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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독제독(以毒制毒) (42/344)

이독제독(以毒制毒)

당영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모처럼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당 소저, 제가 가진 재주로 가주를 치료할 수는 없겠지만, 독왕께서 돌아오실 때까지는 시간을 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하고 성공할 줄도 알 수 없는지라···”

일단 보험을 깔아두어야 했다.

내가 아는 것이 백 프로 된다고 확신할 수 없었고, 좋은 의도로 나섰다가 일이 잘못되면 모든 책임이 나에게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판에서 누가 흔든 것도 아닌데, 나 혼자 독박으로 따따불을 뒤집어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장례식이 아직 열린 것도 아닌데 나만 먼저 입장해 화투라도 치는 기분.

내 말에 당영영이 간절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서,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일할··· 그 아래 일수도··· 다만 제가 복어를 다루니 복어 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기에 말씀드리자면, 가주께서는 한나절 그 이상은 못 버티실 수도 있습니다.”

내 말에 새카맣게 물드는 당영영의 안색.

전생에 호텔 수습이 끝나자마자 스파르타식으로 복어를 손질하게 하는 통에 ‘이것이 대륙의 패기인가?’ 생각하며 덜덜 떨며 복어에 중독되면 대체 어찌 되는지, 과연 해독제는 있는지.

인터넷과 학술지를 뒤져가며 공부한 적이 있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양에 중독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두 시진(4시간) 정도 지나버린 상황.

치사량의 테트로도톡신을 섭취하면 성인 남자는 최대 6-12시간이 한계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독공을 익힌 당가의 가주라 하더라도 아마 최대 12시간 내외가 한계.

이제 테트로도톡신의 영향으로 슬슬 호흡이 가빠져 올 것이고 결국에는 그것으로 사망할 것이 분명했다.

테트로도톡신은 운동신경을 마비시켜 호흡을 멈추게 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니 말이다.

손을 덜덜 떨던 당영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공자님, 자, 장로님들과 상의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지요.”

자기 아버지의 생사를 자기 손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당영영은 휘청이며 장로들과 상의를 원했고, 우리가 동굴 밖으로 도착하자 밖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저, 저기 나옵니다. 아가씨께서 나오십니다.”

동굴밖에 얼굴을 드러내자마자 몰려드는 사람들과 사방에서 밀려드는 물음.

“아가씨, 어찌 되셨습니까?”

“소협, 가주께서는?”

“가주는 어떻습니까? 설마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사람들의 물음에 당영영이 나직이 말했다.

“공자께서 치료는 할 수 없어도 할아버지께서 도착하실 때까지 시간을 끌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당영영의 말에 장로들과 모여들었던 무사들이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오오! 정말입니까?! 정말 신의(神醫)가 따로 없습니다.”

“제갈청 아가씨를 치료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역시.”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기 전에는 말이다.

“다만 성공할지 말지는 알 수 없다고··· 성공해도 그 가능성이 일 할도 안 된다고 하는군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얼굴이 당영영과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침통해진 분위기, 무거워진 공기가 동굴 입구를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이들의 감정이 대략 어떠할지는 상상할 수 있었지만, 이들이 이 감정에서 빠져나와 장로들과 당영영의 어떤 결정이 있기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그럼 소저, 장로님들과 상의하고 계시지요. 시간이 촉박하니 저는 먼저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렇게 당영영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등롱을 하나 들고 산길을 내달렸다.

사람이 오가는 길이 있어 그나마 산길은 달릴 만했는데, 곧 당문의 무사 둘이 동굴 쪽에서 달려와 내 양옆으로 따라붙었다.

“소협, 호위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예, 헉헉 가, 가시지요.”

당문의 무사들과 어두운 산길을 내달려 향하는 곳은 내 힐링 포인트.

당가 안쪽의 독초로 이루어진 후원.

