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형님 댁에서의 시간은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매일 반복되는 뒹굴뒹굴하는 일상이 이레나 계속되니 슬슬 좀이 쑤셔오고 있었던 것.
그런데 마침 심심한 나를 유혹하듯, 형님의 퇴청 시간쯤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 오늘은 그것을 꼭 준비하라 했거늘 어찌 된 것이냐?”
“그것이 촌연주사(村宴廚師)가 다른 마을 잔치에 갔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뭐라!? 내 분명 자리를 비우지 말라 했거늘!”
“마을 잔치인지라···”
“에잉···”
뭔가 불만 가득한 형님의 목소리, 나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향했다.
소리가 나는 쪽은 별채를 가로질러 바로 다음 건물에 있는 부엌, 평소에는 무슨 일인지 부엌 쪽에는 한 번도 가시지 않은 분이, 무슨 연유에서인가 부엌에서 쪽에서 하인들을 다그치고 계셨던 것.
‘무슨 일이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부엌 앞에 도착하자, 붉어진 얼굴로 씨근거리는 형님과 어쩔 줄 몰라 하는 하인들의 모습.
“형님, 퇴청하셨습니까?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내 물음에 형님이 어색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했다.
“아, 동생 와, 왔는가? 아니네, 아무것도···”
뭔가를 숨기는 형님. 큰소리를 좀 치시긴 해도 하인들을 괴롭히는 분은 아니었던지라 다시 한번 되물었다.
“형님, 이 동생에게 말 못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한번 말씀해 보시지요.”
“어허, 이 사람 아무 일 아니래도 그러네···”
자꾸 빼는 형님.
이 패턴이면 다음 이어질 말이 무엇일지 당연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할 것은 선공.
“형님 하인들도 있는데, 동생의 체면을 생각해서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희가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형님이 동생에게 비밀로 하신다면, 시종들이 저를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이 아우의 체면이···.”
개소리긴 했지만, 체면 공격은 먼저 하는 쪽이 항상 유리함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게 된 나는 일단 선공을 날린 것이다.
매번 당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체면 공격이라는 것이 그랬다.
‘그냥 나한테 져주면 안 돼? 자꾸 그러면 나 삐질 것 같은데?’
이걸 대놓고 묻기 힘들어 완곡히 돌려 말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체면 공격은 이를테면 중원식 삐돌이 선언.
누군가에게서 삐돌이 선언이 시작되면 상대방에게 남는 것은 두 가지 선택지뿐이다.
쪼잔한 놈보다 더 쪼잔해지거나, 그냥 져주고 ‘그래 내가 더 큰놈이니 양보한다!’ 자위하는 것.
그런 이유로 내가 자꾸 그러면 삐질 수도 있다고 협박하자, 배신당한 표정이 된 형님.
그 표정을 보니 왠지 후련해지는 가슴.
뭔가 쑤욱 내려가는 기분.
가슴속에서 짜릿한 무엇인가가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래서 체면. 체면 하는구나.’
짜릿한 승리감이 나를 휘감았다.
쪼잔해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승리의 영광은 영원하니, 무조건 먼저 쳐서 이기는 게 최고.
내 삐돌이 선언에 형님이 어찌 반응하실지 궁금했는데, 형님이 선택한 것은 두 번째 선택지.
“크흠. 동생이 그렇게까지 묻는데 대답해 주는 것이 도리겠지. 형인 내가 아우를 생각 안 하면 누가 생각하겠나? 크흠.”
자신이 나보다 큰사람임을 강조하며 자위를 선택한 형님.
결국 형님은 내게 왜 하인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를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 체면을 생각해서.
‘큭큭’
“내 고향이 광동성 광주(廣東省 廣州 광둥성 광저우)라는 것은 말했지?”
“예, 동생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광주는 해산물이 아주 풍부하네, 아무래도 항구도 크고 바닷가니 말이야.”
이 당시 광주(광저우)는 송나라 해운 무역의 중심지이자 최고의 항구도시. 해산물이 풍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 그렇지요.”
“내 그래서 고향 생각이 나면 해산물을 먹는단 말일세. 뭐 해산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 해산물로 만든 음식이 모처럼 먹고 싶었는데, 촌연주사가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말이야···”
촌연주사라는 것은, 이 시대의 출장뷔페 요리사.
마을 잔치 같은데 조리도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음식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자이다.
아마 형님은 별도로 요리사를 두지 않고 촌연주사를 썼었던 듯한데, 그가 근처 마을 잔치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했다.
“그런데 저희 어제도 해산물을 먹지 않았던가요? 그제도? 그러고 보니 매일?”
지금까지 내가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된 식사를 시작으로 해산물이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분명히 첫날에도 게를 먹었고.
그 부분을 지적하자 형님이 약간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크흠! 오늘은 더 특별히 먹고 싶었단 말일세!”
