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의 혼인식(婚姻式)
수십수 백번을 그렸다 지운 얼굴이 꿈같이 눈앞에 나타났다.
순간 제갈청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그간의 최대 궁금증.
‘역시 코는 더 오뚝하셨어!’
가슴이 고동치고 목이 타며 어지러움이 몰려왔으나 제갈청은 정신을 부여잡았다.
꿈에 그리던 야서(野鼠)와의 혼례에서 정신을 잃을 수는 없는 법.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가.
마음속으로 심법의 구결을 떠올리며 떨리는 마음에 용기를 보탰다.
그리고 도사를 따라 그분과 방안으로 들어서며 몰래 면사 속에서 그분의 얼굴을 살폈다.
면사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그분의 얼굴.
꿈에서 그리던 늠름하고 멋진 그분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런데 곁눈질로 조심히 살피자, 어딘지 우울하고 어두워 보이는 그분의 안색과 눈빛이 자연스레 느껴졌다.
‘대체 왜 안색이? 몸이 안 좋으신가?’
그리고 그는 혼례 의식 내내 뭔가 계속 어두운 얼굴이었다.
그의 객잔에서는 항상 밝고 즐거운 얼굴이셨는데, 이상하게 그의 얼굴에 마음이 써지는 제갈청.
더군다나 그는 잠깐 인사할 때 빼고는 눈을 맞춰주지도 않았다.
‘왜? 호수같이 아름답다고 해주신 눈을 바라봐 주시지 않는 걸까?’
가슴속에 슬며시 떠오르는 서운함.
그의 옷을 지으려다 수없이 꿰뚫린 손가락과 학우선을 직접 만들기 위해 학을 잡으러 며칠이나 강변을 샅샅이 뒤졌던 것이, 더욱 서운한 마음이 들게 했다.
‘아무래도 당 언니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생각에 빠진 제갈청의 앞에, 도사가 뿌린 곡식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
첫날은 도사가 곡식을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본격적인 식은 이튿날부터.
곧 다른 말로는 내 고통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사형수에게도 편안한 죽음이 허락되거늘.
형장에서 목만 베면 되는 사형수에게 고통을 주며 능욕하는 것처럼, 혼인 식의 과정은 아주 길고 다양했으며, 손님으로 모인 모든 이들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나와 제갈청이 사이를 자랑하듯 선보여야 했다.
그렇게 거미줄에 붙잡혀 버린 나방처럼 나의 운명은 완벽히 제갈가의 손에 떨어졌다.
‘차라리 당문에 있을 때 당영영에게 좀 더 어필해볼 것을!’
성격과 가풍에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예쁘게는 생겼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당영영에게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깟 환 병 몇 개 아끼겠다고 어리석은 놈!’
나의 어리석음을 한탄했지만, 혼인식은 막힘없이 쭉쭉 진행되었다.
혼인식 이튿날은 아침은 일찍 일어나 다시 혼례복을 입고, 제갈가의 사당으로 가, 다 같이 사당에 제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여기가 바로 유교의 탄생지 중원.
조상신에게 제를 드리는 것은 모든 과정의 시작이었다.
원래 제사라는 것은 배 아프다고 누워있다가 제사가 끝나고 약과만 주워 먹는 것이 정석적인 참여 방법이거늘··· 지루한 제사를 끝까지 참여해야 했다.
그리고 제가 끝나자 당 가주인 의부께서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명지왈(命之曰) 왕영이상(往迎爾相)하여 승아종사(承我宗事) 하되 욱수이경(勗帥以敬) 하고.
선비지사(先妣之嗣)니, 야칙유상(若則有常)하고. 若則有常(약즉유상) 하라.
“명하기를 가서 너를 내조할 아내를 맞아 우리의 종사(宗事)를 잇게 하고, 너의 어머니의 일을 잇게 권면하라. 어머니를 대신하여 제사를 잇게 할 것이며 항상 한결같아야 한다.”
의부의 말이 끝나자 어제 달달 외운 대사를 천천히 읊어 나갔다.
“예, 알겠습니다.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고, 감히 명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내 대답이 끝나자 제갈가의 가주가 제갈청을 향해 말했다.
명지왈(命之曰) 계지경지(戒之敬之)하여 숙야무위명(夙夜無違命)하라.
명하기를 경계하고 공경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시부모의 명을 거역하지 말라.
“예, 알겠습니다. 아버님.”
제갈청의 대답이 끝나자 그녀의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의 제일 어른인 여자분이 나와 제갈청의 머리에 봉환관을 씌워주고, 그녀의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주며 이어서 말했다.
면지경지(勉之敬之)하여 숙야무위궁사(夙夜無違宮事)하라.
근면하며 공경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집안일을 어그러짐 없게 하거라.
