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개업.
세상만사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는데 나는 그것을 지금 실감하는 중이다.
박살이 나고 있는 내 객잔을 멀리서 지켜보며 말이다.
나는 원래 이 거지 같은 무공이 존재하는 무림 세계 사람이 아니었다.
2022년 대한민국 서울 거주 24세 남성이었지.
내 인생인 거지같이 꼬인 이유는 다 이 거지 같은 중국대륙 때문.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는 중국집을 하시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더 발전시키기 위해 중국 요리의 본고장인 중국으로 요리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북경의 유명 요리 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같은 북경의 유명 호텔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유학을 선택한 것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아주 좋았다.
몇 년 경험을 쌓고 아버지를 돕겠다는 생각이었으니.
하지만 개 같은 중국의 꽌시 문화.
혈연, 지연, 학연보다 더 개 같은 저 문화에 나는 호텔 근무를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한국행 배를 타고 말았다.
나는 인천으로 가는 배에 오르며 중국대륙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중국 땅을 다시 밟으면 개다 개!”
그렇게 개 같은 중국. 함께해서 개 같았고, 배울 건 다 배웠으니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라며 다짐했다.
그러나 내가 탄 배는 원인 모를 이유로 그날 밤 서해안의 싸늘한 바닷속으로 수장되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이 몸.
처음에는 좀 암담했다.
이 몸이 정말 암담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깨어난 곳은 동정호의 한 물가에 홀딱 젖은 채였다.
이름은 류청운(劉靑雲) 복건성의 작은 마을 한미한 가문인 류가장이라는 곳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계모를 들였으나 아버지 또한 얼마 안 돼 사망.
결국 낙동강 오리알이 된 이 몸은 계모가 손에 쥐여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내쫓겼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동정호를 건너다 수적을 만나 가진 돈을 뺏기지 않으려고 동정호에 몸을 던진 것.
다 죽은 몸으로 물가에 떠내려왔을 때가 내가 전생을 떠올린 건지 빙의한 건지 아무튼 이 몸이 된 순간.
은자 수십 냥에 목숨을 걸다니.
바보 같은 놈!
‘근데 그게 나네?’
정신이 들고 한심함 때문인지 물에 빠진 추위 때문인지 몸을 떨며 이 몸의 계획을 확인해보니.
나는 정말 대책 없는 놈이었다.
내가 동정호를 건너던 이유.
18살에 무슨 무공을 배운다고 가진 돈 다 싸 짊어지고 무림 방파를 찾아가고 있던 것.
이 몸이 복건성에서 강서를 거쳐 동정호가 있는 호남을 지나 찾아가고 있는 곳은 호북의 무당파(武當派).
그래, 무당파에서 무공을 배우고 싶어서 무당파를 찾는 것이었다.
조금 한심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기 전의 나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무협지 한 번쯤은 읽어본 적이 있는 것이고, 무협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떠올리는 남자들의 로망!
무협 세계에 왔으면 짱짱쌘 무공 익혀서 무림 삼화(三花) 거느리고 악당 무찌르는 그런 로망.
생각해보니까 나쁘지 않았다.
남자란 원래 로망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니까.
뭐 나도 평행 세계인지, 후생인지, 전생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무림에 태어났으니 멋진 무공을 배우는 건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몸의 원래 계획을 따라 고생 끝에 무당파에 도착했으나.
역시나 개 같은 꽌시 문화.
이 세계에도 꽌시는 있었고 인맥 없는 사람은 입문(入門)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있나?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하는 법.
이 아니면 잇몸.
호북에 무당이 있으면 섬서에는 뭐다?
화산, 종남 있는 것.
또다시 긴 여정을 거쳐 섬서 땅에 도착해 두 문파를 찾았으나.
종남은 문전박대에 화산은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네?
마지막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했으나 그건 절대 실행할 수 없었다.
하남의 소림사는 시켜준다고 해도 내가 싫었기 때문.
이번 생에는 장가는 꼭 가보고 싶었으니까.
무림에 왔는데 무림 삼화는 아니더라도 예쁜 아내는 한번 가져보고 싶었다.
아니, 전생에도 모솔이었는데, 이번 생은 중이라고? 그건 정말 안될 말이었다.
저번에 생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는데, 이번 생에는 결혼이라도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스님 행은 절대 사절이었다.
술, 고기, 여자를 못하면 인생을 대체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그렇게 종남을 마지막으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는 사천으로 향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먹고살려면 할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뭐냐고? ‘요리’ 요리 말이다.
중국에서 배운 요리의 기억이 있으니 요리 집이나 객잔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 시대에는 아직 없을 많은 요리들을 내가 알고 있으니.
입소문만 탄다면 대박을 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까짓거 무공 그거 배워봐야 뭐하나.
길 가다 칼밖에 더 맞겠나?
어느 세계나 진리는 돈이었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그렇게 나는 요리를 이용 자수성가 거부를 목표로 하기로 했다.
요리로 중원 제패! 가슴이 웅장해졌다!
‘내 식당 이름은 조선관으로 하리라!’
목표가 정해지자 나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제일 먼저 가게를 얻어야 했으니 말이다.
돈이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혹시 몰라 은자는 최대한 아끼며 여행했고.
새어머니는 몰랐지만, 나에게는 친어머니가 남겨주신 금자 한 냥이 바지춤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
그렇게 나는 내 첫 가게를 열 곳을 향해 또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이미 머릿속에 있었다.
