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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 (8/344)

딸바보

전생이나 지금이나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이성과 논리로 대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이성과 비논리로 똘똘 뭉친 부류의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 등장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분노한 상태로.

“나의 소중한 딸의 입술을 끄흑! 가, 감히 손대··· 아니, 입을 대··· 끄흐윽! 아무튼 네놈의 행동을 나 제갈천이 납득 할만한 이유를 대지 않는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네! 끄르릅!”

새빨개진 얼굴과 관자놀이에서 승천하는 토룡(土龍), 바르르 떨리는 입술은 그가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흥분된 모습과 그가 하는 말에서 나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무림에서 명망 높은 7개 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諸葛世家)의 일원이라거나 하는 정보가 아닌.

한번 걸리면 약도 없고 호르몬 불균형보다 무섭다는 불치의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딸바보 증후군.

‘맙소사. 서, 설마 따, 딸바보였다니!’

나는 중년인이 딸바보라는 사실에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이성과 비논리로 똘똘 뭉친 사람의 종류는 다양하겠지만. 

그중에 딸바보라는 부류는 뇌를 딸이라는 단어로 절인 좀비 아니, 이곳은 무림이니 강시 같은 존재.

그들에게 딸은 태양이요 절대 선, 그리고 한없이 순결한 신 같은 존재. 

그들은 마치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들이 집사를 자처하듯 기꺼이 딸의 노예를 자처하는데, 그런 딸을 건드렸다? 그러면 X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응급 의료행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에게는 지금 상황이 아마도 딸의 순수성을 훼손한 것으로 보일 것은 당연한 것.

순수한 딸의 입술을 훔치고 혀를?

봉변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그 딸바보가 무림인이고 무력을 가졌다면 단순한 봉변 정도에서 끝날 리는 만 무한일.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관자놀이에서는 토룡이 승천하고 나의 관자놀이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애초에 그가 딸바보인 것을 알았다면, 차라리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았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신체에 손을 댄 순간, 죽든 살든 확정된 미래는 암울한 빛으로 물들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니.

딸바보인 아비의 손에 말이다.

“케흐윽···”

조여오는 숨통과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딸바보가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납득 할 이유를 대라면서 숨통을 움켜쥐고 있는 저 말도 안 되는 행위.

저 중년인은 어차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납득 할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 자신을 납득 시키라는 그의 말은 그저 나를 처단하기 위한 명분인지도··· 

이 상황에서 저 중년인이 다음에 칠 대사를 떠올리자면.

‘어째서 말을 못 하는 것이냐! 감히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정도.

내가 머릿속에 그가 할 말을 떠올리자,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의 분노에 찬 말이 나에게 분노와 함께 쏟아졌다.

“어째서 말을 못 하는 것이냐! 감히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목을 놔야 무슨 말을 하지!’

입술이 파랗게 질려 죽어가는 그의 딸보다 내가 먼저 숨이 끊어질 상황.

나는 급하게 그의 팔목을 항복의 표시로 탭을 치듯 두드렸지만, 그는 비논리, 비이성적인 딸바보인데다 무식한 무림인에 중국인.

‘그러고 보니 트리플 크라운일세?’

논리라는 요소를 1도 포함하지 않은 기막힌 조합에 정신이 멍하니 멀어지며, 내 짧은 이번 생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칠 때. 

그 짧게 지나가는 주마등 사이 나를 구원하는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가씨! 어르신 아가씨가!”

남자가 시비의 부름에 내 목덜미를 팽개치듯 놓고 다시 그녀의 딸에게로 달라붙었다. 

숨통이 터지며 흘러나오는 기침.

“케흑! 켈륵! 케르륵···”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다 고개를 돌려보니, 딸바보의 딸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

그녀는 숨이 막히는 듯 다시금 숨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꺼흑··· 꺼흑···”

“청아!”

그래, 어차피 봉변은 예정된 것. 이미 손을 댔으니 살리려는 시도는 해봐야 했다.

더군다나 이유가 어쨌든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저렇게 되었으니 양심상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

나는 탁자에 있는 숟가락 하나를 들고 와 딸바보를 밀어내며 말했다.

“저리 비키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따님을 살리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오?! 설명할 시간이 없소!”

그렇게 망연하게 주저앉은 남자와 시비들을 밀어내고, 다시 그의 딸에게 달라붙어 인공호흡을 시도하려 했으나 그의 딸에게서 들려온 것은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소리. 

“끄륵···”

딸바보 딸의 숨이 끊어지며 그녀는 그대로 차디찬 바닥으로 고개를 떨궜다. 

물에 젖은 바닥 새파란 얼굴로 고개를 떨구고 늘어진 그녀.

한시가 급한데 자꾸 방해하니 사달이 나고 만 것이었다.

“청아!”

“아가씨!”

“아가씨! 어흐흑!”

시비와 남자는 그녀의 몸에 사람들이 달라붙어 오열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오늘 무슨 마가 끼었나? 왜 자꾸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는 것이지?’

개업식날 찾아온 얼굴에 칼자국 있는 놈 이후로 풀리는 일이 없었다.

자꾸만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 짜증이 몰려왔다. 

나는 그녀의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비키시오! 정녕 이대로 죽일 것이란 말입니까?!”

그러자 시비 하나가 눈물 콧물 다 뺀 얼굴로 나보다 더 크게 빼액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흐흐흑··· 뭐가 죽여요! 이미 돌아가셨다고요!”

“끄흐흐흐윽 청아! 청아!”

시비는 소리치고 남자는 자기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열만 하는 상황.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사람 목숨이 그리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오! 다 비키시오! 내 살려 볼 테니!”

