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스탠다드
내가 처음 화초와 수유를 구매했던 것은 노점.
화초나 수유 같은 향신료를 전문적으로 팔고 있는 저잣거리의 한 노점이었다.
“이게 제일 좋은 화초란 건가?”
주인에게 물으며 좌판을 살펴보았다.
좌판도 내가 처음 왔을 때와 달라진 것 없는 모습.
‘이 새끼가 사기를 친 것 같지는 않고···’
“아 당연합니다. 공자님. 제일 상급품이죠.”
파리처럼 손을 싹싹 비비며 말하는 염소수염의 노점주인.
‘근데 또 저 꼴을 보니, 내가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주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사기 치고 비는 모습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그리고 그런 주인의 모습에서 이놈은 내가 보니 장사하긴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굴한 모습을 떠나, 옷 조금 바뀐 걸로 손님을 못 알아보다니! 장사의 기본은 손님을 알아보는 것인데 말이다.
옷만 바뀌고 며칠 전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주인의 한심한 모습.
손님의 얼굴도 못 알아보는, 염소수염의 얍삽하게 생긴 주인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는 내 심기가 불편함을 눈치챘는지, 내 비단옷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을 더듬으며 정보를 뱉어냈다.
역시 비단옷은 반쯤 깡패.
“그, 크흠. 야, 약으로 쓰실 거면 아, 아무래도 약방에···.”
“약방?”
“예, 뭐 약재로 쓰, 쓰신다면, 저희 것보다, 진짜 약간, 아주 야, 약간 좋은 화초가 약방에도 있긴 하죠.”
하긴 중국은 거의 모든 것을 약으로도 쓰니, 화초가 약방에도 있을 수 있었다.
애초에 약재와 식재를 거의 혼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약재를 넣어 건강을 도모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 가까운 약방이 어딘가?”
“예, 저쪽으로 가면······.
나는 주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후 약방으로 뛰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약방.
약방 입구에서 주인을 찾았다.
“주인장? 주인장 있소?”
몇 번을 부르고 나서야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가게 안쪽에서 이마에 식은땀을 닦으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노인네.
얼굴은 낮잠이라도 잤는지 부스스한 얼굴이었는데, 자다 무슨 무서운 것이라도 보았는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예, 있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아이고 죽겠네.”
잠결에 염라대왕이라도 만난 듯한 얼굴.
‘하긴 저 나이 땐 그게 제일 무섭긴 하지.’
그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털레털레 걸어 나와서는, 내 코앞까지 와서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나서야 내가 비단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 잠 깬 얼굴로 다급히 인사를 해왔다.
“아이고, 고, 공자님 어서 오십시오. 어, 어떤 약재를 찾으십니까?”
그의 물음에 화초가 있는지를 물었다.
“혹시 화초 있나?”
“예, 물론 있습죠.”
안쪽으로 재빨리 사라진 노인이 곧 자루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수전증이라도 있는지 손을 달달 떨며 매듭을 푸는 노인의 모습.
그리고 그가 자루를 열어 안을 보여주자, 탐스럽게 붉은색으로 빛나는 화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염소수염 이 새끼!’
내가 분명 염소수염에게 산 것은, 갈색에 가까운 붉은색의 화초였는데 이것은 검붉은색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화초였던 것.
고추라고 해도 믿을만한 붉은색.
나는 분노하며 화초 한 개를 입안에 집어넣어 보았다.
혀를 강하게 쏘는 매운맛.
분노와 함께 혀가 타올랐다.
‘아니, 근데 더 쏘긴 하는데, 이걸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그러나 상등품으로 보이는 화초에서도 부드럽게 매운 랄미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비밀을 찾지 못하는 것인가 실망하고, ‘시간을 내서 더 찾아봐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 때, 뒤에서 주인을 찾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년 아줌마의 목소리.
“주인. 사천호초(四川鬍椒)좀 주시요.”
“이 사람, 앞에 공자님이 먼저 와계시지 않는가?”
“어마! 손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코앞에 있는 나를 보지 못했다며 아줌마가 사과를 해왔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세계를 막론하고 아줌마들은 원래 목적이 있으면 주변을 보지 못하는 고라니 같은 분들.
야생동물 아니, 야생아줌 보호를 위해, 그리고 그녀가 말한 사천호초라는 것에 관심이 갔기에 노인에게 먼저 그녀의 물건을 찾아주라 말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호초(鬍椒)는 후추를 말하니까 말이다.
