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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미 (16/344)

랄미

“어허, 자네 뭐 하는 짓인가 대체.”

“자네들도 해보게, 이리 맛있는 것을 어찌 남긴단 말인가?”

남자의 말에 눈치를 보던 다른 두 남자도 곧 앞선 남자를 따라 그릇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샤페이라 불렀더니 정말 개가 되어버린 세 손님.

설거지까지 해주실 모양인지 그릇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추릅 츄르릅

나는 남자들의 덩치에 혹시 몰라 더 준비해둔 소스와 면이 있기에, 리필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저러다 그릇이 닳아 없어질 것 같았기 때문.

“혹시 좀 더 드시겠습니까? 추가로 드시는 것은 돈을 받지 않습니다만”

“그, 그냥 준단 말이오?”

“어, 얼른 주시오. 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초면(炒麪)은 많이 먹어보았지만, 이건 정말 맛있구려.”

“이 초면의 이름이 대체 무엇이오?”

세 남자가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어왔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이름을 묻는 것같은 간절함 듬뿍 담긴 눈빛으로. 

물론 소도둑같이 생긴 셋에게 이름을 물음 당한 여자는 울음을 터트리겠지만.

“사천 작장면이라 합니다. 매운맛을 그리워하는 사천 사람의 소망을 담은 음식이랄까···”

입을 조금 털어 답하자 남자들이 놀라 외쳤다.

“오오, 확실히!”

“처음 먹어보는 면 요리이지만 그 맛과 향이 일품이었소. 매콤한 맛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그렇게 세 남자는 호평을 이어가다 리필까지 받은 그릇을 싹싹 비우고 나서야 만족한 얼굴로 일어섰다.

“주인장 여기 얼마요. 돈 받으시오.”

중국집에 처음 데려간 초등학생 같은 모습으로 얼굴에 여기저기 검은 짜장을 묻힌 채 일어선 세 남자.

나는 그들의 호평과 모습에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테이블로 달려갔다.

손님이 만족한 식사를 하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나의 뿌듯하고 기쁜 마음은 그들이 식사를 끝낸 테이블을 보자 착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 호평이었던 나의 사천 짜장면과 달리, 구채초육사에 손님들이 젓가락을 한 번도 대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맛만 본 느낌이랄까?

저 의미는 확실했다.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

손님들이 음식을 남기는 것은 음식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손님들이 무슨 음식을 남기고, 무슨 음식을 다 먹었는지. 

무엇을 추가로 요구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원인을 찾아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

그냥 배불러서 남겼겠지, 하고 생각하면 나중에 정말 큰일이 날 수 있는 것이다,

손님들은 음식이 맛없다고 절대 대놓고 불평하지 않는다.

만약 불평하는 손님이 있다면 그건 정말 고맙고, 감사한 손님.

손님들은 맛이 없다면 대부분 다음에 오지 않는 것을 택하니 말이다.

그러니 원인을 찾아야 했다.

사천 짜장면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한 세 사람이 왜 구채초육사를 남겨야 했는지.

구채초육사를 한국말로 하면 부추잡채. 

한국식 당면 넣은 잡채가 아니라 고추가 등장하기 전, 고추잡채를 대신해 먹던 중국의 전통 요리. 돼지고기와 부추를 볶아 먹는 간단한 채소볶음 요리인 것이다.

혹시라도 조리과정에서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구채초육사는 먼저 파, 마늘, 생강으로 향을 낸 기름에, 달걀물에 적신 가늘게 썬 돼지고기를 노두유와 볶아 건져내고, 죽순과 부추를 넣어 다시 함께 볶아내는 단순한 채소볶음.

물론 사천의 요리이니 수유와 화초로 매운맛을 내는 것은 필수.

기름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쪽은 직접 화초를 으깨 넣기에 조리과정에서 그것을 놓치지 않았으니 빠진 것은 없을 터.

조리과정에서 문제가 없었으니 그렇다면 재료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아까 짜장면에도 같은 것을 사용했고 노두유도 이미 사용. 

다른 채소들도 오늘 사 온 싱싱한 것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역시 라가?’

짜장같이 처음 먹어보는 요리라면 모르겠지만, 손님들 처지에서는 구채초육사란 이미 먹을 만큼 먹어본 요리이니. 

기존에 먹었던 요리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것.

아마 라의 미묘한 맛의 차이가 거부감을 주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율이나 기름을 내는 법 같은 사소한 차이로도 맛은 크게 달라지니 말이다.

더군다나 라 대신 사용한 수유는 나도 처음 사용하는 재료이니···.

나는 결론에 도달하자 세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재료로 만들어 낸 것이 어찌 보면 실수였다. 

오랜만에 온 손님에 신이 난 것도 있었고, 내 요리실력을 너무 자만한 것일 수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협들 구채초육사가 부족함이 많았던 듯합니다.”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셋.

셋은 놀란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주, 주인장, 가, 갑자기 무슨 사과인가?”

“그, 그렇네, 우리가 그, 사천 작장면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렀던 게야. 이 사람 오해 내. 오해야!”

배가 불러 먹지 못한 것이라도 항변하지만 거짓말인 것이 뻔했다.

맛있는 음식은 배가 터져도 별도로 들어갈 공간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산적 셋이 저리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아닙니다. 대협들 제 부족한 실력으로 대협들의 혀만 더럽힌 것 같아 무척 송구합니다.” 

다시금 내가 단호하게 사과하자 손을 내저으며 말하는 샤페이들.

“어허 이 사람 정말.”

내 눈빛을 피하며 갑자기 다들 다른 곳만 쳐다보는 모습이 된 셋.

