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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 (20/344)

성수

“히이익!”

돼지가 ‘뀌이이’ 울부짖는 소리가 관청 안에 울려 퍼졌다. 

옥패를 보자마자 벼락 맞은 듯 몸을 떠는 현령.

멱이 따질 것 같은 건 나인데, 왜 제가 소리를 치는지.

현령은 괴성을 지른 후, 곧바로 육중한 몸에도 불구하고 경공이라도 익힌 듯 지방을 출렁거리며, 바람처럼 달려와 옥패를 주워 들었다.

현령이 움직일 때마다 분명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인데, 머릿속에 재생되는 출렁거리는 소리.

옥패를 주워 든 현령이 곧장 내 앞으로 뛰어와 물었다.

“이, 이것이 어찌. 네놈! 아니, 네게. 아, 자네에게. 그러니 공자께. 이, 있는 것이냐? 아니, 것인가?”

꽥하고 높은 음계에서 시작했다. 낮은 음계로 향하는 현령의 목소리. 

전생이라면 전설적 테너가 목이라도 푸는 건가? 라고 생각할듯한 옥타브 변화.

그의 물음에 나는 아픈 배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제갈 가주께서 그··· 식구의 증표라고 주신 것입니다. 크흑···.”

마빡에 문신이 새겨질 상황, 지금 마지막으로 믿을 것은 제갈 꽌시 밖에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꽌시의 엉덩이 뒤로 숨어야 했다.

그렇게 내 대답이 끝나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 떨어지는 소리.

-퐁 퐁퐁 퐁퐁퐁

맑고 경쾌한 소리. 그러나 왠지 역겨운 소리.

눈물을 글썽거리며 관청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비라도 새는가 싶어서.

‘나의 슬픈 현실에 하늘도 울어주는 것인가?’

그러나 천장은 멀쩡한 상태.

물이 어디서 떨어지나 싶어 소리의 근원을 찾아 눈을 돌렸는데, 떨어지는 것은 물이 아니었다.

떨어지는 것은 육수.

현령이 무슨 육수 뽑아내는 간헐천이라도 되는 듯, 몸에서 육수를 줄줄 뽑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육수를 뽑아내던 현령이 갑자기 숨을 한껏 들여 마시더니, 이어서 한계까지 끌어올린 숨을 토해내며, 돌고래 초음파 같은 소리를 빼액 토해냈다. 

“몽둥이를 가져와라!”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몽둥이를 찾는 현령의 목소리에 간절하게 소리를 질렀지만, 붉게 타오르는 얼굴로 손만 바들바들 떠는 현령.

현령이 좋아서 저러는지, 싫어서 저러는지 대체 알 수가 없었다. 

‘목소리는 친절해진 것 같은데, 삼겹살에 가려진 표정이 화가 난 지 어떤지 대체 알 수가 있어야지.’

현령은 지방으로 인한 후천적 실눈.

보통 실눈 들이, 웃는 이유는 쉽게 알아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벌벌 떨며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덜 아플까? 고민하고 있을 때.

병사들이 맞으면 뚝배기가 바로 터져나갈 것같은 몽둥이를 가져와 현령에게 대령했다.

몽둥이를 잡자마자 달려드는 현령.

-꿀꺽

“아이고 나 죽네!”

비현실적인 몽둥이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고, 죽는다 소리를 지르며 온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최대한 보호했다.

그때 들려오는 끈적하게 달라붙는 소리.

-쩌억

찰지게 짝 달라붙은 소리가 나더니, 내 옆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꿰엑! 

그리고 연달아 현령과 도박쟁이 전주인이 꿰엑! 끼요오옷! 꾸에엑! 끼야아앗!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인간이 하는 대화가 아닌 듯한 비명을 주고받으며. 몸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 하나를 연육(軟肉) 하는 과정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제법 경험이 있는지 입부터 두드려 패다 머리와 전신으로 이어지는 숙련된 연육 과정.

현령이 도박쟁이의 전신을 자근자근 두드렸다.

현령이 먼저 도박쟁이의 입부터 두드려 팼기에, 도박쟁이는 아무 항변도 못 하고 신나게 두드려맞다가 결국 부드러운 연육 상태가 되어 관청 바닥에 널브러졌다.

사람을 하나 연육으로 만든 현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성에 차지 않는지, 이미 연육이 된 놈에게 족발로 사커킥을 한참을 날리고서야, 이마에 흘러내리는 육수를 훑어 내리고는 헉헉거리며 말했다.

