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병(環餠) (29/344)

환병(環餠)

심우현에서 나와 청천(靑川)을 지나자 펼쳐진 것은 끝도 없는 자연경관.

사천지방의 중심도시인 성도(成都)가 가까워지면, 주변에 위성 도시라든지 제법 큰 도시들이 많이 있어 노숙을 피할 수 있을 테지만, 내가 있던 심우현은 사천의 북쪽 경계에 있는 깡촌 중의 깡촌.

그러니 이 주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청천을 벗어나는 순간 한동안 생존다큐는 이미 확정된 여정이었다.

그리고 생존다큐의 꽃은 누가 뭐래도 먹방.

아마 무협지를 조금 읽어본 누구라도 이 상황에 먹방이라면 건량(乾量)을 떠올리겠지만, 건량이란 말린 식량을 총칭하는 말일 뿐이지 어떤 정형화된 물건이 아니었다.

미숫가루나 육포들도 모두 건량에 포함되니 말이다.

뭐 정형화된 건량이라는 것에 어울리는 것이 한 가지가 있긴 하다.

지금 당영영이 나한테 두 번째로 강탈해가 아가리에 처넣고 있는 저것 말이다.

-오도독 오독

“류 공자, 어쩜 환병(環餠 환빙)이 이렇게 달콤하지요?”

‘약 올리니? 원래 뭐든지 남의 것을 빼앗아 처먹는 건, 항상 달콤하지요!’

깍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여인. 

70년대 얄개 시리즈 주인공 같은 양쪽 볼때기 쥐어뜯고 싶은 모습. 

내 비상식량을 벌써 두 개나 강탈해 먹고, 얄미운 목소리로 미소를 짓는 당영영에 대한 내 소감이었다.

왜 내 귀한 환병이 당영영의 아가리로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느냐?

고양이상 아니랄까 봐 호기심 충만한 당영영은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계속 내 급(笈)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했다.

남의 가방에 뭐가 들어있는지가 뭐가 그리 궁금한지.

그래서 아까 잠시 쉴 때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고 말았는데, 그것이 저 환병 강탈의 시작이 될 줄이야···.

“그야 사당(沙糖)을 넣어서 그렇지요.”

내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대답하자 환병을 오도독거리면서 씹던 당영영은 손바닥을 치며 기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사당(沙糖)이 들어있었군요!”

-오도독

지금 당영영의 입속으로 사라지는 환병이라는 것은, 이 시대의 전투식량 아니, 건량 같은 것이다. 거친 밀가루에 소금을 넣어 반죽한 후 가운데 구멍을 뚫어 불에 굽는 것.

불에 구운 밀가루 반죽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주 단단하게 변하고, 사람들은 이걸 급에 걸고 다니거나 허리춤에 차고 다닌다.

뭐 크기는 만들기 나름이라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크게 만들거나, 마차 뒤에 스페어타이어처럼 묶고 다닐 수도 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여행길에 조금씩 떼어먹는 것이다.

가련이와 둘이 밤늦은 시간까지 만든 귀중한 환병 일진데. 

소금만 넣어 만들면 맛이 없기에 이 시대의 설탕인 사당(沙糖)을 조금 넣었는데, 당영영이 하나 맛보게 달라기에 무심코 내주었더니, 저렇게 맛있다며 얄밉게 자꾸만 빼앗아 먹는 것이었다.

당영영은 한참을 오도독거리며 두 번째 환병까지 모두 먹어 치운 후, 처먹느라 조용하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류 공자.”

“예, 당 소저 이젠 안 됩니다.”

“예? 아니, 저를 뭐로 보시고.”

‘자기 얼굴만 한 환빙을 두 개나 처먹고 저런 소리가 나오다니!’

그녀의 뻔뻔함에 입이 딱 벌어졌다. 내가 만든 환빙 2개면 4명은 먹을 양인 것을.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는 당영영이었다.

“그럼 무슨 일로?”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당영영이 왠지 본인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무슨?”

“저랑 청이랑 친자매 같은 사이인데, 청이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서요. 그게 궁금해서.”

오랜만에 제갈청 이야기와 그녀가 당영영에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했다.

“무슨 말씀들을 나누셨기에?”

“크흠, 그 청이의 눈을 보고 호수 같다고 하셨다는데 정말인가요?”

“아, 그것 말이군요.”

그걸 당영영에게 자랑까지 할 정도라니.

