 한 명만 놓고 보면 소릉이가 가장 빠를걸요? 그런고로, 이건 저희가 보관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창량은 재차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이 딱 그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다.”

“그럼 이야기가 더 빠르겠군요.”

“아니. 이쪽도 양보할 생각은 없다. 명분을 따지자면, 우소릉 생도보다 더 빠른 마인이 있을 수도 있겠지? 결국은 그걸 지켜낼 저력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허리춤의 검을 다시금 뽑아 들었다.

“그 자격이 있는지를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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