후원 안쪽으로 들어서자 어둠이 내려앉은 후원은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정자 쪽으로 향하는 길에 핀, 낮에는 만개했던 꽃들이 모두 봉오리를 오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되감은 듯한 어둠이 깔린, 그 봉오리를 오므린 꽃들 사이사이를 지나 한곳에 주저앉았다.

“헉헉···”

산길을 달려오느라 숨이 차올랐지만, 시간이 급박하니 숨을 몰아쉬며 봉오리를 오므린 꽃 중 하나를 맨손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내 기이한 행동에 두 무사가 서로를 바라보고 난처한 표정을 지어 올리더니, 그중 하나가 물어왔다.

“소협, 그것은?”

“이것이 잘하면 가주의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내 손안에 땅에서 캐낸 꽃 한뿌리가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

영영은 류청운이 사라진 숲길을 멍하니 바라보다 곧 정신을 차리고는, 호위 두 명에게 류청운을 호위할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사방을 내리누르는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열어 류청운이 알려준 정보를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공자님의 말씀대로라면, 이 상태로 기다린다고 해도 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네시진 이상 버티시기 힘들 것 같다고 합니다.”

당영영의 말이 끝나자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가 더욱 한층 내려앉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사람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그런··· 어찌 그런···”

“설마 그럴 리 없습니다. 아무리 하돈의 독이 강하다 하더라도···”

망연한 분위기 속에서 당영영과 장로들의 회의가 시작되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작은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당가의 가주라는 목숨의 무게가 작지 않았기 때문.

그렇게 당영영과 장로들의 회의가 지리하게 이어질 때 류청운이 사라졌던 길 쪽에서 웬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의논을 하는 중인 것이지?”

모두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중년의 미부(美婦) 하나가 동굴 앞으로 걸어들어왔다.

긴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머리 위로 틀어 올린, 중년의 미부.

중년의 미부를 보자 영영은 곧바로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이런 큰일을 감당할 수 없었던 영영은 고모의 품으로 넘어지듯 뛰어들었다.

“고모! 왜 이제 오십니까. 흑···”

곧 고모의 체온이 느껴지고 안도감이 영영을 휘감았다.

“영영아, 내 독전(毒殿)에 틀어박혀 방법을 찾아보다 도통 방법이 없어 다시 온 것인데, 네가 혼자 걱정이 컸구나. 그나저나 무슨 의논을 하는 것이냐?”

당영영은 쓰러질 것같은 정신을 부여잡고 독전을 맡고 있는 자신의 고모에게 류청운이 알려준 이야기를 전달했다.

아직은 쓰러질 때가 아니었다.

당문의 독기(毒氣)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독기로 버텨내며 아버지의 목숨을 유지할 방법이 낮은 가능성이나마 존재하고, 아버지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모에게 이야기했다.

장로들이 다시금 가주의 목숨이 몇 시진 남지 않았다는 말에 난색 했지만, 그녀의 고모가 장로들에게 류청운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류소협의 말이 맞을 것입니다.”

“예?! 그, 그것이 정말이란 말입니까?”

“예, 소협의 말은 사실입니다. 독전(毒殿)을 맡은 내가 아니고서는 잘 모르는 것인데, 역시 영영이에게 하돈 손질을 가르쳤다더니. 하돈의 독에서도 해박하군요.”

독전 당주의 확인에 설마 하는 마음을 가졌던 장로들도 가주의 목숨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대로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가주를 보내기보다는 뭔가라도 해보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당영영의 고모가 류청운이 사라졌던 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오라버니를 살릴 수 있다는 그 방법이 궁금한데, 제가 그 방법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소협?”

고모의 말에 세차게 고동치기 시작하는 가슴.

당영영이 고개를 돌려 자기의 고모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 땀에 흠뻑 젖은 그가 당문의 상징인 바꽃 한뿌리를 손에 들고 동굴 입구로 들어서며 외쳤다.

“헉헉··· 당문의 상징이 당문의 가주를 구원할 것입니다!”

