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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의 증표 (19/344)

식구의 증표

아침부터 매운 음식만 먹어 쓰리디 쓴 속을 부여잡고 털레털레 객잔으로 향했다. 

양손에는 3가지 화초와 등에 멘 커다란 보따리.

“아이고 뒤지겠네”

죽는소리가 절로 나왔다.

화초 한 근이라고 해봐야 500그램 정도, 3종류 다해도 1.5킬로그램밖에 안 되는데 무슨 죽는시늉이냐 하겠지만, 내가 죽는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은, 손에 든 화초 때문이 아니라 등에 짊어진 만두(증빙 蒸餅) 때문이다.

아침부터 요리집과 노점을 돌며 받은 만두가 자루 가득 들어있는 것이다.

첫 객잔을 나설 때 굳이 남은 만두를 싸주겠다는 점소이에게 받은 만두를 시작으로, 가는 곳마다 남은 만두를 싸주니 마지막에서는 엄청난 양이 되어버린 것.

중간에 너무 많아 노점 한군데 잠깐 맡겨두었는데, 버리고 갈 수는 없어 챙겼더니 너무나도 힘이 드는 것이었다.

만두 양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이곳 사람들은 보통 아침, 저녁 두 끼를 먹는데, 현대 사람들보다 몸을 훨씬 많이 쓰니, 열량 소모가 무척이나 심하고 그렇기에 대식하는 편인 것이다.

수호지 같은데 나오는 호걸들이 돼지고기 20근을 먹는다는 말을 보면, ‘하! 아무튼 짜장들 허풍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이 허풍이나 구라가 아니었던 것.

실제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기인열전이 따로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식당에서 사람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의 만두가 한 끼에 제공되는 수량은 8-10개, 더군다나 든든하게 하려고 부풀려 가볍게 한 것이 아니라 단단하고 중량감 있게 만든 것.

그런 걸 50개 정도 짊어졌으니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일.

이마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덜 움직이고, 덜 처먹으면 될 것을···.’

세상은 슬로우 라이프인데, 왜 그렇게들 빨빨거리고 움직이며 많이 처먹는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나도 객잔에서 짜장면을 낼 때 육대협 같은 분의 머리가 쏙 들어가, 그릇 바닥을 핥을만한 큰 그릇으로 내기에 힘든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먹는 양이 많으니 기본 조리 양이 많아지고, 전생이었으면 혼자 삼사인 분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웍을 돌리는 손목이 남아나질 않는 것. 

그렇게 투덜거리며 흐르는 땀과 함께 만두를 지고, 낑낑거려 객잔 앞에 도착하니. 

웬 사람들 한 무리가 객잔 앞에 모여있었다. 

한참을 기다렸는지 여기저기 흩어져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

갑옷을 입고 칼을 차거나 창을 든 모습을 보니 관병이었다.

‘뭐야! 설마?’

-꿀꺽

관병들의 모습에 침이 꿀꺽 삼켜졌다.

군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모습이었고, 내 객잔 앞에서 저러는 걸 보니 아마 저들이 애타게 찾는 사람은 나일 확률이 높았다.

손에 땀이 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저렇게 많이 객잔으로 찾아온다?

저것은 분명히.

‘단 체 회 식!’

시간을 보니 곧 근무가 끝날 시간.

뭐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해서 먼저들 퇴근하신듯한데, 그건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들이 우리 객잔에 회식을 나왔다는 것.

처음 맞는 단체 손님에 떨려오는 손끝.

‘더군다나 그 단체 손님이 군인이네?’

세상 제일 쉬운 것이 군인 장사라고 했던가? 

뭘 내줘도 맛있다고 먹는 것이 군인이고. 

또 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얼굴을 터놓으면 좋을 것은 분명했다.

제갈 꽌시 이후로 나쁘지 않게 풀리는 상황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등에 멘 만두가 단숨에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양손에 든 화초 자루가 풍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쪼르르 달려가며 신이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이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방향으로 포권지례를 하고, 손님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문 앞으로 향했다.

“기다리기 힘드셨을 텐데 그냥 안에서 기다리시지.”

그런데 문 앞에 다가가자 어느새 멀쩡해져 있는 문. 

목수가 내가 없는 사이에 아마도 다녀간 모양이었다.

