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의 의미
당가의 인물들과 헤어져 관도를 따라 며칠 이동하자 수주(隨州)에 도착할 수 있었고, 호북이 수많은 강과 호수로 이루어진 지역이라 그런지, 수주에서 배를 타고 강줄기를 따라 이동하자 걷는 것보다 훨씬 편하게 악주(鄂州 무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악주는 중원에서 가장 큰 호수인 동호(東湖)를 시작으로 주변에 수많은 호수와 가로지르는 장강을 낀 호반의 도시였는데, 그렇다 보니 수많은 배들이 강과 호수 위를 오가고 있었고,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다.
악주에서 하루를 묵고 배편을 알아보았는데, 수도인 동경까지 가는 배편을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수도로 향하는 물동량 대부분이 수로를 이용하는지라 정기 배편이 아주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노공, 걱정됩니다. 저는 배를 처음 타보거든요. 영영 언니가 속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고 해서요···.”
동경으로 향하는 객선(客船)에 오를 준비를 하면서 제갈청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처음 타는 배 여행에 멀미 걱정이 많은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 혹시라도 부인의 속이 불편하면 내가 돌볼 것이니.”
중국을 오갈 때 비행기가 아닌 배편을 자주 이용했던지라 제갈청을 향해 웃어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반나절도 안 돼 호기에 찬 장담과는 다르게 객실에 누워 줄곧 제갈청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우웨엑··· 아이고 나 죽네.”
“노, 노공 괜찮으십니까?”
‘아, 이 몸이 내 몸이 아니면서 내 몸이었지···’
전생의 튼튼한 몸과는 다르게 비루한 몸인 현생의 몸은 뱃멀미에 내성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전생에 배 몇 번 타봤다고 뱃멀미는 걱정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대의 장강의 오고 가는 객선(客船)이라고 해 봐야 전생에 비하면 작은 크기이고, 결국 작다는 것은 장강의 물살에 요동치기 쉽다는 것.
나는 놀이공원 바이킹처럼 흔들리는 배 때문에 몸 안에 든 것을 남김없이 토해 내야 했다.
“우에에에에엑···”
“노공!”
‘아이고 내 신혼여행이···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꼭 연출하고 싶었는데···’
내 구토하는 소리와 아쉬움이 장강의 굽이치는 긴 물길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내렸다.
심하게 요동치는 배로 인하여 내장까지 토해내는 몸이 축나는 배 여행이었지만, 그나마 위안이라면, 빠른 이동 속도와 치안력.
하류로 물살을 따라 내려가니 배는 정말 빠르게 이동했다.
또한 무림이니 장강의 명물 장강수로십팔채(長江水路十八寨)니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같은 지역특화 몬스터인 수적들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수로로 곡식을 운반하다 보니 관에서 물길의 치안을 상당히 신경 쓰는 모양인지, 치안이 관도 보다도 훨씬 괜찮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방의 감초 같은 수적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장강에서 빠져나와 수도인 동경으로 향하는 대운하인 통제거(通濟渠)에 진입하고 한 이틀쯤 되었을까?
간도 크게 대운하에서 영업하고 있었던 웬 미친 수적 놈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었다.
물안개가 자욱한 아침.
여행이 열흘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그나마 좀 멀미가 좀 나아졌기에 제갈청과 답답한 객실에서 빠져나와 밖에서 바람을 쐬던 우리의 시야에 이상한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 어제 선주의 말로는 통제거를 삼 할 정도를 이동했다는데, 새벽의 뿌연 물안개를 헤치고 여러 척의 작은 배들이 우리가 탄 객선을 쫓는가 싶더니, 소말리아 해적 같은 놈들 몇 명이 배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작은 배에서 누군가 경공으로 갑판으로 훌쩍 뛰어오르더니, 약간 비틀거리며 배에 탄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통제거(通濟渠)를 지나려면 통행세를 내야지! 그냥 지나가면 쓰나! 끕. 나 통제거의 수귀(水鬼) 피초(皮初)에게 통행세를 내면 목은 붙어서 지나갈 수 있게 해주지! 크하하하! 끅,”
도 한 자루를 어깨에 비스듬하게 걸쳐 메고, 칠부반바지 하나만을 달랑 걸친 소말리아 해적같이 비쩍 마른 놈이 천천히 걷혀가는 안개 속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와 미소 지었다.
‘뭔 도적놈들이 이렇게나 얼리버드인지···’
꼭두새벽부터 활동하는 놈들의 부지런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었다.
그리고 내가 부지런한 수적 놈들에게 감탄할 때 놈의 외침에 객실에 흩어져있던 우리의 호위인 제갈가의 무사들로 이루어진 천기대(天機隊) 십여 명과 천기대주(天機隊主) 마정안(馬丁安)이 급하게 달려 나왔다.