“아이고, 사람을 모함하는 더러운 놈 덕분에, 허억···. 내가 노붕우의 가족을 해할뻔한 나쁜 놈이 될뻔했지, 뭐, 뭔가? 후욱, 후욱···. 그래, 가주께서는 안녕하시고? 아니지 내 소개를 먼저 해야지, 후우 후우··· 나 제갈 가주의 동생이신 제갈각님의 노붕우(老朋友) 포대륜이네. 아이고 죽겠네. 친우의 가족을 음해하는 놈은 원래 직접 해결해야지. 그것이 붕우 아니겠나? 헤엑 헤엑···”

현령과 나 사이에 조금(?) 오해로 문제가 생길뻔했지만, 꽌시 끼리니 그냥 퉁 치는 게 예의.

그가 내 꽌시의 동생과 노붕우라 자신을 소개했을 때. 

내 앞에 있는 것은 더 이상 살만 뒤룩뒤룩 찐 돼지 따위가 아니었다.

저분의 살은 살이 아니라, 흘러넘치는 인품과 인격을 작은 육체에 담을 길이 없어 잠시 부피를 늘린 것뿐.

그리고 돼지 아니지, 인품이 넘치시는 현령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것은, 더러운 육수 따위가 아니었다.

저것은 성수.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성수와 그의 찬란히도 눈부신 미소가 내 눈으로 들어왔다.

“끄어엉··· 혀, 현령님!”

나는 감격해 그의 품으로 안겼다. 

그러자 나를 새끼병아리처럼 품어주는 현령의 넓은 품.

“어허! 이 사람, 현령이라니! 친우의 가족이면 내 가족인 것을! 형님이라고 부르게.”

흠뻑 젖은 몸으로 나를 끌어안고 다독이는 현령.

육수에 몸이 젖어 들고, 씨근거리는 숨결이 나에게 뿜어졌지만, 그조차 달콤하게 느껴지는 상황.

나는 인맥의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이것이 인맥! 이것이 꽌시!’

그리고 그렇게 감격과 감동, 현령의 땀에 푹 젖어 들었다.

자신을 제갈 가주 동생의 노붕우라 소개한 현령.

노붕우란 꽌시의 단계 중 하나이다.

보통 꽌시 관계는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신붕우(新朋友, 신펑요우).

호붕우(好朋友, 하오펑요우).

노붕우(老朋友, 라오펑요우).

형제(兄弟, 슝띠).

간형제(干兄弟, 쳰시옹디).

다섯 가지로 부른다.

신붕우는 그냥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오다가다 만나도 친구 아닌가?’ 정도의 느낌으로 사용하는 단계, 그냥 남이라고 보는 게 맞다.

무림에서 사용한다면 ‘무림 동도는 모두 친구 아닌가?’ 요런 멘트에 사용할 수 있는 단어.

그리고 호붕우는 좋은 친구. 굿프랜드? 서로 주고받기 시작하는 관계를 칭한다.

노붕우는 친구 관계의 끝. 자기 물건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이해하고 주변에도 소개하는 단계이다.

아마 제갈 가주의 동생과 현령이 노붕우 관계라고 했으니, 이런 아주 친한 절친 사이라는 뜻. 

그리고 그다음 단계부터는 친구가 아니라 가족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형제는 의형제를 말하고 간형제는 가족이 된 사이.

그냥 한 가족이라고 보면 된다. 집안일 대소사도 함께 해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서서 해결해주고, 무협지나 무협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친구의 가족이 다 죽고 아이들만 남았는데 맡아 길러주는 것은, 다 이 단계라고 보면 된다. 

꽌시의 끝, 꽌시의 절정, 꽌시의 끝판왕이다.

그러니 현령 처지에서는 자기 절친의 가족을 자기 손으로 해할 뻔했으니 식겁했던 것. 

왜냐하면 꽌시 관계라는 게 보통 사회에 우애나 관계를 자랑하기에 친구를 배신하면 사회적으로 큰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데. 노붕우의 가족을 해했다?

그냥 바로 사회 매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아까 식은 육수 아니, 성수를 그렇게 흘렸겠지.’

한참 나를 다독거리던 현령은 형무(刑務)를 보는 관리인 시안에게도 꽥 소리를 질렀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내 노붕우의 가족을 잡아들이다니. 자네 미쳤나? 도박쟁이의 말 따위를 믿다니. 자네에게 실망했네! 그리고 너희도 국법으로 사사로운 고문을 금하고 있거늘, 어찌 내 노붕우의 가족을 때렸단 말이냐! 어서 사과드리지 못할까!”

