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8화. 뭐가 남습니까 (2)
합동훈련에 새롭게 참여하게 된 신입교육생들.
그들은 각 방파의 핵심 무력대에 속한 고수들이었다.
그중 화산의 매화검수와 소림의 나한승 그리고 곤륜의 운룡검수는 천하에 이름을 떨친 이들이었고.
참가에 의의를 두고 천무대회에 나선 군소방파의 무력대들도, 기실 본인들의 동네에선 어깨깨나 펴고 다니는 이들이었다.
그 명성에 걸맞은 자부심들을 지닌 터였기에, 이번 교육생들의 태도에선 크고 작은 불만들이 묻어났다.
“벌써 이틀째 괴이한 체조와 무당산 오르내리기를 하고 있는데… 이 짓을 언제까지 하게 될지.”
“내 알기론 최소한이 한 달로 알고 있소. 사천의 후기지수들이나 소림의 제자들도 그 정도 했다고 하더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통솔자들이 허락했다고 하니, 마지못해 훈련에는 참여하긴 했는데 내심엔 자신이 이러고 있을 배분인가 싶었을 것이다.
“힘내라 운매! 이럴 때 아니면 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언제 제쳐보겠나!”
“우오오오!”
하나, 이 합동훈련엔 정무학관의 재학생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향란! 선배님들이 함께하고 계신데 운매에게 뒤처진 모습을 보여서 되겠는가?”
“안 됩니다!”
내 밑에서 적게는 몇 달 길게는 삼 년여를 굴러온 그들은, 단연 여러 훈련 종목에서 발군의 모습을 보였고.
“윤국. 이 자치회장은 큰 것을 바라진 않습니다. 다만, 꼴등을 해선 안 되겠지요?”
“옙!”
또 정무학관이 설립된 이래 쭈욱 얽혀 내려온 투쟁심을 보였다.
“우리가 누구인가?!”
“언용운을 배출한 청죽!”
“정무학관의 사군자는 어찌 배치되어야 옳은가?!”
“죽! 매난국!”
“가자!”
처음에는 사대기숙사의 생도들 사이에서만 불꽃이 튀는 분위기였으나.
본디 무인이라는 족속이 가슴속에 범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투쟁심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인지라.
사대기숙사의 생도들 사이에서 튀던 불꽃은 금세 신규교육생들에게로 옮겨붙었다.
“이 손목과 발목에 차는 것을 두고 현철 족쇄라고 하나? 우리 매화검수들은 아주 여유가 있네. 무당산자락이야 우리 화산에 비하면 험산이라고 할 수도 없지. 하나씩들 더 차도 되겠어.”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투덜거리던 이들이 자처해서 훈련 강도를 올리라고 성화였다.
“화산의 산세가 높기야 하네만 우리 곤륜과 십만대산에 비하겠나? 험하디험한 그 산줄기들을 날 듯이 달리던 게 우리 운룡검수들일세. 우린 두 개씩 더 차겠네.”
하여, 내 쪽에서 교육생들을 말리는 진풍경이 펼쳐지게 되었다.
“…그 선배님들? 금일 오후에 예정된 훈련은 상당한 정신력을 요하는 훈련입니다. 아침부터 그리 진을 빼시면 안 됩니다.”
“그런가? 아무튼! 재학생들보다 무조건 두 배… 아니 세 배는 강력한 걸로 준비해주게! 체면이 있지! 솜털도 덜 가신 녀석들이랑 같은 훈련을 받을 수야 있나!”
“으음. 예.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르르 찾아온 교육생 대표들을 돌려보내자.
당옥기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는가 싶더니.
“뭐 저런 걸로 자존심을 세워? 진짜 못 말린다니깐.”
이내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질문해왔다.
“그래서… 오후 훈련에 사용할 호초탄 농도는 진짜로 올려?”
“어. 이번 교육생들은 모두 공력들이 출중한 편인데다가, 직간접적으로 중독을 다스린 경험도 있으실 테니까. 다섯 배쯤? 아니다. 그냥 최대한 세게 가자.”
그렇게 정무학관의 명물이 된 화생방 맛도 보고.
치이이익-
“컥. 커흐흑. 저, 정신력을 요하는 훈련이라는 게 이런….”
“컥이 아닙니다! 독연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땐 다른 아군들이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구호를 외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 독공! 독공!! 독공!!!”
적룡궁 출신 교류생들의 도움을 받아 실시한 물맛을 보는 과정에서.
첨버어어엉!!!!!!
그들은 정말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저 검술을 연마하고 내력을 쌓아내어 깨달음을 궁구(窮究)하는 것으로 무인의 도리는 충분한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일세. 이렇게 스스로가 부족하다 느껴지는 건 오랜만이구만.”