아마도 외모로 칭찬받아 본 적 없는 밀가루 반죽에,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벽안 인지라, 내 칭찬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던 듯싶었다.

원래 전생의 칭찬이라고 초등학교 때 바퀴벌레 잡고 받은 칭찬 외에는 없는 나처럼, 처음 누군가에게 칭찬받으면 강렬한 기억이 되는 법.

당영영의 표정을 보니 그녀도 푸른 눈에 대한 편견이 있는 이쪽 사람인지라, 내 말이 다소 신기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그럼 푸른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한번 설명해주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예, 뭐 모름지기 푸른 것이라는 건, 맑고 넓고 밝고 아름다운 것이지요. 물이 맑은 호수도, 하늘도, 드넓은 바다도, 모두 푸른색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푸른색이 세상 모든 색 중에 가장 아름다운 색인 것이지요. 세상을 담았다고나 할까?”

“그, 그렇게까지!”

당영영은 자기가 푸른 눈도 아니면서 새빨개진 얼굴을 하며 부끄러워했다.

하여튼 여자들의 공감 능력이란, 남자인 나는 이해 못할 부분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로 길을 재촉하는데, 당영영이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으로 부채질하며 한참을 가라앉히더니, 조용히 다시 물었다.

“류 공자?”

“예, 당 소저.”

“저···. 음··· 환병 하나만 더···”

‘에이 씨!’

나는 급에서 환병을 하나 더 꺼내 당영영에 입에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소!”

‘당문에서는 밥을 안 먹이나?’ 

무슨 딸이 막일꾼처럼 먹어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오늘은 이 정도에서 쉬죠.”

“알겠습니다. 아가씨.”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당 소저의 지시로 관도 옆에 노숙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준비라고 해봐야 큰 나무 밑에서 불을 피우는 정도.

나뭇가지를 주워오고 불을 피우자, 당문의 무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따로 명령하지 않았는데 뭔가 익숙한 모습들.

“다들 어디를 가시는 건지?”

“아, 저녁거리 잡으러 가나 봐요.”

이상하게 당영영을 비롯해 무사들의 짐이 단출하다 했더니, 식사는 현지조달이었던 모양.

일반인인 나는 꽤 여러 가지를 준비했는데, 무공이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내 급(笈) 안에는 원래 서책이 가득 있어야 했겠지만, 한문이라는 건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것이기에, 안에 가득한 것은 조리용 재료와 도구들, 비상식량인 환병부터 웍, 요리 칼, 소금과 몇 가지 향신료 등.

저녁이라 실력 발휘 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조금 기다리자 얼마 안 돼 당문의 무사들이 적당히 살 오른 노루 한 마리를 잡아 신이 난 모습으로 뛰어왔다.

“아가씨 노루를 잡았습니다.”

당영영은 노루를 보고 질색하는 표정을 짓더니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그래요, 저는 고기는 냄새 때문에 별로이니, 그냥 환병이나 먹어야겠네요. 다들 맛있게 드세요.”

내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당영영을 바라보자. 나를 바라보며 배시시 미소를 짓는 당영영.

이젠 뭐 자기 것인 양, 맡겨둔 듯한 말투였다.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당영영의 얄미운 주둥이에 환병을 물려주고, 한창 노루를 손질하려고 하는 당문의 무사들 곁에 자리를 잡았다.

나야 손님이라 그냥 있어도 되겠지만, 원래 이렇게 다들 아는 사이인데, 혼자 모르는 사이일 경우, 분위기를 살펴서 나서서 거들고 해야 자연스럽게 묻어가는 것이다.

모르는 사이라고 뒤에 멀뚱하게 있거나 혼자 뒷짐을 지고 있으면 그땐 정말 어색해지는 법. 

자고로 나처럼 눈치 빠르게 행동해야 어디 가서 굶지 않는 것이었다.

당영영처럼 눈치 없게 행동하면 볼때기를 잡아 뜯기는 것이었고.

그렇게 뭘 도와줘야 하나 살피고 있을 때 당문의 무사들이 아주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님, 공자님은 아주 운이 좋으십니다. 당문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최고의 고기를 드실 수 있을 테니까요.”

당문 무사들의 자부심 넘치는 말.

‘오! 생존의 대가들처럼 자신들만의 특별한 조리법이 있는 것인가?’

