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접(毒蝶) (26/344)

독접(毒蝶)

기대감을 피어나게 하는 한껏 들떠 흥분한 손님들의 모습.

대박의 느낌이 들었다. 

들뜬 손님들은 술을 시키기 마련이고 술을 시키면 안주가 필요한 것.

‘오늘 매상은 이분들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식사를 일행들이 오면 시키겠다는 말에 ‘어차피 돈 낼 사람이 나중에 와도 식사를 먼저 시켜두는 것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뭐 그들만의 사정이 있겠다 싶어 일단 재료부터 손질해두기로 했다.

“하, 하하···. 그럼 재료를 손질하고 있겠습니다요. 혹시 다른 손님들이 도착하시면 불러주십쇼.”

“그래, 그러지.”

외팔이 남자에게 다른 일행들이 도착하면 불러달라 말하고 주방으로 뛰었다.

열두 명의 음식을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바삐 움직여야 하는 것.

날 듯이 주방으로 달려가 재료들을 열심히 다듬기 시작했다. 

‘뭘 만들어 팔지? 점심때니 다들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을 테고, 짜장면, 만두, 구채초육사정도면 될까? 아니지, 술을 마실 테니 닭을 몇 마리 사와야 하나?’

가련이가 청소를 끝내고 오면, 닭을 몇 마리 사 오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대접할 음식들을 정하고. 

청경채를 씻고 양파 껍질을 까고 죽순을 가지런히 잘라 준비했다.

남은 술도 확인하고.

그렇게 면을 삶을 솥을 올리고, 재료를 한참을 다듬고 있을 때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장! 주인장! 여기 주문받으시게, 손님 왔네.”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잽싸게 달려 나가자, 어느새 십여 명의 손님이 더 들어와 처음 손님들과 조금 떨어진 반대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어서옵셔!”

나중에 온 손님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주문을 받기 위해 먼저 온 손님들에게 향했다.

“뭘로 드릴깝쇼? 저희 객잔에서는 구채초육사와 사천 작장면이라는 제 독문 면 요리, 그리고 만두를 금방 준비해 드릴 수 있습니다요. 아, 자계(炙雞)도 시간은 좀 걸리지만 가능합니다.”

자계(炙雞)란 구운 닭고기.

술을 마신다면 당연히 치킨 아니겠나? 그러니 가련이에게 시장에 가서 급하게 닭을 사 오라고 해서 팔 예정이었다. 

그렇게 무슨 음식을 얼마나 시킬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손을 비비며 공손히 말하자, 외팔이가 나를 보고 씩 미소를 지으며 자기 도를 식탁 위로 척하니 올렸다.

-척

‘?’

그리고 동시에 다른 열한 명의 손님도 자기의 도를 동작을 맞추듯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식탁 위로 ‘척’하고 올렸다.

-척척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손이 바들바들 떨려오고, 망연히 외팔이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가 자기 품에서 웬 주머니를 꺼내 식탁 위에 툭 하고 던졌다. 

주머니가 열리며 안에서 쏟아진 것은 은자 십여 개.

‘이, 씹!’

-척척척

동시에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반대편 식탁의 손님들도 자신들의 검을 식탁 위에 올리고, 그중 애꾸눈에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놈이 똑같이 품에서 은자 십여 개를 꺼내 식탁 위에 올리며 말했다.

“주인장 여기도 같은 걸 주문하지, 오랜만에 다시 신세 좀 지겠소.”

악동같이 웃는 애꾸.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본 적 있는 얼굴.

‘저, 개새!’

첫날 내 객잔을 반파시키고 개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그 새끼가 분명했다. 

분노와 절망에 파들파들 떨려오는 몸.

‘그러고 보니 반대편의 팔 없는 새끼가 그럼?’

후들후들 떨려오는 몸으로 품 안에 제갈 패를 손에 꾹 쥐었지만, 형님의 당부가 떠올랐다.

“동생, 관에는 제갈가의 패를 언제라도 보여주어도 괜찮지만, 무림인들에게는 항상 조심하고 몇 번을 생각해야 하네, 제갈가의 성세가 대단 하다지만, 무림에는 그걸 신경 쓰지 않는 복잡한 은원 관계가 많으니까 말이야.”

암행어사 출두야 하는 느낌으로 꺼냈는데, ‘어라? 이 새끼 봐라?’ 하는 느낌으로 조져질 수 있다는 형님의 조언. 

