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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와 라 (14/344)

마와 라

‘설마?’

영민한 청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기셨던 말씀에서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등줄기를 살살 간질이는 불안함 감각.

아버지가 뭔가를 저지를 때의 감각이었다.

어릴 적 넘어져 무릎이 깨지자 같이 있던 시비의 오줌을 지리게 만들었던 때나. 

괴질이 발병하고 모습이 이렇게 된 자신을 두고 수군거리던 놈을 흠씬 두들겨 팼을 때 같은.

“우리 딸은 아비에게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배니라.”

입버릇처럼 하던 아버지의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겠지?’

자기 눈을 호수 같다며 칭찬하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그러나 청은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괴질로 흉하게 변해버린 자기의 얼굴과 몸을 잘 알고 있기에 그도 질색할 것은 뻔한 일. 

아버지가 아무리 밀어붙이셔도 그가 절대 좋다고 할 리는 없었다.

그도 어젯밤에 자신을 얼굴을 자세히 보았을 테니까.

‘아니지.’

양민에 불과한 그에게 살기를 내뿜으며 협박하거나 제갈가라는 사실을 내세워 압박하면 또 모를 일이었다.

제갈가는 무후 이래. 인, 의, 협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에 백도 무림을 돕고 있는 것일 뿐. 

실제로 무가라고 하기에는 조금 특이한 위치였다.

물론 무술을 수련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

꼭 무술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재능이 있는 자를 식객으로 받기도 하거니와 관에도 꽤 많은 이들이 진출해 있는 것. 

그런 면에서 볼 때 남자는 아주 귀한 인재, 죽은 사람을 살리는 재주는 아버지가 탐낼만한 재주였다. 

까탈스러운 아버지의 혀를 만족시켰던 그의 요리 솜씨도.

그리고 자기 몸 때문이라도 남자를 곁에 두려고 하실 것이 뻔했다.

아무리 남자가 괴질의 원인과 조심해야 할 것들을 일러준다 해도, 어떤 일에도 서너 가지 방편을 준비하는 아버지의 성격상 남자를 욕심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남자가 자기 옆에 있는 것이, 제일 안심 될 테니.

그런 생각에 빠져 불안한 마음으로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데, 아침이 밝고 얼마 안 돼 아버지가 문을 두드리는 것도 잊은 채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무엇이 그리 기쁜지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로.

‘아!’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요리, 의술을 제외하고 남자의 재주가 하나 더 있었다.

표정을 숨기는 훈련을 받은 제갈가의 가주를 분노하게도 기뻐하게 할 수도 있다니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기쁜 얼굴로 방으로 들이닥친 아버지는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쏟아내셨다.

“청아 내 고놈과 대화를 나눠봤는데 혈혈단신 고아라고 하는구나. 내 너를 시집을 어찌 보내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데릴사위로 정말 괜찮은 놈일 듯한데.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역시나.

아버지는 이미 남자를 사위 삼기로 작정하신 모양이었다.

혼례는 당연히 아버지께서 결정하시니, 자신이 좋고 싫은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얼굴 한번 못 본 남자를 혼례식 날 처음으로 마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목숨을 걸고 구명한 자라는 사실 정도. 

그리고 자기 눈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사실.

아버지는 뭐가 그렇게나 마음에 드시는지 무척이나 흡족하신 상태였다.

“놈이 감히 무후를 존경한다고 하지 않겠느냐? 내 입에 발린 말인 줄 알았는데, 계자서를 달달 외더구나. 하하하! 그리고 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야. 네가 영민하다 했더니 무후의 피를 타고 태어나 그렇다고 하질 않나, 아! 그리고 네가 파과지년인 줄 알았다고 하지 뭐냐. 안목이 나쁘지 않은 걸 보니 아비는 아주 마음에 든다.”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누든지, 대화에 속에 있는 깊은 뜻과 상대의 속을 살펴봐야 한다고 교육받은 자신의 아버지가 아주 남자에게 흠뻑 빠진 모습.

‘어제 드신 약주는 분명 내공으로 흩어버리신 것 같은데?’

