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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짜장 (15/344)

사천 짜장

혀끝에 느껴지는 아릿한 매운맛의 여운과 함께 ‘라’를 찾기 위한 여정이 계속되었다. 

두 번째로 손에 쥔 것은 수유.

화초는 마라탕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해 보았는데, 수유는 현대에는 잘 사용하지 않아 잘 모르는 것이 사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그냥 수유라고 부르지 않고 오수유(吳茱萸)라고 부르는데. 

대충 뜻은, 약으로 쓰는 오나라의 작은 나무에서 딴 홍색 열매 정도.

수유 한 알을 눈앞으로 가져가 살펴보았다.

진한 갈색과 검은색의 중간쯤 되는, 후추라고 해도 믿겨 질 정도의 모습, 후추와 아주 흡사한 모습이었다.

단단하게 말린 열매. 

하나를 입에 넣자 밀려오는 매운맛과 함께 더 강렬한 것은 쓴맛.

‘오우! 쓴맛이 너무 강한데?’

솔직히 수유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조금 실망감이 들었다.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은 정유(精油) 성분을 기초로 한다. 

기름이라는 말.

매운 것을 먹고, 물을 아무리 마셔도 입안과 입술에 매운 느낌이 가시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름이라 물에 씻기지 않는 것.

내가 수유에 기대한 것은, 수유가 열리는 쉬나무에서 머릿기름으로 쓸 정도로 많은 기름이 나온다는 이야기 때문.

정유 성분이 많으니 캡사이신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쓴맛이 생각보다 강했던 것.

하지만 실망감도 잠시.

‘아니지! 마늘, 양파의 매운맛은 열을 가하면 단맛으로 바뀌는 성질이 있으니···. 수유 이거 기름을 한번 내볼까? 그래, 아직 실망하긴 이르지.’

수유를 가지고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화로(火炉)에 땔감을 집어넣고 중간중간 마른풀을 끼워 넣었다. 

-칙! 칙!

그리고 돌과 철 조각을 부딪쳐 불똥을 마른풀로 떨궜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야 마른풀에서 올라오는 연기.

수십 번을 쇳조각을 튕겨서야 간신히 불을 붙이는 한심한 몸뚱이에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긴 것이, 꼴에 또 이게 나름 한미한 가문 출신의 귀한 몸뚱이라고, 이런 일을 안 해봐서 그런지 불도 잘 못 붙인다는 것. 

나야 현대인이라 그렇다 치지만 이 몸뚱어리 주인은 정말 한심했다.

그리고 그게 역시나 나고.

몸으로나 정신으로나 둘 중 하나만이라도 기억하고 있으면 술술 잘되는 느낌인데, 둘 다 못하는 건 그냥 죽어라 안된다.

그러니 이런 허드렛일은 너무 힘이 드는 것.

더군다나 며칠 시비가 있어서 이런 일은 다 해줬기에, 고 며칠에 나태해져서 그런지 불이 더 안 붙네?

불조차 못 붙이는 나태해진 몸을 몰아붙였다.

조심스레 연기를 피워올리는 마른풀에 입을 대 ‘후후’ 불자 그제야 불꽃이 솟아오르고, 연기에 켈륵 거리며 그걸 조심스레 장작더미 안에 밀어 넣자, 천천히 번지는 불꽃.

‘문명! 문명이 필요해!’

라이터 한번 착 켜면 생기는 불이, 이렇게 고생해야 간신히 붙다니···

정말 무림의 슬픈 단면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생에 내가 읽었던, 수많은 무협 소설의 뒷면에는 나 같은 엑스트라들의 엄청난 노고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보통 무협지에 보면 ‘점소이 소면, 오리구이, 죽엽청 가져오시게’ 정도로 묘사되는 사소한 일이.

수십 번 철 조각을 때려 불똥을 만들고, 그걸 장작에 붙여 화로에 불을 붙이는 걸 시작으로. 면을 삶고, 몇 시간 동안 오리를 굽고 하는, 그런 어두운 단면이 숨겨져 있는 것.

실로 암흑같이 어두운 단면이었다, 내 눈을 후비는 연기처럼.

“켈륵! 켈륵!”

불이 붙었다고 끝인가? 아니, 화로를 한참을 바라보며, 연기 속에서 풀무를 움직이고 나서야 간신히 요리될만한 불이 준비되었다.

