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롱포 (小笼包)
찻물을 닦아낸 후 당영영을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당영영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얄미운 저 볼때기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때도 있다니 놀라운 것이었다.
뭐 조금 더럽고 의도된 도움이 아니긴 했으나 도움은 도움.
칭찬도 그냥은 하지 않는 그녀의 가풍과 어울리는 도움이라고 할까?
여러 가지 감상 속에 당영영을 바라보자 그녀는 내가 화라도 난 줄 알았던지 다시 사과를 해왔다.
“죄, 죄송해요. 가가.”
하지만 나는 지금 요리에 대한 힌트도 얻었고 강력한 진정제인 제갈청이 옆에 있어 한없이 관대해진 남자.
당영영을 향해 관대함을 잔뜩 넣어 대답했다.
“뭐 요리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니 괜찮다. 신경 쓰지 말거라.”
“예? 도움이요? 그것으로 어떻게 도움이?”
당영영은 얼굴에 찻물을 뿜어낸 것으로 어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인지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그로 인해 자기 잘못이 덮어진 듯 보이자 당영영은 약삭빠르게 대답했다.
“하, 하지만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렇게 당영영이 진정되고 내게 뿜어진 찻물이 마르자, 부인인 제갈청의 안내를 받아 당영영을 데리고, 일단 연회를 준비하고 있는 부엌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제갈청을 따라 전각 사이를 누비는데, 나를 안내하던 제갈청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왔다.
“노공, 만드실 요리가 떠오르신 건가요?”
“아, 그렇소.”
내 자신만만한 대답에 내 아내인 제갈청이 놀란 얼굴이 되어 말했다.
옆에 깍두기인 당영영도.
“만두와 갱을 함께 먹되 갱에 넣어 끓인 것은 안 되고, 만두가 아니어서도 안 된다는 것에 어울리는 요리가 있던지요?”
“저도 궁금해요. 가가.”
그러나 내가 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대답은 하지 않고 웃기만 하자, 당영영이 우리를 뒤따르다가 갑자기 멈춰서,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설마? 재미입니까!?”
당영영은 몇 번 재미를 보게 해주었더니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내가 당영영의 말이 맞았다는 뜻으로 익살맞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웃어주자 당영영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 되었고, 영문을 모르는 제갈청이 우리 둘을 번갈아 가며 두리번거리자, 당영영이 재빠르게 제갈청에게 재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가가께서 재미난 일을 만들어 주신다고 하면, 반드시 재미난 일이 생기니. 기대하고 있으면 아주 즐거운 일이 있을 거야!”
당영영이 아주 기쁜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고, 그 모습에 제갈청이 당영영을 빤히 바라보니 조심스레 물었다.
“두 분?”
그러자 당영영이 제갈청의 눈빛과 물음에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뭔가 도둑질 하다 걸린 사람처럼.
“어? 그, 그게···”
그런데 그런 당황하는 당영영의 얼굴을 보며 제갈청이 뭔가 무척 잘되었다는 얼굴,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인제 보니 당가에 머무시는 동안 엄청 친해지셨군요!”
그리고는 한 손에는 내 손, 다른 손에는 당영영의 손을 잡고는 감격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제, 친언니와 다름없는 영영 언니와 노공께서 이리 친해지셨다니, 다 같이 정말 한 가족이 된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아까 당영영이 우리의 오붓한 데이트를 방해하기 전에 제갈청에게 들은 바로는, 얼굴 때문에 같은 또래의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당영영이 유일했다니, 아마 제갈청에게는 당영영이 그냥 친한 언니 이상인 것 같았는데, 그런 언니와 내가 친한 것으로 보이니 기쁜 모양이었다.
나와 당영영의 사이는 실제로는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좀 더 많이 쌓인 미묘한 관계이며. 고운 정은 석자갱의 이끼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의남매가 된 사이기도 하고, 내 로망인 복숭아나무 아래서 의남매 결의식을 해줄 것은 이제 당영영이 유일했으니, 아내의 오해대로 친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했다.
한 가족이 된 것같은 것이 아니라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렇소! 뭐 이제 다 한 가족 아니겠소 하하.”
내가 크게 웃지 제갈청이 무척이나 즐거워했고, 당영영도 어색한 얼굴로 기뻐했다.
