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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의 코 (39/344)

당가의 코

“허허, 쫄깃한 살과 그 안에 느껴지는 청담(清淡 담백함)! 그리고 마지막에 느껴지는 첨(甜 단맛)! 어찌 생선에서 첨(단맛)이 느껴진단 말인가?!”

첫 시식에 참여한 소도둑놈처럼 생긴 팽가의 가주 팽무환이 복어 살점을 하나 입에 넣고 씹더니, 그 맛을 음미하고는 자신의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하돈의 맛이지요. 그리고 하돈 중에 가장 최고로 치는 하돈이 지금 가주께서 드시는 장강하돈(長江河豚)입니다.”

“오오, 이것이 장강의 하돈이란 말인가?”

내 설명에 뭔가 감동에 젖어 드는 팽가의 가주.

전생에도 유일하게 한국과 중국에서만 잡혔던 것이 이 황복. 성수기에는 황복 1kg에 50만 원이 넘어갈 때도 있었으니 정말 더럽게 비싼 물고기인 것이 황복이고, 수많은 복중에 최고로 치는 것도 이 황복.

살의 단단함과 달콤함이 어느 복보다 월등하고, 산란을 위해 강으로 올라오는 4월에서 6월 사이에만 잡히니 그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할까?

그가 황복을 맛보고 그 맛을 음미하고 있을 때 작은 그릇에 소금장을 찍어 복어의 정소를 준비했다.

“자, 이것이 서시유. 영웅과 호걸만이 미인을 취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지요? 이 맛을 보시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한번 맛보시지요.”

“그래, 어서 이리 줘보게.”

내가 넘기는 복어의 정소를 다급히 넘겨받은 팽가주는, 내 손에서 그것이 자기한테 넘겨지자마자, 그것을 다급하게 자기의 입으로 가져갔다.

순식간에 팽 가주의 입으로 참기름과 소금이 살짝 뿌려진 복어의 정소가 호로록하고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참기름과 뿌려진 소금의 맛 후에 느껴지는 복어 정소의 진한 풍미에 그가 놀란 눈을 부릅뜨더니, 복어의 살점을 먹을 때 와는 다르게 입을 아주 천천히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오물거리는 입을 따라 무림인들의 시선이 주목되고, 장내가 아주 고요가 흐르기 시작했다.

팽 가주의 움직이는 입을 따라 침을 꿀꺽 삼키는 사람들.

그중 한 명이 참지 못하겠던지 팽 가주를 향해 물어왔다.

“어, 어떻소?! 맛을 이야기해주셔야 할 것 아니오!”

입만 천천히 오물거리는 것이 답답했는지 자기 가슴을 탕탕 두리는 남자.

팽 가주가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는 정소를 꿀꺽 삼키더니, 무척이나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물어왔다.

“크흠··· 한 번 더 먹어봐야 제대로···”

소도둑놈처럼 생겨서는 한 번 더 먹어보고 싶어 잔머리를 굴리는 팽가의 가주.

그러나 그런 그의 잔머리는 금방 다른 무림인들에게 간파되었다.

“하돈의 정이 많지 않은데, 모르겠으면 다음 사람이 확인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맛을 보고도 맛을 모르겠다면, 다른 사람이 먹어봐야 하지 않겠소?”

사람들이 어디서 수작질이냐는 듯 팽 가주를 향해 불만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팽 가주는 목을 크흠 거리며 괜한 먼 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음 순서인 매화 오타쿠 화산 장문인이 앞으로 나서자, 팽가의 가주가 아쉬운 듯한 말을 남기며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것은 뭐라 표현할 길이 없소. 일단 화산의 장문인께서도 드셔 보시구려. 내 뭔가 맛을 말하고 싶으나 그냥 한번을 더 먹어봐야 한다는 생각만이 드는구려.”

팽가 가주의 말에 무림인들이 그에게 무척이나 실망한 표정을 보내고, 곧 다음 순서인 화산의 장문인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집중된 시선 속에서 화산의 장문인이 복어 한점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입을 오물거리다가 흘러나오는 그의 감상.

“살의 단단함과 쫄깃함이 이루 말할 수 없고, 팽가주의 말대로 담백함 또한 일품이요. 마치 죽순에서 느껴지는 그런 담백함이랄까? 그리고 마지막에 혀끝에 느껴지는 단맛이라니. 하돈이 이리 맛있는 생선일 줄이야. 이것은 마치 자(蔗 사탕수수)를 씹으면, 느껴지는 그런 단맛이요. 마치 매화꽃의 향기처럼 은은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허허 정말 신기하구려.”

역시 오타쿠의 수장답게 자신이 사랑하는 매화꽃의 향기를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 진정한 오덕이랄까?

