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
중원 야생의 거친 음식을 체험했으면 다음은 뭐다?
이제 중원의 거친 야생의 몬스터들을 만날 때.
산적(山賊), 야적(野賊), 수적(水賊) 말이다.
사천이라는 곳이 감숙(甘肅), 청해(靑海), 섬서(陝西), 중경(重慶), 귀주(貴州), 운남(雲南), 서장(西藏)의 한가운데 있어 그런지 몰라도 도적놈들이 너무도 많았다.
청천에서 광원(廣元)쪽 관도를 따라 면양까지 향하는 길에도 심심치 않게 도적을 만났지만, 무사들의 등에 박혀있는 당(唐)이라는 글자를 보여주거나.
“감히 사천 땅에서 당문에게 통행료라?”
정도의 말을 당영영이 툭 던지면 알아서 기겁하고 길을 피해줬으니, 지금까지는 별일이 없었다.
그런데 당문의 근거지에 가깝다는 면양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도적이라니.
“통행료를 내놓든지 목을 내놓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라! 크하하하핫!”
이젠 하도 들어서 식상한 멘트.
무슨 국가 공인 산적 자격증 시험이라도 있는지, 하나같이 한결같이 똑같은 멘트를 고정적으로 던져대는 도적놈들.
나는 아까 당영영과 약속한 대로 앞으로 나서며 도적놈들을 향해 외쳤다.
“감히 어디 도적놈 따위가 길을 막느냐! 지금 이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사천의 패자(覇者) 당문! 그 당문의 전설이신 독왕의 손녀이시며, 독우 대협의 따님이신, 그 별호도 아름다운 독접 당영영 님이시다! 사천 땅에서 감히 당문에 통행료라니?!”
내 말이 끝남과 무섭게 턱을 치켜드는 당영영.
눈썹이 휘어진 걸 보니 한껏 신이 난 모양이었다.
그녀가 아주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 말했다.
“류 총관 그쯤 해두세요. 도적놈들 따위가 뭘 알겠습니까.”
내 말과 당영영의 반응에 도적놈들이 기겁하며 외쳤다.
“다, 당문!”
그리고 씻지도 않은 꾀죄죄한 놈들이 당문이라는 말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했다.
“크흠, 이, 인사차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오.”
그렇게 기겁한 도적놈들을 한참 지나 한적한 곳에 이르자 당영영의 입에서 들려오는 소리.
“푸흡! 아하하! 공자님 너무 웃겨요!”
배를 잡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
그녀는 결국 쪼그려 앉아 눈물까지 흘려대며 폭소를 터트렸다.
당문의 무사들도 실실 웃는 모습.
이게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면, 자꾸 도적놈들을 만나는데, 저쪽에서도 같은 멘트만 날리고 이쪽에서도 같은 멘트만 날리는 뭐랄까?
게임에서 엔피씨를 계속 만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심심하기도 하고, 여행하며 당영영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친해진 것도 있어서 내가 제안을 한 것이다.
물론 그녀와 친해지려고 친구비로 내가 가진 환병 대부분을 상납해야 했지만 말이다.
“당 소저 다음 도적놈들이 나타나면 제가 나서서 한번 이야기를 해볼 테니, 소저가 말만 잘 맞춰주시오. 내 심심하지 않게 해드리겠소.”
“말을 맞추라고요? 흠···. 그래요. 뭐.”
그래도 그간 처먹인 효과가 있었던지 그녀는 나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래서 조금 거창하게 중세 기사들 소개하듯이 도적놈들에게 그녀를 소개한 것인데 그것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한참을 쪼그려 눈물까지 쥐어짜던 그녀가 다시 발길을 옮기며 옆에 붙어 물어왔다.
“공자님 객잔 하시기 전에는 뭘 하셨나요?”
“그냥 한미한 가문의 서생이었소.”
“뭔가 안 믿겨요!”
그렇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녀와 친해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문의 가주와 제갈가의 가주가 왜 의형제가 되었는지 같은.
“그러니까 다른 무가들은 칼이나 권, 도, 창 뭐 아무튼 그런 무기를 수련한단 말이죠. 그런데 중원에서 저희 당가와 제갈가만 그들이 주장하는 무(武)라는 것과 거리가 멀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지혜나 진법에 능한 제갈가나 독을 쓰는 저희 당가를 은근히 좀 자기들과 다른 부류라 생각하는 그런 게 좀 있죠. 그러니 두 분이 같은 처지라 의기투합하셨나 보더라고요.”
저런 근육까지 뇌로 꽉 찬 아니, 뇌까지 근육으로 꽉 찬 놈들 같으니라고.
아무튼 어딜 가나 근육쟁이 놈들이 문제였다.
대량살상무기 앞에서는 무공 따윈 하찮은 것이거늘.