사천에서 자생하는 후추가 있다면 가격이 쌀 수도 있고 그걸 살 수 있다면, 음식 맛을 내는데 한결 수월한 것.
본 목적은 부드럽게 매운맛인 랄미를 찾기 위해서지만, 얻어걸린 후추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먼저 해드리시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레이디퍼스 아니, 아낙들에게는 원래 사내가 양보하는 것이지.”
내가 눈썹을 찡긋거리며 말하자, 얼굴이 붉어지는 아줌마.
신사다운 행동일 뿐인데 이상한 오해를 한 것 같은 아줌마였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서 왜 남편들이 아줌마를 제일 무서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의 모든 행동이 특이한 쪽으로 해석되는 모양.
“어머, 감사합니다. 공자님.”
그녀가 부끄러운 표정을 하며 나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냥 먼 산을 바라봤다.
더 이상의 오해는 곤란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곤란함을 눈치챘는지 노인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끼어들어 아줌마에게 무엇을 사러 왔는지를 물은 것.
“그래, 그럼 뭘 드릴까?”
노인은 그새 사천호초를 달라했던 것을 잊었던지, 아줌마에게 다시 물었다.
“사천호초좀 주시요.”
그들의 대화에 절로 쫑긋거려지는 귀. ‘뭘까? 어떻게 생긴 걸까?’ 무척 기대되기 시작했다.
내 두근거리는 기대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둘.
“무슨 놈으로 드릴까?”
“붉은 호초를 주시요.”
‘아니, 후추가 붉다고?’
붉은 후추를 달라는 말에 토끼처럼 귀를 쫑긋거리며, 시선은 주인을 쫓았다.
그런데 그녀의 주문을 듣고 물건을 찾으러 가야 할 노인은 안쪽으로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나에게 오더니, 하나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나를 향해 씩 하고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보여주었던 화초를 들고 가 아낙에게 보여주었다.
“붉은호초 여기 있네, 얼마나 드릴까?”
“반 근만 주시요.”
둘의 대화에 팍 식어버리는 기분.
‘아니, 그러니까 왜 이름을 그따위로 여러 가지로 부르는 거냐고!’
사천호초라는 말이 아마도 내가 모르는 화초의 다른 이름이었던 모양이었다.
교자를 수점심(水點心), 분각(粉角). 편식(扁食), 수각(水角), 교아(餃兒)로 부르니 화초도 비슷한 모양.
‘괜히 기대했네!’
식어버린 기대감에 쯧 하고 혀를 튕기는 것과 동시에 아줌마가 뭘 까먹으셨던지, 노인에게 또 다른 것을 부탁했다.
“아, 내 정신 좀 봐, 풋호초도 주시오!”
그리고 그녀가 말한 풋호초라는 말에 식었던 기대감이 다시 두근두근 솟아났다.
‘풋호초? 호초가 화초니까 풋 호초면 익지 않은 화초가 있다고?’
늙은 주인이 안으로 사라지더니 또 다른 주머니를 하나 들고나왔다.
그리고 주머니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아낙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아낙의 어깨너머를 기웃거리며 주머니 안쪽을 확인했는데, 그 안에는 처음 보는 연녹색의 화초 알갱이들이 하나 가득 탐스럽게 담겨있었다.
흡사 윤기 나는 작은 메밀껍질 같은 모습.
‘오오!’
처음 보는 모습의 화초.
여인이 그것도 반 근을 구매하고 주인과 계산할 때, 풋화초를 한 알을 꺼내 맛을 보았다.
혀끝을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 같은 충격 그리고 강한 향.
아까 요리 집에서 맛보았던 강한 맛이 이 속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그 강한 맛 속에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그럼 이거? 아까 어떤 놈으로 줄까 물었던 것이?’
주인장이 계산한 아줌마를 배웅하고 돌아오자 나는 주인장에게 다급히 물었다.
“주인장 화초는 종류가 이 두 가지뿐이요?”
“아하, 공자님 화초 세 가지를 다 사러 오신 게로군요? 그것도 보여드릴깝쇼?”
“그, 그래. 어서, 어서 가져와 보게.”
역시! 하나 더 있었다. 화초가!
내 물음에 다시금 안쪽으로 사라진 노인이 가지고 나온 주머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진한 베이지색의 화초.
