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초대
내 고자질을 들은 당영영은 제법 눈치가 있는지 내 말에 빠르게 반응했다.
“류 총관 그것이 사실인가요?”
재치 있는 그녀의 말.
그녀는 나를 하인이 아닌 당문의 총관으로 만들어버렸다.
제법 케미가 잘 맞는 우리 둘.
“옛, 아가씨.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내 대답에 당영영의 입꼬리가 씰룩씰룩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곧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고정하고는 날카롭게 물었다.
“대체 왜 당문의 객잔을 두 번이나 이리 만든 것이죠?!”
그러자 외팔이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그··· 원한을 맺은 곳에서 원한을 해결하려고···”
‘아이고 뒷목이야.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또 왔다고?’
놈들의 어이없는 말에 뒷목을 잡고 있을 때 당영영의 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하찮은 이유로 당문의 비밀 객잔이 두 번이나 이리되다니, 당문의 체면을 위해서, 결국 모두 죽여 입막음해야겠군요. 흥!”
‘오오. 리셋!’
대충, 감히 전국구 급도 아닌 동네 건달 수준인 애들이, 대 당문의 사업장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그것 자체로 체면 손상이라, 싹 죽여 없던 일로 하겠다는 무서운 말이었다.
냉랭한 말투로 리셋 선언이 끝나자 그녀가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가 데리고 온 당문의 무사 여섯이 그녀 주변으로 쫙 펼쳐 서더니, 품속에서 뭔가 흉흉한 연장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담가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눈빛의 당문 무사들의 품에서 튀어나온 것은, 찔리면 아플. 아니, 뒈질 것같은 송곳, 단검, 표창 같은 아주 흉흉한 연장들.
역시 당문의 히트맨들답게 칼싸움하는데 투척 무기를 꺼내는 인성이라니.
적이라면 비겁하다 비난했겠지만, 우리 편 인성질은 언제나 든든한 법.
당영영의 찌푸려진 고운 아미(蛾眉)와 그녀가 끌고 온 무사들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자 흑도 놈들은 빠르게 꼬리를 내렸다.
“독접, 기, 기다리시오. 형제들은 잘못이 없소! 모든 것이 나 양과정과 저기 저, 구성의 원한으로 생긴 일. 우리 둘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겠소. 그러니, 형제들은 그냥 보내주시오!”
“그렇소. 몰랐다고는 하나 당문에서 운영하는 객잔을 두 번이나 엉망으로 만든 것은 당문의 체면을 훼손한 것. 우리의 목숨으로 그 값을 치르겠소. 형제들도 비밀을 반드시 지킬 것이요!”
외팔이와 애꾸눈이 당영영을 향해 간절하게 외치더니, 결연한 눈빛으로 도(刀)와 검(劍)을 들어 자기들의 목으로 가져갔다.
놈들의 그런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 당영영.
화급히 앞으로 뛰어나가며 둘을 말리기 위해 소리쳤다.
“자, 잠깐!”
‘하···. 이 새끼들···. 참···.’
책임지지 않고 저승으로 튀려는 놈들.
이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셀프로 멱을 따면 동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심장 박동에 맞춰 분수처럼 솟을 텐데 그건 누가 치울 것이며, 누가 닦는단 말인가?
가련이에게 시켰다가는 바로 졸도할 것이고, 결국 내가 다 치워야 하는데 말이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저희 목숨에 무슨 값어치가 있다고 목숨을 끊는단 말인가.
내 피해보상은 어쩌고.
아까 은자 스무 냥 정도를 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파손된 객잔에 대한 물리적 피해보상.
정신적 피해보상과 위로금이 아직 남은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련이도 정신적 피해를 저리 받았는데, 직원 복지 차원에서 좀 챙겨줘야지 않겠는가?
내 행동에 당황했는지, 뒤로 당영영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왜 그러는 것이죠. 류총관?”
나는 그녀에게 내 돌발행동에 관해 설명했다.
“저것들을 여기서 다 처리한다면 관에서도 알게 될 것이니,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두 놈의 목숨값으로 퉁치기 아니, 은원 관계를 해결하기에는 저놈들의 목숨값이 그리 가치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말입니다. 더군다나 처분의 결정은 아가씨가 하시는 것. 감히 저희 놈들이 어찌하겠다며 아가씨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다니요. 아가씨의 체면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내 말에 점차 확장되는 당영영의 동공.
그리고 목숨을 끊으려 했던 두 놈도 아주 치욕적인 목소리로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크흑! 그, 그리 모욕적인 말이···.”