“어찌 보면 천무대회의 과제를 헤쳐나가던 과정과도 맥이 통하는데… 대회를 주최하신 선배님들께선 우리에게 이런 기분을 깨달아 보라고 그런 과제를 부여하셨던 것인가?”
그렇게 교육생들이 훈련에 진심으로 임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훈련과정에서 정무학관의 정신을 새기는 체조 시간을 줄이고, 마공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되었고.
교육생들에게 적절한 휴식 시간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금일 훈련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마친다고? 선착순이라던지, 오후 훈련 일정이 없다는 말인가?”
“예. 제가 막 검에 몰두했을 때. 맹주님을 비롯한 교수님들이 일러주신 가르침이 휴식도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그야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그간 잘 따라와 주셨으니 남은 교육과정에선 적절한 휴식일을 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쉬실 분은 쉬시고, 도서각과 연무장들은 개방돼 있으니 개인 수양을 하실 분은 하시면 됩니다.”
“어, 언용운 만세!!”
“만세라뇨. 큰일 날 소리들을 하시네.”
* * *
교육생들에게는 휴식을 부여했지만 나는 할 일이 많았다.
교두의 역할 외에도 총학생회장으로서의 직무도 있었고.
특히나 오늘은 외조부께서 태원으로 돌아가기로 하신 날이었다.
하여, 손자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외조부가 묵고 계신 객관으로 향하니.
이미 채비를 마친 외조부가 예해수 선배로부터 종이 한 장을 받아 읽고 있었는데.
“허허. 언제봐도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제목 선정이로고만.”
아무래도 발행할 소식지의 초고를 미리 보여드린 모양이었는데.
슬쩍 까치발을 들어 내용을 확인하니, 언제나와 같은 예해수 선배의 솜씨가 발휘되어 있었다.
『천무대회를 찾은 이들이 경악한 이유! 천하 명숙들 앞에 나선 검황이 언용운에게 붙인 별호에 단강구가 진동하다!』
낯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나는 얼른 헛기침을 했는데.
“큼.”
그러거나 말거나, 외조부께서는 만면에 미소를 띠시고는 예해수의 손에 전낭 하나를 쥐여주셨다.
“예 주필. 이건 휘하의 서생 그리고 화공들과 필요한 곳에 쓰도록 하시오.”
“예? 저희는 예산이 충분한데요?”
“세상에 충분한 건 없소이다. 아무 붓이나 쓰지 말고 붓도 족제비 털로 만든 걸로 쓰고. 뭐든지 최고로 하도록 하시오. 그러고도 남는 거로는 맛있는 걸 사먹든 하면 되지.”
“가, 감사합니다.”
“요긴하게 쓰시고 앞으로도 좋은 소식지 많이 써주시오. 다른 생도 여러분들도 용운이를 잘 보좌해주시오.”
그리고는 다른 언동생들에게 한 명 한 명씩 내 부탁을 하시더니.
언용명에게 시선을 옮겼다.
“형은 형이고 너는 너다. 질시도 하지 말고 주눅도 들지 말고. 너는 너의 길을 가거라.”
“예. 외조부님. 그리할 것입니다.”
“오냐. 용운이가 검수로 우뚝 선이상 진주언가의 권각종은 네가 지켜나가야 한다. 네 역할도 막중하니라. 안 그런가, 언서방?”
“예. 그럴만한 재목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만. 용명이도 열심히 해야겠지요.”
“에이잉. 빈말이라도 그렇다고 하면 될 것을 꼭 저렇게 한마디를 덧붙여요. 답답한 인사 같으니.”
“…….”
그렇게 언용명과 아버지를 거친 외조부는 나를 응시해 오셨는데.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마.”
“예. 언제 짬을 내서 태원에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내겐 별다른 당부 없이 담백한 작별인사를 건네 오시기에, 답을 돌려 드리니.
“안 그래도 신경 쓸 곳이 많을 텐데 그럴 필요없다.”
외조부께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가슴팍에 매달린 철전 목걸이를 두드려 오셨다.
“이놈을 맡길 때. 내 천하를 네게 맡긴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저 몸 건강히 뜻을 펼치는 일에 집중하거라.”
“외조부님께서도 보중하십시오.”
“오냐. 오래오래 살아서 네가 강호를 호령하는 이야기들을 두고두고 들을 것이다.”
그렇게 정무학관에서 누군가는 콧물땀눈물을 흘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는 때.
단강구에서 서편으로 한참을 거슬러 가면 나오는 대파산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녹림왕의 거처에선.
노삼과 남궁윤.
