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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참금(持參金) (55/344)

지참금(持參金)

가련이에게 분명히 늦어도 석 달이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당가에서 있었던 기간과 제갈가로 이동한 시간만 해도 석 달이 훌쩍 지나가 버린 시간.

가련이는 분명히 이름값을 하려고 가련한 표정으로 가련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심우현의 현령인 포형님이나 주행이나 식반행의 수장들이 가게에 신경을 써주고 있긴 할 것이고, 여유로 준 돈도 남아있을 테지만, 내가 여행 중에 도적들에게 ‘쓱싹’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언제까지 남아 가게를 돌봐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삼국지 게임이라면 충성도를 맥스를 찍어야 받아낼 수 있다는 평생 충성 맹세를 가련이에게 받아내긴 했지만, 돈이라는 것은 사람의 충성도를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있는 것.

여긴 게임이 아니니 충성도가 하락하기 전에 관리가 꼭 필요했다.

어찌해야 하나 생각에 빠져있는데, 옆에서 다시금 당영영과 아내인 제갈청이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더?”

“그, 그럴까요?”

“이번에는 내가!”

생각에 빠진 중에도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채고는 깜짝 놀라 고개를 획 돌려 당영영을 째려보자, 당영영이 찻물을 들이키다 깜짝 놀라 식도가 아닌 기도로 찻물을 들이켜고는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켈륵! 케륵 케흑!”

“언니! 언니 괜찮으세요?”

당영영의 모습에 안타깝다는 얼굴로 혀를 한번 차준 후.

기침하는 당영영과 아내에게 급하게 만날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총관을 만나러 급하게 이동했다.

이런 건 생각날 때 확인해 두는 것이 좋았다.

또 폭탄주 같은 제갈청과 놀다 보면, 금방 취해 언제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총관을 만나러 가는 것은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객잔에 대한 것은 내 객잔의 위치가 사천이라 당영영이나 의부에게 부탁을 드릴 수도 있었으나, 일단 나도 제갈가의 식구이니 재산 문제에 대한 것은 총관과 상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장인에게 직접 찾아갈 수도 있으나 어차피 총관을 부를 것이 뻔했기에 곧바로 총관을 찾는 것이다.

하인들에게 총관이 있는 곳을 안내받아 찾아가니, 작은 방 안 책상 위에서 수많은 서류와 씨름하고 있던 우내총관 허적이 피곤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아무래도 큰 잔치를 했으니 서류정리가 장난이 아닌 듯했다.

“접각부께서 누추한 곳에는 어떤 일로? 혹시 필요하신 음식 재료라도?”

“아, 아닐세 자네와 상의할 것이 있어서 말이야.”

“저와 말입니까?”

“그렇다네.”

자리에 안내되어 그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사천 심우현에 작은 객잔을 하나 가지고 있어서 말이야.”

“아, 지참금(持參金)이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홀로 살아오셔서 재산이 있다고 듣지는 못했는데 가주께서 빠트리신 듯합니다.”

하긴 재산이 넘치시는 분이니 작은 내 객잔 정도는 빼먹을 수 있는 일.

아니면 객잔이 완전히 내 것이 아니라 임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 내 그것을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서 말이야.”

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묻자 총관이 대답했다.

“당연히 접각부께서 가져오신 재산이니 저희가 관리해야지요.”

“관리를 말인가?”

“예”

“좀 자세하게.”

뭔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총관에게 설명을 부탁하자, 그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내용을 들어보니 아주 괜찮은 시스템이 존재했다.

원래 송대 결혼제도에서 남자가 여자의 몸값을 치르는 이유는 여자가 결혼할 때 가져온 지참금에 준하는 가격을 치른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아내가 가져온 재산의 소유권은 아내에게서 변경할 수 없지만, 사용은 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밭을 100평 가지고 시집을 온 여자라면, 시댁에서는 여기서 농사를 지은 것은 가질 수 있지만 밭 자체에는 손댈 수 없다는 말이었는데.

달리 말하면 나는 접각부인 데릴사위 포지션이니 내가 가져온 재산인 객잔을 제갈가에서 운영관리하지만, 소유는 나에게서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 객잔의 관리를 좀 부탁해도 되겠는가?”

“부탁이 아니라 저희가 당연히 할 것입니다. 혹시 따로 부탁할 것은 없으십니까?”

역시 총관은 유능했다.

내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어찌 알고.

“객잔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시종(侍從)이 있네, 그 아이가 사는 곳과 지금 받는 돈을 유지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는 가련이를 무림의 로망을 살려 점소이라 호칭하긴 했지만, 점소이는 남자 점원을 지칭하는 말.

보통 요리 집이나 객잔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틀어 로망 없이 시종이라는 표현으로 많이 부르기에 총관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그녀의 고용승계 그리고 기숙사와 연봉 보장을 부탁했다.

이 정도면 의리의 남자 류청운 인정이 불가피한 상황.

