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유(西施乳)
“꽃을 피운다고요? 그건 무슨 요리법이죠? 어? 증(蒸)이나 갱(羹)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나요?”
내 꽃을 피운다는 말에 토끼 눈으로 묻는 당영영, 예상한 반응이었다.
송대 복어 조리법은 두 가지, 증(蒸)과 갱(羹) 증은 쪄내는 것을 말하고 갱은 국.
이 시대의 복요리는 대부분 찜이나 탕으로 먹었는데, 그것은 복어 손질 기법이 아직 체계화되지 않아 민간에 복어의 제독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두 가지 요리법으로만 복어를 조리했기 때문이었다.
그 방법은 충분히 가열해 해독초와 요리하는 것.
송대 사람들은 노순(蘆筍), 수근채(水芹菜) 그러니까 아스파라거스와 미나리와 같이 복어를 조리하면 아스파라거스와 미나리가 복어의 독성을 중화시켜준다고 믿었다.
그리고 충분히 가열하면 복어의 독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회는 꿈도 못 꾸고 무조건 미나리와 아스파라거스를 잔뜩 넣어 푹 찌거나 끓이는 방법으로만 먹는 것.
솔직히 이게 복요리인지 채소 요리에 복어가 조미료로 들어간 건지 모를 정도.
물론 복어의 독은 테트로도톡신이라는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는 독 중 가장 강력한 독의 일종이고, 지금 손질되어 순살이 되어있는 살아있는 황복 한 마리에는 성인 33명을 죽일 만큼의 독이 있다.
그리고 전생에서조차 해독제 따위는 발견되지 않았던 맹독.
더군다나 이 독은 열에 비교적 강하기에 200도 이상으로 가열해야 조금씩 분해가 시작되기에 일반적인 조리 방법으로 결코 제독할 수 없거니와, 해독제가 없으니 미나리나 아스파라거스 따위로 해독이 될 리는 만무했지만 말이다.
뭐 이 시대에는 복어에 중독돼 마비가 시작되면, 화장실에서 맑은 똥물을 퍼와 먹이는 것이 복어 중독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라 믿었으니, 미나리 아스파라거스와 끓이고 찌는 것 정도야 양반이지만 말이다.
놀라 되묻는 당영영에게 복어회를 담아 올릴 접시를 부탁했다.
“제가 지금부터 만들 것은 생어편(生魚片)입니다. 그러니 큰 접시나 쟁반을 준비해주시겠습니까?”
“새, 생어편? 괘, 괜찮을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당영영은 불안한 얼굴로 쭈뼛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 어디선가에서 큰 은쟁반을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공자님, 이 정도면 되나요?”
크기는 괜찮은데 은쟁반이라면 금속인지라 혹시라도 회의 색이 변할 수도 있는 것, 나는 다른 쟁반을 부탁했다.
“색이 진한 자기(瓷器) 쟁반이면 충분합니다. 은쟁반은 음식의 색이 변할 수도 있어서요.”
내 말에 당영영이 깜짝 놀라, 말도 안 된다는 듯 대답했다.
절대 안 된다는 목소리로.
“공자님, 오늘은 할아버지의 생신이고 손님들도 와계시니 자기 쟁반은 절대 안 돼요.”
당영영의 말이 무슨 말인지 기억을 되짚어보니,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아차, 그렇지요. 그럼 어쩌나. 은이나 금이 아니면 되는데···.”
“홍칠(紅漆)한 나무쟁반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가요?”
“아, 좋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당영영이 다시금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 나갔고, 그사이 식탁에 복어가 담겨있는 자기 그릇을 슬쩍 만져보았다.
매끄러운 감촉과 아름다운 색, 이 시대 그리고 천년 후에도 최고의 미술품으로 찬사받는 송나라 도자기.
그런데도 당영영이 손님상에 자기 그릇을 낼 수 없다고 한 것은, 우습게도 송나라에서 자기는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송나라의 자기라면 전생에는 수십, 수백억을 호가하는 대단한 것인데, 정작 송나라 부자나 귀족들은 자기는 서민들이 사용하는 것이라며 멀리했고.
귀한 손님이 오면 최소 홍칠한 나무 그릇이나 은식기. 금식기를 주로 사용했다.
그러니 당영영이 할아버지 생일상에 자기 쟁반을 낼 수 없다고 말한 것.
전생이었으면 다들 놀라 기절할 말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천년 후에는 보물이 될 쓰레기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쓰다듬을 때, 잠시 후 당영영이 홍칠이 된 사각 나무쟁반을 가지고 들어왔다.
몇 가지 무늬가 들어간, 아름다운 접시.
