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
-추르릅.
-추르르르르르르릅.
초고성능 진공청소기가 주변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형님의 입안으로 빨려드는 면발이 내지르는 비명.
“크허어···.”
“캬하아아아···.”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며 그 시원함과 청량함에 내뱉는 탄성.
“쪼오옥···”
“쪼오오오옥···”
액체가 좁은 구멍으로 남김없이 빨려 들어갈 때 나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려 들어간 국물이 남기는 마지막 단말마.
그것을 마지막으로 형님의 입에서 최고의 탄사가 터져 나왔다.
“허어··· 좋다!”
삼 완 뽕!
형님이 비운 세 번째 그릇이 식탁 위에 탁하고 내려졌다.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순살 당해버린 짬뽕 세 그릇.
그릇을 다 비운 형님이 젓가락을 내려두고 이마를 훔치자, 이마와 인중에 맺힌 땀방울이, 이제는 비어버린 그릇 속으로 톡톡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돌려 무척이나 만족한 얼굴로 배를 문지르며, 감은지 뜬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형님.
실눈이라도 지금만큼은 형님의 표정과 마음을 완벽하게 읽을 수 있었다.
“어찌, 아우의 음식은 만족스러우셨습니까?”
내 질문에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하는 형님.
“만족하다마다 뿐인가! 내 고향의 바닷가를 거니는 느낌이었네. 자네, 요리를 그냥 적당히 하는 정도가 아니었구만? 시원한 해산물의 국물과 마라의 매운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일품이었네. 오랜만에 정말 정신없이 먹고 말았구만.”
극찬에 극찬.
형님은 짬뽕 그러니까 광동해물초마면에 완벽하게 만족하신 모양이셨다.
내가 형님께 짬뽕을 소개할 때 사용한 이름은 광동해물초마면(廣東海物炒碼麵).
내가 저 이름을 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짜장면을 작장면이라고 소개하듯, 짬뽕을 지칭할 대비되는 중국의 음식이 없기에 부득이하게 새로운 단어를 만든 것.
짬뽕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음식은 탕육사면(燙肉絲麵), 초마면(炒碼麵)정도.
보통 짬뽕에 관해 설명할 때 탕육사 면이나 초마면에서 유래해 한국화된 것이라 말하는데, 전생에서는 탕육사면이나, 초마면은 현지에서 명맥을 조금 이어가고 있을 뿐, 그다지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었고, 심지어 초마면이라고 말하면 중국에서도 한국식 초마면이라고 부를 정도로 짬뽕이 인기를 끌고 있었던 것.
그리고 중국집에 가면 시킬 수 있는 요리 중에 잡탕밥, 잡탕면을 한 편으로 광동밥, 광동면이라 부르는데 해산물이 들어가고 전분으로 걸쭉하게 끓인 느낌의 탕을 광동 잡탕이라 불렀기에 두 가지를 적당히 섞어 이름을 만든 것.
이름에 형님의 고향인 광동이 들어가니 감성이 뿜뿜 솟아오르고, 게와 말린 새우, 민물조개로 낸 육수의 진한 풍미가 고향을 그리게 하는 것.
내가 생각해도 조리부터 이름까지 완벽했다.
그렇게 오늘도 한 명 만족시켰구나라며 치사량의 뽕에 취해 몽롱한 상태일 때, 형님의 입에서 청천벽력(靑天霹靂) 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오늘 식사를 만드느라 고생했으니, 열흘이 아니라 한 스무날쯤 쉬었다 가게!”
“아니, 그래도 어떻게 스무날이나···.”
“어허 동생에게 이리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그냥 보낸다면 사람들이 나를 어찌 생각하겠는가? 내 체면이 있지!”
형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자기가 더 빨랐다는 표정으로.
‘에라이, 씨!’
결국 형님에게 꼼짝없이 붙들려 열이틀이나 돼서야 형님의 손에서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매일 짬뽕을 만들어야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고 말이다.
처음 짬뽕을 맛보고 마음에 들었던지, 형님 이 인간, 다음날부터 매일 일찍 퇴청해 은근슬쩍 나를 만나러 온 것처럼 하고는 “크흠···. 오늘따라 고향 생각과 개봉에 있는 식구들 생각이··· 고향 생각이 날 때 먹을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꼬···” 라면서 짬뽕을 만들어달라 징징대었던 것.
음식 만드는 것이야,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니 언제라도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이지만, 열이틀째에 이르러 이러다 한도 끝도 없이 붙잡혀 있겠다 싶어 나는 탈출을 결심했다.
