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36화 (436/444)

제436화. 물결 (10)

남궁원에 의해 새롭게 생긴 별호가 연호되길 한참.

종남의 장문인 황백월이 소매를 털고 자리를 떠났다.

“가자!”

종남파의 제자들은 자리한 명숙들을 향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앞서 걷는 황백월의 뒤를 따라 단강구를 떠났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른 웃음을 보이던 경혜는 어느 순간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천무대회의 주최자로서 대회 우승자를 발표토록 하겠습니다. 우승자는 정무학관의 참가자들입니다!”

“와아아아!”

“무적검! 무적검!!”

“검룡! 검룡!!!”

“소검후! 소검후!!”

그렇게 천무대회의 본행사는 막을 내렸다.

하나 무림명숙이라 불리는 이들을 이만큼이나 모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연히 후야제라 부르는 연회 자리가 뒤따랐는데.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 명숙들과 참가자들. 그리고 응원해주신 분들을 위해 조촐한 연회를 준비해 두었으니. 내빈들은 본관 일층의 식당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에서도 계속해 ‘무적검’ 소리는 회자되었다.

“무적검이라! 이름만 들으면 광오하기 그지없는 위명이나, 뒤따른 검황 선배의 말씀이 그럴듯해서 반박할 수가 없었네 그려.”

“그러게 말일세. 괴룡의 이야기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네만, 약관을 막 지난 나이에 그 ‘검황’ 어르신께 무적소리를 듣다니. 그야말로 괴물이로세!”

“검황 어르신뿐인가? 여기 모인 명숙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 은 것은 아니구만. 종남의 장문인이 있었으니. 아무튼 무적검이 천하십검의 일인이 되었음은 분명할 걸세!”

그중 일부는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명숙들의 틈바구니에서 새어 나왔지만.

대부분은 후야제의 연회 자리에 참가한 정무학관의 재학생들이었다.

“무적검! 무적검!! 무적검!!!”

특히나 주된 원흉은 생도들의 함성을 주도하고 있는 은하성이었다.

“자자! 모두의 목소리는 들어봤으니, 이제 개별적인 함성을 들어보겠습니다! 무적검을 배출한 기숙사가 어디?”

“청죽!!”

“목소리가 이거밖에 안 나옵니까?! 이래 가지고 어디 가서 괴룡… 아니 무적검이 청죽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외쳐봅니다! 우리가 누구?!”

“청주우우우욱!!!!!”

“청죽관 최초의 천하십검은 누구?”

“언용우우우운!!!”

“좋구요! 그럼 이번엔 향란관 생도들만 외쳐 볼까요?”

“…꼭 해야 하나 이거.”

“허. 당준기 자치회장님. 지금 그 말씀은 향란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가?”

“당연히 이야기가 그렇게 되죠! 창량 교수님께서 인정하시고! 어?! 전대 무림맹주이시자 검황이시며 남궁세가의 가주님이신 남궁원 어르신께서도….”

“하겠네. 하겠어. 무, 무적거엄!!”

지휘자라도 된 양, 다른 생도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는 은하성.

부끄러움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기에, 나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은하연을 향해 질문했다.

“하성이 저거 처음만 해도 강남상왕이 와계신다고 바짝 얼어있던 것 같은데… 완전히 살판났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러는 거요?”

“뭐, 우선적으론 꼼짝없이 우승은 곤륜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뒤집혀서 신이 난 것 같아요.”

“우선적인 거 말고는?”

“연회장으로 오는 중에 검황 어르신이 아버님을 붙들고 하성이 칭찬을 조금 하셨거든요. 그래서 아버님이 애썼다고 한마디 해주셔서 저래요.”

“…고작 그 한마디에? 나한테는 만날 칭찬이 부족하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툴툴거리는 녀석이?”

“그 정도면 아버님께 들을 수 있는 말 중엔 찬사에 해당하거든요. 아마 하성이는 들어본 적이 한 손에 꼽을걸요?”

듣고 있던 당옥기가 대화에 끼어든 건 이때였는데.

“무적검. 어울리긴 해. 솔직히 언용운이랑 적이 된다고 생각하면… 으으으으.”

말을 하다 말고 몸서리를 치는 녀석을 향해 눈을 흘기고 있으니.

“적이 된다고 생각하면 뭐. 뒤에 남은 말 더 해봐.”

팽소진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소천이랑 같이 코나 찔찔 흘리던 녀석이, 이렇게 훌쩍 커서 천하십검소리를 다 듣네. 이 누님은 이제 여한이 없다.”

“…그런 기억 없습니다.”

“네네 그러시겠죠.”

“…뭐, 그런 시절이 있었다 칩시다. 코 흘리던 건 누님도 마찬가지였었을 텐데요? 거, 몇 살이나 차이가 난다고.”

“아냐. 용명이랑 나는 달랐어. 너희 둘만 그랬어. 나중에 숙모한테 물어볼래?”

그런 팽소진의 말에.

남궁영을 필두로 언동생들이 하나같이 턱을 싸쥐며 내 얼굴을 응시하는 때.

