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짝
사람이 식사하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것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또 확률이 없는 것도 아닌데.
흔치 않지만, 식당에서 접할 수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사고는, 손님을 잘못하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손님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두 가지 사고 유형 중 하나는 질식사.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숨이 막혀 죽는 일이다.
고급 호텔 식당에서는 안전 교육 때 그래서 하임리히법을 배운다.
혹시라도 일어날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기도가 막힌 사람 뒤에 서서, 약간 흐뭇한 자세로 배를 누르면서 기도로 넘어간 음식물 꺼내는 응급처치법 말이다.
그리고 질식사고 다음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가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아나필락시스 쇼크사.
중년인의 딸처럼 말이다.
중년인의 딸이 보이는 반응으로 봤을 때 그녀는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재빨리 쓰러진 중년인의 딸에게로 기어갔다.
희미한 맥박. 정신을 잃었지만 아직 숨은 쉬고 있었다. 그러나 쌕쌕거리는 소리가 목이나 혀가 부어 기도를 막아가고 있는 모양.
“봇짐을!”
나는 시비들에게 그녀들이 지고 있던 봇짐을 가져오라 시켰다.
“알겠습니다!”
내 명령에 시비들은 아주 재빠르게 움직였다.
날 듯이 움직여 다른 식탁에 올려두었던 봇짐을 가지고 오는 시비들.
우선 봇짐 하나로는 그녀의 목 아래를 받쳐 기도를 좀 더 편하게 열어주고, 하나는 의자를 눕혀 그 위에 놓고 그녀의 다리를 올려두었다.
목 아래를 받치고 턱을 열어 입으로 숨을 쉬게 해주자 파랗게 질렸던 그녀의 얼굴은 빠르게 혈색을 찾아갔다.
나는 바로 주방으로 달려가 따듯한 물과 무명천을 가지고 와 시비들에게 그녀의 입 안을 닦아내라 시켰다.
“입안과 입술, 혀를 닦아내 내십시오.”
“예? 입안을요?”
“예, 아마 먹은 음식 때문인 것 같은데, 입안에 남아있으면 혀가 부어오를 수도 있으니. 잘 닦아내십시오.”
“알겠습니다.”
시비들이 그녀의 입안을 조심스레 닦아낼 때 중년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호, 혹시 괴질의 원인이 무, 무엇인지 아는 것인가?!”
선택적 눈치가 발휘된 듯 중년인은 반쯤 확신하듯 물어왔다.
기대감, 두려움, 걱정과 희망이 담긴 복합적인 눈빛.
나는 그의 딸이 먹던 짜장면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급격한 아나필락시스 반응을 일으킬만한 재료를 찾기 위해.
우선 짜장면에 사용된 채소는 양파, 양배추, 청경채, 죽순. 이놈들은 제외.
밀가루가 원인이었으면 밀가루 음식이 많은 중원에서 저 나이까지 자라지도 못하고 일찌감치 사망했을 테니 밀가루도 아니었다.
텐멘장에 들어간 표고나 다시마도 용의선상에서 제외.
표고나 다시마는 비교적 귀한 음식 재료인데, 중년인이 얼마나 잘살지는 몰라도 딸의 얼굴로 봤을 때 자주 먹은 것으로 보이니 절대 아니었다.
그러면 남은 것은?
화생(花生) 땅콩.
중국 사람들은 워낙 땅콩 맛을 좋아하기에 짜장 위에 데코로 두세 알 정도의 분량을 중식도로 으깨 올렸는데, 아마도 그것이 탈을 일으킨 것 같았다.
운도 지지리 없지. 그냥 내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나는 내 불운에 한탄했다.
‘오늘 온종일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내가 불러온 불운을 한탄하고,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중년인이게 말했다.
“따님은 아마도 땅콩을 먹으면 안 되는 체질 같습니다.”
“따, 땅콩 말인가? 아니, 정말 땅콩이란 말인가?”
중년인은 믿기 힘들다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솔직히 이 시대에 땅콩을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사람은 체질에 따라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뭐 내가 의사가 아니니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은 해당 음식에 들어있는 어떤 물질을 몸에 나쁜 것으로 판단해, 면역반응을 일으킨다는 것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우유, 달걀, 견과류, 땅콩, 콩, 생선. 갑각류.
해당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잘못해서 그것을 섭취하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 두드러기나 복통, 식은땀 등의 증세부터, 호흡곤란, 혈압강하 등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증상까지 아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것을 통틀어서 아나필락시스 반응이라고 부른다.
요리사 나부랭이인 내가 이것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는 이유는, 전생에서 호텔 일을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향한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인한 손님의 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죽어 이 몸에서 정신을 차리는데 시발점이 된 사건.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 내가 조리에 관여한 음식을 먹고 사망했는데, 음식에 관여했던 3명의 요리사 중 나만 호텔 소유주의 꽌시가 아니었기에 내가 잘린 것.
주방장과 부주방장은 호텔 오너의 꽌시와 꽌시의 사돈의 팔촌쯤이기에 해외에서 온 내가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잘린 것이다.
그 후는 뭐 배 타고 가다 죽어서 이 몸이었고···.
이전 생각에 잠시 빠져있는데, 나를 바라보는 중년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예, 아마 땅콩이 확실할 겁니다.”
내 확신에 찬 대답에 뭔가 잠시 생각하는 중년인.
그는 내 말을 듣고 자기 기억 속에서 뭔가를 떠올리며 한참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말일세 딸아이는 땅콩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네. 그리고 생각해보니, 땅콩을 먹고 쓰러진 일도 있었지만, 평범한 음식을 먹고도 그런 적이 많아서 말이야. 내 자네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상해서 말이지···.”