최대한 장사가 잘될 만한 곳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요리 학교의 선생이 중국에서 가장 장사하기 좋은 자리라는 이야기에 농담처럼 했던 말.
“지금은 북경이 제일이라지만, 너희들 만약에 과거로 간다면 어디에 식당을 열어야 제일 좋을 것 같냐?”
“북경이요? 아니면 사천?”
“아니, 청천이다.”
사천의 북쪽 끄트머리 관도와 강이 지나고 사천, 감숙, 섬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
사방의 무림 문파들이 서로 교류하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
무림 문파가 없는 전생에서도 나쁘지 않았는데 무림 문파까지 있으니 더욱더 좋은 위치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은 위치.
나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종남에서 그리 멀지도 않았기에 나는 계획이 서자마자 청천으로 향했다.
하지만 역시나 여기서도 꽌시!
연줄 없는 새끼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인맥 없는 놈은 건물을 보여주지도 않는 상황.
가끔 보여주는 새끼들도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을 불러댔다.
결국 나는 내가 가진 돈으로 최대한 구할 수 있는 싼 요리집이나 객잔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정말 운 좋게 도박에 미친 놈의 객잔을 내가 가진 돈으로 아슬아슬하게 인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치는 생각했던 청천에서 조금 떨어진 같은 관도에 붙어있는 심우현(心友峴)이라는 작은 마을.
내가 가진 돈으로는 여기가 한계였던 것이다.
이삼 층짜리 높은 전각이 있는 그런 건물은 아니고 그냥 단층 짜리 식당과 외부의 별채 몇 개로 이루어진 대지가 조금 넓은 객잔.
그렇게 도박에 미쳐 자기 가게를 걸었던 놈의 가게를 싸게 인수해 직접 내부를 수리하고 부엌을 뜯어고쳤다.
며칠간 혼자서 낑낑대며 수리다, 청소다 고생하고, 아침에 신개장(新開場)을 써 붙이고 객잔을 열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거늘.
나는 실시간으로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객잔의 식당 쪽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진짜 담배 땡기네 씨발···.”
-쿠당탕! 콰광! 우직끈!
기둥뿌리까지 뽑아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것처럼 싸우는 놈들.
방문 밖으로 멀쩡한 의자가 던져져 공터에 떨어져 박살이 나기도 하고.
무엇 때문인지 안에서 불길이 일었다 잦아들기도 했다.
“끄어억!”
-콰당탕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빗소리를 배경으로 신나게 싸우던 놈들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소란이 잦아들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쏴아아
그리고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이제 폭우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내 마음속에 내리는 눈물처럼 말이다.
고요하게 모든 소리가 잦아든 한참 후 등을 들고 조심스레 불 꺼진 객잔으로 향했다.
내 객잔은 식당으로 쓰는 건물과 객실로 쓰는 별채들이 별도로 존재하는 구조.
식당과 객실이 조금 떨어져 있다고 보면 되는데, 그러니 아까 무림인들이 난장판을 피운 곳은 부엌과 식당만이 존재하는 건물.
무슨 난리를 피웠는지 식당 쪽의 모든 불이 꺼졌기에, 나는 별채 중 내가 쓰는 작은 집에서 등을 하나 꺼내 들고 종종걸음으로 빗속을 지나 식당 건물로 향했다.
-찰방 찰방
잦아든 빗소리와 내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지는 한밤중.
-삐그덕
조심스레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훅 몰려오는 피비린내.
여기가 분명 푸줏간은 아닐 것인데 푸줏간보다 더 진한 피 냄새가 비가 와서 공기 순환이 안 되는 식당 건물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씨발! 씨발!’
설마 시체라도 하나 있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여기저기 불 꺼진 등을 다시 밝히고, 문밖의 등에도 다시 불을 밝히자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내 객잔은 어디 가고. 웬 폐가냐?”
식탁 열 개중 네 개는 박살이 났고 입구의 문짝도 하나 반쯤 떨어진 상태.
의자는 무슨 하이틴 드라마 속 학교 일진들 싸울 때처럼 들고 휘둘렀는지, 멀쩡한 의자가 절반도 되지 않았다.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림인의 불문율 다 좋다 이거야! 그래도 신개장(新開場)까지 써 붙여놨는데 난장판을 만들고 간 건, 선 넘은 거 아니냐고!’
나는 속으로 절규를 내뱉으며 식탁과 의자에 이어 다른 참상을 확인했다.
신장개업한 객잔에서 개방의 거지 굴이 된 나의 박살난 객잔 내부를 살피자, 제일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 가장 심각한 것은 벽이었다.
나는 벽을 보자마자 목덜미를 움켜잡을 수밖에 없었다.
인테리어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붉게 칠해진 벽.
손수 피 칠갑해주신 벽을 보니 감사의 욕이 절로 나왔다.
“개새끼들아!”
벽면의 참상에 양손으로 얼굴을 움켜쥐고 주저앉았다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물에 적신 걸레로 벽을 훔쳐야 했다. 피라는 건 굳어지면 닦기 힘드니 말이다.
나에게는 슬플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부서진 의자 중에 쓸만한 것을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그렇게 대충 정리하고 부서진 테이블을 치우는데, 무엇인가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니 사람의 팔 한쪽.
“하하···”
개업 날 내 객잔을 조져 놓고 간 흉터 새끼는 나를 위해 선물까지 남기고 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