복어회를 올리기 나쁘지 않은 좋은 접시였다.
곧바로 새 도마를 가져와 복어살을 올리고 복어의 살점을 뜨기 시작했다.
회칼이 아니더라도 중식 요리사라면 채도로도 무엇이든 얇게 썰어낼 수 있고 그것은 복어의 살점도 마찬가지.
조심스레 손을 움직여 살짝 옆으로 칼을 넣어 복어의 살을 부드럽게 저며내기 시작했다.
투명하고 얇게 접시 바닥의 모양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얇고도 얇게···.
한점을 얇게 떠올려 접시 위에 조심스레 깔자, 보일 듯 보이지 않은 회 한 점.
“공자님 꼭 없는 것 같아요!”
당영영의 놀랍다는 목소리가 회를 뜨는 내 귓가에 들려왔다.
“복어의 살은 단단해 두꺼우면 질기다고 느껴지니, 최대한 얇게 떠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어를 한두 번 다뤄보신 솜씨가 아닌 것 같아요. 칼솜씨가 대단하신 것 같아요. 마치 검을 수련한 검수들처럼.”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나의 실력을 인정하다니.’
이제야 내 실력을 인정하는 당영영의 목소리에 턱을 조금 치켜들고, 이제야 나의 위대함을 알았느냐는 투로 물었다.
“제가 그러니 부엌은 저의 수련장이고, 저는 무공을 수련하는 마음으로 요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당영영이 볼을 약간 붉히며 대답했다.
“공자님은 열심히 요리하는 모습이나 그냥 계시면 멋진데, 그 입만 좀 어떻게···.”
“크흠!”
당영영의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고 급하게 목을 가다듬으며 회를 떴다.
하여튼 칭찬도 그냥은 하지 않는 당영영, 얄밉기가 그지없었다.
그래도 당영영과 만나고 처음으로 그녀에게 존경의 눈빛을 받으며 손을 움직였다.
칼이 한번 번뜩일 때마다 손끝에 생겨나는 잠자리 날개같이 얇은 회 한 점.
그 회 한 점이 하나씩 하나씩 접시를 수놓고, 천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은 아름다운 꽃 한 송이.
지금 내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넉 장의 꽃잎과 암 수술로 이루어진 푸른색의 꽃.
그 꽃을 떠올리며 꽃잎은 넓게 핀 회의 모음으로, 암 수술은 회를 돌돌 말아 표현했다.
그렇게 잠시 후 접시에 온전히 나타난 것은 당문의 꽃 바꽃.
사각 접시 위로 맹독을 머금은 치명적 아름다움을 가진 바꽃 한 송이가 아름답게 피어났다.
“고, 공자님. 저, 정말 꽃이 그것도 당문의 꽃 바꽃이···.”
당영영은 양손을 모으고 그냥 뻑 가버린 얼굴.
“그야 요리에 제가 본 당문을 담았으니까요.”
조금 멋있게 대답해 주고 당영영이 멍한 얼굴로 접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복어의 정소를 잘라 작은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회를 찍을 소스를 두 가지 준비했다.
진한 노두유에 물을 타 농도를 떨어트리고 거기에 식초를 많이, 이것이 회를 찍을 간장.
간장이 없으니 중국 간장인 노두유에 물을 탔고, 식초를 많이 탄 것은 이 시대의 입맛을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전생에는 회가 마치 일본에서 온 요리인 듯 스시가 고유명사화되어버릴 정도였지만, 실제로 회는 중국, 일본, 한국 각자의 고유한 요리.
내가 살던 시대였던 현대의 중국은 회 문화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이 시대에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의 이름이 금명작회(金明斫鱠) 강에서 잉어 같은 민물고기를 낚시로 잡아, 바로 건져 채 썰어 식초와 화초 등으로 버무려 먹는 것.
세수해도 마찬가지지만 이상하게 생으로 먹을 때는 식초를 치는 것이 이 시기의 문화인 것이다.
그렇게 간장까지 준비되자 다음으로 준비한 것은 참기름에 소금을 넣은 기름장.
복어의 정소(精巢)를 찍어 먹기 위한 것.
모든 음식이 준비되자 당영영의 손에 쟁반을 들려 밖으로 향했다.
이제야 당영영이 뭔가 제대로 할 일이 생긴 것.
당영영과 접시를 나눠 들고 병풍 밖으로 나가자 메기수염은 나보다 요리를 일찍 끝냈는지, 이미 음식을 가져가 사람들에게 품평을 받고 있었다.
“이것이 화취암자(花炊鵪子) 관가(官家)의 용선(用膳)에 오르는 요리이지요.”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이는 메기수염.