가능한 이야기였다.

제갈세가는 지역구 탑 조폭, 나와바리 관리나 세력 확장 또는 타 조폭들과의 분쟁이 적지는 않을 터.

서로의 히트맨도 돌아다닐 테고, 피가 피를 부른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니 이거 제갈 꽌시, 마냥 좋은 것이 아니었다.

든든한 배경과 함께 그만큼 적도 생긴 것. 

나는 결국 제갈가의 패를 꺼내는 걸 포기하고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결심을 다지며 움직이려 할 때, 가련이가 청소를 끝마쳤는지 쪽문에서 폴짝 튀어나왔다.

땀이 송골송골 솟은 이마를 손등으로 부드럽게 훔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남미 모델 같은 모습.

사심 없이 보기는 좋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점주 어른! 저 청소 다 끝났는데···? ···? ···!!!”

부모님의 요릿집 일을 도운 경험이 많다더니, 쪽문에서 튀어나와 이쪽의 상황을 슬쩍 보는 그것만으로도 대충 분위기를 파악해버린 가련이,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부릅떠졌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기 입을 가리고 주저앉아 버렸다.

아마 첫 직장이 출근 첫날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는 충격에 다리가 풀려버린 모양.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일.

소녀 가장 가련이는 돈을 벌어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했는데, 첫 출근을 한 직장을 용역들이 폐쇄한다고 찾아오면, 저런 반응은 당연했다.

주저앉은 가련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저기 그대로 주저앉아 있다가는 직장 폐쇄가 아니라 관짝에 폐쇄될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잽싸게 양쪽 테이블을 오가며 일단 은자부터 쓸어 담았다. 

어차피 막지 못할 재난, 위로금이라도 잘 챙겨야 했던 것.

그렇게 양쪽 식탁의 은자를 잽싸게 챙기고, 그다음으로 한일은 주저앉은 가련이에게 달려가는 것.

그렇게 달려가 가련이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고는 객잔 밖을 향해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몰려온 무림인들의 꼬락서니와 내민 돈을 보니, 오늘 내 객잔은 살아남기 힘들 것 같았으니. 최대한 멀리 피하려는 것이었다.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가련이를 끌고 놈들 사이를 달리니, 양쪽에서 미친놈들의 거친 외침이 들려 오기 시작했다.

“흥! 전날 내 팔 한쪽을 가져간 원한을 오늘에서야 해결하겠군! 나 적혈문(赤血門)의 구성 네놈과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음이야!”

“네놈에게 잃은 눈알을 씹어먹으며 오늘을 기다렸다. 흑림(黑林)의 형제들이여 나 양가정이 잃은 눈알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모여줘 고맙소이다. 적혈문의 버러지에게 우리 흑림의 힘을 보여줍시다! 오오오!”

“죽여라! 한 놈도 살리지 마라!”

“우와아아아아!”

미친 사이코패스들의 광기에 찬 외침.

그들의 음성이 귓가를 가득 메우자,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죽어라!”

놈들의 외침에 좌우를 급하게 살피니 어디선가 날아오는 의자.

가련이의 머리를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아···. 사람이 죽기 전에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더니. 나의 첫 객잔이 나의 묫자리인 건가?’

바로 등 뒤에서 식탁을 밟고 날아오른 놈이 칼을 휘두르고, 한쪽에서 던진 비수(匕首)가 머리 위를 스친다.

가련이가 날아든 비수에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기겁하고, 바로 앞을 다시 한번 날아든 의자가 지나쳤다.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

날아드는 의자를 피하자, 부서진 의자 조각이 볼을 스쳐 핏방울이 튀고, 그렇게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가로지르듯 가린이의 손을 잡고 문 쪽으로 내 달렸다.

그렇게 어떻게 문 앞까지 갔는지 모르겠지만, 미친놈들 사이를 빠져나와 고개를 숙이고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퍽

순간 얼굴 앞에 에어백이 터졌다.

“꺄악!”

“크흑”

-포근

달려 나가는데 입구로 들어서던 무엇인가와 부딪힌 상황. 

앞에 부딪힌 포근한 것과 가련이 그리고 나 셋은 한 덩어리가 되어 객잔 문 앞을 데굴데굴 구를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서 감싸오는 에어백.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만, 사방에서 에어백들이 나를 단단히 보호했다.

그렇게 바닥을 구르다 한쪽에 널브러지자 들려오는 외침.

“아, 아가씨!”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자. 

