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과
부엌에서 꺼낸 칼을 가져와 식탁에 올리고 아가씨 쪽으로 쓱 밀었다.
그 모습에 어리둥절한 모습이 된 사람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아가씨, 송구하지만 제가 드릴 것이 이것뿐이군요.”
내 말에 어색함과 당황함으로 물드는 분위기.
선물이라고 내 온 것이 부엌칼이면, 이런 분위기는 당연했다.
‘그래도 최대한 준비했다고···.’
솔직히 이건 내 책임이 아니었다.
원래 마니또를 정하고 서로 모르게 잘해주다가 마지막에 선물 교환하는 것이 순서인데.
이건 모두 갑자기 선물교환 이야기를 꺼낸 가주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원래 통이 큰 사람들은 소소한 걸 잘 못 챙기는 단점이 있는 법.
어쩌겠나 내가 이해해야지.
받아먹은 오백 냥은 이해심을 높게 증가시켰다.
그래도 자기 딸과 교분을 이어가라 할 것이면 미리 좀 언질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야 나도 준비라는 것을 할 것이 아닌가?
다급하게 준비한 선물이 이상할 것은 뻔한 일.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물을 받고 초등학생 때 나는 마니또에게 좋은 선물을 줬는데, 상대방에게 받은 선물을 뜯어보니, 100원짜리 지우개를 받아든 것같은 모습이 된 아가씨.
그 모습을 보니 이대로 선물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포장.
선물은 원래 포장이 절반이니 말이다.
뭐 이미 선물 줘놓고 무슨 포장이냐 생각할 수 있지만, 원래 외적 포장보다 내적 포장이 중요한 것.
별거 아닌 물건도 그럴듯한 이야기가 더해지면 가치가 올라가는 것.
스토리 텔링.
나는 입을 털기로 했다.
“그, 별것 아닌 선물 같지만. 그, 제가 요리를 처음 입문하여 처음 잡은 칼이면서도, 두부를 썰 때 머리카락처럼 얇게 잘리는 명품이며, 제 여행 때 흉악한 수적 놈들에게서 저를 지켜준···.”
그렇게 저 칼에 얽힌 스토리 텔링을 이어가는데, 갑자기 가주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 저것이 자네의 입문검(入門劍) 아니, 입문도(入門刀)란 말인가?”
“예, 그렇지요. 입문검 아니, 채도 아무튼 예. 맞습니다.”
중간에 스토리 텔링이 끊겨 어디까지 말했더라? 하면서 끊어졌던 설명의 끝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 가주가 무척이나 만족한 얼굴로 그의 딸에게 말했다.
“청아 아주 귀한 선물을 받았구나.”
“예, 아, 아버님. 가, 감사합니다. 이, 이렇게 귀한 것을···.”
‘아직 스토리 텔링 시작도 안 했는데?’
면을 자르면 실처럼 가늘게 뽑을 수도 있으며, 종이보다 얇게 포를 떨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안 했는데, 먹혀버린 스토리 텔링.
‘돼지 뼈도 한 번에 자를 수 있는데···’
어떤 부분이 부녀의 감성을 자극했는지 모르지만, 아주 만족한 표정이 된 그들을 보니 아무튼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선물교환이 끝나자, 일행은 나에게 인사를 하고 객잔을 나섰다.
“내 당문에 들렀다가, 갈 때는 중경에 일이 있어 그곳을 거쳐 호북으로 갈 것이니. 다시 못 들릴 것이네. 대신 사람을 보낼 테니 기다리시게.”
“예, 어르신. 알겠습니다. 아가씨도 몸 건강하시길. 아차! 아가씨, 이 편지도 받아 가시지요. 제가 걱정되는 마음에 좀 적었습니다.”
그녀의 알레르기 반응에 대해 아는 것과 주의 사항을 적은 것을 적어서 전달해 주려고 했는데, 칼을 전하느라 깜빡한 것이 생각나 얼른 품에서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발그레한 얼굴로 내 편지를 받아 들고는 그것을 조심스레 품 안에 넣고 일행과 함께 총총히 성도 방향으로 사라졌다.
