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공자님, 아무리 그래도 이리 둔해 보이는 아이를 소개해주었다가는 저희가 현령께···. 큽”
구시렁구시렁하다 천 씨의 손에 입을 틀어 막힌 채 끌려 나가는 변 씨.
“고, 공자님께서 마음에 드셨다면 되는 것이지, 이 사람이 무슨 소릴 자꾸. 공자님 그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제 부모의 요릿집 일을 도와 쓰시기는 좋을 것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저희는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여자와는 어느 정도 아는 사이인지, 대략적인 설명을 한 천 씨는 급하게 인사를 하며 변 씨를 끌고 나갔다.
“천 대백(大伯) 처음부터 이 아이를 보여주었으면, 다른 이들이 수고스러울 일이 없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내 이 점소이가 아주 마음에 들었으니. 오늘 두 분의 노고를 형님께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이쿠. 가,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로 다행입니다.”
내가 오늘 진기한(?) 구경을 시켜줘서 고맙고, 형님께 너희들이 수고한 걸 꼭 알리겠다고 인사를 하자, 천 씨는 비교적 만족한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그의 손에 끌려 나가는 변 씨는 아직도 왜 여자를 뽑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변 씨가 저러는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복이 철철 넘치는 복덩이들을 마다하고 웬 이상한 여자를 뽑았으니 말이다.
여자가 예쁘다면 내가 여자에 혹해서 뽑았다고 생각할 텐데, 여자는 이곳 기준으로 치면 절대 미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대에는 저기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여자는 매력이 없는 추녀.
그녀가 추녀인 이유는 변 씨의 말대로 둔하게 가슴도 크흠!고 피부도 살짝 그을린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전생이었으면 건강미 넘치는 풍만한 미인이었겠지만, 흰 피부와 날씬한 여자를 선호하는 송대에는 절대 미녀가 아닌 것.
더군다나 송대 여성들의 전통 옷은 목덜미와 가슴 위를 드러내는 탑 형태의 긴 원피스와 그 위에 걸치는 다양한 길이의 가디건으로 이루어진 형태.
날씬한 몸매를 가진 여자에게는 딱 달라붙어 하늘하늘 흔들려 아름답게 보이지만, 가슴이 조금만 훌륭해도 엄청나게 품이 넓어 뚱뚱해 보이는 것이 이런 옷이었다.
그러니 아까 변 씨가 계속 둔하다니 어쩌니 한 것도, 다 저 전통 옷의 영향이 컸다.
뭐, 여자는 굳이 말하자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고 할까?
그러나 여자는 운이 좋았다.
여자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혹평받고 있었지만, 나는 시대를 초월해 사람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심미안(審美眼) 아니, 심안(心眼)의 소유자이며, 미드라인 따위로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비차별(非差別) 주의자.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요릿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경력자이기도 하다니 당연히 우리 객잔에 필요한 인재였다.
천 씨와 변 씨를 보내고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사심 없이.
“일단 이리와 앉거라.”
“예? 예! 예! 공자님!”
앉으라는 말에 스프링처럼 튕겨 올라 내 반대편에 민첩하게 앉는 여자.
“그래, 이름이 뭐라고?”
“네, 공자님 소녀 추가련(秋佳蓮)이라 합니다.”
‘아름다운 연꽃이라? 예쁜 이름이군.’
사심 없는 감상.
“그래, 집이 요릿집이었다고?”
“예, 공자님.”
“객잔 일은 대충 알겠지?”
“예! 물론입니다. 공자님.”
“생각보다 바쁘고 힘이 들 수도 있는데?”
“바쁘면 제 동생들을 데려와 도울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열넷, 열다섯 동생이 둘이나 있습니다.”
‘1+2!’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사심 없이 조건들이.
“그래, 그럼 내일부터 나오도록 하거라.”
“예? 저, 정말로요?!”
“아까 통이라 하지 않았느냐.”
“아,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야 기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
하긴 어찌 보면 아까 그 지옥 같은 오디션을 뚫고 올라온 것도 아니고 특별 채용이니, 기쁜 것도 당연한 일.
여자가 혼자 잠시 자축할 시간을 가지게 한 후, 일단 호칭을 정리했다.
