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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점소이 (24/344)

노래하는 점소이

판다, 바둑이, 얼룩이 이놈들을 본 내 감상이었다.

‘동물농장도 아니고···’

눈에 누구한테 뒤지게 처맞은 듯한 큰 반점이 있거나, 코, 이마 볼 등에 기괴한 점들이 있는 모습. 

더군다나 인상은 왜 이렇게 억울해 보이는지. 

세상 억울함을 모두 혼자 짊어진 모습들.

‘저 새끼 저건 피, 피부암 아니야?’

볼에 큰 흑색 반점이 있는 놈을 보고는 더욱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삐걱거리며 돌려 식반행의 수장 천 씨에게 물었다.

“저, 그,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점이 큰 사람만 골라서 데려온 것 같은 느낌인데 말입니다···.”

식반행의 수정이 뭐라고 말을 하려 했으나, 먼저 대답이 들려온 건 식반행이 아니라 주행의 수장인 변 씨. 

그는 약간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제 노고를 알아주시는군요. 공자님!”

‘노고는 이 새끼가! 피부과로 갈 사람들을 왜 이리 데려와서는.’

대체 이게 무슨 개짓거리인지 짜증스러운 인상을 쓰자, 눈치 없는 변 씨가 부끄러운 듯 말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공자님. 공자님께 아무 놈이나 소개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손님들이 좋아하시는 복점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 데려온 것입니다. 당연히 점소이의 기본 덕목이지요.”

전생에도 큰 점을 가진 사람에게 복점이니 그런 말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다 중국 문화였던 모양.

손님들도 별 희한한 걸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내 얼굴을 확인한 식반행의 수장 천 씨가 복점과 점소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복점이 있는 점소이가 있는 식당에 방문한 손님들도, 그 기운을 받아 모두 복을 받으라는 의미지요.”

‘피부암 걸리라고 저주한다고?’

여긴 복이라는 것의 의미가 좀 다른 모양이었다.

피부암의 기운을 받으라는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일단 주방으로 향했다.

“일단 차를 좀 내오겠습니다.”

어쨌든 형님의 부탁으로 나를 돕기 위해 시간을 내 찾아왔다니, 손님 대접을 해줘야 했다. 

피부암 환자들을 끌고 오긴 했지만 말이다.

둘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 찻물을 끓인 주전자와 잔을 준비했다.

그렇게 차를 끓여 주전자 하나 가득 담아서 가지고 나오자 왠지 달라진 객잔 분위기.

뭐가 바뀌었나 살피자, 식탁 하나 뒤로 의자 셋이 나란히 놓여 있고. 가운데 자리를 비워두고 양쪽으로 천 씨와 변 씨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식탁 너머에는 점소이들이 일렬로 늘어서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무슨 오디션이라도 하는듯한 모양새.

둘에게 차를 한 잔씩 따르고 천 씨와 변 씨가 안내하는 가운데 자리에 앉자, 식반행의 수장 천 씨가 제일 왼쪽에 서 있는 점소이를 향해 말했다.

“자네 한번 재주를 보여보게.”

코에 왕 점이 있는 코봉이 왕서방이.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자신을 소개했다.

“주루(酒樓)에서 삼 년간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요.”

주루란 고급술집, 그러니 술집 웨이터 3년 경험이 있다는 첫 번째 점소이였다. 

술집 웨이터와 객잔 점소이가 결이 좀 다르긴 했지만, 비슷한 서비스 업계니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천 씨의 말이 빠르게 들려왔다.

“그래, 구채초육사와 만두 두 접시, 자계(炙雞), 세수해(洗手蟹), 완탕면 둘과 술은 화주를 준비해주게. 그리고 밖에서 사슴고기를 파는 행상이 오면 안내를 부탁하네”

주문을 무척이나 빠른 목소리로 전달하는 천 씨 나조차 얼마 기억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천 씨를 바라보자 천 씨가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점소이들이 주문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또 주방에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오오···. 그런 하찮고도 깊은 의미가?’

내가 이런 하찮은 짓거리에 그런 깊은 뜻이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씩 웃으며 손으로 점소이를 가리켰다.

뭐 아무튼 점소이가 주문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천 씨의 손을 따라 첫 번째 점소이를 바라보자, 점소이가 천천히 입을 열어 주문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소이의 입에서 들려온 것은 평범한 주문 전달이 아닌 웬 랩 같은 노래였다.