그의 맛 평가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똑같이 정소를 준비해주자, 그도 정소를 입안에 쏙 머금고는 천천히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잠깐 맛을 음미한 화산의 장문인이 급하게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아니, 대체 입 안에 있던 것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캬! 저런 오버액션이라니.’ 

화산 장문인의 오스카급 연기에 감탄할 때 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매화 꽃잎처럼 부드럽고,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무 아래를 거니는 것처럼 진하게 취해버리는 맛이라니···. 이것이 경국지색··· 영웅, 호걸을 홀리는 맛이로구나···”

그리고는 화산의 장문인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오타쿠는 어느 시대나 저것이 문제였다. 

저희만 아는 방식으로만 표현하니 일반인들은 알 길이 없는 것.

‘그놈의 매화타령은 진짜!’

머릿속에 전생의 오덕들이 좋아하던 ‘오레가! 마모루!’같은 대사 따위가 잠시 생각났다.

결국 사람들은 답답함이 풀린 것은 몇 명의 시식이 더 이어지고 독왕과 가주, 그리고 음식을 거들었던 아니, 지켜봤던 당영영까지 시식을 끝낸 후였다.

“마치 진한 내(奶 우유) 같군요. 너무 진해서 입안이 끈적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당영영의 일반적인 설명이 끝나고 나서야 무림인들은 복어의 정소의 맛을 어느 정도 이해한 듯한 얼굴이 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진한 우유라고 표현한 것이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된 모양이었다.

송나라에서는 우유를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유행이었는데, 복요리 중에도 우유로 끓인 수프(탕)가 있고 소동파가 개발한 조리법 중에 옥삼갱(玉糝羹)이라는 우유 찹쌀죽이 있을 정도였으니 송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우유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그런 이유로 당영영이 복어의 정소를 진한 우유라 표현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분위기가 될 수 있었던 것. 

돼지고기가 몸에 안 좋다는 것처럼 우유는 몸에 좋고 맛있다는 생각들이 송대의 자연스러운 문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품평이 끝나자 독왕이 좌중을 향해 질문했다.

“자 그럼 요리의 승자는 누구인가?”

동시다발적으로 외쳐지는 한 명의 이름.

‘누구긴 누구겠나 당연히 나지.’

한쪽 손으로 귀를 기울이는듯한 동작을 취하며 사람들의 찬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당연히 류 소협의 요리가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접시에 피어난 꽃으로 당문을 표현한 것은 물론이고, 재료로 복어를 사용함으로써 당문에 가장 어울리는 요리를 만들어냈으며, 또한 맛은 분명 죽음을 무릅쓰고 먹을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였으니. 하돈의 정과 하돈의 고기를 먹어본 자라면 당연히 류소협의 승리를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이 자리가 무위를 겨루는 비무의 자리였다면, 류소협은 이미 후기지수를 넘어선 경지. 이 자리에서 그에게 우리가 별호라도 만들어주는 것은 어떤지요? 다들 어떠시오?”

“좋소! 좋소이다!”

그렇게 갑자기 결정된 나의 별호는 식룡(食龍).

‘중원식 공개 능욕인가?!’

나의 첫 별호가 용이라는 데는 만족했지만, 앞에 식이라는 게 붙어서 무슨 키메라 같은 느낌에 치욕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 때. 옆에서 메기수염의 째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인정할 수 없소이다!”

놈의 목소리에 한창 흥이 올랐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잔치 음식을 하라고 데려다 놨더니 아까부터 잔칫상을 뒤집어엎는 메기수염.

아마 이제 평생 요리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메기수염이 악을 쓰며 외쳤다.

“날것으로 낸 하돈은 저자의 요리실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하돈 자체가 뛰어난 것, 저자가 한 것은 한낱 칼질. 이것은 요리실력을 겨루는 것이니. 제가 졌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요.”

놈의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는 무림인들.

무림인들의 빈축 속에서 놈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무림의 영웅 호걸분들은 다시 살펴봐 주십시오!”

당영영이 여자들 특유의 비난 어린 표정으로 메기를 쏘아보고 독왕이 비릿하게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 저리 말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독왕의 물음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어르신 제가 드린 하돈의 맛은 훌륭하였습니까?”

내 물음에 독왕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내 아주 만족하였느니라. 네 입보다 네 실력이 뛰어남을 이 독왕이 인정할 정도로···.”

칭찬도 곱게 하지 않는 것이 당가의 내력임을 확인하고, 사람들의 시선과 독왕의 미소 속에서 천천히 좌중을 향해 포권을 하며 말을 시작했다.

“하돈을 맛보셨으면 아셨겠지만 하돈의 고기는 아주 단단합니다. 제가 종이처럼 얇게 하돈의 포를 뜬 것은 실력을 과시하거나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닌, 조금만 두꺼워도 무척이나 질겨 하돈의 고기를 먹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화 오타쿠인 화산의 장문인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이었다.