‘자기 증세를 세세히 알게 되면 충격이라도 받을까 싶어, 유머 코드를 넣어 재미있게 적었으니 괜찮겠지?’
멀어지는 아가씨를 향해 기운을 내라고 주먹을 움켜쥐어 흔들어줬다.
***
청천을 거쳐 면양으로 가는 관도 위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숨어든 큰 뽕나무 아래, 제갈청은 자기 오른손을 어찌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다시 황급히 빼냈다가를 반복하거나, 가슴을 더듬었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가,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그녀의 오른손.
그런 그녀의 귓가로 키득거리는 시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그냥 확인해보셔요.”
“맞아요. 그냥 보세요.”
제갈청이 자기 손을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시비가 그녀에게 권유했다. 궁금함의 원인을 어서 찾아 해결하라고 말이다.
그제야 퍼뜩 드는 정신.
자기가 손을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시비의 말에 그제야 자기가 손을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제갈청은 황급히 손을 움직여 자기 옷매무새를 더듬는 척을 하며 말했다.
“무, 무엇을 말이냐.”
눈을 질끈 감으며 아닌 척을 해보지만,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시비들의 눈길.
그리고 기침하는 아버지.
“크흠! 크흠!”
제갈청이 고개를 돌려 옆을 슬쩍 바라보자 옆에 계신 아버지는 왠지 먼 산을 바라보고 계셨다.
저건 아마도 자기도 궁금하니 어서 확인해보라는 뜻.
결국 제갈청은 못이기는 척 품 안에 손을 집어넣어, 헤어질 때 그가 건넸던 서찰을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붉은 봉투를 손에 쥐자 떨려오는 손길.
다시금 시비들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갈청을 시비들을 한번 쏘아준 후, 조심스레 봉투를 꺼내 안에 있는 서찰을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붉은 종이를 보자 가슴이 떨려왔다.
그리고 종이를 펼치자 글과 함께 그와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자기의 눈을 보고 호수 같다고 말해주던 특이한 남자.
북쪽 출신인 어머니의 눈빛을 닮아 아버지 외에는 한 번도 그런 칭찬을 받아 본 일이 없던 제갈청에게는 한 번도 겪어본 적, 들은 적 없는 말이었다.
귀신의 눈이라거나 귀신 든 눈이라 수군거리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푸른 호수라니.
자기의 눈에 대한 소감을 시처럼 아름답게 표현해주는 말에 온몸이 떨려왔었다.
그 기억에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솔직히 이렇게 편지를 받아들고 내용을 확인하려는 순간까지도 꿈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에게 목숨을 구명 받고 깨어난 순간부터는 뭔가 항상 멍한 상태니, 말이다.
깨어난 후부터 계속해서 밀려드는 충격적인 소식에 반쯤 정신이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몽롱한 정신 속에 귓가에 들려왔던 소리.
“다행이야 목숨도 구명하시고, 괴질의 원인도 그분이 알려주셨으니. 치료는 하지 못하더라도 이제 평범하게 사실 수 있다니···.”
“그나저나 구명하는 도중에 어르신 앞에서 아가씨 가슴을 만지고 입술을 훔쳤다는 걸, 아가씨가 알게 되시면 절대 안 되겠지?”
“당연하지!”
영민한 청은 몽롱한 정신 속 시비들의 대화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객잔에 있던 사람이라고는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시비 둘과 객잔 주인.
누구에게 무엇을 겪었는지 단숨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남자가 자기 괴질의 원인을 알려주었기에 괴질을 치료는 할 수 없어도 앞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구명의 과정에서 객잔 주인 남자가 아비의 앞에서 가슴을 더듬고 입술을 훔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뭘 어찌해야 그런 방법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괴질의 원인을 알려주고 목숨을 구원해주었다는 사실에 하늘 높이 치솟았던 기분은 곧장 깊은 심연 속 무저갱으로 곤두박질쳤다.