“웬 놈들이냐!”
제갈가의 무력대 대주라 그런지 전생의 깍두기 형님들 생각나는 등빨이 장난 아닌 천기대주가 눈을 부라리며 놈에게 외치자, 수귀인지 뭔가 하는 놈이 무사들의 옷을 확인하고는 움찔거리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갈가?!”
수적 놈들도 어지간하면 배에 누가 탔는지 정도는 살필 것인데, 관군에 토벌당할까 봐 안개가 낀 날만 영업하시는지, 우리가 탄 지도 모르고 들이받은 모양새였다.
두 무리의 대치에 갑판에 묘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침묵을 깬 것은 대주인 마정안이었다.
“접각부님 이놈들을 어찌할까요?!”
‘아니, 너희들이 호위면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지 왜 나한테 묻니.’
갑자기 나한테 의견을 묻는 대주의 질문에 이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예전 당영영과의 기억을 되살려 말을 시작했다.
수적들은 대부분 당영영이 가르쳐 준 대로 다들 대도를 들고 있었기에 대부분 흑화 농민, 대주의 눈빛으로 봐서는 대량 학살 명령을 기다리는 모양인데, 아무리 잡몹인 수적이라도 일단은 사람인데, 내 명령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거둔다는 것은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익힌 놈은 대장 한 놈뿐인듯했기에 싸우려면 싸울 수도 있겠지만, 일단 말로 풀어보기로 한 것이다.
산적들은 보통 이쪽 신분만 밝혀도 물러갔으니까 말이다.
“이 배에는 지금 제갈가의 사람이 타고 있으니, 호걸들께서는 제갈가의 체면을 생각해서 부디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지역구 탑 조폭인 제갈가이니, 체면상 하꼬인 너희들에게 통행세를 낼 수는 없지 않냐는 말을 예쁘게 돌려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놈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또, 똥개 새끼도 자기 집에서는 주인 대접을 받는 법, 나 수귀(水鬼) 피초(皮初)의 체면이 있지, 내 집인 통제거(通濟渠)에서 그냥 보낼 수는 없소이다!”
나라의 대운하가 제집이라며 돈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미친놈, 제 놈의 체면이 얼마나 중하기에 제갈가의 체면과 비빈단 말인가?
하긴 수로에서 영업하는 것을 보니 정상에서 한참 벗어난 놈이 맞는 것 같았다.
제갈가의 이름을 들먹거리면 어지간하면 뺄 텐데 말이다.
‘대충 이 정도면 물러가야 하는 거 아닌가? 산적이랑 수적은 뭔가 결이 다른가?’
당영영과 있을 때는 이 정도 입을 털어주면 알아서 물러나곤 했는데, 묘하게 끈적이는 수적의 말에 뒤를 돌아 아내와 대주를 바라보자, 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지?’
놈을 향해 다시 물었다.
“수적들에게 통행세를 낸다면, 세인들이 제갈가를 비웃지 않겠습니까?”
‘야 우리가 클라스가 있지 너희한테 삥뜯기면 쪽팔려서 안 돼.’
“흥 나 피초 또한 제갈가가 무서워 그냥 보냈다는 소문이 돈다면 비웃음당하기는 마찬가지!”
‘나도 내 나와바리에서 제갈가를 그냥 보내줬다는 소문이 돌면 장사 접어야 한다. 이해해라.’
“서로가 못 본 척하고 지나치면 될 일인데 피를 볼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형, 그러다 뒤져요. 네? 뒤진다고요. 적당히 못 본 척합시다.’
“흥! 여기 있는 모두의 입이 무겁다 누가 보장하겠나!”
‘우리끼리 시마이 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야.’
평행선을 달리는 서로의 입장.
‘그래, 이게 중원이지.’
오래간만에 들어오는 체면 어택에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체면이라는 단어에 좀 도둑단 새끼들이 지역구 탑 조폭들에게 대가리를 들이밀 수 있는 곳, 그곳이 중원이니 말이다.
“그래, 그럼 호걸께서는 그러면 통행료로 얼마를 원하십니까?”
뭘 대체 얼마나 원하나 놈에게 묻자 놈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금 열 냥만 주면 내 개봉까지 다른 놈들이 들러붙지 못하게까지 해 드리지. 헤헤”
‘미친놈인가?’
놈의 말이 끝나자 대주가 분노해 소리쳤다.
“이런 미친놈! 접각부님 그냥 저희가 다 쓸어버리겠습니다.”
