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면은 없다.
‘팔 한 짝을 어디다 쓸꼬. 좀 씻고 다니지. 손톱 밑에 때는! 젠장.’
개 얄미운 새끼는 제가 먹은 음식 그릇은 멀쩡한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가기까지 했다.
보란 듯이 그릇을 자기가 직접 치웠으니,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팔 한쪽을 주어서 들고 망연한 표정으로 바닥에 앉아있는데 뒤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장 계시는가? 그, 장사가···”
울상을 지으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여자 셋과 중년의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도 손님들의 행색을 살폈다.
무림인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니 비가 와도 쫓아 보낼 심산으로 말이다.
부서진 문짝 앞에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녀의 모습.
다행스럽게 무림인은 아닌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일행 중 남자는 진현관(進賢冠)을 쓴 머리에 백우선을 든 모습.
삼국지 게임의 제갈공명 같은 모습이었다.
글 읽는 높은 가문에서나 쓸법한 모자와 부채를 들었으니 나이 많은 서생 느낌.
‘여자 둘은 시비 같은데 한 명은 얼굴을 면사로 가린 걸로 봐서 가족이려나?’
갑자기 폭우로 변한 비를 피해 온 것 같은데, 난장판의 현장과 내 손에 들린 팔 한 짝을 보더니. 네 남녀는 고개를 앞으로 빼고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객잔에서 살인 사건이라도 일어났나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
나는 그들에게 환영의 의미로 팔 한 짝을 흔들며 허탈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장사하고는 싶은데, 무림인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고 이걸 선물로 주고 가서 말입니다. 하하··· 하···”
“저런···”
손님들이 불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팔 한 짝을 들고 주저앉은 나와 객잔 안에 들어서 손님들이 서로 어찌할 바를 몰라 어색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던 그때. 큰소리가 손님들 너머에서 들려왔다.
-쿠당탕
“어머나!”
큰 굉음에 시비들이 호들갑을 떨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소리는 반쯤 떨어져 나간 문짝이 결국 밖으로 넘어가 버리고 말아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덕분에 우리의 어색한 대치도 끝이 나고 말았다.
남자가 그제야 무척이나 미안한 얼굴로 물었다.
“그, 안타깝지만 해도 지고 비도 많이 와서 그런데, 하룻밤 묵을 수 있겠는가? 이거 참···.”
연신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는 모습이 무척이나 난처한 것 같은 모습. 난장판이 된 객잔과 주저앉은 내 모습을 보니 묻기 미안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뭐 남자의 처지도 이해가 되는 게.
이곳이 관도에 붙어있는 마을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제일 가까운 도시인 청천은 하루 정도는 꼬박 걸어야 나타나기에 이렇게 밤에 비가 쏟아지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자 셋을 데리고 비가 오는데 어딜 간단 말인가.
이곳 여자 옷은 얇고···. 비가 오면 붙는다. 딱.
이대로 내일까지 걷는다면, 관도에서 만나는 남자들에게 딸의 몸매를 구경시켜줘야 할 것이니 말이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 손님을 받기는 그랬지만, 손님들의 딱한 처지와 제갈공명 패션을 입은 사람 중에 악한은 없다는 것이 삼국지 게임 마니아였던 나의 지론이니, 일단 받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팔을 주방 쪽으로 휙 던지고 손님들을 향해 말했다.
“어르신 다행스럽게 별채는 무탈해서 주무시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식사는 준비해둔 재료를 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 숙박용 별채들은 다들 조금씩 떨어져 있어 숙박하겠다면 손님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객잔의 식당 건물이 난장판이 되었으니, 저녁 준비는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상황.
손님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자 남자는 역시나 배운 분이라 그런지 아주 예의 바른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는 그냥 요기만 하면 되네, 혹시 안 된다고 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 요깃거리가 조금 있으니 말이야. 이거 미안해서···.”
연신 미안해하는 남자. 솔직히 남자가 미안할 상황은 아니었다. 미안 하려면 아까 그 새끼들이 미안했어야지.
“알겠습니다. 어르신. 일단 한쪽에 앉아서 잠시 쉬시지요.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나는 사방으로 부서진 의자와 테이블을 밀어내고, 멀쩡한 의자 몇 개를 가져다 두고 손님들을 이끌었다.
일단 손님이 왔으니 앉을 자리부터 마련한 것.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이게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무척이나 미안해하며 자리에도 앉지도 못하는 손님들.
“제가 손님으로 받았으니 제 손님들이신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어르신”
거듭 권하고 나서야 움직이는 남자의 엉덩이.
“허허 청년이 아주 예의가 바르구만.”
남자와 딸로 보이는 아가씨가 의자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재빨리 움직였다.
부서진 의자들을 한쪽으로 밀어 치우고 멀쩡한 테이블을 끌어다 손님들 앞에 가져오자, 내 모습이 딱해 보였던지 시비로 보이는 여자 둘이 나를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나무가 부서져 날카롭기에 나는 그녀들을 만류 했다.
“아이고 소저들 아니 그러셔도 됩니다.”
“어머, 소저래 꺄르륵···.”
“빨리 치워져야 저희도 자리에 앉죠.”
성격 좋아 보이는 시비들은 재빨리 나를 도와 멀쩡한 테이블 두 개를 깔고 의자를 준비하더니, 숙달된 모습으로 자기들의 앉을 자리와 주인들이 앉을 자리를 준비했다.
힘도 무척이나 센 모습.
시비들이 자리 두 개를 재빠르게 만들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따로 두지 말고 한자리에서 먹자꾸나.”
