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신
나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쳤다.
“하하···. 하···. 그런 일이··· 진작 말씀하시지···.”
“이 사람! 어디 자네가 내 말을 들으려 했는가? 갑자기 파렴치한 놈을 보는 눈길을 보내더니!”
선택적인 눈치를 가지고 있는 중년인은, 눈치 없이 식사 중에 시비들에게 말을 걸 때는 언제고, 내 눈길의 의미를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그것을 지적하며 투덜거렸다.
이쪽에는 여자를 패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그런 문화가 있고. 자기 여자나 딸을 패는 놈들을 몇 번 본적이 있어, 오해를 한 것이지만.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낸 것도 아닌데, 속마음을 눈치채고 투덜대는 중년인.
‘무슨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아니고···.’
선택적으로 발휘되는 그의 귀신같은 눈치에 인상이 절로 써졌다. 더군다나 이미 사과도 하고 용서도 해놓고 뭐가 그리 억울한지 투덜투덜.
토라져 자기 딸보다 더 튀어나왔던 그의 주둥이는, 이미 사과의 의미로 난동으로 손상된 채소를 볶아, 안주를 만들어 화주와 함께 내왔던 순간.
곧바로 쏙 들어가 버렸는데 말이다.
나는 남자의 술잔에 다시금 술을 따르며 말했다.
“자자 그러지 말고 한잔 받으시지요.”
“크흠! 주인장의 요리 때문에, 내 용서해 주는 것이네!”
자기가 큰 인심 쓴다는 듯 말하는 중년인.
술잔을 받으며 내가 가져다준 채소볶음을 입 안에 넣으면서도, 토라진 척하는 모습.
다 늙어서 정말 끝까지 주책맞은 모습이었다.
‘늙으면 다시 애가 된다더니. 아니지? 저분 나이가···.’
생각해보니 그랬다.
중년인의 나이쯤이면 이제 남성성을 서서히 잃어갈 때.
저 나이쯤이면 여성 호르몬이 많이 나와 감정 컨트롤이 힘들 수도 있는 나이인 것이다.
중년의 아픔과 슬픔을 지식으로나마 알고 있는 내가 이해해야만 하는 상황.
나는 연신 중년인을 달래며 그의 술잔에 술을 채워야 했다.
그리고 속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
‘갱년기라 제가 이해해드립니다.’
호르몬 때문인지 아직도 ‘에잉’이라고 말하는 주책맞은 중년인이 화주를 들이켜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의 딸을 곁눈질로 살폈다.
그녀는 이제야 내가 만든 짜장면을 한 가닥씩 조심스레 맛보는 모습.
아까는 무슨 식사 권유 정도에 다들 신파극을 연출하더니,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나 싶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튼 중국 놈들 엄살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면이 다 불었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는 그것은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오물거리는 볼이 토끼처럼 움직인다.
여기저기 부어오른 얼굴에 그녀의 표정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지만.
그녀의 눈을 보니 그녀가 기분이 좋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썹이 음식에 만족한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모습에 안심한 마음으로 나는 그녀와 중년인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정말 닮지 않은 부녀.
둘을 비교하자 가장 눈에 도드라지는 그녀의 푸른 눈이 다시금 시야를 사로잡았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벽안의 소유자, 그렇다면 어머니가 서역인.
그러니까 백··· 크흠?
나는 새삼 깨달은 사실에 화들짝 놀라 중년인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비교적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코 위를 비교해보아도 그녀의 어머니가 얼마나 미인이었는지를 알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호르몬 불균형으로 투병하고 있는 중년인을 향해 마음속으로 포권지례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그는 진정한 승리자였던 것.
나도 무림 삼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생애는 여우 같은 아내를 얻고 싶은데, 인생 승리자인 선배님을 보자 자연스레 존경심이 흘러나온 것이다.
그가 호르몬 불균형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중년인의 딸을 힐끔거렸던 이유는, 짜장면을 열심히 먹고 있는 그녀가 내 오해를 풀어주었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그녀는 내 오해와 자기 아버지의 난처한 얼굴에 한 번 대폭소를 하더니, 오리 같은 주둥이를 연신 움직여 내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말했었다.
“제가 지병이 있어 그런 것이니 오해를 푸시지요.”
내가 아비라는 작자를 감싸느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다시 한번 입을 가리고 웃는 그녀.
‘눈치라는 것도 유전이 되나?’
중년인과 그녀의 기묘한 능력에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 해서 어릴 때부터 앓았던 병이 이리 심해져서 사천에 있는 의원을 찾아가는 중이지요.”
어릴 때부터 괴질을 앓았는데, 요즘 갑자기 심해져 사천에 유명한 의원을 찾아간다는 그녀의 설명.
“저런···”
지병 때문에, 저런 얼굴이 되었다는 소저의 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의 이마나 작은 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주 미인상이었을 것 같은데, 대체 무슨 병이기에 저런 얼굴이 되었단 말인가?
‘하긴 그러니 괴질이겠지···.’
그녀가 해주었던 기구한 이야기와 안타까운 사정을 다시 떠올리고 속으로 탄식하고 있을 때였다. 짜장면을 먹다 말고 갑자기 왼손으로 자기의 갈비뼈를 긁는 그녀.
