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두와 갱을 함께 (50/344)

만두와 갱을 함께

장인이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 제갈로 태어났으면서 사마라는 이름의 의미를 모른단 말인가?’

장인의 표정을 보니 도리어 내가 답답한 상황, 제갈형님을 존경하는 나로서는 사마 씨는 곧 라이벌, 어떠한 도전이라도 납작 뭉개주는 것이 당연했다.

왜냐하면 ‘그’ 사마 씨니까.

“자, 장인어른 어서 저 어리석은 사마세가 놈에게 이 류청운이 어울려 주겠다, 말씀해주십시오!”

“으, 응? 자, 자네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마침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실망감과 분노를 풀 길이 없었는데 아주 좋았다.

원래는 장인을 향했어야 했지만, 어제 보았던 제갈청을 생각하면 이게 또···.

그러니 꿩 대신 닭이라고 저 나불거리는 사마세가 놈의 주둥이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불타는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장인어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끔힐끔 보더니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면 경사스러운 날이기도 하고,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잔치를 연 주인이 할 일이니, 사위의 요리실력을 손님들에게도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그래, 그럼 어떤 음식이 좋겠습니까?”

장인이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에게 웃으며 묻자, 아까 그 젊은 사마세가 놈이 일어나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제갈 가주 안녕하십니까? 사마결 인사드립니다.”

“어, 그래 가주께서는 안녕하시고?”

“예, 제갈 가주님.”

예의 바른 척하는 사마세가 놈.

그러는 저놈의 속이 시커멀 것은 당연했다.

사마세가 놈이니까 말이다.

“그래, 할 말이라도 있는가?”

“다름이 아니라 제가 무림 동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갈가의 새 사위가 시구를 짓는 것처럼 주제대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는데, 마침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라서요. 어떻습니까?”

“그래, 뭐 어떤 것으로 음식을 만들면 좋겠는가?”

장인이 놈에게 말을 해보라 하자 놈이 비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침에는 보통 만두와 갱을 먹는 것이 흔한 일이지 않습니까? 이 두 가지를 같이 먹는 요리를 만들어 보라 하는 것은 어떻겠는지요? 다만 갱에 넣어 끓인 만두는 안되며, 생긴 것이 만두가 아니어도 안 된다는 조건을 걸지요.”

“만두와 갱을 함께 먹되 갱에 넣어 끓인 것은 안 되고, 만두가 아니어서도 안 된다?”

“예, 어르신. 어떻겠습니까?”

놈이 선문(仙問) 같은 요구사항을 말하며 웃자 장인이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대답했다.

“아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내 대답에 아침을 먹던 결혼 축하객들이 환호했다.

“오오! 식룡의 음식을 다시 맛볼 수 있는 것인가?”

“제갈가 사위의 음식이 그렇게 대단하오?”

“어허, 이 사람 내가 독왕의 생일잔치에서 하돈의 생살과 서시유(西施乳)를···. 자네 서시의 유가 뭔지 아나?”

“서시유? 독왕께서 생일잔치에 가슴을 드러낸 무희(舞姬)를 불렀단 말인가?”

“어허, 이 무식한 사람, 그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숙덕거림 속에서 나도 좌중을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럼 만두는 보통 아침 식사로 많이 먹으니, 제가 내일 아침 식사로 사마결 공자의 문제대로 요리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내 처소로 향하자 들려오는 목소리.

어느새 금방 나를 따라붙은 장인이 나를 향해 물어왔다.

“자네 그리 자신이 있는가? 그나저나 무엇을 만들 것인가? 내 당가에서 활약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문제 같은데? 재미있겠다며 바로 대답한 것을 보면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내가 놈의 말에 너무 빠르게 대답한 것을 보고 아마 머릿속에 뭔가 ‘파박’ 하고 떠오른 것이 있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셨다.

그런데 그런 건 없었다.

내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신선놀음하는 것같은 말을 해대는데 갑자기 떠오를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을 만들지는, 이제 생각해봐야지요.”

“뭐라?”

내 대답에 어이없어하는 장인.

이제부터 생각해봐도 될 일인데, 어이없어하는 장인의 표정을 보고 대체 왜 그러냐는 투로 되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아니, 자신이 있어서 하겠다고 한 것 아니었나?”

“당연히 자신이야 있지요. 다만 만들 요리는 이제 생각해보려 합니다.”