남자가 그냥 한자리에서 먹을 것을 권하자, 사양하는 시비들.
상황이 이래도 시비들에게 저렇게까지 하는 분들이 많지 않은데, 역시 무림 세계에서 제갈공명 패션을 입은 사람 중에 악한은 없다는 공식이 성립하는 인물인 것 같았다.
“아닙니다. 어르신 저희가 어찌. 어르신께서는 아씨랑 드시지요.”
“지금 객잔이 어수선하니 한자리에서 같이 먹는 것이 좋겠구나. 아니 그렇소? 주인장.”
난처한 밀당을 토스하는 어르신.
하지만 거기 어울려 줄 시간이 없었다.
일단 자리가 준비되었으니, 준비되는 음식이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인 것.
“준비되는 음식이 있는지 재료를 한번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부엌 안으로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난장판.
이 새끼들 부엌까지 들어와서 무슨 난장판을 피웠는지, 바닥에 준비해둔 만두들이 굴러다니고.
물을 끓이는 솥은 넘어져 부엌이 온통 물바다였다.
그리고 면 요리 육수로 준비해둔 냄비도 넘어져 국물이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손님들이 비를 맞았고 따듯한 국물이 필요할 텐데 국물 요리가 불가능한 상황.
일단 화로를 다시 세워 불을 붙이고 솥을 올려 길어둔 물을 퍼담았다.
그리고 재료를 확인해 보았는데, 채소는 뭉개지고 매달아둔 돼지고기는 바닥을 구르고 있었지만 씻으니 문제는 없어 보였다.
나는 찬장에 준비해두었던 수건을 챙겨 아직도 젖어있는 손님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어르신 지금은 초면(炒麪) 밖에 준비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허허 초면(炒麪)이라?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음식의 종류를 가릴 처지겠는가? 가져와 보시게.”
인상 좋게 웃어 보이는 남자.
그의 말에 안심하며 음식을 준비하러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전생의 누군가가 손님에게 이상한 음식을 권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면, 객잔에서는 당연히 소면(素麵)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그건 무림 아니, 중국을 몰라서 하는 소리.
우리가 무협지에서 많이 보았던, ‘여기 소면 한 그릇 내오시게’ 하는 그 소면(素麵)은 무림 세계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요리이다.
아니, 존재하긴 한다, 우리가 아는 그 소면이 아니라서 그렇지.
우리가 보통 소면이라면 면발이 가는 국수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중국에서 소면(素麵)이라고 칭하는 것은 밀가루 반죽을 막대에 감아 기름을 발라 길게 늘어트려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한국 사람에게는 막대에 걸어 기름을 발라 말린 건면(乾麪) 정도라고 설명하면 될까?
그리고 또 다른 소면은 남송 시대에 충칭의 병사들이, 원나라의 남송 침공에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맵게 만들어 먹었던 면 요리를 말하는데. 내가 지금 살아가는 무림 시대는 원나라가 발호하기 전인지라.
당연히 충칭 소면이 존재하지 않는 것.
그렇다! 알고 보니 객잔에서 ‘소면 한 그릇 주시게’ 하는 그런 말은 무협지에나 등장하는 말.
무협의 로망 소면은 실제 존재하지는 않는 음식인 것이다.
중국에서 요리를 배울 때 그 사실에 얼마나 놀랐던지.
무협지의 로망 한가지가 사라지는 순간이었으니 놀람은 당연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창밖에는 아직도 빗줄기가 계속되고 있기에 비를 맞은 손님들을 위해 일단 차를 내기로 했다. 아까 올려둔 솥에서 물이 끓어오르자 그걸 주전자에 따로 담아 찻잎을 띄워 밖으로 향했다.
“추우실 텐데 일단 차부터 들고 계시지요.”
“이 친구 그 와중에 할 건 다 하는구먼. 허허”
“감사합니다. 주인장.”
객잔 안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입을 여는 면사의 여인.
남자의 딸로 보이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의 감동을 나는 딱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니.
내가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자 여기저기 걸린 등에 비친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벽안(碧眼)?’
완벽한 목소리에 벽안?
그 이질적 아름다움에 화들짝 놀라자 그녀도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살짝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내 잘못을 알아차리고 나는 급하게 사과했다. 아녀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으니 실례인 것이었다.
“시, 실례했습니다. 소저. 그리고 어르신”
“아, 벽안에 놀란 것이로군. 내 처가 북쪽 사람이라서 말이야. 귀신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하하”
이쪽의 일반 사람들은 벽안을 귀신의 눈이라거나 하면서 두려워하기에 아마 하신 말씀인 것 같았다.
어르신의 말에 벽안녀의 모습을 슬쩍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자, 그녀의 눈빛은 당황함에서 슬퍼 보이는 눈빛이 되어있었다.
아마도 비슷한 오해 속에서 계속 살아왔던 모양.
나는 그녀에게 급하게 사과했다.
“소저 실례가 많았습니다. 귀신의 눈이라거나 그런 오해를 한 것이 아니라. 꼭 눈이 푸른 호수 같기에 잠시 놀란 것이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눈빛.
그 모습에 어르신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 친구 아비 앞에서 딸에게 추파를 던지는가? 하하, 용감한 친구로구먼.”
“시, 실례가 많았습니다. 어르신.”
웃으며 하는 말씀이지만 왠지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남자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이 보였으니 말이다.
어여쁜 딸을 둔 아비라는 작자들은 모든 남자를 적으로 보니 아주 조심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아무리 악인은 입을 수 없는 제갈공명 패션을 입었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부엌에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끓는 물 솥에 면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권했던 초면(炒麪)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