나는 거기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없으니 요리사는 아마 고용해야 할 것이네. 그리고 그 아이가 핍박받지 않도록 잘 돌봐 주게나. 내 사람이라서···”

“접각부님의 사람··· 예, 알겠습니다.”

총관의 확답을 듣고 혹시라도 문제가 될만한 일은 없는지 확인했지만, 객잔의 위치가 사천이고 당문의 영향권 아래 있어서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내가 가져온 재산이라도 타 조직의 나와바리에서 제갈가의 이름을 걸고 영업을 시작하면, 혹시 이쪽까지 영향권을 확대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살수도 있으므로 강제로 매각하게 될 수도 있다는데, 다행스럽게 총관은 내 객잔이 사천이라는 의부의 영향권 안이고, 장인과 의부가 의형제 간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냥 객잔은 팔아치우라고 해둘 수도 있지만, 전생의 위대한 선조 님들께서는 우매한 나 같은 후손을 위해 좋은 말씀을 많이 남겼다.

그중 한 가지가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 안 한다.’ 객잔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서러운 처가살이를 버티며, 설움 속에 독립을 꿈꾸던 독립투사 마냥, 분가를 꿈꾸며 데릴사위 생활을 버티지 않겠나?

그렇게 마음의 고향 객잔은 독립을 꿈꾸며 총관에게 잠시 맡겨두기로 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대화가 끝나고 나가려는데 뭔가 빠트린 것 같은 느낌이 다시금 찾아왔다.

한두 걸음 옮기다 보니 떠오르는 생각.

‘잠깐. 그러면 제갈청도 지참금이 있다는 말인가?’

혼인할 때 듣지 못했기에 나가던 발걸음을 돌려 조심스레 총관에게 물었다.

“그, 내가 다른 뜻이 있어서 묻는 것은 아니네만, 혹시 부인도 지참금을 가지고 있나?”

재산이 욕심이 난다기보다는 아내가 대체 뭘 얼마나 지참금으로 가져왔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레알루다가.’

내 질문이 끝나자 총관이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혼례복과 함께 가져갔던 지참금 목록을 받아보지 못하셨습니까?”

‘아니, 그런 것이 있었단 말인가?’

내가 금시초문(今始初聞)이라는 표정으로 총관을 바라보자 총관이 나를 향해 설명했다.

“혹시 혼례복과 학우선을 받을 때 같이 서찰 한 장을 받아보시지 않았습니까?”

“학우선과 혼례복과 도착한 서찰이라면?”

생각해보니 그런 게 있긴 했다.

나중에 내 처소에서 옷을 한번 입어보려고 할 때 봉투 하나가 떨어졌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그냥 혼례복을 보낼 때, 어디서 보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같이 보낸 것 아니었나?’

그도 그럴 것이 단 한 문장만이 달랑 쓰여있기 때문이었는데, 기억을 되살려 그 문장을 말했다.

“제갈가(諸葛家)?”

그러자 총관이 활짝 웃으며 양손을 쫙 펼치더니 나를 향해 대답했다.

“아가씨는 무남독녀 외동딸, 그러니 아가씨가 곧 제갈가시니 이 모든 것이 아가씨의 지참금이지요.”

‘맙소사!’

그 말을 듣는 순간 울렁증 플러스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장인 이 양반 지참금 목록이라면 좀 세세하게 써서 보낼 것이지.

이 무슨 사이다 같은 호쾌함이란 말인가.

‘그, 그냥 말뚝 박을까?’

마음속에서 자꾸 안락한 노예 생활을 권하고 있었다.

***

이틀 후 당가의 일원들과 제갈가를 나섰다.

목적지는 양양(襄陽) 제갈가가 있는 융중산(隆中山) 코앞에 있는 도시.

당가의 사람들과는 양양에서 갈라져 우리는 동쪽인 악주(鄂州 무한)로 향하고 당가는 이제 서쪽인 사천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루는 노숙하고 하루를 더 걸어 이틀째에 양양에 도착해, 객잔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이 되자 눈물의 이별이 시작되었다.

“어, 언니.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보는 거죠?”

“청아···.”

누가 보면 생이별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

나는 둘에게 이별을 나눌 시간을 허락하고 먼저 의부와 고모님께 작별 인사를 했다.

“의부님, 고모님, 그럼 ‘의남매 결의식’ 때 뵙겠습니다. ‘의남매 결의식’ 날이 정해지면 인편을 보내주십시오. 당매매와 ‘의남매 결의식’이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이제 식이라는 글자만 나오면 풀네임을 불러야 한다는 강박증이라도 생겼는지, 나는 의남매 결의식을 강조해 말했다.

의남매 결의식이 갑자기 또다시 혼례식으로 변하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나 혼자 또 어떤 오해가 있으면 곤란했으니까 말이다.

내 말에 의부께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청운아 아내를 잘 다스리고 어른들을 잘 모시거라. 그리고 가끔 찾아오거라 사천은 네 집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의부님. 할아버님께도 안부 전해주십시오.”