금자 열 냥이면 은자 이백 냥, 당연히 통상적인 통행료를 넘어서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시체 치우고 관아에 신고하는 것이 귀찮고, 또 혹시나 우리 사람 중에 누구 하나 상할까, 뭐 그런 이유로 지금 참고 있는 것인데 금자 열 냥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상황.
대주의 날 선 반응에 놈의 뒤에 선 수적 놈들이 두려워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두목 놈을 제외하고는 그냥 흑화 농민.
‘정신 얼빠진 수적 대장만 어찌 처리 못하나?’
“내 잠시 상의 좀 해보겠소.”
대주와 제갈청과 머리를 맡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술에 잔뜩 취하여 말이 안 통하는 듯한데, 피를 보지 않고는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소. 저놈만 제압할 방법이 없겠소? 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수적 놈들 대부분이 대도(大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무공을 익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말이요. 저놈만 쓰러트리면 다른 놈들은 항복하지 않을까 싶소만.”
그런데 대주를 바라보며 물었는데 내 의견에 대답한 것은 아내인 제갈청 이었다.
“저, 노공, 그럼 제가 한번 나서볼까요?”
“응? 무슨? 서, 설마 직접 나서겠다는 말이요?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저, 절대 안 되오.”
갑자기 용감하게도 자기가 나서서 도적들을 상대하겠다는 통에 깜짝 놀라 외치자 제갈청이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아, 아뇨 저도 무공은 그리 고강하지는 않지만, 재주는 하나 있어서요. 멀리서 구슬을 쏘아내는 것인데 수적 우두머리 정도는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갈가에 그런 무공이 있었나?’
당문처럼 제갈가에 암기를 쏘아내는 무공이 있는지는 몰랐는데, 그 정도면 위험하지 않을 듯싶어 대답했다.
“알겠소. 대신 꼭 내 뒤에서 하시오. 아셨소?”
내가 제갈청의 손을 붙잡으며 신신당부하자 그녀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노공.”
잠시 후 놈의 시선을 끌기 위해 당영영에게 받은 금나비 반지를 꺼내며 물었다.
“금자 열 냥 대신 이것은 어떻소? 능히 금자 열 냥의 가치가 있는 물건인데. 이리 손에 낄 수 있는 반지라오.”
한번 손에 끼며 시범을 보이자, 놈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더니 나를 향해 외쳤다.
“좋소! 내 그 정도에서 참아드리지.”
놈이 손을 뻗으며 다가올 때였다. 제갈청을 향해 외친 것은.
“지금이요. 부인!”
-씨우웅
그러자 곧바로 내 옆머리와 오른쪽 얼굴의 솜털들을 제모하는듯한 느낌이 들며 무엇인가가 앞으로 쏘아졌다.
‘레, 레일건인가?’
그리고 바람 소리와 머리를 스치는 느낌에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 뜨니 머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도적놈이 건져 올린 물고기 마냥, 갑판 위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사, 살려주시오!”
그리고 그 기괴한 현상에 수적들이 놀라 무기를 버리고 갑판 위에 엎드렸다.
놀란 얼굴로 제갈청을 바라보자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히, 힘 조절이 조금···.”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면, 나의 장인이 딸바보라는 사실.
그들에게는 200킬로가 넘는 딸도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고, 제갈청처럼 남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무력이 있어도 무공이 허약한 것.
일반인의 기준에서 그들의 말을 해석해서는 안 되었는데 깜빡한 것이었다.
“이, 이게 어찌 된?”
대체 무슨 위력인지 물어보자 그녀가 부끄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제, 제가 괴질 때문에 숨이 여러 번 넘어 갈뻔하여, 할아버님의 내공을 격체전공(隔體傳功) 받은 적이 있어서요··· 할 줄 아는 거라곤 경공과 탄지신통(彈脂神通) 정도인데··· 사람에게 쏘아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장인 기준 허약, 평범한 사람 기준 고강한 아내가 내 아내였다.
***
동경에 도착해 배가 항구로 접어들자 여행 중에 수적들을 처리해줘 친해진 선주가 개봉에 볼만한 것들을 일러주었다.
“동경에 처음 오셨다고 했으니, 황궁과 개보사(開寶寺)의 철탑, 천청사(天清寺)의 번탑, 대상국사(大相国寺)는 꼭 보고 가시지요. 변(汴)의 명물입니다.”
여행가이드처럼 선주가 명물을 소개해주기 시작하니, 시달리던 멀미에서 벗어나 이제야 뭔가 신혼여행 느낌이 살살 솟아나기 시작했다.
전생으로 치면 시골에서 살다 신혼여행으로 서울 올라온 느낌이라서 70, 80년대 향수도 살짝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부인과 꼭 가보도록 하지요.”