그리고 잠시 즐거운 대화가 끝나자 자기가 내 손을 먼저 잡았다는 것을 알아챈 내 초보 아내가 새빨개진 얼굴로 부엌 쪽으로 내달렸다.
“제, 제가 무슨 짓을···.”
“부, 부인! 같이갑시다!”
“청아! 청아!”
새신부 아니랄까 새빨간 얼굴이 된 제갈청을 쫓아 요리사가 잔뜩 있는 곳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피로연에 낼 요리를 만드는데 정신이 없었는데, 제갈청이 거기서 누군가를 찾아내 내 앞으로 데려왔다.
귀엽게도 아무런 일도 없었던 표정으로.
“인사드리세요. 제 노공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허적(許赤)이라 합니다. 제갈가의 우내총관(右內總觀)을 맡고 있습니다. 조금 일찍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접각부님.”
묘하게 거슬리는 호칭 속에 인사가 시작되었다.
대가문이니 집사 정도는 있을 것이라 당연히 예상했는데, 그런 위치를 맡은 남자인 듯했다.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 깐깐해 보이는 인상.
우내총관이라면 가문의 재산관리를 맡은 모양인데 직업과 얼굴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류청운입니다.”
“말씀을 낮추시지요. 제갈가의 직계들은 가문에서 가장 높은 신분입니다.”
그가 내 인사에 웃으며 대답했고 나도 웃으며 다시 그를 향해 인사했다.
“알겠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우내총관.”
“예, 아마 요리에 출중한 능력이 있다고 하셨으니 저를 찾으실 일이 많을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그와 인사를 주고받고 나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저를 찾아오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내일 아침에 하실 음식이 정해지신 것입니까? ”
음식에 대해 아는 척을 하는 것 보니, 아마 장인이 미리 언질을 주었던 모양이었다.
“물론이네, 지금부터 시작해야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총관이 공손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필요한 재료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우선 우근(牛筋)이 필요한데 우근이 있는가?”
우근인 쇠심줄은 오늘 내 요리의 핵심 재료.
제일 중요하니 제일 먼저 확보해야 했다.
“우근이라면 마침 소를 한 마리를 잡아 우근은 아직 어떤 요리를 할지 결정되지 않아 남아있는데,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소를 한 마리 더 잡을까요?”
‘이 무슨 배짱인지!’
제갈가의 혼인 이거 나쁘지 않았다.
소힘줄이 필요하다니 부족하면 소를 한 마리 더 잡아준다는 패기.
어지간히 잘살아도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인지라 여기서 제갈가의 패기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시대에 소는 농업 생산력에 이바지하는 동물이라 국법으로 도축이 금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이유로 맛이 있어도 쉬이 먹을 수 없는 고기였는데, 고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힘줄이 필요하다니 소 한 마리를 잡아준다는 것은, 부품이 필요하다니 트랙터를 생으로 분해해 준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소가 지금 국법으로 도축이 금지된 시기인지 아닌지 궁금함이 한편으로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마피아들이 금주 기간에 파티한다고 술을 금할 리가 없었던 것.
아마 소가 도축이 금지된 기간이라면, 소를 잡아 상에 내는 것만으로도 마피아의 패기를 뽐내는 것이 아닐까?
국법이라는 게 무림인들에게는 조금 느슨한 감이 있으니까 말이다.
저희끼리 살인해도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그렇게 제갈가와 마피아들에 대해 상상하며 조금 기다리자, 잠시 후 사람들이 총관의 지시로 찬물에 넣어 핏물을 뺀 아주 질 좋은 쇠심줄을 가지고 왔다.
“이정도 양이면 되겠습니까?”
소 한 마리에서 나온 양이라 그런지 상당한 양이었는데, 아마 이정도면, 충분한 양일 것 같았다.
“충분하네.”
고개를 끄덕이자 총관이 알았다고 대답하며 곧이어 다른 재료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어왔다.
“그럼 또 다른 것은, 어떤 것을 준비해 드릴까요? 면분(麵粉 밀가루)은 당연히 필요하실 테고.”
일단 내가 만들 만두에 들어갈 고기는 두 가지.
필요한 고기 두 가지를 먼저 부탁했다.
그중 한 가지는 오랜 시간 끓여 육수를 내야 했으니 빨리 준비할수록 좋았다.
“일단 기름과 고기가 적당히 섞인 부위의 소고기를 준비해주게, 그리고 닭도 두세 마리 있어야겠네.”
