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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불양(異性不養) (44/344)

이성불양(異性不養)

가주의 집무실 같은 곳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당영영에게 집중되었다.

그러자 부끄러운 얼굴로 움츠러드는 당영영.

하긴 부끄럽기도 할 것 같았다.

내가 당가의 양자가 되면 당영영의 오라버니가 되는 것이고, 당영영의 동생이 두 명 있지만 둘 다 아직 십 대, 결국 달리 말하면 내가 이 집안의 장자가 되는 것.

데릴사위만 맞는 당문의 특성상 어찌 보면 본디 모두 자기의 재산인데, 내가 장자가 되면 명의상 재산이 차기 가주인 내 앞으로 바뀌니 저러는 모양이었다.

‘있는 집 자식들이 재산 싸움이 심하다더니.’

당사자인 내가 있는데도 저리 대놓고 반대를 표하다니.

당영영은 안 그렇게 생겨서는 생각보다 욕심이 많은 것 같았다.

차갑게 식은 시선으로 당영영을 바라보자 움찔하는 당영영.

그리고 그때 이해할 수 없다는 당영영의 고모의 음성이 들려왔다.

“영영아 대체 왜 반대를 하는 것이냐? 류 소협 정도면 인품도 훌륭하고, 너에게도 좋은 오라버니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느냐?”

당문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온화한 인상의 미부인이며, 사람에 대한 평가가 지극히 객관적이고 인품이 훌륭해 보이시는 당영영의 고모가 당영영을 향해 묻자, 독왕과 가주도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들 당영영을 바라보며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자, 당영영이 홍당무 같은 얼굴로 소리를 빽 지르듯 대답했다.

“이, 이성불양(異性不養)을 잊으셨습니다. 구, 국법(國法)이요!”

그러자 독왕과 가주가 서로를 바라보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성불양이 뭐지?’

머릿속을 뒤져 혹시라도 몸이 관련 지식이 있는지를 훑었다.

내 몸에 그리 큰 기대를 두지 않았지만, 이놈은 꼭 필요한 지식은 없고 나한테 별로 좋지 않은 지식만을 가진 것인지 신기하게 그에 대한 지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성불양(異性不養).

송대에는 특이하게 양자에 관한 법률이 존재했는데, 양자(養子)로 삼을 때는 무조건 같은 성만 된다는 법률.

그러니 내가 당가와 같은 당 씨가 아니고서는 양자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성으로 양자가 되려면 4살 이하여야만 하며, 호적에 올리는 입계(立繼)도 그때에만 국가에서 인정한다는 법률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물론 성이 다른 성인도 양자가 될 수는 있지만, 그건 남과 가족의 중간 정도 되는 애매한 위치. 입계도 허락되지 않고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불가능한 것.

무공이라면 절정이라고 칭할 꽌시의 마지막 단계 절정 꽌시인 간형제(干兄弟)만도 못한 것이 이성양자였다.

“저런 큰 실수를 할뻔했습니다. 영영이의 말이 맞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마음만 앞서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구나. 이런 어쩐다, 우리가 양자를 생각한 것도 제갈가 때문이거늘···”

“우리 집에 양자 맞을 일이 없어 잠시 잊고 말았구나. 미안하구나, 허허 정말 이를 어쩐다.”

‘뭐지? 내가 제갈 가주와 의형제가 된다면, 당문의 가주와 의형제가 되는 것도 문제가 없을 텐데?’

제갈가 때문에 양자를 생각한 것이라는 말에 조금 가주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제갈 가주의 꽌시 확정이고, 당문의 가주와 꽌시가 된다면 나이 차이는 좀 나겠지만, 복숭아나무 아래서 형제가 되기로 맹세했던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처럼 완벽한 꽌시 트라이앵글이 만들어지기 때문, 내가 제일 막내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제 꽌시가 셋 정도가 뭉치면 합체를 이뤄 진화하는데. 그것을 취엔(圈 권) 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꽌시의 결전 병기이자 최종 진화 형태.

전생에 중국의 ㅇㅇ방 ㅇㅇ회 같은 꽌시들의 모임이 되는 것이다.

또 이렇게 췌엔이 형성되면 여기서 서열을 나눠 호칭도 생겨난다.

