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삭빵
나는 당영영의 뒤로 다가가 재빨리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당 소저.]
“힉!”
연양이 담긴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는 접시를 사랑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가 깜짝 놀란 당영영.
깜짝 놀란 그녀는 화급히 사방을 둘러보더니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부끄러운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머릿속에 울리듯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자님, 이리 수많은 사람 앞에서 귓속말이라뇨!]
‘아! 이것은 전음?’
처음 들어보는 전음에 신기해하고 있는데, 전음을 통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연거푸 들려오기 시작했다.
[은밀하게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전음을···. 아참, 전음 못하시지···.]
그리고 뭔가 답답한 표정을 짓더니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아까 우리가 들어왔던 후문과는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나가며 내게 전음을 남겼다.
[바로 따라오시지 말고, 조금 있다 제 쪽으로 오세욧!]
뭔가 찬 바람이 씽씽 부는 목소리.
그러나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 생일잔치의 주인공인 늙은이가 등장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 바로 식사가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지녔더라도 내장까지 단련할 리는 없으니, 오후부터는 화장실이 밀려든 인원으로 범람할 것은 뻔한 일.
아니, 어쩌면 무림 고수가 식중독으로 사망하는 허무맹랑한 결과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기다리라는 그녀의 말을 참지 못하고 바로 그녀를 쫓았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재빨리 당영영을 쫓아 전각 뒤쪽 코너를 꺾자마자, 뭔가가 확 튀어나와 나를 잡아채고는, 무엇인가에 대롱대롱 매달아 안쪽 구석으로 번개같이 내달렸다.
“크헤에···”
깃발처럼 파닥거리며 나부끼는 신체, 바람 소리가 귓가를 사정없이 때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전각 뒤쪽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가녀린 팔을 꼬아 팔짱을 낀 채 45도 각도의 옆모습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당영영.
맹수 같은 눈으로 당영영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분노한 당영영의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공자님, 그 사람 많은 곳에서 마치 연인처럼 제게 귓속말을 하신 것과 소녀가 조금 후에 따라오라고 했음에도 바로 따라 나와 많은 사람 앞에서 마치 저희가 둘이 같이 은밀히 어디론가 향하는 것처럼 보이게 행동하신 연유를 제가 들을 수 있을까요?”
쉼표도 없이 ‘와다다다다’ 쏘아지는 당영영의 목소리.
그녀가 한마디를 쏘아낼 때마다 움찔거리는 나의 몸.
“왜 말씀을 못 하시는 거죠? 어서 말씀해 보세욧!”
흥분한 당영영이 내 양쪽 어깨를 부여잡고 바텐더가 칵테일 쉐이킹 하듯 나를 흔들어 재꼈다.
“아, 아아아아아니. 머, 머머머멈추셔셔셔셔야”
“네? 멈춰? 앗!”
분노로 바들바들 떨리던 당영영의 손이 그제야 멈추고, 자신이 내 몸을 흔들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내 몸에서 슬쩍 손을 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을 싹 바꾸고는 변명하듯 말했다.
“어머, 소녀가 잠시 흥분해서.”
‘아이고, 여, 역시나 완숙의 경지···’
나는 바이킹 연속으로 다섯 번은 탄 것 같은 느낌으로 한참을 비틀거린 후에 그녀를 향해 당문의 미래를 축복해주었다.
“다, 당문의 미래가. 기, 기대됩니다.”
“예?”
어리둥절해하는 그녀.
하지만 더 이상 그녀와 말을 주고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아, 아무튼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닙니다!”
당왕이 나오기 전에 어떻게든 세수해를 잔칫상에서 빼야 했기에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자, 갑자기 들려오는 뭔가 부러지는 소리.
-우지직
그리고 뭔가 뜨거운 열기를 담은, 분노한 당영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의 정절(貞節)과 절개(節槪)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요? 그래요! 어디 한번 말씀해 보시죠. 소녀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혹시라도 말씀하실 것이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소녀 참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 한번 말씀해 보시죠!”
옆을 보니 아름드리나무 옆구리에 그녀의 손가락이 한 마디 정도 틀어박혀 있었다.
-꿀꺽
나는 떨리는 입을 열어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게가···.”
“게?”
“예, 그러니까 게가···.”
“똑바로 말하세욧!”
애완동물을 키울 때 뭔가 잘못한다고 자꾸 머리를 쥐어박으면, 쓰다듬어주려고 할 때도 맞는 줄 알고 눈을 끔뻑거리게 되는데, 흡사 내가 지금 그런 상황.
나는 혹시라도 다시 한 대 처맞을까 걱정하며 급하게 내용을 설명했다.
“······게가 상해서 ······그,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들려오는 당영영의 놀란 목소리.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해욧!”
“아니, 당 소저가···”
그녀의 놀란 외침과 함께 낚아채지는 내 손목.
당영영은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손님들에게 나를 자랑하듯 깃발처럼 펄럭이며, 생일상을 가로질러 후문 쪽으로 내달렸다.