남자에게 눈물을 요구하는 더러운 연기에 패배한 채.

눈물을 찔끔거리며 웍(鑊)을 불 위로 올렸다.

그리고 채자유(菜籽油)를 웍 안에 빠르게 부었다.

웍이 달궈지기 전에 기름을 빠르게 넣어야 한다. 

웍의 한 군데라도 뜨겁게 달궈지면 기름이 타기 시작하고, 탄 기름은 산패하기 쉬워져 기름을 오래 두고 쓸 수 없는 것. 

더군다나 불꽃이 일정한 가스 불이 아니고 장작불이니 불 조절이 어려워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했다. 

불꽃이 일렁이며 웍의 바닥을 직접 핥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

그렇게 기름이 타지 않는 한도에서 기름 온도를 한계까지 올리고.

수유를 큰 대접에 적당히 넣고, 그 위로 달궈진 기름을 빠르게 부어준다.

-촤아아아아

뜨거운 기름에, 수유가 튀겨지는 것같은 소리가 나고 곧 매콤한 향기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향이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 

수유기름이 식는 걸 기다리며. 화초도 똑같은 과정으로 기름을 내주었다.

그렇게 고추기름을 대신할 두 가지 매운맛을 내는 재료의 기름을 뽑아내, 살짝 찍어 입으로 가져가려 할 때였다.

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주인장, 계시는가?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인가?”

“안에서 이 매운 향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사람이 있겠지”

“주인장, 계시오. 손님 받으시오!”

시끌벅적 들려오는 주인장을 찾는 소리.

며칠만의 손님이던가.

나는 퇴근 시간 주인 맞은 개새끼처럼 달려 나가, 양손을 싹싹 비비며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섭셔! 아이고 주방에서 뭘 좀 하느라. 이리, 이리 앉으시지요.”

인사를 박은 채 고개를 숙이고 달려 나가 자리를 가리키며 고개를 드는데. 눈에 들어온 것은 세 명의···. 산적(?)

검은 무복(武服)을 입고 허리에 박도(朴刀)를 찬 세 명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셋 다 인상이 어찌나 더러운지 절로 뒷걸음이 쳐지는 다리.

‘사람 인상이 어찌 저따위로.’

흠칫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서자 세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뭔가 익숙한 목소리로 말이다.

“자네 인상 때문이네!”

“그래, 항상 저놈 때문이지!”

“뭐야? 네놈들은 세검(洗脸) 할 때 자기 얼굴도 안 돌아 본단 말인가?”

잘 안 씻을 것같은 놈들이 세수 타령까지 하며 싸우니 조금 웃기긴 했다.

그러나 재들이 개그를 친다고 해서 내가 웃을 수는 없는 일.

저러다 내가 웃으면 ‘우리 얼굴을 비웃어?’ 

이러면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사이코패스의 무림인인지라, 나는 황급히 그들에게 설명했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며칠 전에 무림인들이 몰려와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간지라, 칼을 보니 놀라서 그런 겁니다. 자자 앉으시지요.”

“아하, 그러고 보니 문짝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이 그 때문이었구먼?”

“허허, 어쩐지 안에 식탁과 의자가 좀 부족하더라니.”

나는 혹시라도 그들의 기분이 상했을까 호들갑을 떨어대며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며칠 전 개업을 했는데, 마침 그날 비가 왔지 않았겠습니까? 그 때문에 그날따라 손님이 한 명도 없었는데, 갑자기 저녁에 찾아온 손님이 식탁 위에 칼과 은자를 올리셔서···”

손님은 그냥 위치가 안 좋아서 없던 것이지만, 그냥 비 때문으로 하기로 했다.

“저런! 비가 온다고 개업 집으로 들어가 싸우다니··· 양심도 없구먼.”

“예, 예 덕분에 그날 후로 장사를 계속 못하고 있었습죠.”

내 설명에 세 남자는 중국 개 샤페이 같은 얼굴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위로했다.

“걱정하지 말게. 우리는 무림인이 아니니. 우리는 천월표국(川月鏢局) 사람이네. 표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몇 달 만에 사천에 들어서니, 풍겨오는 매운 향에 참을 수가 있어야지.”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오! 천월표국.’

나는 남자의 천월표국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셋을 바라봤다. 

