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쌍
잘생긴 아들을 낳기 위한 당영영의 무모한 도전이 계속되었지만, 암기를 뿌리는 정교한 손놀림도, 독을 은밀하게 뿌리는 그녀의 기술도, 음식을 만드는 데는 뭔가 도움이 되지 않는 듯했다.
하긴 뭔가를 ‘슥삭’ 하는 것과 만들어내는 것은 정반대의 영역.
파괴와 창조는 전혀 다른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뭔가를 없애는 것만 배워서 그런지, 당영영은 이쪽에 아주 소질이 없어 보였다.
분한 표정이 된 당영영의 무모한 도전을 몇 번 지켜보다가, 집에서 만두를 만들면 아이들 가지고 놀라고 반죽을 조금 떼어주는 것이 생각나 당영영의 손에 반죽 하나를 뚝 떼어주었다.
“이건?”
나와 반죽을 번갈아 바라보는 당영영을 혼자 놀라 내버려 두고 하인들을 불러 모아 본격적으로 피를 밀고 소롱포를 빚었다.
“자 다들 보고 따라 해 보거라.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야 하고 위에서 봤을 때는 잔 속에서 물이 맴도는 것 같은 모양이 나와야 하느니라.”
하인들은 보통 아침에 준비하는 식사가 만두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당영영과는 다르게 몇 번 만에 제법 괜찮은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밀대를 이용해 반죽을 밀고, 피를 말아쥐며 날이 밝아올 때까지 만두를 빚고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총관이 물어왔다.
“식사 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만 물을 올릴까요?”
등롱 불빛에 의지해 만두를 빚고 있었는데, 하늘을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이제 건방진 사마세가 놈의 입천장을 대가로 받아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총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형님 제가 형님의 원한을!’
곧 여기저기 화로에 올린 솥에서 물들이 끓어오르고, 겹겹이 쌓아 올린 소롱포가 든 채반이 끓어오르는 물 위로 올려졌다.
잠시 기다리자 주변에 진동하는 육즙 가득한 만두의 향 그리고 그사이 흘러나오는 신선한 파의 향긋함.
만두가 충분히 익을 만큼의 시간이 되어 가장 먼저 올렸던 채반을 꺼내 앞으로 가져왔다.
채반의 뚜껑을 열자 폭발하듯 밀려 나오는 향기.
소롱포는 채반을 여는 순간에는 팽팽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표면이 식어버리면 안에 젤라틴화 되어있던 육수만큼의 공간이 비어버려 약간 쪼그라드는데, 여기서 얼마나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소 안에 육수와 소의 비율이 훌륭한가를 판가름하는 기준.
뚜껑을 열어 한 김이 날아가자 부풀었던 소룡포가 살짝 쪼그라들고 테두리가 치마처럼 살짝 늘어졌지만, 모양이 나쁘지 않았다.
이정도면 합격.
작은 그릇에 소롱포를 하나 담아, 젓가락과 함께 새벽같이 같이 나와 열심히 만두를 빚은 제갈청에게 건넸다.
그녀에게 건넨 만두는 내가 직접 만든 것.
“한번 맛을 보시겠소? 안에 국물이 무척이나 뜨거우니 옆을 살짝 찢어 국물을 먼저 먹는 게 좋다오.”
“제, 제가 제일 먼저?”
내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한껏 기쁜 표정의 제갈청은 약간 떨리는 손으로 소롱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들어 내가 알려준 대로 소롱포의 옆구리를 살짝 찢어 벌렸다.
그러자 마치 살아있는 생물인 듯 진하고 향긋한 황금색 육수를 주르륵 흘려버리고 마는 소롱포.
채반을 열었을 때보다 묵직한 향과 뜨거운 김이 흘러내린 육수에서 천천히 솟아올랐다.
그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소롱포를 제갈청은 제일 먼저 코앞으로 가져갔다.
먼저 향을 즐기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그렇게 코앞으로 가져간 소롱포에서 솟아오르는 향을 살짝 음미하고 나자, 그녀의 얼굴에는 그녀의 등 너머에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아, 유왕이 이래서 중국의 4대 요희(妖姬) 중 하나인 포사(褒姒)에 빠져 나라를 말아먹었구나.’
포사는 서주의 마지막 임금은 유왕(幽王)의 황후인데 중국의 고사에는 엄청난 차도녀로 묘사되어있다.
좀처럼 웃지 않는 여인.
유왕은 그녀를 웃기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했는데, 궁녀 하나가 넘어져 옷이 찢어지는 소리를 듣고 포사가 웃자, 그녀를 웃기기 위해 비단을 사들여 찢었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 천금매소(千金買笑).