오랜만에 마주한 두 사람이 회포를 풀고 있었다.
“궁윤이 이놈아! 잘 있었느냐?!”
“예. 저는 잘 지냈습니다.”
“겸양할 것 없다. 남궁세가의 장손으로 난 녀석이 이런 개떡 같은 집구석에서 잘 지냈을 리가 있나!”
그런 두 사람의 곁에선 녹림왕 도중광이 열불을 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궁윤이 이놈은 으리으리한 지네 장원 놔두고 왜 내 산장에 빈대처럼 붙어있고! 늙은 거지 당신은 뭔데 제집처럼 기어들어 와?! 녹림산장이 장난이오?!”
하나, 노삼과 남궁윤은 그런 도중광의 불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만겹산의 일은 잘 해결된 것입니까?”
“오냐. 혈천수라궁이라고 불리던 성채는 벽을 모두 허물었고. 기관진식도 다 해체했으며. 토착민들의 민심도 조금은 다독여 두었다.”
“음. 그렇군요.”
“그래. 너는 어찌 괜찮으냐? 용운이 녀석 이야기로 또 천하가 떠들썩하던데? 무적검이니 어쩌니 하면서? 여기 처박혀 있으니 배알이 꼴리진 않든?”
“…배알이 꼴린다니요. 그런 저열한 시기심은 내려놓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아. 이건 내 말투가 원래 이러지 않느냐. 천무대회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냐 뭐 그런 말이다.”
“시기심을 내려놓았다고 호승심까지 사라진 건 아니지요. 사실 정무학관 생도로서든 남궁세가의 사람으로서든 참가를 해보고 싶긴 했었습니다.”
“가지 그랬어?”
이쯤에서 도중광은 또 한번 분통을 터트렸으나.
“내 말이! 지금이라도 좀 가라! 어?! 노삼 저 늙은 거지랑 손잡고 가! 내 집에서 나가!”
남궁윤은 그런 도중광이 아닌 단강구가 있는 방면을 잠시 응시하더니.
녹림산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인근의 화전촌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상을 눈에 담아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남궁윤의 말에, 노삼은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도중광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마디를 했는데.
“나 누구랑 말하냐.”
그제야 남궁윤의 시선이 도중광을 스쳤다.
“여러모로 중요한 곳입니다. 더욱이 언용운이 강호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한 가지 일을 추진하는 것 같아도 그 안에 여러 심계를 깔곤 하는 녀석의 성격상, 무언가 달리 노리는 바가 있을 텐데. 그럴수록 이곳을 든든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지. 나도 그래서 만겹산에서 바로 이리로 온 거고. 아무튼 자세한 회의는 들어가서 나누도록 하자.”
그에, 도중광은 또 한 번 고함을 질렀다.
“아니 그 회의를 왜 여기서 하냐니깐?! 주인 허락도 없이이이!!”
* * *
외조부를 배웅한 나는 언동생들을 이끌고 학생회실에 돌아와 회의를 주최했다.
“천장호. 마교의 동향은 어떻다든?”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 모양이던데요?”
각 방파의 핵심 무력대, 그것도 십만대산과 맞닿아 있는 곤륜의 운룡검수들을 이렇게나 붙잡아 두고 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건 천마신교가 지구전을 주된 방침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선 안 되지.’
인적 물적 자원이 모두 백도무림에 유리한 것 같아도.
천마신교의 교주 혁련강의 무위가 천마를 칭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저울은 순식간에 역전이 될 수도 있는 법.
나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천마 신교 놈들을 등껍질에서 끌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
“놈들이 잠잠한 것은 우리가 다른 무력대와 합을 맞추고 개인의 무위를 끌어올릴 시간을 주지만… 시간은 공평하다. 이러는 동안 천마신교도 대공자가 후계자리를 굳히며 내부 단속을 끝내겠지? 뇌음사나 태양궁과의 결속도 단단히 할 테고.”
그런 내 중얼거림에 은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쪽이 만전이 되도록 기다렸다가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한다? 그래서야 되겠소?”
이어진 말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고.
“…그, 깜빡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 정파인데요? 받들어야 할 기치(旗幟)는 정정당당이고요?”
- 깜박한 게 아니라 애초에 그런 단어를 모르는 인사인데. 하연이 저것은 그렇게 겪고도 아직도 모르는구나.
그에 사부님께선 헛웃음을 흘리는 한편 질문을 해오셨다.
- 흐음. 헌데, 저놈들이 작정하고 꼼짝을 안 하는데, 너라고 달리 방도가 있느냐?
그런 사부님의 물음에, 나는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제가 사부님… 그러니까 검마 위철진의 후인임을 만천하에 알리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