“앞으로 부를 때는 공자가 아니라 점주(店主)라 부르거라.”
“예! 점주 어른!”
금방 호칭을 바꾸는 여자.
사심 없이 똘똘해 보여 더욱 마음에 들었다.
코봉이, 바둑이, 판다와 일하는 것보다도 훨씬 좋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럼 나는 점소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닙니다. 그냥 가련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래, 그럼 가보고,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오거라.”
내가 어서 가보라는 투로 손을 까딱거리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우물쭈물하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저, 점주 어른. 그 삯은···?”
“삯? 아!”
연봉협상!
‘하하 이거 초보 객잔 주인이라고 연봉협상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내려 했다니.’
나는 잘못을 깨닫고 재빨리 근엄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원래 고용 당하는 처지에는 연봉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인데 그냥 보내버리려 하다니, 아무리 여자가 저평가되고 있다지만 실례였다.
“아차차! 미안하구나. 내, 깜빡했구나. 그래 삯을 정해야지, 잘 말했구나. 그래,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느냐?”
“예?!”
내 물음에 그게 무슨 말이냐며 화들짝 놀라는 그녀.
처음 직원을 고용해보니 실수 연발이었다.
“아차차! 이게 아니지, 그래, 삯은 얼마나 받고 싶으냐?”
“저, 그것이···.”
여자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으로 자기 한 손을 조심스레 들더니, 손가락 3개를 펴서 내게 보여주며 물었다.
“그, 이, 이만큼?”
그러나 그 손가락을 보고 ‘정말? 진짜로?’ 같은 표정을 지은 내 얼굴을 보더니, 슬금슬금 꺾이는 엄지손가락.
“아, 아니면 이, 이만큼?”
파르르 떨리는 손끝, 그러나 그녀에게 한 달에 은자 두 개씩이나 줄 수는 없는 법.
나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보통 이런 협상에서 다리를 꼬거나 팔짱을 끼는 것은 명백한 거절의 의미.
그러자 여자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지고, 손을 달달 떨며 눈물까지 한 방울 뚝 흘리더니, 뭔가 다 체념한 모습으로 손가락 하나를 더 접어 가운뎃손가락 하나만을 남겼다.
그것을 보자 왠지 기분이 더러운 상황.
‘여기에 그런 욕은 없을 것인데···.’
연봉을 깎았다고 욕이라도 하는듯한 손동작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 달에 은자 하나면 여자가 받기에는 조금 많은 양.
뭐, 일 바쁠 때 2+1도 돌려주고 딸린 식구도 둘이라니, 그 정도면 나쁘지 않겠다 싶기도 하고, 여자의 손을 얼른 치우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체념하듯 내 쪽을 향해 툭 떨어지는 그녀의 손.
나를 향한 채 아직도 접히지 않은 손가락에 묘하게 기분이 거슬렸다.
그리고 협상에서 밀렸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꽤 슬픈 모습이 되어있었다.
‘애가 욕심이 많은가? 안 그래 보이는데?’
한 달에 은자 하나가 적은 돈이 아닌데, 역시 사람은 얼굴만 보고 모르다 싶어 사심 없이 좋았던 그녀에 대한 평가가 좀 낮아지려 하고 있었는데, 여자가 슬픈 얼굴로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점주 어른, 아, 아직 일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제가 이,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여, 열흘 치 삯을 혹시 미리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 첫 출근도 하지 않고 가불(假拂)을 요구하는 그녀.
그녀의 가불 요구에 살짝 인상을 쓰자 내 표정을 확인한 그녀가 갑자기 객잔 바닥에 꿇어 엎드려 사정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열심히 할 터이니 제발, 동생들이 사흘이나 굶고 있어서···.”
‘하, 이거 참 동생들이 굶고 있다는데, 그냥 보낼 수도 없고···’
“그래, 뭐 그런 사정이라면 어쩔 수 없지. 내일부터 열심히 일하거라. 그리고 그러지 말고 일어나거라. 그러니까 열흘 치?”
내 말에 잽싸게 일어나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함을 표하는 여자.
“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나는 사심 없이 직원 복지를 위해 품을 뒤졌다.
