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養子)
당영영이 정신을 차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전경의 자기 방 침상 위였다.
“아, 아버지!”
깨어나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아버지에 대한 걱정.
영영은 침상 위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금 옷을 주워 입고는 경공을 시전 해 동굴로 향했다.
얼마나 정신을 잃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날은 밝아있었고, 아버지의 안위를 아는 자는 지금 여기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늦지 않았기를.’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류 공자의 방법으로 살린 것은 맞는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희망과 절망이 뒤섞였다.
그렇게 희망 반, 두려움 반을 가슴에 품고 동굴 앞에 도착하자, 밤과 같이 가문의 무사와 장로들이 동굴 입구를 경계하고 있었고, 마침 동굴 안쪽에서 당영영의 고모가 땀을 훔치며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당영영은 고모 앞으로 달려가 물었다.
“고, 고모 아버지는?”
당영영의 물음에 미소 짓는 당영영의 고모.
고모의 미소에 당영영의 가슴속에 반반 자리 잡았던 감정 중에 두려움이 썰물처럼 밀려 나가고, 당영영이 그토록 바랬던 소식이 고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들어가 보거라 가주께서는 안정되셨으니. 아마, 할아버지께서 돌아올 때까지는 문제없으실 것이다.”
‘공자님께서 성공하셨구나!’
영영은 벅찬 가슴을 안고 동굴 안으로 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동굴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 사각의 솥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영영의 부름에 그녀의 아버지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영영아 왔느냐.”
“예, 아, 아버지 소녀 여기 있습니다. 괜찮으신지요?”
영영이, 어버지의 무사함에 기뻐하며 가까이 다가가려 할 때,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내가 있는 뒤쪽 야광주(夜光珠)가 박혀있는 벽이 보이느냐?”
“예? 예, 보입니다.”
“그 앞에 놓인 책을 찾아보거라.”
영영은 조심스레 아버지의 야광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야광주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작은 탁자 위에 아버지가 벗어둔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와 그 위에 올려진 책 한 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척이나 오래되고 손때가 타 반들반들한 한 권의 책.
“이, 이것은 무슨 책이옵니까?”
찾아든 책을 손에 들고 무슨 책인지를 물으니 그녀의 아버지가 천천히 대답했다.
“당가의 무공을 위한, 조상님들의 조언이 쓰여있는 책이니라. 제일 마지막 장을 보거라. 무엇이 쓰여있는지.”
당영영은 야광주의 흐릿한 불빛에 책을 비춰 제일 마지막 장을 넘겨보았다.
야광주의 흐릿한 불빛 속에 이미 흐릿해진 글을 그리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내용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것은?!”
“읽어보거라.”
아버지의 명에 당영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야명주의 흐릿한 불빛 사이로 드러난 내용을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처, 천독 불침을 이루려는 후손들을 이것을 명심하라. 당문의 꽃 바꽃을 너희 가슴에 품으라···!?”
당영영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의 입에서 한탄하는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리 어리석은 일이···. 구결이나 가르침은 보통 선문(禪問)처럼 되어있어, 천독불침을 이루려면 당문의 상징 바꽃처럼 독심을 품고 대법을 견디라는 말로 지금까지 알고 있었거늘. 어리석음으로 먼저 보낸 가솔들을 나중에 어찌 본단 말이냐···”
-퐁
당영영의 아버지인 가주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대법을 펼친 약물 속으로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리고 류청운을 향한 고마움이 이어졌다.
“우리 가문이 소협에게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음이야···”
그 말이 끝나자 동굴 안에 퍼져있던 미세한 독기들이 그녀의 아버지인 당문의 가주를 중심으로 휘몰아치고, 그녀의 아버지가 앉아있는 솥 안의 약물과 독물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동굴 안의 이상을 눈치챈 당문의 장로 몇 명과 당영영의 고모가 동굴 안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가주님!”
***
조금 시간이 지나고 급하게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던 당문의 장로들과 당영영이 뛰어나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류청운이었다.
