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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 (21/344)

기러기 아빠

다진 고깃덩이가 관청 중앙에서 입구까지 긴 레드카펫을 만들며 관청 밖으로 끌려 나가고, 자리를 이동해 현령의 집무실 같은 곳에 누워서 현령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버릇없이 형님 앞에 누워있는 것은 의원이 진맥을 하고 있기 때문.

배빵 한 대 정도야 괜찮다니, 극구 의원까지 불러 닦달하는 형님이셨다.

“다른 이상은 없는가?”

“예, 대인 잠시 놀라신 것뿐이니, 푹 쉬면 되실 겁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꼼꼼히 살피거라!”

“예, 대, 대인.”

인격 넘치는 형님의 호통에 손을 벌벌 떨며 다시금 진맥하는 의원. 

꽌시와 권력의 맛은 아주 달콤했다.

‘이리 좋은 걸 전생에는 저희끼리만 해 처먹었다니···.’

하지만 이대로 마냥 진맥만 받을 수는 없는 일.

“괜찮습니다. 형님. 의원을 그만 무르시지요.”

“어허, 아니 될 말이네, 자네가 큰일이 나면, 내 모가지. 아니, 내 노붕우를 어찌 본단 말인가!” 

형님은 나에게 정색하고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자기 허벅지를 철썩하고 내려쳤다. 

마치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그래!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집으로 가세! 원래 크게 놀랐을 때는 열흘은 살펴야 한다는 말이 있네. 자네 혼자 생활한다 했으니, 내 걱정이 돼 이대로는 안 되겠네. 여봐라! 마차를 준비시키거라!”

“아니, 그래도 그렇게까지 폐를···.”

“어허! 폐라니! 자네, 내 체면을 상하게 할 셈인가?!”

초대를 청하는데 자꾸만 거절하는 것도 체면을 상하게 하는 일이니, 갈 수밖에 없었다. 

‘하···. 참···. 체면 진짜.’

관청 앞에서 형님의 개인 자가용인 이륜마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

마차에 타 관청을 돌아 관청 뒤에 있는 큰 집이 형님의 집이었다.

타자마자 내리는 상황.

나는 형님의 풍채가 비단 형님의 훌륭한 인품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지방은 극히 일부분이고, 인품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내 꽌시니까. 아무렴.

***

형님의 집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식사.

식사하면서 오늘 내가 왜 끌려왔는지, 도박쟁이에게 어느 부분에서 빌미를 제공했는지, 형님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우, 상세원이나 주행, 식반행에는 왜 입회(入會)하지 않은 것인가?”

자기 앞의 게를 손가락으로 불만스럽게 뜯으며 형님께서 물으셨다. 

송나라에서는 현대 뺨치게 뭔가 식당 하나 여는데 행정 절차가 복잡한 모양.

나는 일단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형님, 진짜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정말 뭐 하는 곳입니까?”

“이 친구 이거 진짜 모르는 모양이구만. 걱정하지 말게 내, 다 알아서 해줄 테니.”

풍채만큼이나 든든한 형님이 가슴을 두드리며 자기만 믿으라며 미소를 지었다.

넓은 가슴만큼이나 믿음직한 모습.

식사를 이어가며 형님은 아주 혼신의 힘을 다해 내가 알고 있어야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일러주기 시작했다.

“상세원은 무엇인지 알겠지?”

“그, 세금을 내는 곳이 아닙니까?”

딱 봐도 돈 뜯어 가게 생긴 이름. 

세금 관련된 것은 본능이 반응하는지, 듣자마자 반응이 왔다.

“그래, 식당을 열 때는 상세원에 반드시 먼저 신고해야 하네. 세금과 관련된 것이라 만일 신고도 안 하고 장사했다가는, 아주 큰 일이나네. 자네야 몰랐으니, 내 알아서 다 해결함세.”

“가 감사합니다. 형님.”

“어허! 내가 누군가? 가족 아닌가?”

가족을 강조하는 형님.

