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42화 (442/444)

제442화. 미련 (1)

내가 은거기인들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장철한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천무대회의 기억 때문에 그러는가 싶어, 나는 입을 열었다.

“제가 아무한테나 무례하게 구는 사람은 아닙니다. 천무대회 당시엔 상황이 상황이었지 않습니까?”

진심이었다.

재야의 고수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장철한에게 소개해달라고 한 것이었지만.

‘그게 과해서 적이 되게 만들면 그야말로 본말전도지.’

물론 내 쪽에서도 기인들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손이 필요하다 해서, 아무나 무림맹으로 들일 수는 없었으니까.

하여, 우선은 면을 트고 그들의 사정과 됨됨이 등을 고려해 다가가 볼 생각이었는데.

장철한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 친구들을 종잡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내가 천무대회에 가기 전만 해도 북망산의 골짜기에 터를 잡고 있긴 했는데. 그사이 마음을 바꿔 어디론가 가버렸을 수도 있는 친구들이거든.”

“뭐, 허탕을 치는 것 정도야 괜찮습니다. 산책을 했다고 치면 될 일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공격해올지도 몰라.”

“공격이요?”

“응. 우리끼리는 그게 나름의 인사 같은 거거든.”

“뭐, 그것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인사라고 했지만, 가벼운 것은 아니야. 나는 그 인사를 받아내다가 골로 갈뻔한 적도 있어.”

“괜히 기인이사(奇人異士)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저도 가볍게 생각하고 답한 건 아닙니다.”

“흠. 그렇다면야. 같이 가세.”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장철한은 잠시 멈췄던 걸음을 옮기며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방금 말했듯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처음 보는 작자가 늘었을 수도 있네만. 일단 내가 친구라고 여기는 이는 두 사람이야.”

“따로 숙지해야 할 것은 없습니까?”

“글쎄? 일반적인 친구는 아니라서 말이야. 우리끼리는 서로에 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거든. 막상 그 질문을 받으니, 새삼 나도 그들을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그렇군요.”

“뭐, 그래도 사용하는 무공들은 알지. 그 둘은 평범한 강호인들과는 조금 다른 무공을 써.”

“어떻게 다른지요?”

“한 명은 아는 사람들끼리는 태공(太公)이라고 부르는데. 소싯적에 뱃사람이었던 모양인지 보법도 독특해.”

듣던 중 문득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기에 입을 여니.

“…태공. 낚시꾼에게 붙이곤 하는 그 태공인가 보군요?”

장철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한 명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다른 한 명은 칠현금(七絃琴)을 이고 다니는데, 본인 기분이 내킬 때는 끝내주는 곡조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그 칠현금을 무기로 삼기도 하지.”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갖췄다.

“그분은 그럼 악공(樂工)이라고 부르겠네요?”

“그렇지?”

“태공과 악공… 혹 성씨가 여씨와 왕씨 아닙니까?”

하여, 나도 모르게 입을 여니.

장철한이 놀란 눈으로 질문해왔다.

“…맞네. 그래서 여태공, 왕악공이라 부르지. 내 친구들을 아나?”

알다마다.

물론, 실제로 마주한 적은 없었다.

‘…원작에 나온 적이 있는 양반들이었네.’

오히려 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철한은 원작에 출현한 바가 없었으나.

여태공과 왕악공 두 사람은 마교와의 싸움에서 곤경에 처한 정현을 구해줬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인연이 이렇게 되는구나.’

하지만 원작에서 봤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적당히 둘러대는 말을 던진 뒤.

“개방과 하오문에 이래저래 눈과 귀가 되어주는 분들이 있다 보니 스치듯 들은 듯합니다.”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한데, 제가 알기론 두 분은 연배가 좀 있으신 걸로 아는데요? 친구로 지내신다고요?”

장철한은 아버지와 공손무결 또래의 인물이었고.

태공과 악공은 그 윗세대, 그러니까 남궁원이나 제갈척 연배의 노인이었으니까.

그 질문에 장철한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말했잖아.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내왔다고.”

그리고는 세 사람이 겪은 일화들을 말해주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하루는 셋이서 손가락만 빨기도 했다니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북망산을 오르길 잠시.

“!?”

“!”

맹렬한 투기가 좌우에서 화살처럼 쏘아져 나온다 싶더니.

각각 낚싯대와 칠현금을 짊어 멘 두 노인이 다짜고짜 출수를 해왔다.

쐐액!

쐐애애애액!!