하지만 철 전이 품 안에 삼백 개 이상 있을 리가 만무한 일.
품속의 은자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식탁 위로 올렸다.
‘보증인인 천 씨가 있으니 먹튀할일은 없겠지?’
“그래, 뭐 기분이다. 지금 철 전이 없으니, 그냥 한 달 치를 먼저 받거라.”
“예, 가, 감사합니다! 가, 감사··· 가··· 감··· 가··· 감감···? 하, 한달?”
은자를 보더니 고장 난 그녀.
자기 한 달 봉급인 은자 한 냥을 받자 아마 아까 깎인 연봉이 실감 되는 모양이었다.
태엽 끊어진 인형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녀에게 앞으로 천천히 올려줄 것이니 처음부터 너무 돈 욕심을 내지 말란 투로 말했다.
“어찌 처음부터 한 달에 은자를 세 냥씩 주겠느냐. 일단은 수습 아니, 일을 배우는 기간이니, 한 달에 은자 한 냥만 받고 열심히 일하거라, 뭐 세 가족이 생활하는데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야. 삯은 내 장사 되는 걸 보고 천천히 올려줄 테니 말이다.”
내 말에 내 첫 점소이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제야 털레털레 밖으로 향했다.
‘사람 쓰기 진짜 힘드네.’
***
다음날 출근한 가련이는 무슨 광신도 같은 눈빛을 빛내며 빠릿빠릿 일했다.
“가련아 오늘은 객실 먼지를 털어내고 이불도 좀 밖에서 말리 거라 볕이 좋구나.”
“예, 점주 어른! 더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우렁차게 대답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빠릿빠릿한 가련이.
하루 만에 애가 바뀐 모습.
어제 가불한 돈으로 며칠 만에 포식해서 그런지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빠릿빠릿한 건 좋은데, 가련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뭐랄까?
무슨 종교 지도자라도 보는 양 나를 우러러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가련이의 시선에 나는 벽에 붙인 부적을 힐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부적이 좀 센가? 저쪽이 좀 그런 부작용이 있긴 한데···.’
약간의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명령을 받은 가련이가 객실 청소를 위해 날 듯이 사라지고.
빠릿빠릿한 점소이는 생겼지만, 우리 객잔은 언제 한가한 상황.
등롱도 교환했건만 위치 때문인지 손님이 없었다.
그런 연유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며 홀로 식당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단체 손님이 객잔으로 몰려들었다.
갑자기 안으로 줄줄이 들어서는 사람들.
졸다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 입가에 침을 닦으며 일단 인사부터 박았다.
“어, 어서옵셔!”
객잔으로 들어선 손님은 십여 명.
같은 갈색의 무복을 입고 도를 하나씩 찬 상태였다.
가슴과 등에 보이는 글자는 적(赤).
다들 같은 문파 소속 무림인인 모양이었다.
침을 닦으며 안내하려 뛰어가자 십여 명의 사람은 내가 안내도 하기 전에 저희끼리 식탁, 네 개에 자리를 잡았고 앉기 시작했다.
무림인이라 그런지 성질이 급한 모양.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식사를 준비해 드릴깝쇼?”
그러자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외팔이 남자가 대꾸했다.
“일행이 좀 더 올 테니, 조금 기다렸다 주문하지.”
외팔이 손님의 입에서 들려온 소리는 믿기 힘든 이야기.
손님이 더 온다는 것.
‘서, 설마, 이것이 부적의 힘인가?!’
“대, 대체 얼마나?”
혼자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으니, 이렇게 한 번에 많은 손님이 오면 식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기에, 외팔이 남자에게 얼마나 추가 인원이 더 오는지 물었는데, 그가 괴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식사는 여기 열두 명만 준비해주면 되네. 그분들은 못 드실 테니 말이야.”
“우하하하하!”
남자의 말에 다 같이 웃은 사람들.
그들의 웃음에 무슨 내기라도 해서 이겼나 싶어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왜, 내기해서 진 쪽이 이긴 쪽 식사를 다 사주는 그런 거 말이다.
분위기가 아무래도 딱 그래 보였으니.
‘재개업에 첫 손님이 단체 손님이라?’
왠지 이번은 시작부터 감이 너무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