제갈청이 그 말에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뭔가 혼인 서약 같은 행동이 끝나자 끌려간 곳은 저 멀리 큰 복숭아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후원의 문 앞. 제갈청은 곧장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내가 대기하는 곳은 복숭아나무가 있는 후원으로 들어가는 문 입구의 작은 탁자 위.
사람 하나 간신히 올라설 만한 작은 탁자가 나의 자리였다.
내가 여기서 할 것은 버티기.
탁자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버티는 것이다.
중원의 혼인식 공개 능욕 중 한 가지, 탁자 위에서 신부 어머니가 술을 권하며 내려오기를 부탁할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작은 탁자 위에서 후들거리며 중심을 잡고 있자 얼마 안 돼, 두 배우가 달려와 나를 흔들며 말했다.
“청운아, 어서 내려와서 신방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어서 내려오너라.”
“가가, 어서 내려오세요! 어서요. 제발.”
달려온 두 배우는 당영영과 당영영의 고모.
원래 신랑측 여자 가족들이 하는 거라나?
누님의 간절한 목소리에 애간장이 녹고, 당영영이 연기라지만 쩔쩔매는 모습에 잠깐 기분이 좋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누님이나 당영영의 말대로 지금 내려가면 잔치 분위기가 작살날 것이고, 기다리는 것은 피의 장례식.
나를 고개를 흔들며 안 내려간다는 표정을 애써 지어야 했다.
아니, 안 내려간다는 표정은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정말 안 내려가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결혼식을 멈출 수 있다면···.
탁자 위에서 개다리춤을 추듯 몸을 떨며 고개를 흔드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온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그렇게 잠시 실랑이를 이어가자 제갈가의 여자들까지 나서 내려올 것을 보채고, 결국 제갈청의 어머니를 대신할 나이 많은 여자분이 나에게 와서 술을 권하며 간곡하게 탁자 아래로 내려올 것을 부탁하셨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접착제에라도 붙은 듯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뇌에서는 내려가라 명령하지만, 몸이 거부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내려가야 한다! 이러다 죽어 청운아!’
마음속으로 조급하게 나 자신을 달랬지만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내 모습을 본 제갈가의 여자들이 나의 그런 모습에 뭔가 눈치를 주고받고는, 갑자기 내 아래 있는 탁자 한쪽을 장심(掌心)으로 동시에 후려쳤다.
-탕
순간 강한 충격으로 날아가 버린 작은 탁자, 타짜가 화투장 밑 장을 빼는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나를 여럿이 받아내더니 외쳤다.
“신랑이 내려왔다!”
“신랑이 허겁지겁 내려왔다!”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가려고, 못 기다리고 내려왔다!”
‘씨··· 이··· 저희 맘대로 할 거면 내려오라고나 하질 말든지!’
그리고 마음속으로 마음과 행동까지 조작당하는 결혼식에 좌절하며 우물쭈물하자, 누군가가 나를 문 안으로 툭 하고 밀어 넣었다.
그렇게 넘어지듯 안으로 뛰어들자 엄청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복숭아나무를 빙 둘러싼 수많은 사람.
마피아들이 이렇게 많으니 중원의 치안이 그 모양인 것이 확실했다.
눈을 한번 질끈 내리감은 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다시금 머릿속에서 영화 대부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빠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빠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그래, 여긴 마피아 보스인 제갈천 딸의 결혼식장.
전국의 모든 마피아의 수뇌부들이 모여 제갈 보스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경사스러운 자리.
모두 신이 난 듯 싱글벙글하게 웃고 있지만, 한 명, 한 명이 웃으며 누군가의 가슴이나 뚝배기에 칼을 박아 넣을 수 있는 사이코패스이자 살인마.
혹시라도 내가 ‘전 잘 몰랐는데요? 의형제 아니었나요? 결혼 금시초문인데요?’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 순간.
아마 검과 창 도와 권, 각들이 나를 다진 고기로 만들 것이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겪은 적 없는 무공들이 생의 마지막 장면을 화려하게 수놓으리라.
아니면 시멘트는 없으니 어디 자기로 구운 항아리에 점토와 같이 넣어 나를 단단히 밀봉한 후 깊은 강물에 던져 버리겠지?
그리고 한 천년쯤 지나고 발견되어 중국 박물관 어딘가에 전시될 것이 분명했다.
족쇄라도 찬 듯, 잘 움직이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며 사람들을 바라봤다.
-꿀꺽.
얼굴에 칼자국은 흔했고, 눈알이 하나 없거나 팔 또는 다리가 없는 놈.
아주 흉흉한 면면들이 미소인 듯 미소 아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식의 로망 복숭아꽃은 왜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었는지.
활짝 핀 복숭아 꽃잎이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려 시야를 가득 메웠다.
‘하하 하···. 분위기 진짜···’
상황이 이쯤 되니 행복회로라도 돌려야 했다.
이제 피할 수 없는 혼인, 죽음이냐 혼인이냐를 택한다면 당연히 혼인을 택해야 하는 것.