나를 바라보고 ‘이 새끼 뭐지?’ 하는 표정을 짓는 장인.

장인이 나를 향해 연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네 촉나라 사람인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三國志)에 있는 촉서(蜀書)의 제갈량전(諸葛亮傳)에 나오는 내용인데 혹시 거기 나오는···.”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말씀이십니까?”

내 말에 놀란 눈을 부릅뜨는 장인.

장인이 기쁜 표정으로 소리쳤다.

“오오! 이걸 아는가? 자네 무후를 존경한다는 말이 정녕 진심이었군!”

“그런데 그것을 어째서?”

제갈량과 관련된 고사는 몇 가지로 축약할 수 있었고, 그중 사마 씨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말은 단 한 가지.

그러니 당연히 알 수 있는 말이었는데, 장인은 다시금 나의 제갈 사랑에 무척 기뻐하는 얼굴을 하더니 설명했다.

“아, 그렇지,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저치들이 저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네. 우리 제갈가 쪽에서는 별생각이 없는데, 저치들은 그 말로 꽤 고통을 받고 있는듯해서··· 그래 저리 가끔 우리에게 심술을 부리곤 한다네. 오래된 역사서에 실린 말 한마디에 우리와 경쟁하다 지면, 사람들이 으레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이겼다’를 다시금 들먹거리니 속이 상하는 게지. 그러니 자네가 지면 또 여기저기 말을 만들어내 퍼트릴지도 몰라서 말이야.”

장인의 설명에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갈의 가족이 된 이상 사마 씨에게 진다는 것은 무후를 존경하는 저로서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 제 모든 것을 다할 것입니다!”

“그, 그래? 하, 하하!”

내 말에 기쁨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장인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나는 장인이 기분이 좋은 틈을 타 장인에게 속삭였다.

“장인어른 그런데 말입니다. 장수가 나가서 싸우려 하면, 주군께서 술을 내려 장수의 사기를 높여주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내 물음에 맞장구쳐주는 장인.

“제가 이기려면, 저도 사기 진작이 좀 필요한데 말입니다.”

“그래, 그래 사기를 올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술인가? 무엇인가? 말만 하게.”

장인이 내 말에 웃으며 대답했고, 역시 때는 이때인가 싶어 장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크흠··· 처, 첫날밤은 그럼 언제?”

내 물음에 장인이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이 사람아 일단 그건 이기고 이야기하세. 그리고 내 가문을 이어야 하는데, 자네를 마냥 그냥 두겠는가? 그리고 원래 며느리가 들어와도 석 달에서 일 년은 가문의 사람이 되는 기간이 있는데, 서두르지 말게. 내가 자네 마음을 다 아네.”

장인은 그렇게 내 어깨를 두드리며 웃더니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셨다.

제갈가 아니랄까 교묘하게 희망을 섞어 희망 고문을 하는 장인.

장인의 행태에 분노하려는 찰나, 흡사 깊은 숲속 맑은 샘에 물방울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여기 계셨군요.”

정지하는 사고. 그리고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

“부, 부인!”

깜짝 놀라 되돌아보며 외쳤다.

그러자 어젯밤 생이별한 나의 아내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내 대답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노, 노공?”

“어젯밤은 잘 잤소? 혹시 무서운 꿈을 꾸거나 한 것은 아니오? 나는 어제 한숨도 못 잤다오. 그나저나 여기는 무슨 일이오? 아침은 드셨소이까? 아니, 이럴 게 아니지! 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줄 테니 갑시다! 부엌이 어디요!”

“예? 예?!”

제갈청이 놀란 목소리로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

나의 마음이 진정되고 아침 인사를 왔다는 제갈청과 차를 마시기로 했다.

일단 우린 좀 친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전에 얼굴 한 번 본 것이 다이니 아무래도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한 과정이랄까?

그렇기에 후원 산책을 조금 하고 정자에 앉아 시비들이 가져온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갈청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것은, 마치 결말을 알고 있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결말을 알고 있는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싫증이 나지도 재미없지도 않았다.

“그래서요. 제가 학을 세 마리나 잡았지요.”

“오오, 세 마리나 잡았단 말이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웃었다.

‘이것이 그녀의 장점?’