내 앞에 녹색 옷을 입고 만두 두 개를 머리 얹은 묘한 색기 띤 언니가, 붉게 타오르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무례죠?”

싸늘하고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자기 가슴을 감싸고 있는 여자.

‘설마? 에어백이?!’

나는 급하게 여자의 옷차림을 스캔했다. 

잘못하면 큰일을 치를 수 있는 것, 그러나 여자의 옷차림을 확인한 순간 떠오른 것은 절망뿐.

여간 부자가 아닌 것 같은 모습. 

최고급 비단으로 휘감긴 여자의 모습에 일단 급하게 사과해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객잔에 횡래지액(橫來之厄)이 몰아닥쳐 급하게 피신하던 중이라 미처 앞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횡래지액이요?”

-콰당탕

그녀가 횡래지액이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자마자 고쳐놨던 문짝이 터져나가듯 떨어져 우리 옆을 구르고, 웬 놈이 문짝과 함께 굴러 나왔다 다시 안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갔다.

여자의 물음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부끄러움과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씨근거리던 여자가 내 횡래지액이라는 말과 손가락으로 가리킨 놈을 보고 급하게 되물었다.

“아, 안에 객잔 주인은 어, 어떻게 됐나요?”

“예? 주인이라면···.”

“이라면?”

내 입을 바라보면 침을 꿀꺽 삼키는 여자.

“저, 접니다만?”

-쿠당탕!

내 대답과 동시에 안에서 날아온 의자 하나가 우리 머리 위로 휙 하고 날아갔다.

그리고 여자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당신이 류청운 공자님이시라고요?”

“예? 어떻게 제 이름을?”

“흐응, 당신이 청이의···.”

여자는 갑자기 내 이름을 말하고는 나를 아래위로 스캔하듯 훑어보더니 인사를 해왔다.

“제갈가의 부탁을 받고 온 당문(唐門) 당영영(唐英榮)이라고 해요. 무례한 첫 만남이긴 한데 청이의 얼굴을 봐서 한번 용서해드리죠.”

지역구 탑 조폭 둘의 이름이 연달아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제갈! 당문!’

내 꽌시와 꽌시인 것으로 보이는 당문의 여자.

결국 꽌시의 꽌시면 나의 꽌시.

나는 꽌꽌시를 향해 외쳤다.

“도, 도와주시오! 소저!”

내 도움 요청에 씩 하고 미소를 짓는 그녀.

역시 지역구 탑 조폭의 핏줄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익숙한 상황인 듯 여자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부탁을 듣자마자 재빠르게 일어서 몸을 털더니, 자기 일행들을 끌고 객잔 문안으로 빠르게 들어섰던 것.

그리고 문 앞에 서서 품 안에서 꺼낸 바늘 같은 것을 사방으로 뿌려대며 일갈했다.

“감히! 당문의 땅 사천, 그것도 당문이 운영하는 객잔에서 흑도(黑道) 놈들이 소란을 피우다니! 오늘 나 당영영(唐英榮)의 손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에요!” 

능수능란한 구라와 지릴 것 같은 카리스마.

아무리 흑도 놈들이라도 무작정 공격할 수는 없기에, 명분을 만들기 위해 내 객잔이 당문의 객잔으로 순식간에 돌변했다. 

그러나 저놈들의 머리통을 쪼갤 수만 있다면 그 정도야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이다 같은 누님. 그냥 독침을 대뜸 박아버리고 오늘 너희들 다 뒤졌다는 선고까지.

여자의 행동에 밀려오는 현기증.

‘아, 이것이 지역구 조폭 중 가장 야비하고 비열하다는, 독쟁이 당문의 핏줄에 흐르는 카리스마인가?’

나는 여자의 모습에 한없이 감탄했다.

그리고 여자의 암기와 외침에 순식간에 정리된 객잔 내부에서, 여자의 이름을 들은 놈들이 저마다 암기에 맞은 부위를 부여잡고 경악에 찬 음성을 터트렸다.

“도, 독접(毒蝶)! 독접이 어떻게 이곳에?”

놈들이 당영영을 보고 놀라 까무러칠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 나는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영영을 향해 외쳤다.

“아가씨 저놈들 저놈들입니다. 얼마 전 신개장 때도 몰려와서 객잔을 박살을 내고 간 놈들이! 저놈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요!”

‘저 새끼들 정말 나쁜 새끼래요!’

마치 당문의 하인처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