‘벼룩이라도 있나?’
아까 난장판이 되어서 어디 숨어있던 벼룩이나 빈대 같은 놈들이 기어나 왔을 수도 있는 일.
그녀의 주변을 살폈으나 바닥은 비를 맞고 들어온 손님들로 인해 젖은 상태.
그냥 모기에라도 물렸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각쯤 지났을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몸을 긁는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빈도가 실시간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갈비뼈에서 시작해 허벅지, 팔뚝, 배까지 긁기 시작하는 그녀.
뭔가 상당히 불편한 모습.
갑자기 자기 몸을 여기저기 긁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손님. 어디 불편하신···?”
-딸그락
그러나 그녀에게 질문을 채 반도 하지 못했을 때 그녀의 손에서 젓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손을 바라보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손끝.
-뚝 뚝
동시에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그녀의 식은 땀방울. 놀라 그녀를 바라보자 목덜미에도 두드러기 같은 것이 불그스름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아! 아가씨!”
“청아!”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는 그녀.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숨이 막히는지 점점 파랗게 변하는 그녀의 입술.
그녀의 위급한 모습에 중년인이 뭔가를 하는 것 같더니, 그의 술기운으로 벌겋게 물들었던 얼굴이 이내 평범한 안색을 되찾았다.
아마 무림인들이 한다는 술기운을 몰아낸다는 그것인 것 같았다.
술기운을 몰아내고 안색을 되찾은 남자는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당 우당탕
그나마 멀쩡한 의자와 테이블을 사방으로 부수듯 밀어낸 남자.
그는 드러난 공간에 자기 딸을 다급히 앉혔다.
강제로 젖은 땅바닥에 앉히자 촛불처럼 휘청이는 그녀.
그녀의 몸이 가냘프게 흔들리며 그녀가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를 알려주는 듯했다.
남자는 다급히 자기 딸을 붙들어 고정한 후, 자기 장심을 그녀의 등에 대고 무협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기운을 불어넣는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비들을 향해 소리쳤다.
“청이의 몸을 돌볼 테니 너희는 호법을 서거라! 주인장, 딸아이의 괴질이 발작한 것 같으니, 혹시라도 다른 손님이 온다면 거절해주시겠소? 내가 객잔을 통째로 빌리리다.”
남자는 통 크게도 골든벨을 울리며 나를 기쁘게 했지만, 남의 불행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것은 장사치로서는 용납될수 없는 행위.
무림인인 것을 숨긴 것은 얄밉지만, 나는 그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타인의 횡래지액(橫來之厄)으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서 아가씨나 돌보시지요.”
“고, 고맙네, 주인장.”
남자는 나의 말에 무척이나 감격한 눈빛을 보내더니, 두눈을 감고는 이제는 양손으로 자기의 딸에게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가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하자, 시비들이 갑자기 품에서 쇠로 만든 붓 같은 것을 두 개씩 꺼내 양손에 나눠 쥐더니,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각쯤 지났을까? 남자의 노력에도 입술만 파랗던 딸의 얼굴이 점점 더 파랗게 물들고 있었다. 뒤에서 눈을 감은 중년인의 얼굴도 그것을 느끼는지 사색으로 물드는 상황.
곧 남자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낭패한 얼굴로 외쳤다.
“청아! 대체 어째서!”
뭔가 이해 못 하겠다는 중년인의 외침. 치료가 마음대로 되지 않은 듯 했다.
“아, 아가씨!”
“어떡해! 아가씨 정신 좀 차려보세요.”
시비들이 달려들어 그녀의 몸을 부축했지만,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그녀의 답답한 숨소리.
“큽··· 크흡···”
남자가 자기의 무명지를 입으로 잡아 뜯어 그녀의 목으로 자기 피를 흘려 넣었지만, 숨도 쉬지 못하는 그녀가 그것을 삼킬 수 있을 리 만무한 상황.
그녀는 결국 바람에 날린 촛불처럼 그대로 꺼지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청아! 아아!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제 딸을”
혼돈과 울음바다가 된 내 개업 첫날 객잔.
‘시작부터 개판이더니···.’
나는 아가씨의 증상과 남자 그리고 시비들의 모습에 현기증을 느끼며 털썩 주저앉았다.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눈앞이 아찔했다.
비슷한 일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겪어서 그럴까? 멀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같은 실수를 두 번 겪지 않으려면 말이다.
나는 후들거리는 손을 꾹 움켜쥐고 중년의 남자를 향해 말했다.
“어르신 혹시 아가씨의 맥이 약해졌습니까?”
내 물음에 자기 딸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하다 황급히 그녀의 맥을 쥐더니 대답하는 남자.
“그, 그렇네. 맥이 무척이나 약해져 있네. 호, 혹시 의, 의술을 아는가? 내 무엇이든 자네가 달라는 것은 다 구해줄 터이니, 내 딸을 좀 살려주시게”
또다시 골든벨을 남발하는 남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을 더듬었다.
두드러기, 가려움증 심할 경우 급성 호흡곤란, 혈압 감소.
내가 알고 있는 그것이 확실했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어쩌면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원인이 되었던 사건이 눈앞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따님을 살리고 싶으십니까?”
“물론이네!”
남자가 자신의 대답이 불러올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