“그럼 닭은 지금 바로 잡고 소고기는 미리 준비된 부위에서 골라 준비하겠습니다.”
어디선가 끌려온 닭 세 마리가 눈앞에서 유명을 달리하고, 껍질을 벗겨 기름까지 모두 제거해 고기를 발라낸 후 뼈만 남겨 마포에 감싸 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어서 준비할 것을 부탁했다.
“소회향(小茴香), 팔각(八角), 생강, 마늘, 총(蔥), 화초를 준비해주게. 아, 혹시 호초(胡椒) 있는가?”
내 물음에 웃으며 대답하는 총관.
“물론입니다.”
‘후추가 있다니!’
더럽게 비싸서 못 사서 쓰던 재료가 제갈가에는 당연하게 있는 재료였다.
말 만하면 착착 준비되는 재료들.
총관의 지시로 재료들이 착착 도착했다.
회향, 팔각, 생강, 마늘, 대파, 화초, 후추까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최고급 재료들이 윤기를 뽐내고 있었다.
‘여긴 요리사의 천국이란 말인가?’
제갈가의 노예 확정이라 걱정했는데, 이거 노예도 노예 나름인 것 같았다.
하긴 한미한 가문의 노예와 정승 집안 노예가 같을 수는 없는 것처럼 클라스가 다르달까?
나쁘지 않은 근무 환경에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재료들이 모두 도착했으니 처음으로 할 일은 쇠심줄을 적당히 잘라 한번 데치는 것이었다.
쇠심줄에는 소고기 잡내가 많이 나고 기름기도 상당히 많기에, 끓는 물에 한 번 대처 잡내와 기름기를 한번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고기를 발라낸 닭 뼈와 함께 끓여 육수를 만드는 것이다.
쇠심줄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물에 한 번 데친 후, 회향, 후추, 팔각, 생강 편 조금, 대파의 흰 부분을 잘라 넣었다.
그리고 아까 준비해준 마포에 싼 닭 뼈를 마지막으로 솥 안에 집어넣었다.
전생이라면 닭 뼈 대신 치킨스톡, 쇠심줄 대신 젤라틴 같은 편한 것을 이용하겠지만, 여긴 뭐든지 직접 만들어야 하니 아주 정석 정인 방법으로 준비한 것이다.
준비가 끝난 솥을 총관에게 넘기며 부탁했다.
“서너 시진, 푹 끓여 주게. 힘줄이 대부분 녹아 없어질 때까지 말이야. 물이 너무 졸아 타지 않게 하고, 물이 부족하면 채워서 솥의 절반 정도는 물이 남아있도록 해주게. 아, 위에 뜬 기름은 건져내 주게”
“알겠습니다. 다 들었으면 가져가서 접각부의 말씀대로 하거라!”
총관이 하인들에게 명령하자 곧장 하인들이 달려와 솥을 가져가 불에 올려 재료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가 다 끝나자 조금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지금 불에 올라간 재료들이 충분히 끓기 시작하면 닭 뼈에서 우러난 국물과 쇠심줄의 콜라겐들이 조직력을 잃고 물처럼 변하는데 내가 필요한 것이 그 국물.
그것이 이번 요리의 핵심 재료였기에 서너 시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잠깐 쉬기 위해 채도를 내려놓고 이마를 한번 훔치고 숨을 돌리자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고,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당영영과 제갈청이 두 손을 모으고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시선에 씩 웃어주니 제갈청과 당영영이 부끄러운 듯 볼을 붉혔다.
‘갈! 영영아 너한테 한 거 아니란다.’
착각하는 영영이를 마음속으로 한번 꾸짖어주고 둘에게 다가가자 제갈청이 참지 못하겠던지 나에게 물었다.
“노공, 요리의 이름만이라도 먼저 들을 수 없을까요? 너무 궁금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 같은 눈동자, 진실을 요구하는 거대한 폭력 앞에 나는 곧장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버티냐고.’
“샤오룽바오(소롱포 小笼包)라고 합니다. 부인. 감히 제갈가에서 함부로 입을 놀린 사마세가 놈은, 신체 일부분을 내어놓고 가야 할 것입니다···”
신체 일부분을 내어놓고 가야 한다는 내 말에 아내와 당영영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사마결이라고 했던가?’
함부로 입을 놀린 대가로 놈의 입천장은 제갈가에 두고 가야 할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