첫째는 라오따(老大) 또는 따꺼(大哥)라고 부르며, 둘째는 라오얼(老二), 셋째는 라오싼(老三)같이 서열 순서대로 번호에 따른 호칭이 정해진다.

‘저는 당제갈방의 라오싼!(셋째) 류청운이라고 합니다!’라며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왜 의형제가 되는 데 제갈가가 문제가 되는지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표정으로 가주를 바라보자, 가주가 내 표정을 알아챘는지 바로 그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네에게 구명을 받은 내가 자네와 간형제를 맺는 것이 당연해 그것을 생각해 보았는데, 생각해보니 자네는 청이와 식을 올려야 할 것이고, 그러면 제갈 가주와 내 사이가 복잡해져서 말이야.”

‘응? 제갈청과 내가 식을? 식이라면 제갈 가주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나?’

뭔가 이상했다, 식이라면 제갈 가주와 내가 의형제를 맺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갈청과 식을 올린다니.

그러나 제갈 가주의 의형제인 당 가주가 잘못 알고 있을 리는 없었기에 예전 기억을 급하게 떠올렸다.

나도 마음속에 약간은 이상하고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가슴에 바늘이 하나 박힌 것같은 그런 불편함 말이다.

‘분명 식을 올리게 사람을 보낸다고 했고, 제갈청과 선물도 주고받았으니···.’

당시의 기억을 되짚어보자 드러나는 진실.

당시에 가주가 명확한 대상을 지칭하지 않아 내가 오해를 해버리고 만 것이 확실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제갈 가주가 나와 직접 형제나 간형제를 맺는 것은 아무래도 오버.

‘이런 바보 같은 놈!’

생각해보니 제갈 가주가 몇 번이나 눈치를 주었는데, 그걸 알아채지 못하다니.

분명 마니또 선물도 제갈청과 나누었는데, 그러면 당연히 제갈청과 꽌시를 맺는다고 생각해야 했는데 멍청하게 제갈 가주와···.

‘청운아 너 전생에는 눈치 100단이었잖아? 왜 그래? 몸 때문이냐? 눈치 하면 너였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대체? 살기! 살기 때문인가?’

아마도 객잔이 부서지고 제갈 가주의 살기를 쏘였으니, 청심환(淸心丸) 정도는 한 알 먹어주어야 했는데 그것을 지나친 영향인 것 같았다.

그러니 당시에 놀란 마음에 머리가 굳어 알아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머릿속의 모든 것이 명확해지자 마음 한편에 박혀있던 바늘이 ‘쏙’하고 빠져나가며 가슴이 후련해지고, 불안감의 정체가 사라지자 머리도 씽씽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왠지 모를 불안감이 사라지자 당 가주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제갈청과 의형제 아니지, 의남매가 되었는데 당 가주와 또 의형제를 맺는다면, 당 가주의 처지에서는 형제의 딸의 형제와 형제를 맺는 개 족보가 탄생해버리고 마는 것.

달리 말하면 조카와 형제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영감탱이와 꽌시를 맺기에는 더욱 개 족보가 되어버리고. 정말 난처한 상황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들 난처한 상황에 직면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이걸 대체 어찌하지?’ 하는 표정을 지을 때, 독왕 늙은이가 갑자기 당영영의 고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화은아 네가 저 녀석과 의남매를 맺는 것은 어떻겠느냐?”

“제가요?”

“그래, 원래는 네 오라비가 간형제를 맺어야 하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같은 배분인 네가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출가(出嫁)하는 형태로 하면, 내가 저 녀석을 아들처럼 대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괜찮을까요? 뭔가 여러모로 더 복잡해지는···”

아마 출가한 여인은 같은 가문임에도 가문의 인원이 아닌 취급이니, 일단 의남매로 만들고 당영영의 고모를 표면적으로만 출가형식으로 내보내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고 나만 남긴다는 그런 계획 같았다.

그게 되나 싶었지만, 그건 당가의 가족들이 걱정할 문제이고.

‘와우! 저런 누님과 내가? 의남매?’

무엇이든 다 받아주실 것같은 온화한 얼굴과 매력적인 똥머리, 넓은 품을 가진 누님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오를 때 당영영이 빽 하고 다시금 소리를 지르듯 외쳤다.

“제, 제가! 류, 류 공자와 의, 의남매를 맺겠습니다.”