그러자 장철한이 마른 웃음을 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거봐. 내가 이런다고 했지?”

*    *    *

언용운이 백본회의 소집령에 응해 무림맹으로 향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십만대산에 전달됐다.

그 결과.

지금 십만대산의 심부에선 교주 혁련강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마신교의 핵심 무력대가 사열을 받고 있었는데.

“충(忠)!”

그렇게 모든 무력대가 모여 섰을 때.

한 무리의 교인들이 앞으로 나섰으니.

다름 아닌 천마신교의 체면을 다시 세우는 임무를 명받은, 혁련강의 막내 아들 혁련소와 그를 지지하는 가문의 가주들이었다.

“소자 반드시 불신자들을 방벌하고 본교의 위엄을 다시 세우겠습니다!”

그들의 선두에 선 혁련소의 외침에, 혁련강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척.

그런 혁련강을 향해 다시 한번 읍을 올린 혁련소와 휘하의 마인들은, 절도있게 몸을 돌려 중원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한 혁련강은 오행기를 비롯한 다른 무력대에게 손을 내저어 해산하라는 뜻을 내비친 뒤.

마뇌 갈효봉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영감은 나 좀 보지.”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천마동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갈효봉이 뒤를 따르자, 혁련강은 재차 입을 열었다.

“언용운은 백본회의 소집령에 응해 무림맹으로 갔고, 때마침 녹림왕이 실종됐다. 수상할 정도로 잘 깔린 판이로군.”

“그렇습니다. 이번 일의 발단이 된 소식지까지 생각하면… 본교를 끌어내고자 하는 의지가 여실히 묻어납니다. 하나, 먹고 죽더라도 물어야만 하는 미끼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영감은 이번 일의 성공할 확률을 얼마 정도로 보고 있지?”

“경우에 따라 달리 보고 있습니다만, 땅에 떨어진 본교의 체면을 다시 세우는 일 자체는 구 할 정도로 점치고 있습니다. 막내 공자님의 세력은 몰릴 대로 몰려있습니다. 낙양을 불사르든 인근을 시산혈해로 만들든. 어떻게든 본교의 위엄을 보여낼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언용운까지 낚아올 가능성은?”

“그건 이할 정도는 될 것입니다.”

“생각보다 높은데?”

“저자들도 저희를 끌어내기 위해 전력들을 일부러 외곽으로 보내서 현재 낙양의 방호력이 낮습니다.”

“서로 간에 갑주(甲冑)없이 진검승부를 하는 상황이라 이거군.”

“예. 제대로 된 전력은 맹주직속 타격대의 일부와 공손무결 그리고 도중광 정도가 전부라 할 것입니다.”

“그렇군.”

혁련강은 딱 여기까지만 듣고 갈효봉을 향해 돌아가 보라는 듯 손을 내저어 보였는데.

그런 혁련강을 향해 갈효봉이 질문한 건 이때였다.

“일이 완전히 실패할 가능성이나 그 과정에서 막내 공자님이 영원히 돌아오시지 못하게 될 가능성은 고려치 않으십니까? 명하신다면 오행기에서 가려 뽑은 고수들을 은밀히 따르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갈효봉의 말에, 혁련강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거야말로 이 일을 실패로 만드는 일 아닌가?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본좌의 자식답게 장렬히 산화해야지. 그리하여 마도천하의 장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도천하의 장작.

막내 공자가 전사한다면 그를 통해 교인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겠다는 혁련강의 비정한 결단력에.

갈효봉은 진심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역시 이분이야말로 천마가 되실 분이다.’

그에 주름진 그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    *    *

태공과 악공.

두 사람의 무공이 독특하다는 것은 장철한에게 미리 들은 바였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카아아앙!!!!

특히나 괴이하다 느껴지는 건 태공이었다.

그는 현철로 된 대를 사용한 낚싯대를 연검처럼 휘둘러왔는데.

- 허, 이자가 여태공이라는 자인가? 이런 무공은 나로서도 처음 보는구나. 보법이 바다나 모랫바닥에서 싸우는 일이 잦은 바닷사람 특유의 것이긴 하다만.

사부님께서도 처음 본다고 말한 무공답게.

낭창거리는 낚싯대에서 뻗어져 나온 참격들은 종잡기 힘든 투로를 가지고 있었는데.

캉! 캉!!!

카카카캉!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낚싯대엔 낚싯줄이 달려 있었다.

천잠사로 된 그 줄은 내가 낚싯대를 막아내는 순간, 채찍처럼 휘어지며 등을 노려왔다.