비싼 비단을 찢어대니 국고가 증발하여 나라가 망했다던데, 예전에는 그 고사(古事)를 듣고 아주 한심한 놈이라 생각되었지만, 그런 놈이 지금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이제부터 그분을 나의 두 번째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형님, 후배 따라갑니다···’
그렇게 제갈청의 미소에 얼이 빠져있을 때.
그녀가 향기를 음미하던 그릇을 살짝 내린 후, 그릇을 기울여 따듯한 국물을 살짝 다물린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국물의 맛을 보고 나서는 나를 향해 감격한 얼굴로 소감을 말했다.
“국물이 정말 진하고, 입안에 기름기가 맴돌 정도로 대단합니다.”
그리고는 만두를 잘라 입 안에 넣어 나머지 맛을 보고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맛있어? 정말로?”
당영영이 못 참겠다는 목소리로 물어오기에 다른 그릇에 소롱포를 담아 당영영에게 내밀었다.
‘얄미워도 의남매인데 챙겨줘야지.’
우 제갈, 좌 당가 나의 인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좌 당가이니 말이다.
당영영은 조금 급한 성격답게 내가 제갈청에게 어찌 먹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준 것을 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소롱포를 건네받자마자 그것을 바로 입을 가져갔다.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당영영도 다 생각이 있었던 듯, 놀랍게도 소롱포를 몇 번 먹어본 것같은 숙달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입으로 야쿠르트 엉덩이를 깨물어 액체를 쪽쪽 빨아먹는 것처럼, 피를 살짝 깨물어 육수를 쪽쪽 빨더니 곧바로 소롱포를 입안으로 집어넣는 당영영.
그리고는 ‘호호’ 거리며 뜨거움 김을 입에서 뿜어내며 소롱포 하나를 금방 먹어 치웠다.
“아, 정말 맛있네요. 특히 육즙의 진함이 입안에 가득 남습니다. 그런데···”
뭔가 말을 하려다 마는 당영영.
혹시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물었다.
“왜? 무슨 걸리는 점이라도 있느냐?”
내가 소롱포를 선택한 이유는 사마결의 문제대로 뜨거운 육즙이 뿜어져 나온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 육즙이 무척 기름지고 풍미가 좋아서 선택한 것도 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도 고기보다는 비계를 더 좋아하고, 비계를 더 좋은 것으로 생각하기에 기름기 진한 소롱포는 당연히 먹힌다고 생각했는데, 혹시라도 미묘한 차이로 지금 시대의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내 물음에 당영영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아주 맛있는데 아침으로 먹으려면 조금 느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요. 입안에 진한 기름기가 맴도니까요.”
‘아차차!’
당영영의 지적에 퍼뜩 든 생각.
소롱포를 만드는 데만 집중하는 나머지 한 가지를 잊고 말았던 것.
요즘 따라 제법 도움이 되는 당영영의 어시스트에 당영영을 조금 걱정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하지 않던 짓을 하면 어디가 아프던지 갈 때가 된 거라던데.
“당매매, 아주 잘 말해주었어, 내 잠시 깜빡한 것이 있구나.”
류청운에게 제갈청이 있듯이.
소롱포에는 영혼의 반려자가 있는데 그것을 잊다니!
소롱포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당영영의 말대로 입안에 남는 젤라틴의 진함이 문제.
그렇기에 반드시 이것과 먹어주어야 하는데, 너무 소롱포에 집중하는 나머지 이것을 잊고 만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총관에게 생강과 노두유 식초를 부탁했다.
“생강과 노두유, 초(醋)를 좀 준비해주시게.”
‘생강 초간장을 잊다니!’
생강을 받아 껍질을 벗기고, 물에 살짝 담가 전분기를 날려준 후, 간장과 식초를 1:3 비율로 섞은 소스에 담가 소롱포를 먹을 때 그 위에 올려 먹는 것이 소롱포를 먹는 국룰 이거늘.
소롱포에 생강 초간장이 없다는 것은, 아침 식사로 페페로니 피자를 피클 없이 먹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인 것이다.
급하게 생강 초간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생강 초간장을 바로 준비해, 소롱포 위에 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강을 조금씩 올린 후 둘에게 다시 맛을 보게 했다.
완전한 한 쌍이 된 소롱포가 건네지자 들려오는 감탄.
“생강의 맛이 입 안을 씻어내려 이러면 몇 개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공, 그냥도 맛있었지만, 지금은 더욱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생강의 이름은 뭔가요?”
제갈청에 물음에 그윽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해주었다.