항구의 접안 시설은 황하(黃河)강을 끼고 세워진 도시답게 무척이나 거대했는데, 배에서 내리자마자 송나라 때임에도 수도는 수도인지라 수많은 사람과 볼거리가 넘쳐났다.
그렇게 스무날 정도 걸린 항해가 끝나고 항구에 내려 바로 제갈청의 숙부인 제갈각이라는 분이 살고 계신다는 곳으로 향했다.
제갈청의 숙부가 살고 계신 곳은 황궁 근처의 부촌.
화려한 전각들이 즐비한 길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자 익숙한 제갈가의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집을 발견할 수 있었고, 우리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문 입구에서 경계를 서던 무사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예를 취해왔다.
“아, 아가씨께서 어찌 이곳을.”
“안에 아가씨께서 도착하셨음을 알리거라!”
입구에서부터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안으로 들어서자 중년의 부인 하나가 달려 나와 우리를 맞았다.
“청아!”
“숙모님!”
“네 혼례에 가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그런데 이 먼 곳까지 어찌 찾아온 것이야?! 어디 얼굴 좀 보자꾸나. 네 얼굴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들었느니라.”
제갈청의 숙모로 보이는 사람은 색목인임을 숨기기 위해 면사로 가리고 있던 제갈청의 면사를 걷고 얼굴을 살피더니, 무척이나 기쁜 표정으로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아주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녕 어릴 때와 같은 고운 얼굴이 되었구나!”
“예, 전부 노공 덕분입니다.”
제갈청이 나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자 제갈청의 숙모가 얼른 다가와 내 손을 붙잡고는 고마움을 전해왔다.
“하나밖에 없는 가문의 핏줄을 살리셨으니, 저희 집안의 은인입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류청운이라고 합니다.”
내 인사가 끝나자 숙모님이 하인들을 향해 소리치셨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멀리서 오셔 피곤하실 텐데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여봐라 같이 온 무사들의 숙소를 배정하고 목욕물을 준비하거라. 그리고 주객낭중(主客郎中)께도 하나뿐인 질녀가 도착했으니 오늘은 일찍 퇴청하시라고 사람을 보내거라.”
“알겠습니다. 남궁부인!”
목욕을 하고 제갈청과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자, 이른 저녁 숙부님인 제갈각으로 보이는 분이 의관도 갈아입지 않은 채, 우리가 쉬고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들어섰다.
점잖고 기품 넘치는 아우라가 있는 중년인.
“처, 청아! 우리 질녀!”
“숙부님!”
숙부님이 도착하기 전 제갈창에게 잠깐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분은 아이가 없으셔 같이 살 때는 거의 친자식처럼 돌봐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제갈청에 대한 두 분의 애정은 거의 친부모 같았다.
“이 먼 곳까지 찾아오다니, 오늘 길은 무탈하였느냐?”
“예, 숙부님.”
“이럴 때가 아니지! 그간 밀린 이야기를 들어보자꾸나. 여봐라 차를 내오너라!”
잠시 후 의복도 갈아입지 않은 제갈청의 숙부와 차를 마시며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류청운이라고 합니다. 숙부님.”
“잘 왔네. 우리 청이를 살리고 이리 괴질도 치료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런데 내 형님께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듣지 못했는데 이야기를 좀 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제갈청의 숙모와 숙부에게 내 소개를 잠깐 하게 되었는데, 내가 요리사라는 것을 듣자 제갈각 숙부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 되었다.
“숙부님?”
그 모습에 제갈청이 자기의 숙부를 부르자 정신을 차린 제갈각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 이런 내 잠시 다른 생각이.”
“무슨 일이신지요? 수심 있는 얼굴이신 것 같은데.”
“그리 보였느냐? 지기(知己) 중에 요리를 좋아하는 이가 있는데, 요즘 정사(政事) 문제로 좀 대립하고 있어서 말이야··· 요리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생각나서.”
제갈각이 멋쩍게 웃으며 설명했고, 그 이야기를 듣자 제갈청이 손바닥을 치며 잘되었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 그분을 초대하시는 건 어떤지요. 제 노공께서 요리를 아주 잘하신답니다. 그분이 좋아한다는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요리를 좋아하는 그 친우분과 화해하실 수 있지 않겠어요? 노공 괘, 괜찮을까요?”
남편을 자랑하고 싶어서 못 참겠다는 제갈 청의 얼굴.
“괜찮다 마다요. 내 그대의 부탁이라면 무엇인들 못 하겠소.”
내 대답에 제갈청의 얼굴이 기쁨으로 벅차오르고 그녀의 숙모와 숙부도 그런 제갈청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이 시대에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설마? 그 사람인가?’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이 살며시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