-피식

‘하아··· 정말 낄끼빠빠를 모르는 것인가 당영영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야 하는데 영영이는 누님과 급이 달라도 한참 다른데, 여기서 비벼보려는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당영영의 제안은 다른 인원들에게 빠르게 받아들여졌다.

“아, 그러고 보니 네가 있었구나. 그래 배분도 너랑 같고 네가 청이의 자매나 마찬가지니, 그것이 훨씬 좋겠구나!”

가주가 당영영의 제안에 묘안이라며 기뻐하고 독왕과 당영영의 고모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누, 누님은?!’

그리고 누님에게 버려져 망연한 나의 귓가에 약간 상기된 당영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가가(哥哥) 가가께서도 고모님보다 저와 의남매가 되는 것이 좋으시지요? 그렇죠?”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하는 당영영.

당영영의 목소리에 소름이 오소소 솟아올랐다.

“무, 물론이지요. 당 소저”

회복된 내 눈치는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 대답해야 할 때라고.

***

제갈청은 지필묵연을 가지고 와 정성스럽게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종이에 무엇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제갈청의 손끝에서 시작된 점이 선이 되고, 곡선이 되고, 원이 되었다.

그렇게 마지막에 종이 위에 나타난 것은 얼굴.

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코가 조금 더 오뚝하셨나?’

당시에는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해, 선명한 목소리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 통에 이렇게 종이에 여러 번 기억나는 대로 그분의 얼굴을 그려보았지만, 매번 그릴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에 제갈청의 가슴에는 속상함만 가득했다.

그렇기에 뭔가 마음에 안 들어 열심히 그린 류청운의 얼굴을 구겨 한쪽에 치웠다가, 얼마 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그 종이를 다시 조심스레 펴고 있을 때, 호들갑 떠는 목소리로 시비 둘이 제갈청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 아가씨 당문에서 서찰이 도착했습니다!”

제갈청은 뛰어 들어온 시비들에 놀라, 다시 폈던 종이를 황급히 구겨 품 안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무, 무슨 서, 찰이 도착했다고?”

제갈청의 물음에 시비가 서찰 하나는 건네며 대답했다.

“당영영 아가씨에게서 아가씨의 야서(野鼠)에 대한 소식을 보내오셨습니다.”

“야서의 소식을?! 이. 이리 주어보거라.”

야서(野鼠)란 두더지도 짝이 있다는 야서지혼(野鼠之婚)을 가리키는 말인데, 제갈청과 시비들 사이에서는 제갈청의 노공(老公)인 류청운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었기에, 그러니 야서의 소식이란 곧 류청운의 소식.

혼자 당문의 생일잔치에 보낸 것이 무척이나 걱정되던 터였는데, 마침 당영영에게서 서찰이 도착했다니 제갈청은 반가운 마음에 시비들에게서 냉큼 서찰을 받아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서찰을 펼치자 드러나는 당영영의 서체.

“아가씨 무슨 내용인가요? 저희도 알려주세요.”

보채는 시비들의 목소리에 제갈청이 서찰을 보다가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뭔가 믿기 힘든 내용이 잔뜩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서께서 독왕 어르신의 생일잔치에 당문의 체면을 손상할뻔한 거짓된 놈을 잡아 혼내주시고, 당가의 가주인 당 백부님의 목숨을 구했다고 하는구나···. 이게 무슨?”

믿을 수 없는 내용에 멍하니 서찰을 바라보며 대답하자, 시비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야서께서 아가씨를 살리신 그 놀라우신 의술을 펼치신 건 아닐까요?!”

“그래요. 죽어가던 아가씨도 살렸던 그 신비한 의술. 그러니까···”

시비들이 자신을 살렸던 의술을 언급하는 통에 자기의 입술과 가슴에 관한 생각이 나서 볼이 붉어진 제갈청은, 부끄러움 속에 자연스레 류청운이 당가주를 살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나를 살렸던 의술이라면 그러니까··· 입술을··· 응!? 누, 누구를!? 다, 당 백부님을!?’

서찰을 들고 있던 제갈청이 두 눈을 부릅뜨고 시비들을 바라보자, 시비들도 크게 벌려진 자기들의 입을 양손으로 가리고 경악한 얼굴로 제갈청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제갈청의 목이 영혼을 잃은 것처럼 툭 꺾여 그녀의 가냘픈 어깨 위에 걸렸다.

“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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