침상에 누운 그대로 깊은 곳으로 처박히는 정신과 육체.
구명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아비의 앞에서 가슴을 더듬고 입술을 훔쳤다니.
괴질에 걸려 아버지와 집안 어르신들께 폐만 끼치다 결국 험한 꼴까지 보이고 말다니.
정말 구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은 침상에 죽어버린 눈동자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 아가씨?”
“어머 어째! 우리 이야기 다 들으셨나 봐.”
시비들이 호들갑을 떨어대기 시작하고 잠시 후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가 조용히 귓가에 들려왔다.
“청아, 너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의술을 들어본 적 있느냐?”
다정하게 자기의 머리를 쓸어올리는 아버지의 손길.
청은 훌쩍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부어버린 혀로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
“내 직접 네 숨이 끊긴 것을 확인했느니라. 그런데 그놈이 너를 살린 게야.”
살짝 떨리기까지 하는 아버지의 음성.
‘하지만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런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청아, 외간 남자에게 험한 꼴을 당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힘들겠지만, 아비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거라. 그놈은 너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느니라.”
청은 그가 목숨을 걸었다는 말에 고개를 올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했지, 객잔 주인이 목숨을 걸 이유가 없었기 때문.
‘무슨 목숨을?’
“그놈이 나보고 너의 병환의 이유도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키웠냐고, 예뻐하기만 하면 되느냐며 이 아비에게 호통을 치더구나. 허허”
청은 아버지가 하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부릅떴다.
남자를 조금 걱정하면서.
‘설마 벌써 죽은 건 아니겠지?’
“내 네 몸을 만지고 입술을 훔치지 못하게 하자, 너를 살리겠다고 그리 소리친 게지. 그리고 이 아비의 살기를 반각이나 받으면서도 너를 살리겠다고 손을 멈추지 않더구나.”
‘저런···. 나를 살리겠다고 결국은 죽었구나···’
그는 그냥 양민으로 보였는데 아버지의 살기를 반각이나?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심장이 멎어 죽었을 터.
청은 다시 고개를 침상으로 처박았다.
그리고 자기 목숨 때문에 멀쩡한 남자 하나가 죽었다는 사실에 더욱 슬퍼졌다.
그때 자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들려오는 말.
“아직 살아있느니라.”
청이 다시 고개를 돌려 남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때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놈에게는 지금 공과, 과가 있느니라. 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느냐?”
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살린 것은 공이요. 자기의 몸과 입술을 훔친 것은 과.
“잘 듣거라 네가 나쁜 생각을 품거나, 혹시라도 남자가 네 몸을 만졌다는 사실에 슬퍼한다면 이 아비는 당장 가서 놈을 쳐 죽일 것이니라.”
아버지의 말에 부르르 떨리는 등불. 진짜로 하겠다는 말씀이셨다.
“네가 슬퍼한다는 것은, 놈의 과가 크다는 것, 죽을죄를 지은 놈은 죽어야지···”
청이 아버지의 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왠지 간신처럼 웃으며 묻는 아버지.
“그럼 놈을 공 있는 놈으로 만들고 싶은 게냐?”
청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후회했다. 아버지의 말에 완전하게 당해버린 상황.
이제 조금만 슬퍼해도 남자를 죽이자고 길길이 뛰실 테니 슬퍼하는 모습은 절대 불가능했다.
“내 그럼 네가 원하니, 놈이 깨는 대로 놈의 과를 지울 것이야.”
아버지는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가시려다 무언가 생각나신 듯 몸을 돌려 말씀하셨다.
“아차차···. 그런데 청아 놈의 과가 지워지면, 목숨을 걸고 자기 딸을 구한 놈에게 아비가 어떤 상을 주면 좋겠느냐? 그 정도 공이면 세상에 제일 귀한 것을 주어야 할 터인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방 밖으로 조용히 사라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