저런.
형님의 토라진 외침에서 알게 된 것은 그리움.
생각해보니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로 살아가시는 형님은 고향을 그리며 매일 해산물로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고 계셨던 것.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면 해산물을 저 풍채가 될 때까지.
저 풍채는 아마 인품과 통 50 프로와 그리움 49 프로, 운동 부족 1 프로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했다.
형님이 그런 사정이시라면 이 동생이 가만 있을 수는 없는 일.
“형님 서운하군요.”
“뭣?! 어, 어째서 말인가? 무, 무엇이 서운한가? 어, 어서 말해보게. 서, 서운하면 절대 아니 될 말이지!”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형님.
나는 눈썹을 꿈틀꿈틀 움직이며 씩 웃었다.
“형님 어째서 촌연주사를 찾으십니까? 아우가 있는데.”
“그, 그게 무슨 소린가?”
“형님, 이 아우도 작지만, 객잔의 주인. 요리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요.”
“아니, 이 사람 무슨 소린가! 내 어찌 자네에게 그런 일을 시킨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내가 요리를 해준다는 말에 기겁하는 형님.
정색한 표정의 형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소리치셨다.
그러나 나는 이미 치트키를 터득한 상황.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치트 버튼을 천천히 꾹꾹 눌렀다.
‘어디 보자 ㅊ ㅔ ㅁ ㅕ ㄴ 옳지!’
“형님, 이 동생이 형님댁에서 며칠이나 묵었는데도 불구하고, 음식을 만드는 재주가 있음에도, 고향을 그리워하시는 형님을 위해, 식사조차 한 끼 만들어드리지 않고 떠난다면, 모두가 비웃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저를 탓할 것이고, 저의 체면에 아주 막대한 손상이···.”
“큭···. 그, 그런···.”
이런 식의 논리는 예상 못했다는 듯. 형님의 실 같은 눈이 축 처져 삼각형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또 이 체면 공격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되도록 상대가 양보해줄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안 그러면 또 양보해주는 사람의 체면도 손상되니까···. 하아···.’
“하지만 제 요리를 형님이 맛보시고 맛있다고 하신다면, 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현령께서 드시고 흡족해하셨다고 하면, 제 객잔에서 요리를 팔 때도 좋을 것이고···. 그러니 동생을 도와준다고 생각하시고 제 요리를 드셔도 되는 것입니다.”
“크흠. 그···. 그렇게 되나 그것이? 도, 동생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내 당연히 환영이지만, 아무래도 바닷가 사람이 아니라면 해산물은 다루기가···.”
중원은 땅덩어리가 크니 내륙에서는 해산물 보기가 만만치 않은데, 그렇기에 내륙의 평민들은 평생 해산물을 못 먹어보고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아마 걱정되신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몸은 복건성 출신.
광주가 있는 광둥성과 맞닿아 있는 동네인 것이었다.
뭐, 내 요리실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형님 이 아우가 복건 출신이라는 걸 잊으셨습니까?”
광동성에 광주가 있다면 복건에 있는 것은 복주(福州). 만만치 않은 항구도시.
더군다나 강줄기와 해안이 대부분인 복주 또한 유명한 해산물의 본고장.
“오오! 그, 그랬지!”
내가 복건 출신임을 상기시키자 금새 화색을 띠는 형님.
“그래, 오늘은 무엇이 드시고 싶었습니까?”
“그, 그냥 뭐 고향의 느낌이랄까?”
한 면이 바닷가고 항구가 있음에도 솔직히 광동성의 유명한 요리는 전생에는 닭요리.
그리고 이 시대는 뱀 요리. 왜인지는 모르지만 소동파 선생께서 광동성에서 뱀 요리를 그렇게 즐겨 드셨다는 기록이 있었으니 아마도 맞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형님이 해산물 요리를 원한다는 것은 정말 고향이 그리운 것.
‘그럼 오늘 눈물, 콧물, 육수 좀 빼 드려야겠네.’
“자 그럼 아우가 음식을 만들어 갈 테니, 안에서 잠시 쉬고 계시지요.”
“아니, 내, 혼자 그럴 수 있나 내 여기서 기다림세.”
“아닙니다. 가서 기다리셔야 음식이 나왔을 때 더욱 즐겁지 않겠습니까? 형님을 안으로 모시고, 부엌으로 가자!”
고집을 부리는 형님을 하인들에게 안으로 모시라 부탁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일단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재료를 확인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인들의 안내로 부엌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해산물의 보고.
형님은 해산물에 진심인 분이셨다.
아무래도 시대의 특성상 운송 속도가 빠르지 않아 생물을 구하기 힘드니, 각종 건조 해산물과 지역 특산물 중 강에서 잡은 조개나 사천 게 등의 재료가 여기저기 손질되어 준비된 모습.