형님의 인품에 감격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준어도 없는 곳이 세금 뜯는 데만 혈안이 돼서 백성들을 고생시킨다는 사실에 화도 났다.

‘표준이나 만들 것이지 세금 뜯는 데만 혈안이 돼서는···. 세금은 저리 깔끔하게 챙기면서 표준은 왜 안 만든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어지는 형님의 설명.

“그리고 식반행은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꼭 입회해야 하는 회(會)라고 보면 되네, 원래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지금은 국가에서도 꼭 입회를 명하지. 법이 바뀌거나 하면 식반행을 통해서 전달하는 게 빠르기 때문이지.”

처음에는 민간 협동조합이었는데, 장사치들은 하나하나 관리하는 것보다 관리가 편하니, 국가에서도 가입을 장려한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은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

“뭐 음식을 새로 만들었거나. 요즘 잘 팔리는 음식 같은 걸 만드는 법도 알려주니, 자네에게 도움이 많이 될걸세.”

‘레시피도 알려준다고?’

레시피를 알려준다는 말에 식반행은 반드시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전생에 맛난 음식을 많이 알고있어도 그것은 현대인 기준.

사람의 입맛은 기본적으로 느끼는 것은 같을지라도 시대에 따라 좋아하는 풍미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지 알아두면, 두 개를 비교해서 전생의 레시피를 수정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좋은 제도가 있었다니!’

아까 연육이 되어 끌려 나간 도박쟁이 새끼는 정말 죽어도 싼 놈이었다. 

이런 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모함이나 했다니.

나는 형님이 알려주신 정보에 존경의 눈빛으로 형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형님의 넉넉한 풍채 안에서 흘러나오는 귀중한 정보들.

다른 것은, 또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형님 주행은 무엇입니까?”

“아, 그건 술장사하는 이들의 회지. 다만 식반행을 들지 않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주행은 다르네. 국가에서 밀주를 엄히 금하고 있는 것을 아는가?”

“몰랐습니다. 형님.”

‘우리 청운이는 귀하게 자라서 아는 게 없어요.’

진짜 기억 들기 전에 나는 뭐 하는 새끼였던 것인지···.

“이 친구 정말 큰일 날 뻔했구만, 술은 반드시 국가에서 정한 양조장에서만 만들 수 있고, 살 수 있네. 술의 구매를 주행이 연결해주니, 주행은 무조건 입회해야 하네. 잘못하면 목이 달아나니 말이야. 길가에 노점도 술이나 음식을 팔려면 주행과 식반행은 필수네, 알겠나? 자네 객잔은 술과 음식을 파니 당연히 둘 다 입회해야겠지.”

술을 전매(專賣)한다는 것은, 국가에서 술을 철저하게 관리해 나라의 주된 수입으로 삼는다는 것.

송, 생각보다 돈에서만큼은 진심인 나라였다.

‘표준이나 챙길 것이지.’

그렇게 형님의 설명을 듣고 식반행과 주행에 어찌 가입해야 하나 물어보려 할 때 형님이 하인들을 향해 벼락같은 음성을 내질렀다.

“가서 주행과 식반행의 수장(首長)을 이곳으로 오라 해라!” 

그리고 나에게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이런 일은 생각날 때 해 두어야 하는 것이라네.” 

풍채와 다르게 마음으로 시전하는 경공(輕功)만큼은 절대 고수신 우리 형님.

일 처리 속도가 입선이라도 하셨는지 축지성촌(縮地成寸) 수준이셨다. 

시원시원 화끈화끈한 일 처리.

그리고 협동조합 사장들을 집으로 불러버리는 저 큰 통.

저 커다란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통이란, 나 같은 일반인은 감히 상상하지 못할 클라스였다.

“아니, 제가 가도 될 것인데···.”

“어허! 이 사람 자네는 지금 환자야! 좋은 음식을 먹고 열흘간 푹 쉬다 가시게 알겠나?! 아랫것들이야 오라 가라 하면 될 일을.”