그리고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정말 날 좋다고 했다고? 이런 모습인데?’

아버지가 협박한 게 분명하고 지금 하는 말은 지어낸 게 아닐까 의심으로 보냈던 청은 점심이 가까워져 올 때 받아든 죽그릇 하나에 그의 마음을 의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 미안해 가시들이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너무 고와 물처럼 느껴지는 하얀 죽. 

그냥 봐도 정성이 느껴지는데 거기 시비가 보탠 말.

“아가씨가 혀와 목이 부은 상태니, 넘기시기 힘들까 세 번이나 가셨답니다.”

‘그. 그렇게까지?’

그리고 그 후부터 매끼 나오던 죽과 몇 시진 달여서 내온다는 보양식. 

‘세상에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설마 이것이 야서지혼(野鼠之婚)?’

두더지도 제짝이 있다더니! 아마도 그가 그 두더지인 모양이었다.

***

“아가씨! 아가씨!”

시비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시비를 바라보자 시비들이 무척이나 궁금한 얼굴로 묻고 있었다.

“아가씨, 무슨 내용이에요? 예? 저희도 궁금하니 조금만 알려주세요.”

“무슨 내용인가요?”

청은 고개를 휘젓고 손에 들었던 서찰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편지를 읽어 내려갈 때마다 천천히 굳어지는 그녀의 얼굴.

붉은 봉투에 넣어 자신에게 직접 주기에 연서인 줄 알았는데, 자기의 몸 상태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적은 것일 뿐. 

실망감에 시무룩해지려는데.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바로 옆, 귓가에서 들려왔다. 

흠칫 놀라 옆을 보니 고개를 빼고 자기 서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아마 참지 못하고 서찰을 엿보고 계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서찰의 내용을 확인한 아버지는 조금 다른 말씀을 하셨다.

“저리 상세히도 적다니. 부끄러웠던지, 네 몸을 잘 챙기라는 뜻을 저리 전한 듯싶구나.”

‘정말일까?’

잠깐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저번에도 한 번 의심했다가 아버지의 말이 맞지 않았던가. 청은 재빨리 의심을 지우고 볼을 붉혔다.

그런데 서찰을 한참 읽던 아버지가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오셨다.

“그런데 저 구절은 좀 이상하구나. 무슨 의미인지, 행운을 비는 의미인가?”

아버지의 손끝을 따라 내려간 청의 시선이 제일 마지막에 쓰여있는 글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이 편지는 심우현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

“?”

***

“샤라랄 라랄 라라. 난 좋아 난 좋아!”

세상이 이리 아름다운 것이었던가? 

든든한 꽌시가 생긴 삶은 어제와 다른 모습이었다. 

태양은 더 밝고 하늘은 더 맑았으며 공기는 더 깨끗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 

목수를 찾아가 부서진 의자와 식탁을 새로 주문하고 문짝 수리도 부탁했다.

그리고 모처럼 시장에서 여러 가지 음식 재료를 사서 객잔으로 돌아왔다.

손님도 없는데 열심히 음식 재료를 사 들고 오는 이유.

그것은 객잔을 열고 한가할 때 해보려고 했던 요리를 연습하기 위함이었다.

요리사가 무슨 요리 연습이냐 하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일류 요리 공부를 마친 내게 한계를 선사한 것은 다름 아닌 재료.

놀랍게도 시대에 따라 없는 재료가 다양했던 것.

내가 지금 있는 사천을 예로 들면, 사천 하면 매운 요리, 매운 요리 하면 사천.

매운 고추와 혀가 아릴 정도의 매운맛이 사천의 요리 일진데. 놀랍게도 고추가 없었다!

사천요리의 역사가 2천 년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중 고추가 사천요리에 쓰인 것은 고작 400년.

그래, 송나라에는 고추가 없었다.

‘사천이 고자라니! 사천이 고자라니!’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상상해본 적 있는가? 

사천의 명물 마라탕에 고추가 없고, 마파두부에도 고추가 없다는 사실?

심지어 두반장에도 고추가 없네? 