내가 실행한 탈출 방법은 꽌시 팔기.
“형님, 아무래도 돌아가 봐야 할 듯합니다.”
“아니, 동생, 그 무슨 자꾸 섭섭한 소리인가?”
“제갈가에서 식 때문에 사람을 보낸다고 해서 기다리던 중에 끌려 아니, 형님을 만나게 된 것이라 말입니다.”
물론 탈출을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순도 높은 백 프로 순수한 진실.
“뭐, 뭐라?! 아니, 이 사람아 그걸 왜 이제 말해!”
불 맞은 멧돼지처럼 놀란 형님은 아침부터 사람을 보내 객잔을 청소해주고, 그간 도착했던 사람이 있는지, 하인들에게 확인해보라 명해주셨다.
그리고 시장을 돌며 뭔가를 잔뜩 사들여 상자에 담아 나에게 선물해 주셨다.
“동생이 식을 치른다는 데 내가 가만 있을 수 있겠나? 선물이니 가져가게.”
그렇게 마차에 가득 실린 여러 가지 선물들과 함께 객잔에 도착하니, 열흘 넘게 사람이 비웠던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객잔은 깨끗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목수가 다시 한번 다녀갔는지 식탁과 의자도 모두 채워져 있었고, 하인들을 보내 청소를 어찌나 깔끔하게 해주셨는지 새 가게라고 해도 믿을 지경.
깨끗해진 객잔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몇 가지 폭풍 같은 일들이 지나고, 다시 영업 시작 전의 모습이 된 객잔과 나.
처음 문을 열던 날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첫날의 생각에 몸을 흠칫 떨렸다.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 아니, 아슬아슬한 기억뿐이랄까?
문을 열기 직전 깨끗했던 나의 첫 객잔에 감격한 건 잠깐이고, 손님도 없었으며 저녁에 찾아온 칼잡이 놈에게 본진도 탈탈 털렸던 것.
‘젠장.’
생각해보니 첫날부터 나의 첫 유료화는 버그투성이였던 것이었다.
몹들이 본진을 떼거리로 습격하고, SSS급 이벤트가 막 터졌으며, 더군다나 가드들까지 메인 플레이어를 습격하질 않나···.
버그투성이 망겜 같은 나의 첫 객잔 장사.
이러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서버 리셋.
아니. 게임 리셋.
이전 유료화는 그냥 본 장사를 시작하기 전 했던 오픈베타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이제 더러웠던 이전 기억은 모두 잊고, 내일부터 새로운 맘으로 장사를 시작하자!’
이미 오픈베타 때 드러났던 문제점은 모두 패치가 이루어진 상황.
식반, 주행에도 가입했겠다, 세금도 형님이 대신 냈다고 했으니, 행정 절차는 이미 완료.
행정이나 세금 쪽에서 올해 장사는 문제없을 것이고, 마차를 타고 나오며 시장에 들러 재료도 많이 사 왔으니 준비 또한 완벽했다.
이번에는 아주 완벽하게 준비했으니 말도 안 되는 이벤트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나의 유료화는 순항하리라.
오픈베타를 종료하고 첫 유료화를 진행하기 위해 나는 지필묵연을 꺼내왔다.
그리고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먹을 갈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붉은 화지에 신개장(新開場)이라는 글자를 다시 적어 문설주에 붙이기 위해서.
그렇게 공을 들여 한자, 한자 다시 신개장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혹시 몰라 나도 부적, 한 장을 적어 붙였다.
‘十’
‘장사 대박 나게 해주십쇼!’
원래 이런 건 안 하던 놈이 해야 빨이 더 받는 법.
***
다음날 오픈베타가 종료되고 본격적으로 유료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으로 장사하기 위해 신개장도 써 붙이고 마음가짐도 단단히 먹었건만.
역시나 내 객잔은 어김없이 한가했다.
그렇게 점심나절까지 파리를 날리며 식탁에 얼굴을 묻고 침을 흘리며 졸고 있을 때.
귓가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공자님?”
“커흡!”
갑자기 누군가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기에 소름을 느끼며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나보니, 손을 비비며 웃고 있는 것은, 형님을 통해 인사를 나누었던 식반행의 수장 천 씨.
갑자기 나타난 중년 남자의 얼굴에 모공이 발작하며 떨리는 몸.
“이, 인기척이라도 내시지 않고.”
“제가 반각이나 기다렸는데 깨어날 기미가 없으셔서···.”
‘그렇게 깊이 졸았다고?’