현령의 말에 썩은 눈이 된 셋이 조심스레 사과를 해왔다. 

더군다나 병사들은 오늘 제일 심한 고문을 한 자가, 자신을 나무라니 속이 쓰릴 터.

그러나 까라면 까는 것이 군인.

그리고 더러우면 꽌시를 얻어야 하는 것이 중원.

“죄송합니다. 소협. 저놈이 그런 놈인 줄 몰랐습니다요.”

“죄송합니다. 소협 저희가 잠시 흥분해서···.”

“괘, 괜찮습니다. 저놈이 아주, 나쁜 놈인 게지요.”

잘 알지도 못하고 잡아들여 나를 왜 개고생시키고 때렸냐 따져야 했지만, 현령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도 내가 지랄하면 사과를 주선한 현령의 체면을 손상하는 것이 되니 그럴 수가 없는 것.

‘그놈의 체면 진짜!’

***

포대륜은 자기 앞에 떨어진 제갈가의 패를 보았을 때 심장이 멎어 버리는 줄 알았다. 

그, 끈을 대기 힘들다는 제갈가의 패. 

자기를 한미한 가문 출신 고아라고 소개한 놈의 품에서 떨어질 만한 물건이 아니었던 것.

그는 날 듯이 달려가 패를 주워들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까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며 들렸던 맑은소리로 봐서는 분명히 맑은 소리를 낸다는 명옥(鳴玉) 그리고 제갈 이라는 두 글자. 

반대편에 새겨진 청이라는 글자로 보았을 때, 제갈가에 끈을 대려고 했을 때 알아봤던 가주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의 패가 확실했다.

“이, 이것이 어찌. 네놈! 아니, 네게. 아, 자네에게. 그러니 공자께. 이, 있는 것이냐? 아니, 것인가?”

포대륜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객잔 주인 따위가 가질 만한 물건이 아니었기에 어떤 연유로 이것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러자 들려오는 믿을 수 없는 소리.

“제갈 가주께서 그··· 식구의 증표라고 주신 것입니다. 크흑···.”

‘가주가 직접 식구라고?’

가주가 직접 식구라며 딸의 패를 내어줬다는 것은 한가지 이유뿐이었다.

정혼자!

제갈가는 신분이나 무공보다 특이한 재주를 선호하는 가문. 저놈 아니, 저분이 고아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어도, 제갈가의 사위가 될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고아인 정혼자라면 당연히 데릴사위, 곧 제갈가의 재산이었다.

‘맙소사!’

포대륜의 머리가 쭈뼛하게 솟아올랐다.

양 한 마리를 혼자 다 먹고 그것을 다 먹었다는 사실에 놀랐을 때보다 더.

형무(刑務)를 보는 관리인 시안이 가끔 죄도 없는 것들을 잡아 와 푼돈을 만지는 것은 알고 있었고, 자기에게도 쏠쏠하게 상납하기에 그냥 대충 판결이나 내려 몇 달 가둬뒀다가 풀어주면 될 일인 줄 알았는데.

‘제갈가 사위의 이마에···?’

그제야 자기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조정의 실권자 중 하나인 제갈가 가주의 동생인 제갈각 또는 그의 가문과 끈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척을 진다면 당장 자리보전하기도 힘들일.

‘아니,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목이···’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상납금이 많다고 속닥거리던 시안의 목소리가 독을 품고 있었던 것.

분명 시안과 짰을 것으로 보이는 도박쟁이의 입을 일단 막아야 했다. 

“몽둥이를 가져와라!”

제갈가의 정혼자가 자신을 두드리는지 기겁하고, 도박쟁이 놈이 비릿한 미소를 지을 때.

포대륜은 그대로 달려가 도박쟁이의 입을 제일 먼저 후려쳤다.

-쩌억

도박쟁이의 이가 몽땅 사라지고, 놈이 꿰엑 하고 소리를 지르며 뒹굴었다.

“끼요오옷!”

포대륜은 소싯적 배웠던 무공을 떠올리며, 있지도 않은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기합 소리를 내질렀다. 

마음속으로 도박쟁이의 숨이 어서 끊어지길 빌며.

‘그만 꽥꽥거리고 어서 뒈져버리거라!’

숨이 차올랐지만, 결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이놈이 죽어야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런 하찮은 놈 때문에 실각(失脚)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끼야아앗!”

오랜만에 움직인 몸에서 땀이 비 오듯 떨어져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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