전생에 생존 전문가들의 너 튜브를 보면 각자 자기들만의 생존 요리법이 있고, 그냥 봐도 무척이나 맛있어 보인다는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떠올리며 기대하는 얼굴로 더욱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당문 무사가 자기 단검을 들어 노루의 다리 가죽을 조심스레 벗겨내기 시작했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짐승을 도축하려면 보통은 멱을 따서 방혈(放血)을 해야 하는 게 순서인데, 가죽부터 벗기고 있는 것.

몽골처럼 먼저 가죽을 벗겨 그 위에 짐승을 올려두고 각을 뜨나 싶었는데, 다리 가죽만 조금 벗기고 나자 단검으로 얇게 포를 뜨는 모습.

포를 뜰 대마다 노루의 다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대체 뭐 하는 짓거리지?’

이상한 도축방식에 잠시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데, 그때 노루의 꼬리가 움찔하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사후경직인가?’

그런데 계속해서 움직이는 꼬리, 너무 이상해 노루의 얼굴을 살피자.

대굴대굴 움직이는 노루의 눈알.

“헉!”

노루의 눈알 움직임에 놀라 뒤로 물러앉았더니, 당문의 무사들이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당문의 마비 독이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최고로 신선한 고기.”

그제야 그녀의 냄새가 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 시장에서 고기를 살 때도 갓 잡은 고기가 좋다고 생각해 닭 같은 것은 그 자리에서 잡아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인 모양이었다. 

결국 살아있는 놈을 포 뜨면 제일 신선하긴 하니 말이다.

냄새는 별개로.

도저히 피가 뚝뚝 떨어지는 누린내 나는 노루고기를 먹을 수 없어 결국 당영영 옆에 자리를 잡고 같이 환병을 깨물며 물었다.

“그런데 당문은 원래 항상 저렇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먹는 겁니까?”

“아뇨, 밖에 나오면 저래요. 원래 제일 좋은 고기는 갓 잡은 고기잖아요? 저는 냄새 때문에 별로지만.”

나는 그 소리에 제일 먼저 내 급(笈) 안을 살폈다. 

환병이 몇 개나 남아있는지.

아무래도 노숙 할때는 저것 아니면 환병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눈치 없는 당영영이 내 행동을 눈치챘는지 약간 부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크흠. 그럼 제가 환병도 얻어먹었으니 갱(羹)을 좀 끓여드릴까요?”

‘보기와는 다르게 가정적인 면도 있는 건가?’ 

갱이라면 국을 말하는 것인데.

보기에는 가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게 생겼는데, 음식을 만들어 준다니 신기할 따름.

마침 해가 지고 날이 쌀쌀해지고 있어 따듯한 국이면 좋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해주시면 감사하지요.”

내 웍을 빌려 물가로 간 그녀가 맑은 물을 뜨고 물가에서 뭔가를 잡는 것 같더니, 잠시 후 웍을 불에 올려 뭔가를 끓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타당타당

해가 져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안에서 튀어 오르는 느낌, 

국물에서 뭔가 비릿한 향이 올라왔다.

“뭔가 좀 특이한 향이 나는데?”

“제 석자갱(石子羹)은 다들 맛있다고 하니 마음에 드실 거예요.”

당영영이 한참 끓인 국을 소금으로 간하고 내가 건넨 그릇에 국자로 퍼담아 건네주었다.

뭔가 향이 매생이 국 같은 냄새.

-후루룩

숟가락으로 휘휘 젓다가 한입 떠먹으니 뭔가 미묘한 맛.

“어때요? 맛있나요? 맛있죠?”

맛있음을 강요하는 그녀.

나는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환병을 한 조각 베어 물고, 숟가락을 깊이 넣어 다시 한 수저 따듯한 국을 떠올리려 했다. 

그런데 숟가락에 끝에 걸리는 건더기, 아까 뭔가를 잡는 것 같았는데 그것인 모양이었다.

그것을 입안으로 쏙 넣어 한입 씹었는데?

-콰자작

입안에서 쏟아지는 강냉이 다 털리는 소리.

“아이구야! 내 이빨! 내 턱!”

나는 바로 턱을 부여잡고 바닥을 굴러야 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당영영의 놀란 목소리.

“어머머머머! 아니, 돌을 왜 먹어요?”

“예?! 돌? 아니, 돌을 음식에 왜 넣은 것이요?”

“석자갱 처음 먹어봐요?”

“예? 아야야···”

“아니, 물에서 이끼 낀 돌을 건져서 끓이는 국이 석자갱인데···.”

식탁 빼고 다 처먹는다더니, 진짜 별의별 음식이 다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