그래, 혼인은 어차피 해야겠고 제갈 세가라면 배경도 나쁘지 않았다.
조금 많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아내는··· 그래, 밀가루 반죽처럼 생기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존경하는 제갈공명 형님도 아내는 좀 못생겼다지 않았던가.
그래 형님의 뒤를 밟는다 생각하자.
삼국지 게임에서도 형님을 최우선 픽으로 하던 나인데 형님의 뒤를 따르자!
형님의 아내도 얼굴을 못생겼어도 똑똑하고 재주는 많았다는데, 저기 복숭아나무 아래 나를 기다리는 그녀도 그분의 후예인 제갈이니 똑똑하고 재주도 많겠지?
그리고 제갈공명 형님의 핏줄이 키가 컸다는데, 그녀도 170은 돼 보이는 여자치고는 키가 큰, 안 미녀.
얼굴 빼고 나쁜 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사람이란 원래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 뛰어난 지혜가 있다면 아쉽게도 한가지는 버려야겠지?
‘난 원래 백치미가 좋지만···.’
뭐 벽안이 내 스타일이기도 하고 목소리도 예쁘니, 어떻게든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행복회로를 굴리며 복숭아 아래 놓은 침상을 향하자 누군가 눈치 없는 놈의 입에서 나를 절망에 빠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랑이 얼굴이 어두운데? 신부가 마음에 안 드나?”
‘저, 저 새끼가 감히 무림에서 나와 은원을 쌓겠다는 것인가?’
내가 놈의 망언에 분노할 때, 사람들은 나에게 분노했다.
놈의 말에 순간 싸늘하게 가라앉는 분위기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마피아 조직원들 모두의 눈빛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중 레이저를 쏘아낼 것같은 안광을 뿜어내는 것은 딸바보.
오줌을 지릴 수밖에 없을 것같은 날카로운 시선들을 느끼며, 억지로 입꼬리를 잡아 올리며 장내를 향해 말했다.
“시, 신부를 보니 가, 가슴이 설레어서···.”
그러자 싸늘해졌던 분위기가 갑자기 달아올랐다.
“와아! 와아아!”
“우하하핫! 신랑이 부끄럼을 타나 보군!”
“신랑이 신부가 너무 예뻐 어쩔 줄 모르는 모양입니다! 하하핫!”
‘저 새끼들은 눈이 없나?’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복숭아나무 아래까지 가자, 밖에 꺼내놓은 침상 위에 제갈청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혼례는 침대 위에 앉아서 하는 것인데, 내가 복숭아나무에서 하자니까 그냥 침상을 통째로 복숭아나무 아래로 옮겨둔 모양이었다.
기운 빠진 얼굴로 침상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침상 위에서 호수같이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제갈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마주하자 제갈청의 눈빛에 담긴 어두운 그늘이 가슴에 박히듯 느껴졌다.
그제야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녀의 생에 단 한 번의 결혼식.
외모로 한 번도 칭찬받아보지 못해 호수같이 깊고 맑은 눈이라는 칭찬에 부끄러워하던 그녀였는데, 결혼식 내내 거절하듯 눈 한 번 마주쳐주지 않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제갈청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겠냐. 너도나도 피해자인 것을, 퍼그나 불도그도 자꾸 보다 보면 귀여운데 얘도 보다 보면 귀여워지겠지? 얼굴이 그렇게 된 게 제갈청의 잘못도 아니고. 그래, 여자가 얼굴이 다는 아니라고 했으니, 얘도 얘만의 장점이 있겠지? 있을까? 저, 정말 있겠지?’
미안한 마음에 그녀와 맞절하기 전 빙그레 웃어주자 제갈청의 얼굴이 당황함으로 물들고, 당황하는 제갈청과 침상 앞에서 도사의 지시에 따라 맞절을 하고 한 쌍으로 된 술잔을 받아 술을 마셨다.
그리고 도사의 지시대로 둘이 동시에 바닥으로 술잔을 던지니, 바닥에 떨어진 잔이 하나는 위를 하나는 아래를 보고 멈춰 섰다.
그것을 보고 소리치는 도사.
“오오! 운이 아주 좋을 징조! 자손을 아주 많이 볼 징조입니다!”
놈이 소리치자 장인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소리치고, 사람들도 장인의 외침에 축하를 보냈다.
“허허, 우리 집에 손(孫)이 아주 귀했는데 다행한 일이로구나!”
“축하드리오! 제갈 가주”
“축하합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나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나쁜 사이비 도사 놈.
놈의 말에 갑자기 첫날밤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잘해주자고 마음은 먹었는데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익숙해지겠지?’
아니, 지겠지가 아니라 져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마피아의 딸과 혼인한 상태이고, 그녀의 마음에 근심이 생기거나 눈에서 눈물을 흐르게 하는 순간, 딸바보인 마피아 두목이 참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도사의 말에 피할 수 없는 첫날 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