갑자기 큰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하는 점소이. 

“부추와 돼지고기로 만든 천하의 일품 구채초육사~ 그리고 만두는 두 접시라네~ 아아~ 손을 씻으면 나온다는 세수해는 빠질 수 없고! 완탕면 둘에 기분 좋은 술은 화주라네~ 술과 맛있는 요리가 함께하니 아하 즐거운 날이로구나~”

점소이의 노래가 끝나자 서로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천 씨와 변 씨.

천 씨가 눈길을 주고받다 먼저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계(炙雞)의 주문이 빠졌고 노랫말 연습을 좀 더 해야겠구만, 너무 단조롭군.”

그러자 변 씨도 자기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자네의 주문은 신분 높은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선보이기에는 조금 힘들겠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자님의 객잔에서 일하기에는 좀 무리네.”

진짜 무슨 오디션같이 진행되는 상황. 둘은 악담을 늘어놓더니 갑자기 나를 바라봤다.

‘나도 하라고?’

눈빛으로 묻자 고개를 끄덕거리는 둘.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에 대체 얼마나 어울려줘야 하나 싶어 딱 한 마디만 하기로 했다.

“불통(不通)!”

‘불합격 이 새끼야! 얼굴이 불합격이야! 보고 있으면 기분 나빠.’

내 불통이라는 말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객잔 밖으로 향하는 탈락한 점소이. 

불쌍하긴 한데 오디션이라는 게 그렇다. 

탈락한 자기 멘탈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것.

그렇게 점소이 하나를 시무룩하게 만들어 내쫓고, 두 번째 놈에게 노래시키려는 천 씨를 저지하고 일단 이게 대체 뭔 짓거리인지를 물었다.

“대체 노래 실력은 왜 보는 것인지?”

내 물음에 놀란 얼굴로 대답하는 천 씨.

딱 봐도 넌 대체 아는 게 뭐냐는 얼굴이었다.

‘나도 부끄럽거든?’

내가 애써 그의 눈빛을 외면하자 그가 다시금 자세 설명을 시작했다.

“공자님께서는 고급술집이나 요리점에는 가보신적이 없으십니까?”

“제가 요리를 좋아해 직접 만들어 먹으면 몰라도 요릿집이나 술집은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한미한 가문이라 가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체면이 있지. 

못 가봤다고 할 수는 없는 법.

‘뭣!’

체면 때문에 못 가봤다고 할 수 없지 않겠냐고 생각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 나.

‘서, 설마 이건? 현지화 패치?’

어느새 나도 모르게 현지화 패치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 모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지화 패치에 충격을 받아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을 때, 갑자기 나를 칭찬하는 천 씨의 말이 들려왔다. 

“군자개포주(君子改庖廚)라더니! 여기 그런 분을 저희가 직접 만나게 되었군요!”

군자개포주라는 말은 맹자(孟子)의 양해왕상(梁惠王上)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주방을 멀리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짐승의 산 모습을 본 사람은 그들의 죽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죽는 모습을 본 사람은 그들을 결코 먹지 못한다는 말을 약간 바꾼 것이다.

먹는 음식에 사용되는 동물이 비참하게 죽는 걸 용납하지 말라는 말인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짐승을 먹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면, 최대한 동물을 인도적으로 죽이게 하라는 말 정도로 쓰여야 하는데, 아마 내용을 잘 모르는 천 씨는 군자가 직접 요리해서 주방을 바꾼다는 말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예, 뭐 그, 그런 걸로 하시죠. 하하··· 하··· 하···”

그렇게 어색하게 웃자 천 씨가 이 병신같은 짓거리의 의미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주방에 주문을 전달할 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천천히 노래를 불러 요리할 사람에게 주문 내용을 천천히 전달하고, 듣는 손님에게 틀린 것은 없는지 확인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급 요리를 시켰을 때, 주문 내용을 노래로 크게 불러 모든 손님에게 알려서 손님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죠.”

결국 체면문화의 일환인 모양이었다.

‘하아···. 이 뭐 병···’

체면 알레르기가 다시금 돋으려 했지만, 꾹 참고 오디션을 진행했다.

다음으로 등장한 놈은 한쪽 눈에 판다 마크처럼 두드려맞은 듯한 반점이 있는 놈.