‘아까는 사람들 앞에서 귓속말 좀 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내가 하면 음흉한 의도고 제가 하면 급한 일인가? 더러워서 정말.’
그렇게 깃발처럼 나부껴 도착한 후문 안쪽 요리를 하는 곳.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요리하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제 들어온 사천계해(四川溪蟹) 어디 있죠!? 그리고 장대백은요!”
그녀의 말에 당황함으로 물드는 분위기, 누군가가 한쪽으로 달려 사라지고 사람들이 우리를 게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공간, 대나무 채반으로 덮인 무엇인가.
내가 다가가 채반을 열자 게들이 배를 까뒤집고 죽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게들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물, 그리고 미약한 악취.
“이, 이건.”
당영영의 당황한 목소리.
사천계해라면 민물 게라 그늘진 곳에 두고 물통에만 담아놨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제 들어오고 땡볕에 이틀이나 방치했던 모양이었다.
더울 때면 죽고 몇 시간만 지나면 부패가 시작되는데, 저건 도저히 먹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사천이 더운 곳임을 고려해도 상온에서 하루 이상 지났을 것이 분명한 모습.
어쩐지 아까 세수해를 확인할 때 식초의 향과 화초 향이 강하더라니.
아마 한물간 게의 상태를 숨기기 위한 것임이 확실했다.
우리가 게의 상태를 보고 당황하고 있을 때, 아까 봤던 염소수염이 어디서 처자다 왔는지, 얼굴 한쪽에 대나무 발의 모양이 잔뜩 찍힌 상태로 허겁지겁 나타났다.
“아가씨, 여긴 다시 어쩐 일로?”
그리고 우리 뒤에 열린, 게를 담아두었던 바구니의 모습을 보고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바로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놈들은 죽은 지 얼마 안 돼 그런 것이니까요. 원래 게라는 것은 죽으면 검은 물을 뱉어냅니다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메기수염.
당영영이 나를 향해 고개를 획 돌리고는 물었다.
“저 말이 맞나요? 류 공자님?”
나는 그녀의 물음에 입에서 검은 물을 흘리는 게를 한 마리 손에 들고는, 등껍질을 따 속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게는 물속에서 이 부분으로 숨을 쉽니다. 그렇기에 죽으면 여기가 제일 빨리 썩어버리지요. 검게 물들었다는 것은 이미 죽은 지 한참 되었다는 것,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지 게에서 올라오는 비릿하고 역한 냄새.
당영영이 화가나 메기수염을 바라보자 그가 부들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저 선공(膳工)의 제자인 장삼입니다. 아무리 높으신 분들이라지만 요리와 재료에 관해서는 저를 따를 자가 없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실을 가지고 다른 이들 앞에서 저를 이리 망신을 주시다니요. 아무리 높은 분들이라도 저의 체면을 이렇게···.”
자기가 대령숙주의 제자이니 뭣도 모르는 너희들이 무슨 개소리냐는 말을 참 예쁘게 돌려서 말하는 메기수염.
수염의 이야기가 길어지려 하자 당영영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지금 당문의 코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당문은 태어나서부터 후각을 훈련합니다. 독의 냄새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죠. 제 코에는 저 게가 분명히 썩어가고 있음이 느껴지고 있는데, 저것이 상한 것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옆에 계시는 공자님도 요리를 하시는 분입니다. 저희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핍박하는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메기수염이 내 손에 든 게를 냉큼 빼앗아 가더니, 게의 양쪽 아가미를 잡아 뜯으며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 코에는 그렇게 느껴지실 수 있지만, 이, 이 부분을 떼어내면 먹는데 아무 문제 없습니다요.”
부패가 시작돼 아가미가 살짝 검게 물들고 있거나, 탕이나 튀겨 먹을 것이면 아가미를 제거하고 먹을 수 있겠지만, 세수해는 날것으로 먹는 것,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리고 놈의 손에 든 게는 이미 아가미 아랫부분도 검게 물든 상태.
당영영에게 변명이 끝나자, 그가 나를 향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했다.
“요리를 하시는 분이라면? 어디 개봉의 정점(正店)이나 그런?”
정점이란 수도 개봉에서 가장 큰 72개의 술과 요리를 파는 곳을 말하는데, 그 정도 급이 아니면 자기한테 명함을 들이밀지 말라는 의미인 듯했다.
“뭐, 작은 객잔을 하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피식 웃는 메기수염.
‘이 새끼 봐라? 웃어? 이런 새끼가 선공의 제자? 재료 관리도 못하는 새끼가 왕의 음식을 책임지는 선공의 제자라고?’
보통 높은 사람의 요리를 만든다는 것은 맛은 기본이고 재료의 상태나 품질에도 극도로 신경을 쓰는데, 기본도 못 하는 놈이 절대 제자일 리가 없었다.
맞더라도 파문당한 놈이거나 아니면 사기를 치는 놈.