한밤중 어둠 속 류청운의 얼굴이 태양처럼 빛나고, 그의 손에 들린 바꽃이 당영영의 시야를 한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의 희망 어린 말에 당영영은 참지 못하고 그대로 등잔불이 꺼지듯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당 소저의 고모라고 했던가? 이름이 당화은(唐花銀)?’

당가에 도착하고 바쁘신 분인지 독왕의 생일에 딱 한 번 보고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인데, 그녀가 동굴 입구로 들어서는 나를 맞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정신을 잃은 당영영.

혼자 심적 부담이 컸던지 당영영은 내가 동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픽하고 쓰러져 버렸다.

당영영의 고모는 당영영을 품에 안고 나를 향해 말했다.

“소협, 일단 자리를 옮기시지요. 이야기는 조용한 곳에서.”

당영영의 고모와 핵심 장로 몇 명만을 대동하고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렇게 밖에서 들리지 않을 만한 거리까지 이동해서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동굴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려 했지만, 당영영의 고모가 나의 정보가 중요한 것일 수도 있으니 자리를 옮길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었다.

“자, 소협 어서 이야기해보세요. 그것을 어찌 사용한다는 것이죠?”

참지 못하고 물어오는 당영영의 고모.

나는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당영영의 고모와 장로들을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독제독(以毒制毒)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독제독이라면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

“예, 맞습니다.”

내 대답에 당영영의 고모가 아주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독전이라면 당문에서 독과 관련된 것을 모두 총괄하는 느낌인데, 그래서 그런지 독이라는 말에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 된 당영영의 고모.

“아주 제 마음에 쏙 드는 방법이군요. 그렇다면 바꽃의 부자(附子)로?”

“예. 맞습니다.”

복어의 독 테트로도톡신과 바꽃의 독 아코니틴은 둘 다 신경계에 작용하는 맹독.

둘은 이름이 다른 독이지만 사망 결과는 같다.

호흡정지.

테트로도톡신에 중독되면 호흡근이 마비되어 숨을 못 쉬게 되어 죽고, 아코니틴에 중독되어도 호흡근이 마비되어 숨을 못 쉬게 되어 사망하는 것.

사망 결과는 같지만 둘의 작용 기전은 정반대.

우리 몸의 신경은 미세한 전기 자극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데, 복어의 독 테트로도톡신은 이 미세한 전기 자극이 이루어지는 통로를 차단하려 하고, 반대로 바꽃의 독 아코니틴은 이 통로를 계속 열어두려 한다.

그러니 호흡이 멈춘다는 결과는 같지만, 테트로도톡신은 신경이 차단되어 호흡이 멈추는 것이고 아코니틴은 통로에 과부하가 걸려 호흡이 멈추는 것.

그런데 신비하게도 두 독이 몸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은 문을 열려 하고 한쪽은 문을 닫으려 해, 서로를 방해해 길항작용(拮抗作用)이 일어나는 것.

내 설명이 끝나자 당영영의 고모인 당화은이 물었다.

“그러면 결국 복어의 독과 부자의 독이 몸 안에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듯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군요?”

“예, 맞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독성이 강해 직접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 같은데···.”

확실히 독의 전문가답게 그녀는 당영영이나 나른 장로들보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부자의 독은 열에 약하니 끓이면 독성의 1할로 낮아질 것입니다. 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제가 당문의 독공이나 무공에 대해서 모르고 두 독의 균형을 이루게 할 방법도 없으니까요.”

복어의 독에 대해 여러 자료를 찾아볼 때 접했던, 일본의 엽기 살인사건인 ‘투구꽃 살인사건’을 보고 아코니틴이나 테트로도톡신의 정보를 습득해 알고 있는 지식이지만, 정말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는데, 내 말이 끝나나 당영영의 고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소협. 그리고 소협의 걱정과는 다르게 오라버니께서 생존하실 1할이 아니라 시간을 끄는 것이라면, 5할도 넘을 것입니다. 저희는 당문 이니까요.”

그녀의 말에, 당문에 와서 처음으로 당문이 조금 대단해 보였다.

석자갱의 이끼보다 조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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