“서생으로 공부하다 입에 풀칠이라도 할까 싶어 나왔소이다.” 

자신을 공시생이라고 소개한 놈이 한시라도 읊듯 자신의 노래를 시작했다.

“청풍명월(淸風明月) 맛있는 음식이 떠올라 객잔을 찾았으니, 푸른 기운이 무성한 구채초육사가 생각이 나고······ 친우와 함께한 술은······.”

공시생의 노래가 끝나가 악평이 쏟아졌다.

“자네의 표현은 아름답지만 여기는 시를 읊는 곳이 아니네.”

“아무리 아름다운 노랫말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서야 소용없지.”

“불통!”

공시생은 자신의 노래를 이해 못하는 수준 낮은 우리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 사라졌다.

그렇게 계속된 오디션.

“특이한 형식의 노래구만, 그건 자네 집에서나 부르게.”

“크흠! 자네를 데려온 내가 부끄럽네.”

“불통!”

여섯 번째를 마지막으로 여기저기 반점이 있는 바둑이까지 울먹거리며 객잔 밖으로 뛰어나가고, 모든 오디션이 끝났다.

그리고 바둑이가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고야, 천 씨와 변 씨는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깨닫고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심사에 심취해 누구 하나를 뽑아야 했는데, 모두 보내버리고 만 것이었다.

객잔 점소이야 그냥 적당한 놈을 쓰면 되는데 말이다.

저희 들이 뭐라도 되는 양 흥이 올랐던 모양.

둘이 서로를 바라보고 이걸 대체 어찌 수습하냐? 라는, 굳은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였다.

웬 여인이 객잔으로 뛰어 들어와 우리 앞에 꿇어 엎드린 것은.

여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개를 땅에 조아리며 말했다.

“천 어르신, 저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뜸 나서 여자를 힐책하는 변 씨.

“어허 이 사람이, 예까지 쫓아 와서! 이 공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복점도 없고,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로 공자님의 객잔에서 노래를 부른다니. 아니, 주문을 받는다니! 그건 절대 안 될 말이지! 가슴이 커 둔해 보이는 것은 또 어떻고! 그렇지 않나?”

변 씨의 말에 천 씨도 딱 잘라 여인의 청을 거절했다.

단호박같이 매서운 말투로.

“당연하지, 네 사정이 아무리 딱하다고는 하나, 다른 가게도 아니고 현령님의 동생분의 가게에 우리가 어찌 너를 소개해줄 수 있겠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거라!”

그러자 꿇어 엎드렸던 여인은 둘에게 빌어봐야 안 되겠던지, 고개를 들고 나에게 애원했다.

“공자님, 부모께서 요리점을 오랫동안 하셨고, 제가 그 일을 오래 도와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제발 기회를 주십시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동생 둘을 홀로 돌보고 있어 일이 꼭 필요합니다.”

눈물 글썽이는 얼굴로 여자가 고개를 들어 구슬픈 목소리로 나에게 애원하자, 나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통(通)”

나의 합격이라는 말에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천 씨와 변 씨 그리고 여인.

“저, 고, 공자님 저 여인은 복점도 없고, 가슴이 커 둔해 보이는데, 대체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시는지?”

변 씨가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묻자 천 씨가 자기 팔꿈치로 변 씨를 쿡 하고 찍었다. 

그런데도 눈치 없는 변 씨는 나에게 계속 답변을 요구하는 표정.

‘아니, 이 새끼는 정말 눈알이 없나?’

“크흠···.”

나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 둘을 향해 외쳤다.

“아니, 복점이 왜 없단 말이요! 저렇게 크게 있는데!”

“예? 대체 어, 어디?”

“대체 어디에 있는 점이?”

내가 큰 점이 있음을 지적하자, 자신들은 점이 대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한 투로 말하는 둘.

“크흠! 내가 살던 곳에서는 여인의 눈가에 있는 점을 최고의 복점으로 쳤소! 운과 재물복이 있다는 의미였지요.”

‘전생에 점쟁이들은 다 그렇게 말했다니깐?’

다 같이 여자를 바라보자 여자의 왼쪽 눈가에 참외 씨만 한 눈물점 하나가 반짝이듯 자리 잡고 있었다.

“저, 저것이 말입니까?”

나는 변 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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