정말 그가 선공의 제자가 맞는지 그를 한번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장대백 선공(膳工)의 제자라고 하셨는데 그럼 생일잔치에 왜 19가지 이상 음식을 못 내는지 아십니까?”
피식 웃는 메기수염, 그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네 주제에 나를 시험하냐는 듯한 목소리로.
“그야 관가(官家)의 생일상에 20가지 음식이 올라가기 때문이 아닙니까?”
‘어쭈 이건 아네?’
관가는 송나라 때 황제를 부르는 호칭, 그는 제법 능숙하게 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 생일 집마다 잔칫상을 차리러 다니니 이건 알 수 있다 싶어 한가지 질문을 더 해보았다.
“그러면 관가(官家)의 용선(用膳)에 올리지 말아야 고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황제의 식사에 어떤 고기를 올리지 말아야 하냐는 내 질문이 끝나자 파리하게 물드는 메기수염의 안색, 그는 내 질문에 급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옳지! 딱 걸렸다 이 새끼!’
분명히 모르는 게 확실한 모습, 그런데 놈은 하라는 대답은 하지 않고 우리를 향해 버럭 화를 내더니 갑자기 몸을 획 돌렸다.
“자꾸 저를 의심하거나 핍박하신다면, 제가 직접 가주님께 이 억울함을 말씀드리는 수밖에요!”
그리고는 그는 뒷문을 나가 잔치가 벌어지는 곳을 달려갔다.
그 모습에 당황해 나를 바라보는 당영영.
“어, 어쩌죠?”
“뭘 어찌합니까? 잡아야죠!”
‘좀 전에는 나는 잡아서 그리 핍박하더니, 다른 놈은 그냥 보내준단 말인가? 내가 제일 만만하다 이건가?’
나에게만 선택적으로 분노하는 당영영의 이중적인 모습에 짜증을 내며, 그를 쫓아 급하게 뒷문으로 들어서자, 어느새 놈이 잔칫상 제일 앞에서 가주와 독왕을 붙잡고 눈물을 빼며 빽빽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억울합니다. 제가 아무리 한낮 촌연주사라도 제 요리가 모욕당하는 것은, 제 스승이신 선공이 모욕당하는 것. 저의 스승님의 체면이 모두 모욕당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주와 독왕이 아직 자리에 앉지도 못한 것으로 봐, 시작도 하기 전에 박살이 나버린 잔치 분위기.
메기 한 마리가 잔칫상 뒤집어엎고, 주인 체면에 똥칠한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급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가주가 우리를 보고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당영영과 쭈뼛거리며 잔칫상 제일 앞으로 걸어가자 들려오는 목소리.
“영영아 할아버지의 생신에 이 어찌 된 일이냐?”
“저, 그것이···.”
가주의 매서운 눈동자에 당영영이 쭈뼛거리기에, 그녀보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가며 가주를 향해 말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당 가주님.”
“이것은 가문의 일이네, 소협은 잠시 물러나 있게.”
“모두 저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제가 설명을 해드려야 함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내가 다시금 공손히 대답하자, 옆에서 독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네가 설명해 보거라.”
나는 독왕과 가주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게가 상한 것과 메기수염이 그것을 음식으로 낸 것, 그리고 그가 선공(膳工)의 제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
그러자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메기수염이 발악하듯 외쳤다.
“관가(官家)의 용선(用膳)에 올리지 말아야 할 고기는 내가 잠시 잊은 것뿐, 그것으로 나와 스승님을 모욕할 수는 없음이요. 우리 사제의 체면을 이리 손상하고 대체 어찌하려 하시는 것이오! 내 이런 모욕을 당하고 참을 수 없소이다!”
‘어쭈 그렇게 빠져나가시겠다?’
이걸 어찌 조지나 깊은 궁리를 하고 있는데 독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장 씨는 네 말이 다 거짓이며 모욕당해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네 녀석은 저놈이 사기꾼이라는 것 아니냐?”
“예, 뭐 그렇지요.”
“예, 맞습니다. 어르신.”
“그럼 내 좋은 수가 있느니라.”
독왕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무림에서는 이럴 때 실력을 입증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결투를 하는 법, 여기 모인 모두가 무림인이고 나 독왕의 생일에 생긴 불미스러운 일이니, 둘이 비무를 해서 이긴 자가 맞는 것으로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런가 류소협? 자네의 실력은 내가 보장하니 말이야.”
독왕이 나를 보며 신이 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말에 새파랗게 물드는 메기수염, 독왕이 그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뭐 둘이 무공으로 겨루라는 것은 아니네, 둘 다 요리실력에 자신이 있는 듯하니, 요리실력으로 겨루라는 것이니. 그리고 진 쪽이 평생 요리를 그만두는 건 어떤가?”
독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메기수염새끼가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좋소이다!”
‘이 새끼가 감히 캐삭빵을 받네?’
사기꾼 따위에게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저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