“아이고, 이래서 못 들어가셨구나···.”

‘오라고 할 때는 바쁘다더니!’

하여튼 여긴 도움 되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금일 휴업이라 써 붙인 것도 어느새 사라진 모습이 되어있었다. 

아마 목수가 문을 고치다 멀쩡한 문에 붙어있던 금일 휴업을 떼버린 듯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금일 휴업이 떨어져서 단체 손님들이 여태 기다렸으니, 결과적으로 잘 풀린 상황.

목수는 아무래도 도움 되는 놈이었던 모양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오늘 회식 매상이 괜찮으면, 목수에게 등에 진 만두라도 몇 개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음식은 나눠 먹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문을 고쳤으면 닫아두지는 않았을 터.

혹시 몰라 문을 밀어보니 역시나 삐거덕거리며 열리는 문, 관병들은 아마 문만 닫혀있어 내가 잠시 어디 외출한 줄 알고 기다렸던 듯했다.

다행히 문은 열려있기에 문은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관병들에게 소리쳤다.

“어서옵셔! 자자 들어오시죠.”

신이 난 목소리로 외치자 관병 중에 제일 으리으리한 갑옷을 입은, 지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자네가 여기 주인 류청운인가?”

“예, 맞습니다. 제가 여기 주인 류청운입죠.”

‘어허, 누가 벌써 그리 입소문을 냈기에 내 이름까지 안단 말인가? 이름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제갈 꽌시나 육대협? ‘크···. 역시, 역시!’

내가 이름을 가르쳐준 이는 제갈 꽌시와 육대협 뿐이니, 마음속으로 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때.

관병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의 입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이놈을 포박하라!”

“예!?”

“국법을 어긴 포악한 놈이다!”

“아니, 잠시만요! 아니, 잠시만요. 뭔가 오해가?”

병사들이 나를 붙잡자 시장에서부터 힘들게 메고 온 만두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사방으로 굴렀다. 

사방으로 굴러가는 동그란 만두.

‘저럴 줄 알았으면, 그냥 버리고 오는 건데’

허무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한가지였다.

‘아니, 여긴 미란다원칙도 없나?’

***

병사들에게 포박당해 목덜미를 잡혀 끌려간 곳은 심우현 관청, 현령(峴令) 앞이었다. 

꽁꽁 묶여 꿇어앉혀져 현령을 바라보자, 투실투실한 돼지 같은 현령이 턱, 아니, 삼겹살을 내 쪽으로 출렁했다.

아마도 내가 누군지를 턱짓으로 묻는 듯한 모습. 

그러자 들려오는 형무(刑務)를 보는 관리인 시안의 목소리.

“고발이 들어와 잡아 온 놈입니다. 상세원(商稅院)에 신고도 없이 장사하고, 주행(酒行)과 식반행(食飯行)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밀주라도 팔았나?”

“아닙니다. 그것은···. 객잔을 인수했는데, 인수할 때 남아있던 술을 판 것이라고 합니다.”

눈을 반쯤 내리감고 나를 바라보던 현령이 기름기 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상세원에 신고도 하지 않고, 주행과 식반행에도 가입하지 않았지?”

뭔가 처음 들어보는 소리.

객잔 하는데도 어떤 행정 절차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여긴 다른 데는 완전히 허술한데, 행정 절차는 전생 뺨치는 수준인 모양.

다른 건 모르겠는데 상세원이라는 걸 보니 세금과 관련된 것이 분명했고, 어느 시대나 세금이라는 것은 철저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세금 포탈?’

장사가 잘되어 성실납세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갑자기 범죄자가 되어버린 상황. 

형량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살아야 했기에 현령의 물음에 죽는시늉하며 눈물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르신. 제가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시고, 유산으로 받은 재산으로 장사나 하며 살아볼까 하고 객잔을 사들인 것이라,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알려주시면 성실히 임할 터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손님도 딱 한 번 밖에 못 받았습니다!”

그래, 솔직히 좀 억울했다. 분명 잘 알아보지 못해서 피치 못하게 탈세를 한 것은 사실이나.

손님을 몇 명이나 받았다고 그러는가? 

꼴랑 3명 받았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최대한 비굴한 표정으로 현령에게 읍소했다. 