의부 그리고 누님인 고모님과 인사를 끝내자 소매에 무게감이 느껴졌고, 옆을 보자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로 당영영이 내 소매를 당기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갈청과 헤어지는 것이 슬펐는지 눈물 번진 아주 아쉬운 얼굴.

“가가, 저 영영 이제 되돌아갑니다. 몸 건강하시고 부디 청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매매 몸 건강하고, 너무 아쉬워하지 말거라 ‘의남매 결의식’에 다시 볼 수 있지 않으냐?”

“알겠습니다. 가가.”

객잔에서부터 당문 그리고 제갈가까지.

당영영과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제법 들었던지, 당영영의 물기 어린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제갈청과 사라지는 당영영의 일행을 한참을 배웅했다.

손을 흔들며 일행을 배웅하자 제일 뒤에서 자꾸만 우리 쪽을 돌아보는 당영영의 모습.

자꾸 뒤돌아보니 마음이 불편했고 등에 메고 있던 급을 내려 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며 제갈청에게 말했다.

“부인, 내 당매매를 그냥 보내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 그런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소?”

“노공, 어쩌시려고?”

제갈청이 조금 놀란 얼굴로 물어왔다.

하지만 의남매도 남매, 여동생을 저런 모습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애가 풀이 확 죽어 마음이 너무 찜찜했으니까 말이다.

“당매매를 저리 기운 없는 발걸음으로 떠나보내려니 마음이 불편해서, 기운이라도 좀 북돋아 주어야겠소.”

“언니의 기운을 북돋을 방법이 있나요?”

그런 방법이 있냐는 듯 제갈청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고, 나는 그 질문에 냉큼 대답했다.

“물론이요.”

내 대답이 끝나자 제갈청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재빨리 주머니를 하나 챙겨 들고 당영영에게로 내달렸다.

“매매! 당매매!”

한참 멀어져 있었는데, 내 부름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경공까지 써서 달려와 코앞으로 달려드는 당영영.

당영영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처, 청이는 어찌 두고 저에게 달려와서.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양손을 모으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는 당영영.

나는 당영영에게 안심하라고 설명했다.

“부인에게는 허락을 받고 왔느니라. 내 네 발걸음을 보니 그냥 보낼 수는 없어서 말이다. 네가 그래도 네 오라비지 않느냐.”

“하, 하지만···.”

내 말에 쪼금 감동한 듯 자기 입을 가리고 울먹거리는 당영영.

나는 감동에 젖어 든 당영영의 손에 급에서 꺼낸 제법 큰 주머니 하나를 들려주며 말했다.

“자, 그럼 ‘의남매 결의식’에서 보자꾸나.”

손에 주머니를 들려준 후 고개를 돌려 멀어지려 하자 뒤에서 당영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가, 자, 잠시만.”

“응?”

당영영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고, 곧 내 앞으로 다가와 내 손에 그것을 쥐여주었다.

손바닥을 내려보자 손 위에 올려진 것은 당영영의 별호인 독접(毒蝶)을 나타내는듯한 나비 모양의 장식이었는데, 나비의 다리를 손가락에 끼는 반지 같은 형태였다.

“이, 이건?”

“손가락에 끼우시고 주먹을 쥐시면, 나비의 머리에서 바늘이 튀어나옵니다.”

“응?”

“독이 있는 바늘이니 조심하세요.”

“뭐! 뭐라?!”

손가락에 끼려다 독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당영영을 바라보니, 당영영 슬픈 눈으로 웃으며 설명했다.

“무림에 나가시면 몸을 지킬 수단은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찔리면 한동안 몸이 마비되는 독이니 위험할 때 사용하세요. 가가.”

“그, 그래 고, 고맙구나.”

독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고 험한 선물을 챙겨준다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당문에서 독 발린 암기를 챙겨준다는 것은 자기네 집에서 가장 잘나가는 제품을 챙겨주는 것.

일단 고맙다고 말하며 받았다.

당영영 딴에는 제일 좋은 것을 챙겨준다는 의미인 것 같았으니 말이다.

당영영의 가문이 세별이나 사과였다면 최신 핸드폰을 챙겨주는 느낌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가문 생산품이 독이나 암기뿐인 건 당영영의 잘못이 아니니까.

선물을 주고받았음에도 당영영은 아직 기운이 없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아직 내 선물을 확인해보지 않아서 그렇고, 아마 선물을 확인하면 곧 기운을 차릴 분명했기에, 손을 한번 흔들어준 후 바로 아내를 향해 뛰었다.

빨빨거리며 달려와 아내의 곁에 도착해 급을 등에 메자 제갈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그, 그런데 뭘 주셨기에 당 언니가 저, 저리 망연한 얼굴이 되신 거죠?”

제갈청의 질문에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서 당영영이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며 멍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감동한 모양.

나는 아내에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환병을 한 주머니나 받아 감격한 모양입니다. 부인.”

당영영의 기운을 북돋는 데는 저것만 한 것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영영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니.

이정도면 괜찮은 오빠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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