하도 인상이 험상궂게 생겨서 녹림(綠林)의 도적놈들이거나, 흑도(黑徒)의 쓰레기들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대기업 정직원.

천월표국(川月鏢局) 앞부분의 천자는 사천(四川)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했다. 

표국의 이름이야 자기 마음대로 지을 수는 있지만, 저 천자는 함부로 쓰면 큰 문제가 된다.

사천을 의미하는 천자를 쓰는 것은, 자기들이 지역 대표쯤이라는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

함부로 썼다가는 사방에서 견제와 공격이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외부에서 당당하게 말하고 다닌다? 

진짜 업계 1위라는 이야기.

큰 손님이었다. 

더군다나 표국이라면 여기저기 물건을 운반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들, 객잔의 주요 고객인 것이다.

꼭 잡아야 했다.

아무리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제갈꽌시가 생겼다지만, 떨어지는 떡고물만 바랄 수는 없는 일.

나는 다시금 손을 싹싹 비비며 손님들께 말했다.

“오랜만에 사천에 돌아오셨다면 매운 음식이 필요하시겠군요?”

“그렇지! 그렇지!”

남자들이 기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었다.

“저희 객잔에서 지금 준비되는 음식이 초면(炒麪)과 구채초육사(韭菜炒肉絲) 정도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좋네! 화끈하게 매운맛으로 부탁하네!”

나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갔다.

화로에 이미 불은 붙어있는 상태, 솥을 올려 물을 끓이고 옆의 화로에도 불타고 있는 장작을 반쯤 옮겨 불을 하나 더 넣었다.

내가 지금부터 만들 요리는 볶은 면 요리 초면(炒麪)과 구채초육사(韭菜炒肉絲).

초면이야 당연히 손님들이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짜장면을 낼 것이지만, 오늘은 매운맛을 원하는 손님들이니, 내가 지금부터 만들 것은 다름 아닌 사천 짜장면!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는 것이 진리.

그러니 사천 사람에게는 사천 짜장면을 내야 하는 것.

끓고 있는 솥에 면을 넣는 것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그다음은 웍을 화로에 올리고 아까 준비한 수유와 화초 기름을 넣어주었다.

비율은 1:2 여기에 제일 먼저 넣을 것은 생강, 마늘, 그리고 파.

편으로 썰어 생강의 매운맛 그리고 마늘과 파의 향을 기름 안에 충분히 뽑아낸다.

충분히 뽑혔는지 알아내는 방법은 코끝으로 파의 향긋한 향이 올라오는지 확인하는 것.

파의 달큰하고 향긋한 향이 코끝에 피어오르면 준비가 다 되었다는 신호.

코끝으로 파의 향긋한 향이 올라오면 파, 마늘, 생강 모두 건져내 버리고, 기름만 있는 웍으로 돼지고기의 살코기를 잘라 넣는다.

평소라면 돼지기름인 라드를 사용하기 위해 지방이 많은 부분으로 짜장의 고소한 맛을 폭발시키겠지만, 지금 만들 것은 사천 짜장.

화초기름에 돼지기름이 섞이면 자칫 기름기가 너무 많아져 느끼할 수 있으니 살코기만 잘라 넣은 것이다. 매콤하고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서.

그리고 내 특제 텐멘장과 노두유(老豆油) 조금, 그리고 원당을 살짝 넣어 빠르게 볶아준다. 

웍을 살짝 기울여 기름에 불을 붙여 불맛을 입혀주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할 일.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채소의 차례, 제일 먼저 넣어줄 것은 양파이다. 

양파를 제일 먼저 넣어주는 것은 매운맛과 어우러질 양파의 단맛을 뽑아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아삭한 식감을 위한 죽순과 양배추, 마지막으로 요리에 초록의 색을 내기 위한 청경채, 잠두(蠶豆)까지.

잠두는 누에콩이라고 부르는 녀석인데, 초록색의 싱그러운 색을 가지고 있는 녀석은, 청경채와 함께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요리에 색감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모든 순서가 끝나면 삶고 있던 면을 건져 물기를 털어내고, 소스와 볶아주면 류청운식 사천 짜장면 완성!

‘자, 자셔들 보셔.’

세 마리의 사페이 앞에 사천 짜장 그릇을 내밀자, 그중 한 마리가 침 한 방울을 식탁 위로 떨어트렸다.

-뚝 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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