“흐아앙··· 사, 살린다고요?”

울다 말고 내 살린다는 말에 믿기 힘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비. 

나는 망연하게 주저앉은 남자와 시비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사람들을 밀어내고 바닥에서 숨이 멈춘 여자의 왼쪽에 자릴 잡았다.

그리고 엄한 목소리로 시비에게 명령했다.

“이 숟가락으로 혀를 한쪽으로 눌러 숨이 통하는 구멍을 확보하시오! 아니지.” 

아니지, 말한다고 알아들을 리가 만무하니, 내가 직접 숨이 멈춘 여자의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직접 숟가락으로 혀를 누르고 시비에게는 숟가락을 붙잡고 있기만 하라고 당부했다.

“이걸 붙잡고 있으시오!”

여자의 기도가 확보되자 나는 바로 숨을 두 번 크게 불어넣고는, 한 손을 활짝 펼치고 그 위에 다른 손으로 깍지를 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을 일정한 속도로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CPR은 한 회 30번이 국룰. 

30회가 끝나면 바로 시비가 혀를 누르고 있는 그녀의 입안으로 숨을 두 번씩 불어넣었다.

아주 정석적인 CPR.

호텔 교육에 응급처치가 있었기 망정이지. 

몰랐으면 한 명을 요단강 너머로 보낼 수도 있었던 상황. 

이마에 땀방울이 흐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를 살리려는 내 노력이 한창일 때. 

딸바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마법사 잃은 좀비. 

아니, 영환 도사 잃은 강시처럼 망연하게 주저앉아 있다가 내가 자기 딸의 가슴을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시금 발작하는 딸바보. 

딸의 신체는 그의 발작 버튼과 연결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어느 정신 나간 놈이 저 집 사위가 될지는 몰라도 고생길이 훤했다. 

이래서 전생에 결혼을 약속한 여친의 아비가 딸바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라는 말이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첫날밤도 감시할 것이 뻔한 남자의 발작.

“네놈 끝까지 선을···.”

그의 짜증 나는 목소리에 나는 그녀의 심장에 마사지를 이어가며 남자에게 외쳤다. 

“닥치시오! 당신 딸이 죽는다면 다 당신 탓이오! 아이를 성인까지 키우면서 어떤 음식이 아이에게 독이 되는지도 모르고 키우다니! 무작정 예뻐만 하면 부모의 일이 끝나는 것이오? 더군다나 자기의 딸을 구하려는지도 모르고 핍박하다니!”

“뭐라!”

남자의 발작에 나는 팩트로 중년을 흠씬 두들겨 팼다.

나는 묵직한 팩트 폭행에 남자가 휘청거리며 주저앉아 ‘내가···. 흑흑···.’ 정도의 모션을 취하면서 주저앉아 반성할 거라 예상했지만.

그건 내가 너무 전생의 드라마 클리셰에 익숙해진 나만의 착각.

남자가 불같이 분노하며 내공이라도 끌어올리는지 주변이 달달달 떨려왔다.

-부르르르르르

-후둑 후두두둑

주변의 식탁과 의자들이 바르르 떨어대고.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먼지와 물방울. 

기왓장이 밀려 천장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사방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줄기에 느껴지는 서늘한 느낌.

‘이, 이것이 살기라는 것인가?’

등줄기를 거대한 칼로 면도하는 것같은 느낌. 정수리부터 시작해 목덜미, 어깨, 허리를 거쳐 항문까지 뭔가가 서늘하게 꿈틀거리며 지나가는 느낌.

등줄기에서 서늘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드라마가 아니라 무협영화에 심취할 것을!’

전생이야 싸움이 일어나면 경찰이 잡아가고, 때리면 맞은 자에게 깽 값을 물어줘야 했지만 여기는 무림. 

힘이 있는 놈이 곧 법.

-꿀꺽

침이 꿀꺽 삼켜졌다.

이 무림에서는 삼류 잡배도 자신의 체면을 손상했다 생각되면 살인도 불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팩트로 후드려 팬다고 제갈 뭐라고 자신을 소개한 명문가의 남자를 팩트로 조져버리며, 자기 시비들 앞에서 개망신을 주었으니···

저렇게 살기를 내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처음 받아보는 살기에 손이 후들후들 떨렸지만, 그렇다고 손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살 길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슴을 내리누르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아니, 힘을 주지 않아도 달달 떨리는 손에 자동으로 마사지가 되는 상황.

내 아래 자기를 살리려고 내가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정신을 잃은 채 새파랗게 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간절히 빌었다.

‘아가씨 얼른 일어나셔야 님도 살고 저도 삽니다!’

그런 내 간절한 외침이 닿았을까?

“쿨럭”

그의 딸이 쿨럭하고 숨을 내뱉으며 숨이 돌아왔다.

“아가씨!”

“청아!”

여자의 숨이 돌아오고 덕 뿐에 나도 요단강 건너기 직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거짓말 같이 사라지는 살기.

나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툭 투둑

그리고 내 코로 뜨뜻미지근한 무엇인가가 흘러내려 여자의 가슴으로 떨어졌다. 

눈을 내려 살펴보니 그것은 코피.

그와 동시에 갑자기 온몸에 탈력감이 쏟아지며, 눈앞이 티비 정규방송이 끝나고 화면조정에 나오는 흰개미 검은 개미 전쟁처럼 까맣게, 하얗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정신력을 짜내어 시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아가씨의 몸을 따듯하게 해주고, 수저로 숨이 지나가는 길이 막히지 않도록···”

-털썩

살기 존나 무섭네···

머릿속에 떠오른 마지막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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