일단 식반행의 수장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어제 밤잠을 좀 설쳤더니, 그나저나 무슨 일로 이렇게?”
“어이쿠 죄송이라뇨. 무슨 그런 말씀을, 저야 잠시 기다린 것뿐인데요. 아,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현령께서 공자께서 가게를 장기간 비울 것 같다고도 하시고, 객잔을 홀로 운영하신다며 점소이를 추천하라 하셔서 말이지요. 마침 와보니 점소이가 없어서 그런지 장사를 안 하고 계시는 것 같아 빨리 찾아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챙겨주시는 형님의 마음에 감동한 것도 잠깐, 내가 장사하지 않고 있다고 확신하는 식반행 수장 천 씨의 말에 뭔가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졸고 있었고 손님이 없다고 해도, 형님 때문에 나한테 말을 조심하는 느낌인 식반행의 수장이, 거리낌 없이,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무례하게 장사 안 하고 있냐고 말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왜 내가 장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지 그 연유에 관해 물었다.
“문은 열어둔 것이긴 한데, 혹시 손님이 없어 장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내 물음에 ‘진짜?’ 이런 표정을 지은 식반행의 수장.
그는 설마 그런 줄은 몰랐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런! 현령께서 이쪽 일은 처음이시니 각별하게 챙기라고 하신 이유가 있으셨군요. 일단 자리에 앉아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 어서 앉으시지요. 내 정신 좀 봐. 혹시 차라도 드시면서?”
“아뇨, 아닙니다. 어차피 주행의 변 씨도 온다고 했으니 기다렸다 하시지요.”
손님께 차라도 대접하려 했으나 주행의 수장이 오면 같이 하자는 말에 일단 자리에 앉아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제가 장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등롱 때문입니다. 공자님.”
“등롱(燈籠)이요?”
등롱은 객잔 입구 좌우에 걸어두는 등을 말하는 것인데.
‘잘 걸려있을 텐데?’
혹시라도 등롱이 바람에 날아갔나 싶어 문을 확인하려 자리에 일어서며 물었다.
“등롱은 잘 걸려있을 텐데요? 설마 낮에도 켜두어야 합니까?”
그러자 웃으며 대답하는 식반행의 수장.
“허허, 물론 등롱은 잘 걸려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자님, 음식과 술을 파는 장사를 하신다면 그런 등이 아니라, 치자(梔子) 등롱을 걸어두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음식을 파는 곳인 줄 알지요.”
‘엥?’
“그, 그럼 이렇게 손님이 없던 것도?”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맙소사.’
음식점이나 술집에 하나같이 걸려있던 치자 모양 등이 그런 의미였다니.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이라 차별화를 주기 위해 동그란 등롱을 가져다 달아둔 것인데.
식반행 수장의 말대로라면 다른 사람들이 안 오는 것은 당연하고, 제갈 꽌시나 육대협과 객잔을 때려 부순 미친놈이 찾아온 것은 정말 용한 것이었다.
나는 내 객잔 오픈베타가 망해버린 원인을 그제야 정확히 알아챌 수 있었다.
일반 사용자 접속을 차단하고 서버만 돌렸으니 이벤트만 터졌던 것. 제갈 꽌시나 육대협 그리고 미친놈은 이벤트 엔피씨기에 객잔을 찾아왔던 것이 분명했다.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업자득(自業自得).
‘내 몸은 대체 아는 게 뭘까? 이 새끼는 대체 뭐 하는 새끼였을까?’
도움 되는 기억이 1도 존재하지 않는 몸의 한심함에, 현기증이 느껴져 의자에 앉아 관자놀이를 부여잡을 때, 객잔 입구로 얼마 전 보았던 주행의 수장 변 씨와 몇몇 사람이 들어섰다.
내 얼굴을 보자 신이 난 목소리로 포권하는 주행의 수장.
“청운 공자님 잘 계셨습니까? 저 변가가 괜찮은 점소이 몇 명을 데려왔는데, 한번 살펴보시지요.”
그가 자신을 뒤따라 들어온 남자들을 죽 늘어세우며 말했다.
식탁에 팔을 얹고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개를 들어 늘어선 남자들을 보았는데?
그들을 본 첫 감상은···.
‘아니, 점소이 데려왔다며, 왜 전부 바둑이인데?’
아마, 점소이는 꼭 큰 점이 있는 놈만 뽑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주행의 수장이 데려온 놈들이 하나같이 전부 바둑이였던 것.
그 모습을 보니 관자놀이가 더욱더 조이듯 아파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