화취암자가 황제의 수라에 오르는 음식은 맞으나 놈의 앞에 놓인 접시를 보니 저것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화취암자는 꽃과 함께 볶은 메추리 고기인데 저놈이 내놓은 것은, 구운 메추리에 꽃장식을 한 것뿐이니 말이다.
놈은 자기가 승리라도 한 듯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나를 바라봤다.
메기 새끼 수염을 어찌 잡아 뜯어야 잘 뜯었다 하나 생각하며, 어느새 새것으로 교체된 독왕의 생일상 앞으로 다가가 쟁반을 내려놓자, 무림인들이 다들 내 쟁반을 바라보고 감탄 어린 찬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저리 아름다운 요리는 처음 봅니다.”
“하돈으로 무엇을 어찌 만들면 저리 아름답게?”
“정말 대단합니다. 쟁반 위에 꽃 한 송이가 피어있습니다.”
독왕도 내 접시에 핀 바꽃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물어왔다.
“그래, 자네의 음식은 이름이 무엇인가?”
“하돈생어편(河豚生鱼片)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찬사도 잠깐 하돈의 생고기라는 말에 웅성거리는 무림인들, 무림인들은 복어회라는 말에 깜짝 놀라 저마다 소리를 쳐댔다.
“하돈을 생으로?”
“하돈을 날것으로 먹는단 말인가?”
“끓이거나 노순(蘆筍), 수근채(水芹菜)가 없다면 해독은 어찌하고?”
장내가 내 복어회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독왕이 손을 들어 술렁이는 장내를 진정시키고 무림인들을 향해 물었다.
“자, 이 하돈생어편을 드실 분이 계시오?”
독왕의 말에 서로 눈치만 보는 무림인들, 무림인들은 복어회를 먹으면 죽는 줄 알고 다들 딴짓만 하고 있는 모습.
그러자 독왕이 나를 향해 물어왔다.
“사람들이 먹고 비교해야 누가 이겼는지를 판가름할 텐데 이러면 네가 이길 수가 없구나. 어떠냐 방법이 있느냐?”
지금까지 날카로웠던 반응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친근한 목소리.
마치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모습.
갑자기 달라진 반응에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무림의 호걸들께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리하거라.”
독왕의 허락이 떨어진 후 나는 포권을 하며 무림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 손에는 복어의 정소가 든 작은 접시를 들고.
“자고로 복어는 영웅, 호걸만이 먹는 음식입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손에 든 이것. 여기, 이 하얀 것이 하돈의 정(精)입니다. 오왕 부차를 자기의 미모에 빠트려 나라를 망하게 한 여인, 경국지색(傾國之色) 서시(西施)의 유(乳)라 불리는 것이지요. 그 맛이 진귀하여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의 젖이라고 알려진 이 하돈의 정. 이 정도면 무림의 호걸분들께서 목숨을 걸고 드실만한 음식이 아니 옵니까? 침어(魚沈) 서시유(西施乳)를 과연 어느 호걸께서 맛보시겠습니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녀의 젖에 현혹된 무림인들이 여기저기서 급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마려워서 못 참겠다는 목소리로.
“어허허허! 자네가 무림인들을 좀 아는구먼! 그렇지! 그 정도는 되어야 무림인들이 목숨을 걸고 먹지 않겠나? 나 팽가의 가주 팽무환이 목숨을 걸고 형제의 요리를 맛보아주겠네!”
“한번 나섰으면 끝까지 나서야 하는 법, 나 화산의 태청양도 빠질 수 없지. 소협 나 또한 소협의 음식을 맛보아주겠네.”
“여기 나도 있네···.”
“물론 나도···”
아내와 함께 오셨던 분들이 앞으로 나섰다 아내들에게 옆구리를 꼬집힌 채 끌려 들어가고, 무림인들은 저마다 나서 먹어보겠다고 목소리를 키워댔다.
무림인들이 좋아하는 것이 자화자찬이고, 자기 일대기에 ‘내가 당문에 가서 말이지? 살아있는 복어의 생 살점을 서시의 유와 함께 먹고 왔다는 것 아닌가!’ 정도의 기록을 추가할 수 있는 기회인데 누구라도 마다할 리가 없었던 것.
당문에 가서 독이 가득한 음식을 먹고 돌아왔다는 것도 자랑할만한 업적인데, 거기에 미녀의 젖?
더군다나 여기 모인 사람 대부분은 대략 40~50대, 이 나이대 형님들은 이런 음식에 환장하시는 편이시다.
내가 아마 해구신(海狗腎)을 요리했으면 처음부터 서로 먹겠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 분명할 정도로.
그러니 복어회 절판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