“요리란 자고로 재료 본연의 맛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내기 위한 행위. 한낱 칼질뿐이더라도 거기에는 하돈을 최상의 상태로 사람들에게 내기 위한 제 요리의 기술이 녹아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찌 제 칼질이 요리가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제 칼질이 요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흡사 검을 연마하는 자들에게 그것은 한낱 칼질인 뿐이지 무공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 오타쿠 대장이 분노하고 ‘아니, 저 새끼가 그런 말을 한 거라고?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하는 표정으로 검이나 도를 찬 무림인들이 메기를 잡아 죽일 듯이 바라봤다.

오타쿠들의 취미를 부정하는 것은 곧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 검, 도 타쿠들이 분노했다.

마치 곧장 칼이라도 뽑을 것 같은 모습으로.

그 모습에 메기가 기겁하며 외쳤다.

“애, 애초에 게, 게가 상하지도 않았는데, 이리 요리 비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보, 보십시오, 제가, 이리이리 먹을 수 있는데, 이것이 왜 상했다는 것인지···.”       

메기가 사료를 주워 먹듯 세수해를 연신 드링킹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했지만, 비무를 주선한 독왕의 권위까지 무시하는 망발에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분위기.

독왕이 자리에 앉아 천천히 입을 열어 메기에게 말했다.

“자네가 무림인이 아니라 뭔가 착각하는 것이 있구먼?”

“예? 제, 제가요? 무, 무엇을?”

놈이 독왕의 말에 자기가 무엇을 착각했는지를 묻자, 독왕이 그를 향해 아무 감정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상을 보거라. 세수해가 어떤지.”

독왕의 말에 나와 메기수염이 식사가 한참 진행된 상을 바라보자, 세수해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지 모두 처음 그 상태 그대로 상위에 놓여 있었다.

“세, 세수해가 어째서?”

메기수염이 망연하게 중얼거리자 독왕이 대답했다.

“영영이가 아까 세수해가 상한 것을 확인했다고 저 녀석이 말했으니,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이다. 당가의 코가 그것을 상했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네 말을 믿겠느냐. 세수해에 손을 댄다는 것은 당가의 코를 의심하고 곧 당가의 체면을 무시하는 일. 무림인들이 신뢰하는 것은, 너의 세 치 혓바닥이 아니라 당문.” 

자기 할아버지의 말에 당영영이 나를 바라보며 자기 코를 삐쭉거렸다.

자기 코가 개코라는 걸 자랑하듯이.

그리고 뒤로 들려오는 망연한 메기수염의 목소리.

“하, 하지만 게, 게는···”

그의 망연한 목소리를 자르며 독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뭐 그런 것도 다 중요하지 않으니라.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내가! 나 독왕이! 저 게가 상했다고 하면 저것은 상한 것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 되는 것. 그러니 애초에 너희가 비무를 하는 것에 게가 상했는지 안 상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니라. 내 저 얄미운 녀석, 겁이 나 좀 주고 콧대나 좀 꺾어주려 한 것이니 말이다.

뭐 애초에 저놈의 상대도 되지 못하는 놈이었던 모양이지만. 내 정확히 말해주마. 저 게는 상했고 네놈은 내 생일상에 상한 게를 내놓아 무림의 영웅호걸들 앞에서 내게 망신을 주어 체면을 훼손했음이야.”

‘오오···.’ 

노망난 늙은이가 제정신을 차리니 당문 무공의 특징인 사이코패스가 발현되었다. 

지려버릴 것 같은 포스.

독왕이 눈을 부라리며 놈에게 물었다.

“대답을 잘해야 할 것이야. 진정 네놈이 선공의 제자가 맞느냐?!”

그러자 메기수염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사, 살려주십쇼.”

메기는 결국 무당개구리 두 마리에게 붙잡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그리고 장내가 정리되자 독왕이 좌중을 향해 미안함이 가득한 음색으로 말했다.

“이거 흥이 깨졌는데, 내 하돈을 좀 더 내올 테니, 모두가 충분히 맛볼 수 있게 같이 하돈을 즐기심이 어떠하겠는가?”

“좋습니다! 아직 못 먹어본 자들이 많습니다. 어르신!”

“이번에는 저희도 꼭 먹어보고 싶습니다!”

독왕이 나를 향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물었다.

“원래 생일잔치에 초대된 손님은 생일인 자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법. 내 자네에게 어떠한 선물도 받지 못했으니, 선물로 이 정도 부탁은 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어르신.”

복어로 만든 회와 탕, 튀김이 독왕의 첫날 연회 상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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