“아니, 그것도 그렇고 어떻게 열흘씩이나?”

“어허, 내 체면이······”

나는 형님이 다시 체면 타령을 시작하려 하는 것 같아 재빨리 대답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아우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또다시 들려오는 체면 타령에 없던 체면 알레르기가 생길 지경.

제갈청 낭자가 겪었던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올 것 같았기 얼른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

팔에 돋아난 소름을 쓸어내리며, 그냥 뭐 이렇게 된 거 휴가왔다고 생각하고 푹 쉬다 가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형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한참 식사를 나누고, 입가심으로 다과를 할 때쯤.

밖에서 시비들이 식반행과 주행 수장들의 도착을 알려왔다.

“대인, 식반행과 주행의 수장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 해라.”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두 남자.

자기들이 식반행과 주행의 수장이라는 것을 자랑하듯, 가슴 한편을 수놓은 주(酒)와 식(食)자.

누가 누군지 명찰이 있으니 헷갈릴 염려는 없었다.

고급스러운 옷의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모습의 두 남자는, 방으로 들어와 급하게 형님에게 인사를 박았다.

“대, 대인 어찌 이런 밤에? 아직 날도 아니온데···”

“어찌 다급히 찾으셨습니까? 대인. 아직 상···”

“어허! 내 동생 앞에서, 그, 무슨 소리요! 내 동생이 오해하겠소!”

“도, 동생분이?”

둘에 말에 기겁한 얼굴로 손을 내저으며, 오해하지 말란 투로 말하는 형님.

그러나 나는 둘의 말에서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씩 웃으며 형님을 바라보자 땀을 뻘뻘 흘리는 형님.

형님이 난처해하시지만, 나는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아까 식사하며 형님과 나눈 대화에서, 약간의 후원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님의 딱한 사정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큰 집에 가족이 아무도 없냐고 묻자, 형님이 하셨던 말씀. 

가족이 수도인 개봉(開封 카이펑)에 계신다고 했던 것.

그렇다.

형님은 송 시대 ‘기러기 아빠’였던 것.

자식들을 수도에 공부시키기 위해서 혼자 이 멀리 사천 구석까지 발령받아. 홀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아니, 형님이 기러긴가? 아무튼.’

나는 형님을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봉록(俸祿) 얼마나 되신다고··· 조카들과 형수님 그리고 늙은 부모님을 부양하시려면, 약간의 후원이야 뭐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응?!”

“저는 못 본 걸로 할 터이니, 할 일들 하시지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형님.

그리고 식반행과 주행의 수장들이 뭔가 똥 씹은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보기에, 몸을 돌리며 그들을 재촉했다.

“어서들 볼일 보시지요.”

뭔가 짤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고 잠시 후, 미소 띤 형님과 슬픈 표정이 된 식반행과 주행의 수장.

그렇게 형님과 수장들 간에 우애를 다지는 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입회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가입 절차는 별것이 없었다.

형님이 잘 봐주란 말을 10번도 더하고 제갈세가를 슬쩍 언급한 것.

그리고 가입비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부라린 것으로 모든 과정이 끝이 났다.

‘아 달콤한 꽌시여.’ 

나는 꽌시 증오론자에서 꽌시 찬양론자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

형님에게 여러 가지 은혜를 받았기에 무림계의 국룰 은원 갚기를 해야 했는데, 그것을 갚는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광동성 광주(廣東省 廣州) 출신인 형님의 향수병 치료를 위해서 한가지 요리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말이다.

내가 내민 요리를 받아든 형님이 코를 벌름거리며 물었다.

“이 해물의 풍부한 향이라니. 마치 고향에 온 것 같구만. 그래 이 음식이 뭐라고?”

“광동해물초마면(廣東海物炒碼麵)이라고 합니다. 형님.”

‘짜장을 선보였으니, 다음은 당연히 짬뽕이 순서가 아니겠나?’ 

오늘은 뜨끈한 짬뽕으로 형님의 육수, 아니 성수를 뽑아내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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