믿을 수가 없어 시장을 뒤지기로 했다. 

요리를 배우면 자연스럽게 요리에 역사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그러니 요리 역사를 배우면서 알게 된 고추의 역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 중, 비주류 의견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시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공부했던 고추에 대한 비주류 의견 중 하나는, 송나라 호권이 저술한 탄안기에 북송 황제가 고추를 즐겨 먹었다거나, 남송 임홍의 저서 산가청에 고추가 조미료로 언급되어있다고 들었었던 것.

그러나 명 말기 들어왔다던 주류의견이 맞았다.

시장에 눈을 씻고 찾아보거나, 고추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나 물어도, 아는 사람도 보았다는 사람도 없었던 것!

‘호권, 임홍 찾아내 죽인다!’

나는 이 잔혹한 무림 세계에서 나의 원한을 산 두 명의 이름을 기억했다. 

감히 사기를 치다니!

아무튼 그런 이유로 고추가 없었다!

그러니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재료로라도 매운맛을 내기 위해서.

일단 내 객잔이 사천에 자리 잡고 있으니,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을 연습해야 했다.

객잔인지라 뜨내기손님이 대부분이라지만 왜 사람의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오늘 뭐 먹을까? 사천에 왔으니 당연히 뭐 매운 걸 먹어야지!”

손님들이 나눌 대화가 눈에 선했다.

그러니 아무리 객잔에서 간단한 음식을 팔아도 거기에도 약간의 매운맛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장사를 하지 않겠는가.

비장한 마음으로 바구니에서 오늘 사 온 매운 재료들을 하나씩 꺼냈다.

오늘 사 온 재료는 화초(花椒), 수유(茱萸), 생강(生薑).

화초는 산초나무 열매의 껍질이고, 수유는 쉬나무 열매, 생강은 생강. 

아 물론 매운맛을 내는 데는 후추도 있었다. 

못 사서 그렇지. 

한 나라 때 후추 한 알이 진주 한 알 가격이었다더니, 내가 배운 지식으로는 송대에는 가격이 좀 내려갔다 들었는데, 진주 한 알에 후추 한 줌이 되어있을 뿐이었다. 

살 떨리는 가격에 도저히 살 수가 없었던 것. 

나는 비싼 후추는 제외하고 손쉽게 구한 세 가지 재료를 살펴보았다.

제일 먼저 화초, 화초를 한 줌 쥐어 향기를 맡아보았다.

“크···. 매운 향기”

한 알을 혀에 대자, 오락실에서 아저씨 몰래 동전 구멍에 튀기던 딱딱이를 혀에 튕긴 것처럼 짜릿한 혀.

마라탕의 마를 책임지는, 화초의 혀가 얼얼한 매운맛이 혀를 짜릿하게 쏘았다. 

내 1코인을 올려주기 위해서 오락실 동전 구멍은 이런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니, 나는 어린 시절 만행을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라를 찾기 위해 다음 재료를 살폈다.

내가 마니, 라니 하는 것은, 사천의 요리가 기본적으로 굵직한 두 개의 매운맛의 조화로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 매운맛이란 마와 라. 

얼얼한 맛을 뜻하는 마(痲)와 매운맛을 뜻하는 라(辣)

그러니 마라탕은 얼얼하게 매운탕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재료를 살피는 것은 마에 사용하는 화초는 손에 있으니, 고추를 대신할 라가 필요한 것.

그런데 슬픈 사실은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인데, 고추의 캡사이신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캡사이신처럼 매운 피페린이 많이 들어있는 식물인 후추.

그러나 아마 후추로 고추를 대신한다면, 손님들 음식 위에 진주를 반쪽씩 올려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니 쓸 수가 없는 것.

뭐 결국은 달리 말하면 후추가 비싼 게 아니라 돈이 없다는···.

어딜 가나 진리는 돈!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지 않던가?

‘이렇게 해서 언제 부자가 된단 말인가?’

후추 한 줌에 벌벌 떠는 인생이라니···

그 생각에 화초가 남긴 아릿한 매운맛이 길게 묘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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