“모, 목숨을 끊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놈들이 땅에 주저앉아 분루를 떨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영영이 놀란 얼굴로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흥미를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저놈들의 입은 어찌 막을 작정이지요. 총관?”
내가 송나라에 조금 살아보니 이 새끼들을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은 ‘체면’ 아무리 친절한 행동이라도 체면이 무시되면 부모 죽인 원수가 되는 것이고, 아무리 나쁜 행동이라도 체면을 세워주면 그것은 은인.
결국 저놈들의 주둥이를 막으려면, 입을 벌려 오늘 일을 터는 순간, 체면이 손상되게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리하면 됩니다.”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 아직은 멀쩡한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바구니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내가 갑자기 바구니 하나를 가지고 나오자 단체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사람들.
당영영도 대체 그걸로 뭘 하는 것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바구니를 들고 흑도 놈들의 앞으로 지나다니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자, 다들 이 안에 자신이 가진 철전과 은자를 넣으시오. 숨기지 말고 전부 꺼내 넣으시오. 숨겼다 걸리면, 당문 무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게 될 것이오. 자자”
내 행동에 모두가 어리둥절해지고, 흑도 놈들도 자기 품에서 얼떨떨한 모습으로 내가 지나갈 때마다 은자와 철전을 꺼내 바구니 안에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수금을 이어 나가며 중간중간 의심스러운 놈들을 추궁했다.
“정말 숨긴 건 없소? 뒤져서 나오면 철전 하나에 당문 무사들의 주먹 한 대요.”
센터를 까겠다며 한 놈을 겁박하자 놈이 속곳 안에서 은자 하나를 조심스레 더 꺼내 놓았다.
나는 그를 콱 째려봤다.
“이, 이젠, 저, 정말 없소이다···.”
그렇게 한 바퀴 쭉 돌고 바구니에 든 짤랑거리는 은자와 철전들을 대충 살펴보니 은자 마흔 개 정도, 아주 짭짤했다.
내 기이한 행동이 끝나자 당영영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이제 그것으로 어찌할 것이죠?”
나는 당영영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여기 대충 은자가 마흔 개 정도 모였습니다. 지금 있는 놈들이 스무 명 정도이니 한 명당 은자 두 냥씩 되겠군요. 은자 하나면 돼지 한 마리 가격. 그러니 돼지 두 마리 가격을 주고 저놈들은 자기 목숨을 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 가격이 돼지 두 마리라는 사실을 어찌 부끄러워 밖에서 말하고 다니겠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 놀란 눈을 부릅뜨고 ‘오!’ 하는 표정이 된 당영영과 당문의 무사들, 그리고 치욕으로 부들부들 떠는 흑도 놈들.
스무 명의 흑도 놈들의 입이 동시에 벌어지더니 부르짖듯 외쳤다.
“그, 그냥 죽이시오!”
그리고 당영영의 조그만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래서, 제갈···]
***
시커멓게 죽은 얼굴이 된 흑도 놈들이 모두 사라지고 객잔을 살폈다.
그래도 처음 냈던 돈값은 하겠다는 의미였던지, 아주 짧은 시간에 비교적 객잔을 골고루 작살내버린 흑도 놈들.
화는 났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객잔을 청소시켰다.
그것은 피해자가 기뻐할 만큼 충분한 사과를 받았기 때문.
원래 사과라는 것은,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보상하는 것이 사과의 시작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는 피해보상금이 있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로 가치가 있는 것은 자본 곧 돈이니 말이다.
나는 내가 가장 가치 있다, 생각하는 것으로 넉넉히 보상받았으니 충분히 만족했다.
‘어디 감히 1원의 가치도 없는 체면 따위로 퉁을 치려고.’
놀란 가련이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동생들을 데려와 객잔을 청소하는 동안 당영영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별채에 자리를 잡았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인사가 늦었습니다. 정식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류청운이라고 합니다.”
마주 앉기 전에 포권을 하며 당영영에게 정신으로 인사했다. 그러자 당영영도 자신의 소개를 해왔다.
“당문의 당영영이라고 해요. 현재 당문의 가주이신 독우(毒雨) 당지운(唐沚雲) 어른께서 저의 아버지 되세요.”
“저런 당문의 금지옥엽(金枝玉葉) 이셨군요. 구명지은(求命至恩)에 감사드립니다. 소저.”
“그런데 제갈가의 부탁을 받고 오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혹시 ‘식’ 때문에?”
제갈천 가주와 헤어질 때 식 때문에 사람을 보낸다고 하셨기에, 당영영이 온 것이 그것 때문인지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아뇨, 다른 일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로?”