“…용운 선배의 코흘리개 시절이라. 그거 귀한데요.”

외조부가 찾아와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미있게들 하고 있으신가?”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외조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앉게. 앉아. 나도 앉을 거야.”

나는 그런 외조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만큼 명숙들이 모일 일이 흔치 않으니, 이래저래 나눌 이야기들이 많지 않으십니까?”

“윤영이한테 다 떠넘겼다. 이럴 땐 늙고 병든 게 또 나쁘지 않아. 귀찮게 굴던 작자들도 피곤하다 하면 알아서들 물러나 준다니까?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돈 달라는 인간들보다는 우리 손주들 무용담이나 들어야지.”

그런 외조부의 말에, 나와 언용명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외조부님.”

“함부로 그런 말씀 마십시오. 형님과 제가 듣기에도 철렁한 말씀이지만, 진주에 계신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들으시면 크게 상심하십니다.”

“흠흠. 용명이 말이 맞습니다.”

“거, 농담도 못 하느냐. 세상에서 제일 믿으면 안 되는 말이 늙은이 죽고 싶다는 소리다. 상단의 일은 슬슬 윤영이가 맡아 나가야 하니까 넘겨준 것일 뿐이야.”

그렇게 우리 형제의 눈초리를 일축한 외조부는 다른 언동생들을 응시하며 재차 입을 열었다.

“자, 두 잔소리쟁이는 되었고. 누가 그간의 무용담이나 좀 들려주시오. 내 이야기 값은 두둑하게 쳐 드릴 테니, 이 늙은이의 귀를 즐겁게 해주시오. 소식지 안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런 외조부의 말에.

은하성이 젠체하며 앞으로 나섰고.

“어르신. 대저 정무학관에서 무용담을 듣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청죽관을 찾아와 최초의 언동생. 이 은하성을 찾습니다.”

이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천장호도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도 유분수지. 무용담이라 하면 평생에 걸친 구걸 경력을 자랑하는 이 천장호가 알맞지요. 심지어 저는 사도련주 백광호를 만나러 갔던 일에도 동행을 했고, 곤륜에게 목함을 전달하는 특사 역할도 맡았던 사람입니다. 거기서 나눈 대화는 저랑 소릉이 밖에 모릅니다.”

이때.

누군가가 천장호를 향해 알뜰히 발라먹은 족발 뼈다귀 하나를 집어 던졌는데.

“어떤 샊… 방주님?”

뼈다귀가 날아온 방향을 보니, 개방의 방주 강골개 만복이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천장호 이놈아. 네가 지금 신이 나 있을 때냐?!”

“…갑자기요?”

“야 임마! 내가 괴룡한테 항룡장까지 전수해 줬는데, 검황 저 늙은이가 얍삽하게 ‘무적검’을 운운해서 검수라고 못을 박았잖아! 죽 쒀서 개를 준 꼴이라 천불이 나는구만, 검황이 그런 소리를 하는데도 멀뚱멀뚱 보고만 있던 녀석이 지금 웃음이 나와?!”

“아니 제가 어떻게 거기서 끼어들어요?! 그냥 그지 나부랭인데! 그렇게 열불이 나시면 방주님께서 나섰어야죠! 괜히 말주변 없으니까 가만히 계신 거면서?”

“뭣이?!”

“그리고 하자면 뭐로 보나 남궁 가주님보단 방주님이 개에 가깝죠! 개를 주기는 뭘 개를 줍니까?”

“오냐 이 자식아. 내가 개면 너도 개다. 타구봉법이 개잡이 봉법이란 뜻인데.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그렇게 식탁을 가운데 놓고 술래잡기를 시작한 두 사람의 모습에, 한바탕 웃음이 번지는 때.

나는 만복을 향해 넌지시 혈교 사태의 뒷수습 이야기를 담은 전음을 보냈다.

[방주님. 노삼 교수님 쪽에서 뭐 들으신 소식은 어떻습니까? 만겹산 쪽은 어찌 돼간다던가요?]

[그쪽 일은 얼추 마무리되어가는 모양이다. 노삼이 놈이 곧 올라올 요량이던데?]

[그렇군요. 근래 천마신교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왜 안 물어보나 했다. 사실 이번 대회가 함정이기도 했지? 마교 놈들이 헛짓거리를 벌이면 사람들을 모아놓은 김에 들이치려고?]

[그런 노림수가 없지는 않았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뻔히 보이는 수이긴 했네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명숙들이 자리를 비운 상황은 상당히 먹음직스러워 보였을 텐데. 눈에 띄는 짓거리를 하지는 않더구나. 아무래도 이 틈에 내부와 주변 정리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그렇게 궁금했던 정보들을 나눠 받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만복과 외조부를 향해 양해를 구했다.

“그럼 두 분은 얘네들한테 이야기 좀 듣고 계세요.”

그런 나를 향해 외조부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어딜 가려고?”

나는 술동이 하나를 집어 들며 답했다.

“이 녀석들이 제 얼굴에 금칠하는 걸 듣고 있자면 담마진이 올라오는지라, 회한에 술 한잔치고 오겠습니다.”