그녀는 이야기꾼인지 모든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제갈청이 학우선을 만들려고 잡았다는 학은 천년 후에는 국제 보호조지만 지금은 흔한 새, 제갈청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행복한 죽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아까 나와 제갈 가주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는지 그녀가 우리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를 물어왔다.

“그런데 노공 아까 멀리서 보이었는데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요?”

“그, 그게 말이요.”

첫날밤은 언제 가능하냐고 보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

급하게 변명거리를 찾다가 내일 아침에 낼 요리가 생각나 그녀에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아, 그, 그것이··· 그렇지! 우리 혼례식을 축하해주러 오신 손님들께서 내 요리를 맛보고 싶다고 하셔서 요리를 만들어 주기로 했는데, 그 사마세가 놈. 아니, 사마세가 분이 재미난 말씀을 하셔서. 하하”

“재미난 말씀요?”

제갈청이 미소 띤 얼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만두와 갱을 함께 먹되 갱에 넣어 끓인 것은 안 되고, 만두가 아니어서도 안 된다는 음식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부인”

“예? 그건 노공을 곤란하게 하려고 한 것 아닙니까?!”

제갈청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듯한 슬픔이 밀려들었고.

제갈청의 손을 잡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려 했는데, 갑자기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아? 가가?”

‘후···’

이쯤 되면 어딘가에 CCTV라도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될 지경.

왜 우리가 핑크빛 분위기만 잡으면 훼방꾼이 나온단 말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인 당영영이 어디선가 나타나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언니! 같이 차 한잔하셔요.”

“괘, 괜찮을까? 청이 널 찾으려다가 여기 있다고 하기에··· 가가랑 같이 있는 줄 알았으면, 내 나중에 찾아오는 것인데···”

마음이 순수하고 착한 제갈청이 의심치 않고 훼방꾼인 당영영의 합석을 권했고, 눈치라곤 하나도 없는 당영영은 웬일인지 눈치를 보는 척을 하며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제갈청이 나에게 물어왔다.

“노공, 괜찮으시죠? 언니가 함께하는 것?”

“무, 물론이요. 부인”

둘이 자매 같은 사이라는데 내가 안 된다고는 할 수 없기에 억지로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역시나 눈치 없는 당영영이 냉큼 자리에 합석했다.

“그, 그럼 잠깐 차, 차나 한잔할까?”

그렇게 시비가 찻잔을 하나 더 가져오고 셋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내가 오기 전에 중요한 이야기 하던 건 아니지?”

“아! 맞다. 아뇨, 언니. 내일 아침에 노공께서 요리를 내기로 하셨는데, 사마세가 공자가 난처한 문제를 내셔서 그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어요.”

“가가께서 요리를? 그런데 문제까지?”

“네.”

제갈청이 당영영에게 사마세가 놈의 수작질에 관해 설명하자 당영영이 분노한 얼굴로 말했다.

“사마결 그놈이군요! 자기가 좀 미남이라고 다른 세가 소저들한테 추파(秋波)를 던진다는 소문이 있는 놈입니다!”

그리고는 화를 식히기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조금 식은 차를 벌컥 들이켰다.

나는 당영영의 말에 분노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해 주었다.

“뭐, 대체로 얼굴만 반반한 놈들이 눈치도 없고 실속도 없는 법이지···”

-푸우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당영영의 만두 같이 부풀어 오른 볼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그 물줄기가 나의 안면을 직격 했다.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물줄기를 고스란히 다 맞자 두 여자의 입에서 놀란 음성이 쏟아져나왔다.

“노, 노공.”

“가가, 죄, 죄송해요!”

나는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최대한 분노를 참으로 말했다.

“괘, 괜찮소.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 하하, 하···”

“당매매도 시, 신경 쓰지 말거라 크흠.”

버럭 화를 내고 싶었지만, 제갈청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는 일.

당영영의 볼때기를 잡아 흔들어 주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그리고 당영영의 볼때기에서 뿜어져 나온 물을 소매로 훔치는데,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두 같은 볼때기와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오!”

내 감탄사에 제갈청과 당영영이 놀란 얼굴로 물어왔다.

“노공 어째서?”

“가가?”

나는 둘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내 좋은 생각이 났소. 얄미운 사마세가 놈의 주둥이에 뜨거운 맛을 보여줄 방법이 말이요!”

이마와 머리카락에서 당영영의 입에서 나온 찻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