지금까지 본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매끄러운 껍질을 가진 녀석이었다.
한 알을 맛을 보려 입 쪽으로 가져오자 은은히 흘러나오는 감귤의 향.
그리고 그것을 입 안에 넣자 약간의 떫은맛과 함께 부드럽게 매운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거다!’
나는 다급히 주인장에게 물었다.
이 화초를 대체 뭐라고 부르는 것인지.
“주인장 이것들을 뭐라고 부르는 거요?”
늙은 주인이 내 물음에 역시 나이에서 나오는 힘인지, 백과사전처럼 알고 있는 지식을 줄줄 읊어대기 시작했다.
“보통은 화초나 사천호초라 부르지요. 정확한 이름은 따로 있지만. 보통 붉은 것을 화초(花椒) 또는 사천호초라 부릅니다. 쏘는 맛이 덜 강하고, 향이 조금 약합니다. 보시다시피 붉은색이 특징이지요.”
“그리고 연두색의 화초는 마초(痲椒) 대마호초라고 부르는데 맛이 강하고 향도 강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등초(藤椒)라고 부르는데 원래 넝쿨에서 자라기에 등초라고 부릅니다. 넝쿨호초라고 부르지요. 감귤 향이 나고 약간 떫은맛과 부드러운 매운맛이 특징입니다.”
화초(花椒), 등초(藤椒), 마초(痲椒)!
사천의 매운맛은 이, 세 화초의 조화가 기본이었던 것이었다.
전생에는 고추가 있으니 등초와, 마초를 잘 사용하지 않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아마 화초의 아종인 모양.
그러나 기쁨도 잠시.
화초에, 호초에, 사천호초, 사천화초, 동초, 마초, 넝쿨호초, 대마호초.
지랄. 아니, 이름이 풍년이었다.
화초를 달라 청하면 셋 다 보여주고, 어느 놈으로 드리느냐고 묻는 센스 정도를 기대한 것은 나의 큰 욕심일까?
‘좋겠다. 너희는 이름도 많고 종류도 많아서! 젠장! 이런 사소한 이유 때문에 아침부터 매운 구채초육사를 몇 번이나 먹어야 했다니!’
분노 그리고 구채초육사에 들어있던 화초와 수유의 매운맛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차이나 아니, 송나라 스탠다드가 정말 절실한 상황이었다.
***
노인에게 화초 3가지를 좋은 가격으로 구매했다.
이제는 욕심을 부릴 나이가 아니라 그런지, 속이는 것 없이 가장 좋은 물건으로만 챙겨주는 노인.
그런 노인의 모습을 결코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좋은 지식도 많이 얻었고, 끝까지 잘 챙겨주는 모습에 감동한 것.
아까 아줌마의 부담스러운 시선에서 건져주기도 했고···.
무림 세계에 사는 사람은 은원 관계가 확실해야 하는 법이었다.
원한을 잊어서도 안 되지만, 은혜를 잊어서도 안 되는 것.
더군다나 낮잠을 자다 염라대왕이라도 보고 놀란 모습이었던 노인의 상태를 생각하니, 더욱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노인장 혹시 지필묵연(紙筆墨硯)을 잠시 빌릴 수 있겠소?”
“물론이지요.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노인이 잠시 후 지필묵연을 가지고 나오고. 나는 붓을 들어 그를 위해 부적을 휘갈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적이 완성되자 노인에게 부적을 전해주며 말했다.
“내 노인장이 낮잠을 자다 식은땀을 흘렸던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어야지. 부적을 하나 썼으니, 어디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시오.”
“저, 정말입니까?”
내 말에 기절할 듯 놀라는 노인. 나는 겸양을 떨며 말했다.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오.”
그러나 내가 부적을 써줬다니 한껏 기쁜 표정이었다가, 내가 쓴 부적을 받아들고는 뭔가 아리송한 표정이 된 노인.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공자님 그런데 이것은 열십(十)자가 아니온 지?”
노인은 열십자가 어찌 부적이 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어허 노인장 그것은 열십자가 아니라 십자(十字)라 부르는 것으로, 부적이 맞소. 어디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시면 험한 꿈은 꾸지 않으실 것이요.”
그쪽 분들은 나와바리 관리가 철저하니, 이제 저승사자나 염라대왕 대신 천사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