“생강장유(生姜酱油) 소롱포의 부인 같은 존재입니다. 저에게 청 당신 같은 존재이지요.”
제갈청의 얼굴이 아침노을과 같이 붉게 물들었다.
***
하인들에게 생강 초간장을 더 만들라 시키고 잠시 기다리자, 사람들이 식사하는 곳에서 하인 하나가 뛰어와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곧바로 하인들 손에 소롱포와 생강 초간장을 들려 식사하는 곳으로 향했다.
삼국지에서 제갈 형님께서 군대를 끌고 이동하는 것이 이리 비장했을까?
줄줄이 따르는 하인들을 끌고 식사하는 곳으로 들어서자, 저 앞에 얼굴만 반반하고 실속 없는 사마세가 놈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확인하더니 좌중을 향해 말했다.
“드디어 그 소문 무성하던 식룡(食龍)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특별히 식지 말라고 뜨거운 천으로 감싼 대나무 찜기를 하인의 손에서 건네받아 놈을 향해 재빨리 걸어갔다.
짧은 시간마저도 아까웠다.
내가 서두를수록 소롱포의 속은 더욱 뜨거움을 유지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은 놈의 입천장에 치명상(致命傷)을 선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마결이라는 놈의 앞에 도착해 대나무 찜기를 내려놓고 왼손을 허리 뒤로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자, 어서 드셔보시지요. 만두이되 갱과 함께 먹을 수 있고 갱에 끓인 만두가 아닌 만두입니다. 문제를 내신 분이니 제일 먼저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제가 직접 가져왔습니다.”
나를 따라온 하인이 뜨거운 천을 걷고 찜기의 뚜껑을 올리자 폭발하듯 김이 솟고, 소롱포의 향에 놈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는가 싶더니.
그 안에 드러난 소롱포를 본 순간 놈이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식룡,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제가 드린 주제와는 좀 달라 보이는데요?”
놈이 무엇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지지 않고 놈의 웃음에 웃음으로 응수해주며 말했다.
“일단 입 안에 넣어 보시면 알게 됩니다. 음식은 먹지 않고서는 그 진가를 알기 힘든 법이지요. 사람의 겉과 속이 다르듯 음식도 그런 법이니까요.”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다시 한 손을 내밀어 어서 출수하라는 듯 재촉했다.
‘입 그만 털고 드루와~ 소롱포 식는다.’
그러자 내 도발에 놈이 한쪽 눈썹을 움찔거리더니, 곧바로 식탁 위에 있던 젓가락을 들어 소롱포를 하나 집어 들고는 입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놈이 입을 다무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
-찌이익
놈의 입에서 소롱포의 뜨거운 국물이 내 쪽으로 찍 하고 쏘아졌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였던바, 나는 재빨리 몸을 틀어 국물을 피해냈다.
그러자 놈의 입에서 참지 못하겠다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후, 후하. 하으, 허으으···”
놈의 혀가 반쯤 벌려진 입안에서 빠른 속도로 트월킹을 추듯 움직였다.
대전격투 게임의 연속 발차기처럼 움직이는 사마결의 혓바닥.
치명상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액화된 젤라틴이 놈의 입천장에 닿은 순간 끈끈하게 달라붙어 줄 것이기 때문.
놈이 어떻게든 치명상을 피해 보려 사람들 앞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추태를 부렸으나 이미 놈의 입천장은 주인의 몸에서 작별을 고하고 있는듯했다.
“흐어어어 뜨뜨 후어···”
그 모습에 여기저기 식탁에 앉아 소롱포를 받아든 손님들의 입에서 감탄했다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만두 안에 갱이! 뜨거운 갱이 만두 속에 있소이다!”
“허으어어어 이런 진하고 뜨거운 갱이라니 후어어···”
“어찌 만두에서··· 이런! 역시 식룡입니다!”
사마결과의 결론이 나기 전에 몇몇 사람들이 못 참고 시식을 시작했는지 여기저기 찍찍거리며 분수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호기심은 느낀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연달아 소롱포를 맛보기 시작하자, 뜨거운 소롱포의 국물이 이른 아침에 사방으로 이슬처럼 뿜어졌다.
“어떻습니까?”
사마결을 향해 질문하자, 그가 벗겨진 입천장 때문인지 입을 벌리고 허허거리다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 식룡의 놀라운 실력 가, 감복했습니다.”
놈의 일그러진 얼굴과 패배를 자인하는 모습에, 한쪽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장인이 나를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자 그럼 첫날밤 딜을 시작해볼까?’
애초에 사마결 따위는 내 상대가 아니었고 이제 장인과 진정한 승부를 펼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