“류공자는 어디 있느냐?!”
“청운 공자님은 어디 계십니까?!”
분명 아까 입구에서 어렴풋이 보였는데 어느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영영과 독전 장로인 당영영의 고모의 물음에 무사들이 하나둘 몸을 움직여 시야를 열어주자, 저 뒤로 풀밭 위에 웅크린 무엇인가가 드러났다.
풀밭에 웅크리고 누워 입가로 침까지 줄줄 흘리며 잠든 한 남자.
아마 무공을 익히지 못한 몸이라 피곤했던지, 류청운은 풀밭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음···.”
“크흠···.”
“어허···”
“어머···”
그 모습에 장로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난처한 모습이 되었고, 당영영의 고모가 급하게 난처한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동굴 안에서 있었던 일을 무사들과 남아있던 장로들에게 알렸다.
“가주께서 류소협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신 것은 물론 대성(大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자 류청운에게 쏠려있던 시선이 다시 독전의 장로인 당영영의 고모에게 쏠리고 무사들의 입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ㅇ!”
그러나 환호가 시작되는 찰나 그 모습에 놀란 당영영의 고모가 낮은 소리로 외쳤다.
[쉿! 모두 조용히 하거라! 은인께서 깨시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류 소협은 당문의 큰 은인. 모두 대하는데 한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예!”
[어허! 조용히 하래도!]
그렇게 당영영의 고모가 호들갑을 떨어대며 낮은 목소리로 무사들은 진정시키는데, 동굴 앞 공터를 울리는 찰진 소리.
-짝
모기라도 있었던지 류청운이 자기 목덜미를 후려치며 목을 긁고 있었다.
그러자 당영영의 고모가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무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뭣들 하느냐! 은공께 모기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하게 하거라!]
독전 장로의 지엄한 명령에 무사들이 류청운을 둘러싸, 독조(毒爪)를 펼쳐 모기를 잡기 시작하고, 절반은 동굴 입구를 나머지 절반은 류청운을 겹겹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한치의 침입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동시에 당영영의 귓가에 그녀를 부르는 고모의 난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영영아.”
“예, 고모.”
“그, 크흠. 침을 좀 닦아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니?”
당영영이 그녀의 고모를 보고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
“짹짹 짹”
-휘익
-빡!
“쮀액!”
뭔가 새 대가리가 터지는 것같은 소리에 목덜미를 긁으며 눈을 뜨자 당문의 무사들이 나를 겹겹이 에워싸고 레이저 같은 눈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당문 무사들의 눈동자.
자다 깬 상황이었지만 무사들의 표정과 눈동자를 본 순간, 나는 자연스레 이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쌌구나!’
아무래도 우려한 대로 독박이 터져버린 것이 분명했다.
무사들의 눈빛을 보니 싸도 제대로 싼 모양.
‘아니, 당영영의 고모는 성공 확률이 50퍼센트도 넘는다더니. 젠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단 대화를 나눠봐야지 어쩌겠나.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자리 잡고 나를 내려다보던 무사의 주먹이,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갑자기 나를 향해 쏘아졌다.
‘그래, 침은 못 뱉지만, 주먹은 내지를 수 있지. 여긴 중원이니···’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외쳤다.
“아이고, 제가 잘해보려고 한 것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내지른 주먹이 도착하지 않기에 한쪽 눈을 살짝 뜨니, 무사가 내 코앞에서 주먹을 움켜쥐고는 뭔가 성취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잡았다!”
“아니, 제가 잡힌 것은 맞는데···”
이미 겹겹이 에워싸고 나를 잡았다고 신나 하는 무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 한 번도 반가웠던 적 없었던 당영영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공자님? 깨셨나요?”
“당 소저? 마침 자, 잘 오셨소! 내가 다 도움을 주고자 한 일인데··· 사람을 이리···”
“공자님? 잠이 덜 깨셨나요?”
“예?!”