*    *    *

그렇게 연회장을 빠져나온 나는, 본관의 후원에 붙어있는 회랑의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들고 온 술동이를 개봉한 뒤, 회한에 조심스럽게 부어내렸다.

꼴꼴꼴꼴꼴-

그러자, 사부님께서 흡족한 음성을 내오셨다.

- 술맛 한번 좋구만! 잘 담긴 죽엽청이야!

사부님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전했는데.

‘만날 드시던 청죽의 죽엽청주가 특별히 잘 담겼을 리가 있습니까? 그냥 사부님 기분이 좋으신 것 같은데요?’

- 나쁘지는 않지, 어찌 보면 우리 파천검문이 온갖 말코 놈들보다 위에 서게 된 날 아니더냐? 뭐, 애초에 나는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이게 또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묘미가 있구만. 그러는 네 녀석의 소감은 어떠냐?

사부님께선 되레 내 소감을 물어오셨다.

그런 사부님의 말에, 나는 가만히 기분을 곱씹어 보았다.

그렇게 가늠해본 결과, 내 가슴속에 피어오른 감정 중 가장 진한 것은 두려움임을 알게 되었다.

‘두렵네요.’

- 뭐가? 뭐 스스로의 재능이 두렵다는 그런 농담 따먹기를 하려는 것이냐?

‘아뇨. 천마신공에 대한 두려움이 듭니다. 예전에는 글줄로 접했던 터라 그저 막연히 강력하겠지, 하고 말았는데….’

- 예전? 글줄? 나를 만나기 전을 말하느냐?

‘…아. 예.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무튼. 그만한 집단을 유지하고 절대적인 복종을 끌어내려면 강하기야 하겠지, 하고 말았는데. 파천신공을 깨쳐나갈수록 천마신공에 대한 두려움이 드는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직 흥이 남아계셨던 모양인지, 콧방귀를 껴오셨는데.

- 흥. 그래봐야 가짜인 것이다. 네 녀석이 준비돼있다면 하등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런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다른 두려움이 하나 있었는데.

다름 아닌 사부님과의 약속이었다.

최초에 나는 사부님께 파천의 검이 천하제일임을 대신하여 증명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사부님께서는 어찌 되는 것일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이 열리는 순간이었는데.

‘만날 저더러 지독하니 어쩌니 하시지 말고. 사부님은 제 욕심을 닮도록 하세요.’

괜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자, 말의 앞뒤를 자른 탓에 사부님께서는 의아해하셨다.

- 대뜸 뭔 소리냐?

‘왜. 사제 간은 서로 닮는다지 않습니까? 세상에 탐나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사부님께서도 여러 욕망을 가져보십시오.’

- 회한 속에 쳐 넣은 게 제 놈이면서? 갑자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러고 있은 지 잠시.

인기척이 나기에,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공손무결이 보였는데.

“거기 있었구만. 회한에 술을 치고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내가 방해를 했느냐?”

“아뇨. 마침 챙겨온 술동이가 거의 다 비워진 참이었습니다.”

이어진 물음에 답하자, 공손무결은 내가 앉은 자리를 향해 훌쩍 뛰어오르더니.

술동이를 가리켰다.

“목이 타는구나, 나도 한 모금 하자.”

나는 들고 있던 술동이를 공손무결을 향해 내밀며 질문했다.

“종남은 어찌합니까?”

그러자 죽엽청 한 모금을 들이켜낸 공손무결이 수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대뜸 술맛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뭐, 나는 괜찮다고 본다. 순리대로 되겠지. 검황 선배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앞물결이고, 뒷물결이고 결국 대해에서 만난다고.”

“어르신이야 전임이시니, 그런 말씀을 해도 교훈이 되지만… 현임 맹주님이 하시기엔 너무 막연한 말씀 아니십니까? 뭔가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녀석하고는. 너는 다 좋은데, 어린 녀석들 특유의 귀여움이 없어. 강호에서 몇십 년은 구른 것 같다니까? 애늙은이 같은 녀석. 이참에 그냥 네가 무림맹주 해라.”

“그건 거절하겠습니다.”

“왜.”

“남은 학업이 있어서요.”

“핑계 한번 강력하구만.”

내 말에, 픽 웃어 보인 공손무결은 종남산이 있는 섬서 방면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뭐, 종남이야 크게 걱정할 필요 있겠느냐? 마인들이 있는 십만대산에서부터 화산까지를 일렬로 놓으면. 대산, 곤륜, 종남, 화산 순서가 된다. 이중 곤륜과 화산의 태도는 확고해졌으니 가운데 있는 종남이 토라진다고 해도 마인들에 대한 대처가 소홀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긴 하네요.”

“그래. 일단 급한 불은 끈 형국이니, 여러모로 잘 주시를 하고 또 달래봐야겠지. 아 그건 그렇고. 랑야검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 목적 자체는 순수하더구나. 문제는 이 어른애 같은 위인을 이제 어찌하냐인데….”

“지금 어딨습니까?”

“동도회의 사무실에 있다. 안 그래도 그 일로 너를 데리러 온 참이야. 술 다쳤으면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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