무슨 일 때문인지를 묻자, 그녀가 조심스레 품 안에서 서찰을 하나 꺼내 내 쪽으로 밀며 말했다.
“제 할아버지이신 독왕(毒王) 당비령(唐飛靈) 님의 산수(傘壽)를 축하하기 위한 생신(生辰) 잔치에, 제갈천 숙부께서 제갈세가를 대표하여, 류청운 공자께 대신 참석해주실 것을 부탁하셨어요. 그쪽은 아무래도 그···. ‘식’을 준비해야 하니 그때까지 머무를 수 없다고 얼마 전에 호북으로 떠나셨거든요. 식구로 미리미리 대소사는 경험해두면 좋다고···.”
‘은퇴한 전 보스의 80세 생일잔치라는 것인가?’
갑작스러운 당문의 생일잔치 초대에 잠깐 의구심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부 나를 위한 안배.
역시 그분의 후예들이라 그런지 마음과 머리를 쓰는 씀씀이가 남달랐다.
나는 아무래도 사천에서 장사를 하는 처지, 제갈세가는 호북이 근거지니,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당문과 안면을 트라는 의미인 듯했다.
좀 전에도 ‘당문의 사천에서 무슨 짓거리냐?’ 하면서 당영영이 빼액 소리를 지르니, 흑도 놈들이 오줌 지리는 꼴이라니.
사천에서 장사를 하려면 최대한 당문과 친해져야 하는 것이 확실했다.
더군다나 그녀가 제갈천 가주를 숙부라고 칭한 것을 보면, 나의 꽌시와 당문의 가주는 의형제인 모양.
안면만 트면 뭐 나도 형제의 형제니, 형제랄까?
‘그래, 이것이 정상 루트를 타는 꽌시 관계, 꽌시 확장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제안에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당연히 그런 경사스러운 자리에는 꼭 참석해야지요.”
“그럼, 당가가 있는 성도(成都)까지 소녀가 모시겠습니다.”
그녀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조심스레 포권의 예를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녀의 고개가 들렸을 때는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자 그럼 아버지께서 시킨 일은 끝났고. 저희끼리 해야 할 계산이 남아있지 않은가요?”
갑자기 안색을 싹 바꾸고 호기심 가득한 한 마리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당영영.
“계산이라면?”
‘!’
그녀의 눈빛에서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도움을 주었으니 개평을 달라는 것.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지역구 조폭의 딸이라고 벌써 개평을 챙기는 그녀.
정말 당문의 미래가 창창했다.
‘제기랄, 있는 놈들이 더 한다더니.’
아까 수금한 은자가 든 가슴팍 안으로 조심스레 손을 넣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낭(錢囊) 안에서 열 개의 은자를 꺼내 그녀 쪽으로 조심스레 밀었다.
내 모습에 인상을 팍 쓰는 그녀.
‘하아···. 해도 너무하는구나!’
당문이라 그런지 독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의 모습.
‘독우 당지운 대협이라고 했던가? 정말 딸 잘 두셨소! 누가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이리 알뜰해서여야!’
다시 눈치를 보며 전낭에서 은자 열 냥을 더 꺼내 먼저 꺼낸 은자 위에 보탰다.
이 이상은 나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
그녀에게 이 이상은 나도 힘들다는 의미의 눈빛을 담아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돈을 달라고 했나요?”
“그, 그럼?”
“숙부께서 자기 사ㅇ 아차! 이거 비밀로 하라고 하셨지. 아무튼 식까지 공자의 보호를 위해서 신분은 최대한 비밀로 하라고 하셨으니. 그냥 청운 공자라고 부를게요?”
‘신분을 숨겨? 아! 무림의 은원관계 같은 그런 것 때문인가?’
정식으로 꽌시가 되기 전에 ‘쓱삭’ 당할까 걱정이 돼서 그런 모양이었다.
“예, 뭐 그리 부르시지요.”
내가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당영영이 조금은 부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께서 만드시는 그, 뭐더라? 자작면? 작장면? 그게 그렇게 맛있다고 숙부께서 그리 자랑하셔서, 한번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제가 오늘 그, 도움도 드렸고···.”
말끝을 흐리는 그녀.
‘아하!’
은인에게 음식 대접은 당연한 것, 나는 당영영을 향해 호통을 치며 말했다.
“어허!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
“이 류청운 은혜를 아는 사내. 오늘 아주 배 터지게 먹여드리겠습니다!”
당영영의 눈이 기쁨으로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