잠이 덜 깼냐고 묻는 당영영의 표정을 보니 이상하게 당영영의 표정이 밝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얼굴이 밝다는 것은, 사이코패스라서 가문을 승계해서 기분이 좋거나, 아니면?
“호, 혹시. 가, 가주께서는 어찌 되셨습니까?”
다급하게 가주의 상태를 확인하자 당영영의 입에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자님 덕분에 무탈하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나를 향해 당영영이 아주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포권을 하며 외쳤다.
“당문의 은인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당영영의 외침에 동굴 앞 공터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향해 포권을 하며 따라 외쳤다.
“당문의 은인께 감사드립니다!”
‘오호라 싼 것이 아니라, 그러면? 났구나! 점수가 났구나!’
아무래도 내 두 번째 꽌시는 당문이 될 것 같았다.
***
당영영의 할아버지인 독왕이 저녁때 놀란 얼굴로 허겁지겁 돌아왔다.
하지만 가주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돌아오기 한참 전인 점심때 대법이 성공했다며 홀로 동굴에서 걸어 나온 상태였다.
흰자위가 녹색으로 물든 것이 제갈청보다 이쪽이 훨씬 귀신 같은 모습.
개인적으로는 가주가 동굴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장례식장 병풍 뒤에서 죽은 사람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당영영의 할아버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라도 벌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멀쩡하게 걸어 나오다니.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독에서만큼은 당문이 대단하긴 대단했다.
그리고 위험한 순간에 독왕이 왜 자리를 비웠나 했더니, 그간 대법이 여러 번 실패해서, 가주가 준비 해둔걸 독왕이 위험성 때문에 못 하게 한 것을, 영감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가주가 몰래 진행한 것이라고?
역시나 성격에 문제 있는 영감이라 그런지, 가주는 영감에게 가루가 되게 까였다는 당영영의 후담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공자님 칭찬을 무척이나 많이 하셨어요!”
아들 정도는 살려주어야 꼬장꼬장한 영감의 입에서 순수한 칭찬이 나오다니, 당문이라 그런지 친밀도 작업이 SSS급 수준이었다.
그렇게 복어로 시작한 한밤중의 소동이 끝나고 며칠 더 지난 오늘, 점수가 많이 났으니 정산해준다며 가주가 나를 자기의 전각으로 호출했다.
독왕의 생일잔치부터 가주를 살린 것까지, 내가 생각해도 점수가 많았기에 한껏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주의 전각을 찾았다.
아무래도 당문의 체면이 있지 은인에게 쩨쩨하게 굴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간 독왕이 준다고 했던 것만 봐도 영감이 성격은 꼬장꼬장해도 쓰는 것에는 인색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가주의 부름에 그의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는 독왕과 가주, 당영영의 고모와 당영영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차가 한잔 돌고 작은 덕담이 오고 가다 가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류 공자, 내 은혜를 갚을 방법을 여러모로 생각해봤는데, 양친도 없고 이 넓은 중원에 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나. 그래서 말인데 자네, 혹시 내 양자가 될 생각은 없는가?”
‘양자(養子)? 아니 그러면 내가 류청운이 아니고 당청운이 된단 말인가? 그거 나쁘지 않을지도?’
꽌시 정도를 생각했는데, 양자라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솔직히 객잔 장사 그거 돈 벌어봐야 얼마나 번다고, 지역구 조폭의 양자에 비빌 것이 아니었다.
당문이니 조그만 객잔 말고, 술을 직접 만들어 팔 수 있는 정점(正店)을 목 좋은 곳에 열어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솔깃한 제안으로 즐거운 망상 속으로 빠지려 하고 있을 때, 놀란 당영영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 안 됩니다! 저, 절대 안 됩니다!”
‘쟤는 당문에서 독을 치는 것은 안 배우고, 초를 치는 것만 배웠단 말인가?’
아마도 당영영이 사랑하는 독수(毒水)라는 것은 강산성의 액체인 모양.
내가 복어를 손질하는 것도 가르쳐줬는데, 정말 배은망덕한 당영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