쐐애애애애애액!!!

하니, 그야말로 장검과 채찍을 동시에 상대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딛는 순간 사지육신 중 어느 한 곳이 위험해진다.’

악공 역시 녹록지 않았다.

화륵-

화르르륵-

자연스럽게 악공을 전담하게 된 장철한이 불길이 이글거리는 검으로 검막을 펼치며 칠현금에서 쏘아져 나오는 기파를 막아주고 있었으나.

뚱따딩띵!

팅! 팅! 티티팅!!!!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악공의 손길에 전부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새어 나온 기파들이 내 손발을 어지럽게 만들고자 날아드니.

펑! 펑!

퍼퍼펑!!!

그야말로 녹록한 상대들 아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두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엔 희망적인 전망이 스치고 있었다.

‘하지만 해볼 만해.’

그런 생각이 든 이유 중 첫째는, 정무학관에서 한 명의 올빼미가 되어 수료과정을 거친 장철한과 나의 합이 척척 맞고 있다는 점이었고.

“선배님!”

“자리 바꾸자고? 알았다!”

둘째는 명영이 전해준 내력을 오롯이 흡수해낸 나였기에, 체력적인 부침이 없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 양반들을 꾀어서 무림맹으로 데려가느냐였는데.

‘어쩐다.’

바쁘게 손발을 움직이는 와중 그 생각을 곱씹은 지 한참.

별안간 머릿속에 괜찮은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무구를 부수자.’

전형적인 은거 기인들인 태공과 악공의 행색과 달리,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은 특별했다.

태공의 낚싯대는 말할 것도 없었고.

악공의 칠현금 역시 현은 천잠사에 몸통은 현철과 흑단목을 사용한 것이었다.

‘은거기인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사용하던 애병이 분명하다.’

그것들을 수선하는 일은 결코 심산유곡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공격 대상을 태공과 악공 본인들이 아닌 그들의 무구로 확정 지은 뒤.

바로 행동에 나섰다.

팟!

우선은 혈조술을 체내에서 돌려, 방금까지의 합보다 반 박자 빠른 움직임으로 악공을 기함하게 했고.

“!”

그 틈을 타, 파천단악의 초식을 머금은 회한을 휘둘러 악공의 칠현금을 동강 냈는데.

썽겅!!!!

이 순간, 낚싯대를 뻗어내는 태공과 그 앞에 선 장철한 그리고 내가 일직선에 놓여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고함성을 내질렀고.

“숙이십쇼.”

올빼미의 습성이 남아있던 장철한은 내 말이 이어지자마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는데.

그로 인해 생겨난 틈으로 태공의 낚싯줄에 뻗어져 나왔다.

쌔애애액!

나는 그걸 향해 회한을 질러낸 뒤.

순식간에 둘둘 감아냈다.

그리고 왼손에 흡성대법의 묘리에서 기인한 흑동(黑洞)의 술을 시전하니.

슈애애애액!

낚싯대에 감겨있던 태공의 기운이 연결된 천잠사를 통해 내 왼손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

그런 내 수법이 사특하게 느껴진 모양인지.

태공은 미련 없이 낚싯대를 놓아버렸다.

척.

나는 그렇게 손에 들어온 낚싯대를, 강기를 감은 진각으로 밟아 찌그러트렸는데.

콰가각!

그러는 사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띄워낸 태공과 악공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허. 장가 놈이 별 희한한 녀석을 달고 왔구만.”

“그러게 말이야. 장가 저놈이랑 같이 온 것도 그렇고 우리 모가지가 아니라 무구를 노린 것을 보면 심성이 뒤틀린 녀석은 아닌 것 같은데… 솜털도 덜 가신 애송이가 어찌 저리 고강한 무위를 가지고 있는고?”

그런 두 사람을 확인한 나는, 회한을 허리춤에 돌려놓고 보란 듯이 손바닥을 털었다.

탁. 탁.

그러자, 두 사람이 연이어 노성을 내왔다.

“야 이놈아. 근데 내 낚싯대 어쩔 거냐?!”

“내 칠현금도!”

따지고 보면 본인들이 먼저 공격해놓고 무구가 망가졌다 탓하고 있으니, 전형적인 적반하장이라 할 수 있었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애초에 저 반응을 기대하고 벌인 행동이었으니까,

하여,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돈이 좀 많습니다. 잘 아는 야장도 있고요. 멀끔하게 고쳐드릴 테니. 같이 좀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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