독을 쓰는 애들에게 독기를 품게 하다니.
친구기념으로 립서비스를 좀 하기로 했다.
“참으로 무식한 놈들이군요. 모름지기 무(武)라는 것은, 결국 죽이는 것. 칼로 죽으면 아름답고 독으로 죽으면 더럽답니까? 어차피 죽어 썩어 없어지는 것은, 같은 것인데. 아무튼 수련만 하는 놈들이 문제입니다. 독을 다룬다는 것은, 항상 목숨을 거는 것인데,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말입니다. 그렇죠?”
그렇게 한참 근육몬들을 비난하며 발길을 옮기는데 뭔가 허전에서 옆을 바라보니 아무도 없었다. 뒤를 보니 굳어진 당문의 사람들.
‘어? 뭐 말실수했나?’
내가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자 갑자기 일곱이 와르르 달려오더니 내 주변을 감싸며 환호했다.
“공자님, 저희의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찌 저희 마음을 그리 크흑.”
“공자님, 오늘은 저희가 꼭 노루를 한 마리 잡아서, 다시금 귀한 고기를 대접하고···.”
“공자님, 오늘 저녁에는 제가 꼭 석자갱을 다시 대접하고 싶어요. 조금 더 가면 아주 깨끗한 개울이 있는데 거기 돌이 아주 희고 깨끗하고 이끼도 아주 싱싱하거든요.”
당문도 누군가에게 칭찬을 처음 받는 모양이었다.
내 주변에는 왜 이리 칭찬이 고픈 친구들이 많은지···.
그렇게 못 먹을 음식을 자꾸만 대접한다며 졸라대는 당문의 친구들과 숲길을 걸어갈 때, 갑자기 숲 양쪽의 풀이 찰랑거리며 흔들리더니, 또 몇 명의 도적놈들이 눈앞에 나타나며 외쳤다.
“여기가 어딘 줄···.”
놈들의 모습에 나는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외쳤다.
“갈(喝)!”
내 호통에 움찔하는 도적놈들.
나는 도적놈들을 향해 다시금 소리쳤다.
“감히 어디 도적놈 따위가 길을 크흡!”
그러나 뭔가에 갑자기 틀어막히는 입.
옆을 보니 당영영이 놀란 눈으로 달려와 내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보니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
대체 왜 그러냐는 투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녀가 갑자기 도적들에게 포권을 하며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녹림(綠林)의 호걸(豪傑)분들이 어쩐 일로 이곳까지?”
‘노, 녹림?’
녹림이라면 전국구급 연합폭력조직.
도적놈 중에서 날고 긴다는 놈들이 모여 위에서 고강한 순으로 72명은 선발해 연합을 만든 것.
일본 야쿠자처럼 관동 연합, 관서 연합, 동일본 연합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당영영의 예의 차린 인사에 풀숲에서 덩어리 하나가 천천히 배를 내밀고 걸어 나오더니, 나를 힐끗 보고는 당영영을 향해 말했다.
“이거 미안하게 됐소이다. 산채를 좀 옮기는 중인지라. 부득이하게 당문의 땅인 사천을 좀 지나가게 되었소이다. 망을 보던 놈이 누구냐! 어찌 당문도 못 알아보고!”
-퍽
덩어리의 주먹에 두더지 잡기 기계의 두더지처럼 움푹 들어가는 한 놈의 머리.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꿀꺽
“그럼 서로 간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당영영이 재빨리 인사하고 나를 끌고 길을 재촉하려는데, 뒤에서 덩어리의 탐탁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저놈이 아까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것 같소이다 만?”
다 같이 걸어가다 순간 멈춰선 당문의 사람들.
당문의 무사들은 위기를 감지했는지, 모두 품에 손을 넣어 연장을 손에 잡는 모습이 되어있었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
당영영이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돌아 어색한 얼굴로 그에게 대답했다.
“외부에서 일하던 저희 총관이 광증(狂症)이 도져 본가로 데려가는 중인지라, 그냥 계속 지껄이는 말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하하”
“광증이라? 그런데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놈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당영영이 내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그 신호에 나는 그간의 케미를 살려 꽥하고 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이놈들! 감히 도적놈들 따위가! 내 천년설삼(千年雪蔘)을 감히 훔치려 하다니! 이건 못 준다. 이놈들!”
그리고 재빨리 풀숲으로 달려가 풀을 한 움큼 뜯어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쓰고 아린 맛이 입안에 가득했지만 살기 위해서는 씹어야 했다.
그렇게 풀을 씹는 모습을 보이자 측은하게 변하는 도적들의 눈빛.
덩어리도 측은한 눈빛으로 당영영을 향해 말했다.
“그, 광증이라면 매가 약이라던데? 어찌 제가 조금 도움을 드려도?”