복어(鰒魚 말린 전복), 건해삼(乾海蔘), 간패(干貝 키조개 관자를 쪄서 말린 것), 호시(濠豉 말린 굴), 하미(蝦米 말린 새우), 사천계해(四川溪蟹 사천 민물 게), 그리고 담수합리(淡水蛤蜊 민물조개).
‘고향이 얼마나 그리우셨으면.’
부엌에 준비된 재료를 보니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
“그래, 촌연주사가 아마도 탕을 끓이려 한 것 같구나?”
“공자님 어찌 아셨습니까!?”
건조 재료들이 이미 물에 불려 손질된 재료만 보아도 다 알 수 있는데 뭘 그런 걸 가지고 놀라나.
형님이 고향 타령을 하니, 그냥 가정식으로 해산물 넣고 푹 끓인 탕을 내려고 했던 게지.
이름도 뭣도 없는···.
“보기만 해도 아느니라. 그럼 내가 불러주는 재료들을 가져다주거라.”
“예! 공자님!”
“돼지고기, 생강, 양파, 양배추, 마늘, 파, 목이버섯, 죽순, 청경채를 가지고 오너라.”
내 지시에 하인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내가 불러준 재료를 가져와 다듬기 시작했다.
모처럼 여럿이 일하니 전생에 호텔 주방이 떠오르고 꽌망했던 내가 꽌흥했다는 사실에 세상사가 모두 꽌망꽌흥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사 꽌망꽌흥(關亡關興).
우선 하인들을 시켜 화로 3개에 불을 넣었다.
하나는 면을, 하나는 육수를 그리고 하나는 웍을 돌릴 불.
게는 등껍질을 따 반으로 가르고, 물에 불린 키조개 관자와 해삼, 전복은 먹기 좋게 썰었다.
말린 새우와 민물조개 조금, 사천 게 뚜껑은 육수를 내기 위해 육수 솥에 집어넣고, 생강 한쪽, 양파 반개, 으깬 마늘을 넣어 비린내를 잡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 강한 화력에 육수가 끓어오르고, 이제 필요한 것은 고추기름 아니, 화초 기름.
화초, 마초, 등초의 비율은 1:1:2 혀를 아리는 맛과 부드러운 맛의 비율을 반반으로 하기 위함이었다.
하인들이 화로에 붙여준 불이 거칠게 타오르고, 거기 유채유를 넣어 달군다. 그리고 충분히 달궈진 유채유를 비율로 섞은 화초에 부어준다.
-촤아아아
등초의 감귤 향이 폭발하듯 피어나 주방을 꽉 채우고, 매콤한 화초의 향이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등초의 감귤과 화초의 매콤한 향에 취해 잠시 기다려주면, 기름을 부은 화초가 전부 기름 아래로 가라앉는데, 이것이 화초 기름 준비가 끝난 것.
화초들이 충분히 기름을 머금고 그 과정에서 자기 향을 기름 속에 뱉어내 가라앉았다는 뜻인 것이다.
그 화초 기름을 한 국자 퍼 올려 달군 웍에 다시 넣어주고 마늘과 파를 넣었다.
-치이이
이제 부엌 안에 흐르는 향은 감귤과 마늘, 파 그리고 매콤한 화초의 사중주.
폭발하듯 피어나 어우러진 네 가지 향에, 하인들이 침을 연신 삼키고.
이제 여기에 돼지고기와 게를 넣고 같이 볶다가, 다음으로 넣을 것은 먹기 좋게 썬 양파, 양배추, 목이버섯, 죽순.
그리고 비율로 섞은 곱게 빻은 화초.
-취이이이익
화초 가루가 타지 않게 주의하며 혹시라도 탈것 같으면 끓어오르는 육수를 조금씩 국자로 넣으며 웍을 돌리며 한참을 볶아준다.
이것이 짬뽕에 불맛을 입히는 과정.
-촤아아아아···.
뜨거운 화력에 채소들이 한숨 죽으면, 노두유와 두반장을 조금 넣어주며 불맛을 더 내준다.
장을 살짝 태워 맛과 향을 한층 더 입히는 것.
발효된 콩에는 천연 MSG가 생겨나고, 그것을 가열하면 더욱 풍미가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간장이 노릇하게 타오르며 풍기는 진한 향.
마지막으로 잘린 해산물과 민물조개를 넣고, 잠깐 볶다가, 육수를 알맞게 부으며 간을 하고, 완성 직전 청경채를 넣어주면 이것이 짬뽕!
진한 해산물의 향이 김과 함께 살랑살랑 피어오르고, 은은한 감귤의 향이 침샘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꼴깍
-꼴깍꼴깍
짬뽕이 완성되고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옆을 보자, 하인들이 폭발하는 침샘을 어쩌지 못하고 연신 침을 들이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