“아, 그건 그럴 수 있습니다. 따님이 모르고 드셨을 수도 있으니까요.”
“모르고, 말인가?”
중년인은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중화의 요리에는 튀기거나 볶은 음식이 많고, 볶음 요리에는 보통 땅콩기름이 사용되지요.”
중년인이 깜짝 놀란 눈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남이 해주는 음식 먹기만 했을 테니 그것이 무슨 기름인지도 몰랐을 것이 분명한 얼굴.
아까는 음식에 대해서 좀 아는 것처럼 말하더니 알고 보니 그냥 초짜였다.
호르몬 불균형을 앓고 있는.
채소볶음이야 땅콩 맛이 확 나지만 살짝 볶아 소스에 버무린 음식 같은 것은 당연히 먹는 사람은 모를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음식을 한 팬에 땅콩기름이 남아있다거나 아니면 조리도구 칼 같은 곳에 땅콩기름이나 땅콩이 묻어있었다면, 모르고 먹었을 수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일.
“음식을 볶거나 튀길 때 땅콩기름을 주로 사용한다니··· 정녕 몰랐네···.”
남자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놈의 넓기만 한 중국 땅은 좋은 물을 구하기가 무척 힘이 드는 편이다.
강물은 흙탕물 천지고 비가 오면 계절에 따라 흙비인 토우(土雨)까지 내린다.
이놈들이 더운 한여름에도 뜨거운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한 것도 그런 물을 끓여 먹지 않으면 배탈 설사가 심하고, 물에서 흙내가 진동하니 끓여 마실 수밖에 없는 것.
요리도 마찬가지라서 그래서 끓이거나 삶는 요리보다는 찌거나 튀기거나 볶는 요리가 발달한 것이다. 물의 양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 말이다.
“당연히 모르실 수 있습니다. 아무튼 아가씨가 정신을 차리실 수 있다면, 앞으로 땅콩은 아주 적은 양이더라도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그 말은 우리 청이가 못 일어날 수도 있단 말인가!”
중년인이 흥분해 나를 탈탈 흔들어댔다.
아마 내가 철석같이 살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듯한 목소리.
“예, 지금 상황에서 제가 딱히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숨이 멈추지 않게 도와드리는 것뿐.”
전생에 나는 의사가 아니라 요리사.
그것도 중국 음식 요리사.
아나필락시스 쇼크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최소한의 응급처치.
에피네프린이라는 약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 구할 수 있을 리 만무한 일.
내말에 남자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망연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청아···.”
그때였다. 시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자기 주인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살피던 시비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은공! 아가씨께서!”
주인장에서 은공으로 호칭 업그레이드가 나.
역시 선택적 눈치를 제가 좋을 대로 사용하는 남자보다, 주인을 모시고 있어 그런지 시비들이 좀 더 사회생활을 하는데 센스가 있는 모습이었다.
망연하게 주저앉았다 다시 깜짝 놀라 제 딸에게로 달려가는 남자를 따라 그의 딸에게로 향했다.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던 여자의 입술이 다시금 파랗게 물들고 있는 모습.
그리고 쌕쌕거리는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쌔액 쌔액
아마도 다시 숨 쉬는 것이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시비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녀의 벌린 입속을 들여다보았다.
입속을 바라보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까보다 퉁퉁 부은 혀.
혀뿌리가 그녀의 목을 거의 다 막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녀의 오리주둥이에 직접 숨을 불어넣기로 했다.
실시간으로 파랗게 질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더 지체했다가는 다시금 송장을 치를 게 뻔한 상황.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한 손으로 좀 더 턱을 꺾어 기도를 최대한 확보하고 그녀의 코를 살포시 쥐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결과 콧대의 날카로움.
얼굴을 그녀의 머리 쪽으로 가져가자, 향긋한 체향이 그녀의 체온에 데워진 물기와 같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달콤한 향에 갑자기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정신 차려 미친놈아 얘는 환자야! 찐빵이야! 오리라고! 이건 의료행위다. 의료행위다.’
나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이 마음속으로 의료행위와 오리를 반복하며 그대의 두툼한 입술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의 입안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후우
그러나 입안으로 공기를 불어 넣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혀뿌리가 기도로 가는 입구를 대부분을 막고 있는 것.
-후우 후우
어쩔 수 없이 혀로 그녀의 혀를 밀어 올리며 천천히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쑤욱 하고 밀려들어 가는 공기.
-후우
그렇게 그녀에게 몇 번이나 숨을 불어넣는데, 갑자기 목덜미를 움키는 무엇인가.
“컥···.”
갑자기 목덜미에 느껴지는 강력한 손아귀의 악력에 나는 컥 하고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그녀의 입에서 떨어졌다.
목덜미에 느껴지는 바르르 떨리는 진동.
뒤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내 목덜미를 움켜쥔 중년인의 모습.
그의 입이 열리며 분노를 꾹꾹 눌러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자네. 이게 대, 대체 무, 무슨 짓인가?”
생각해보니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그녀의 입안에 혀를 집어넣고, 그녀의 혀를 밀어 올리며···.
‘제기랄···.’
나는 그녀의 혀를 밀어 올리느라 젖은 입술을 혀로 한번 훔치고 그에게 설명하려 했지만.
내가 혀로 입술을 훔치는 것을 본 순간 그의 눈은 이미 이지를 상실하고 있었다.
-할짝
“이노오오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