나는 그들에게 포권을 취해 보이며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

“대협들께서 무림인은 아니시라지만, 칼을 차셨으니 무공을 연마는 당연히 하시겠지요?”

“그, 그렇지. 다, 당연하지 않겠나?”

“저는 무림인이 무공을 수련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으로 부엌에서 요리를 연마하고 있습니다. 손님의 입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은 명백한 제 실수가 맞습니다. 수련이 부족하여 실전에서 칼을 맞아놓고, 자신은 잘못은 모르고 남 탓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내 단호한 말에 세 남자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그중 한 명을 앞으로 툭 하고 밀어냈다. 

아마도 셋 중 대장인 모양.

그는 밀려 나오려 않으려 저항하다가, 결국은 밀려 나와 다시 그들 사이로 들어가려 했지만, 가드는 단단했다.

결국 앞으로 툭 밀려 나와 뒤를 돌아보고 주먹만 을러대는 남자. 

그리고 시선을 피해 획 돌아선 나머지 둘.

밀려 나온 남자가 목소리를 깔며 이름을 물어왔다.

“크흠···. 자네 이름이 뭔가?”

“소인, 류청운이라 합니다.”

“그래, 나 육수부 일세,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 맛있는 음식도 먹은 처지에서 그냥 갈 수는 없겠구먼. 자네 사천 출신이 아닌 게지?”

남자가 거기까지 말하자 뒤돌아 시선을 피했던 둘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뒤돌아 남자를 끌어안고 입을 막으며 말했다.

수부라는 남자가 무슨 큰 나쁜 짓이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수부 이 인간아! 주인의 체면도 생각해줘야지! 사람들 앞에서 이 무슨 짓인가.”

“그래, 이 인간은 아주 그냥 생각이 없어!”

그러자 남자들의 손을 우악스럽게 뜯어낸 육수부라는 남자가 소리쳤다.

“어허! 이 바보 같은 놈들! 네놈들은 그것이 문제야! 부엌에서 검을 수련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연마한다는데, 네놈들은 거기다 거짓말을 할 셈이냐?! 무공을 연마하는 자가 저리 진실한 마음으로 배움을 청하는데, 어찌 그 마음을 거절한다는 말이냐!”

남자는 버럭 호통을 치더니 나를 보며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런가?”

“예, 육대협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천 출신이 아닌 것도 맞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럴 줄 알았네.”

나는 남자에게 공손히 물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문제점을.

“혹시 제 구채초육사가 부족했던 이유는 혹시나 ‘라’ 때문입니까?”

“역시나 사천 사람 아닌 티가 나는군. 아니네, ‘마’ 때문이네.”

“예?!”

육수부라는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족한 게 있었다면 분명 라의 매운맛 때문일 줄 알았는데, 마의 혀를 아리게 하는 맛 때문이었다니.

‘마에 들어가는 화초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화초는 전생에도 많이 사용해 본 재료이고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화초의 맛 때문이라니. 

내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생각에 빠져들자 육수부라는 남자가 물었다.

“자네 마미(痲味)에는 랄미(辣味)가 포함되어 있어야 함을 아는가?”

‘혀가 아린 매운맛에 부드러운 매운맛이 들어있었어야 한다고?’

뭔가 이해 안 되는 조합에 당황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화초에는 마미 뿐인데 거기에 랄미가 있어야 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마라탕을 먹었을 때 목이나 혀가 따끔거리는 것은 화초에 들어있는 어떤 물질이 직접 물리적으로 혀와 목을 아프게 하고 뇌에 신호를 주기 때문이기에, 거기에 랄미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었다.

“마미 속에 랄미라면?”

내 물음에 그가 자기 험상궂은 얼굴을 찡그려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궁금해 죽겠지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자네, 무공을 연마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수련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 맞습니다. 대협.”

“그러면 어찌 모든 것을 알려달라 하는가? 무공 연마는 개인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하하하!”

육수부라는 남자는 시원하게 웃어 보이더니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리더니 말했다.

“내 식사 잘하고 가네.”

그리고 일행 둘을 끌고 밖으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때 들려오는 소리.

“에이 더러운 육가놈 알려주려면 시원하게 알려주고 갈 것이지 아무튼 성품은”

“이놈! 성질 더러운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에잉! 맛난 음식 먹고 기분만 찜찜하게.”

“이놈들아! 그래서 너희가 안 되는 것이야!”

티격태격 다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이든 나는 허겁지겁 달려 나가 셋의 등 뒤에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육대협 그리고 다른 두 분 언제 꼭 다시 한번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때는 꼭 세분의 마음에 드는 구채초육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래, 내 꼭 기대하지! 하하하!”

남자가 멀어지는 뒷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웃었다.

그러자 일생들이 남자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놈 멋진 척은! 그냥 성질이 더러워서 끝까지 알려주지도 않아놓고!”

“주인장 내 꼭 다시 들림세 사천 작장면이 또 생각날 듯싶으니 말이야.”

“이놈아! 그럼 구채초육사는 맛이 없다는 말이냐?! 이 생각 없는 놈.”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왔던 모습 그대로 티격태격하며 사라지는 셋.

셋의 너머로 해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

그날 밤. 심우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관도에 작은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한밤중 모닥불에서 울려 퍼지는 짜증스러운 목소리.

“수부 이 미친놈아! 멋진 척한다고 객잔을 나오면 어떡하자는 게냐!”

“아니, 낯 간지러운 소릴 하고 거길 어떻게 있는단 말이냐!”

“아무튼 네놈 때문에, 노숙이라니! 에잉! 가서 나뭇가지나 주워 와야지!”

-짝

-짝짝

새벽까지 세 남자의 모기 치는 소리가 관도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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