-우드득
자기 손에서 뭔가 주물러 터트리는 소리를 내는 덩어리.
그 소리에 당영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아, 아닙니다. 제가.”
-퍽
“꽤액!”
복부를 강타하는 묵직한 펀치.
가냘픈 그녀의 손은 왜 그리 매서운지.
씹던 풀을 다 토해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당문의 무사 둘이 나를 부축해 그 자리에서 재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달리듯 한참을 이동해, 큼지막한 나무 그늘에 도착하자 당영영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공자님 괘, 괜찮으세요?”
“꺼 흑···.”
그러나 얼마나 아픈지 아직 숨조차 편히 쉬기 힘든 상황.
내 모습에 무사들이 당영영을 향해 물었다.
“아가씨 설마 내공으로 치신 건 아니죠?”
“아니, 제대로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냥 적당히 친 것인데, 생각해보니 류공자는 무공을 배운 적이 없어서···.”
나무 그늘에서 한참을 누워있으니 그제야 정상으로 돌아오는 몸.
당영영이 내지른 주먹 한 방에 요단강 건너가 얼핏 보였다 사라진 기분이었다.
당영영이 수건에 물을 적셔 내 이마를 닦아주며 내 상태를 확인했다.
“공자님 정신이 드세요?”
“내 죽다 살아난 기분이요.”
“죄, 죄송해요. 그놈이 의심하는 통에”
한참을 더 누워있다 조금 진정돼 그녀에게 아까 일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녹림이나 도적놈들은 의와 협을 중시하는 무림인들이 다 때려잡아야 하는 것 아니오? 뭔가 서로 데면데면한 느낌인 것 같던데?”
“그냥 도적은 하나하나 잡아들여 관아까지 이송하기 번거롭고. 또 녹림의 경우 한 놈을 건드리면, 녹림의 칠십이채(七十二寨)가 모두 저희 표국이나 가문의 사람들을 적대하니 저희도 귀찮고, 그놈들도 저희를 건드리면 몇몇 산채는 무조건 사라지는 걸 아니 서로 그냥 피하는 것이죠.”
걍 더러워서 서로 피한다는 느낌인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제일 궁금했던 게 대체 어떻게 그놈들이 녹림인 걸 아셨습니까? 뭐라고 달리 표식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놈들을 처음 만났을 때 놈들의 외견은 구질구질한 다른 산적들과 별다른 모습이 없었기에 나도 나선 것인데, 그녀는 대체 어떻게 그들이 녹림인지를 구별했는지 궁금했다.
“아, 그것은 이제 청운 공자님도 무림에 한발 걸치셨으니 설명해 드리는 게 좋겠군요.”
당영영이 내 이마에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놈들이 든 무기가 행도(橫刀)나 박도(樸刀 포다오)였기 때문이에요.”
“예? 이전의 도적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이전의 도둑들은 대도(大刀 다다오)를 들었거든요.”
나한테는 다 같은 칼인데 무림인들 보기에는 뭔가 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계속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당영영이 다시금 자세히 설명했다.
“대도는 보통 강남의 민가에서 많이 사용해요. 풀과 나무를 베어낼 때 많이들 사용하거든요. 그렇기에 무림인들은 대도를 사용하지 않아요. 원래 민가에서 풀을 베려 만들 칼이니, 행도나 박도를 사용하면 모를까 농민들의 칼을 사용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사천은 강남은 아니지만 사천도 강남과 가까우니, 농민들이 대도를 많이 사용해 아주 흔한 칼이지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강남은 수풀이 우거지고 미개척지가 아직도 많은 땅이기에, 농민들이 낫 대용으로 정글도처럼 만든 것이 대도인데, 무림인이 모양 빠지게 정글도로 무공을 수련할 수 없는 일이니, 무술은 배운 놈들은 행도나 박도를 든다는 것.
그러니 도적 중에 대도를 든 놈은 무술을 배운 놈이 아니라 농민이 흑화한 놈인 것 그리고 반대인 경우는 무술을 배운 놈.
나는 오늘의 일을 교훈 삼아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절대 깝치지 말자.’
하찮은 요리사가 꽌시 믿고 너무 들떠 하마터면 큰일이 날뻔했던 것이었다.
나 같은 요리사 나부랭이는 겸손해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중원 무림인데 말이다.
당영영의 주먹에 의한 아린 통증이 교훈과 함께 복부에 남겨졌다.
그렇게 도적놈과 당영영의 주먹 한 대에 의해 겸손이 양껏 탑재된 나는 당영영의 손에 이끌려 이틀 후 으리으리한 당문의 현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자님 여기가 사천당문(四川唐門) 입니다.”
당영영이 문안으로 나를 안내하며 미소 지었다.
‘어디 당문의 생일상 좀 즐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