그러자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돼지 현령의 삼겹살이 꿈틀하더니, 시안에게 버럭 화를 냈다.

“벌금이나 물리면 될 것이지, 퇴청할 시간에 이 무슨 일인가! 밀주를 만들어 팔았으면, 목을 칠일이지만, 별일 아니지 않은가?”

현령의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술도 만들어 팔아보려 했거늘···. 잘못했으면 목이 잘릴 뻔.

그나마 지금 잡힌 게 다행인 상황. 벌금만 조금 내면 된다니 말이다.

그렇게 대충 벌금물고 끝나나 싶었는데, 현령의 말에 오히려 나에게 호통을 치는 시안.

“네놈 현령 앞에서 거짓을 고하면 목이 잘릴 줄 알아라! 네놈을 고발 한 놈은 그리 말하지 않았거늘! 들라 해라!”

‘나를 고발했다고? 대체 어떤 새끼가?’

시안의 호통이 들려오고, 곧 씻지 않은 꾀죄죄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 얼굴이나 볼까 싶어 고개를 돌리고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자, 눈에 들어온 놈은 익히 아는 놈이었다.

‘어 저 새낀?’

분명 이전보다, 더 더러워지긴 했지만, 그 새끼였다.

나에게 객잔을 판 도박중독자, 전 객잔 주인.

놈은 들어서자마자 꿇어 엎드리더니 철철 울기 시작했다.

나는 전생 요리사였지만, 저 새끼는 전생 배우였던 듯했다.

눈물을 철철 뽑아내며 헛소리를 시작하는 놈.

“제가 가게를 넘길 때 분명히 상세원(商稅院)에 신고해 세금도 내야하고, 주행(酒行)에 가입해야 술을 팔 수 있으니 꼭 그리하라 일렀습니다. 더군다나 음식 장사를 할 것이면, 식반행(食飯行) 가입은 필수이니 꼭 챙기라 일렀는데, 저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장사를 몇 달이나 했습니다요. 제가 가게를 잃은 지가 몇 달이온데, 한번 밖에 손님을 못 받았다니 거짓이 확실 합니다요!”

‘와, 저 새끼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네.’

뻔뻔하게 거짓말을 줄줄 토해내는 전주인.

나는 빼액 소리를 지르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닙니다! 저놈이 거짓말을 하는 게 확실합니다! 제가 객잔을 구매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고, 식반행이니, 주행이니, 상세원은 처음 듣는 일입니다. 분명 저놈이 도박하다 돈이 떨어지니, 저를 어떻게 하고 객잔을 되찾아 팔아먹으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내 말에 움찔하는 도박꾼 전주인.

아마 내 말이 맞는 모양.

객잔을 도박에 미쳐 팔아먹더니, 돈이 또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도박꾼 전주인과 미묘한 눈길을 주고받는 시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새끼들 설마?’

그리고 시안이 현령에게 다가가 뭔가 귓가에 속닥거리는가 싶더니 현령이 내게 물었다.

“저놈이 너에게 식반, 주행, 상세원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예?!”

‘아니. 미친놈아 안 한 걸 어떻게 증명해?!’

내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눈빛으로 현령을 바라보자, 현령이 패를 탁자에 탕하고 내리치며 일갈했다.

-탕!

“거짓이니 증명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현령을 속인 죄가 괘씸 하구나! 여봐라 저놈의 이마에 문신(文身)을 새기고 일 년간 투옥하라!”

‘아니, 이 새끼들이 이걸 이렇게 몰아간다고?’

“아이고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나를 대(大)자로 생긴 형틀에 묶으려 했다.

이마에 잘못하면 죄인 낙인이 찍힐 상황.

나는 억울함을 부르짖으며 극렬히 저항했는데, 병사들이 달려들어 내 배를 후려치고, 한 명이 내 옷깃을 잡아채자, 품속에서 무엇인가가 굴러떨어지며 청명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찰그랑 팅팅

청명하게 울리는 소리에 다들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나조차 복부를 부여잡고 그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뭐지?’

청명한 소리를 낸 것은 다름 아닌 내 품에서 날아간 옥 패.

현령 앞에 옥패가 제갈이라는 두 글자를 드러내며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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