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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蘇東坡) (57/344)

소동파(蘇東坡)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화해해보라는 제갈청의 순진한 제안은 그의 숙부에게 조금 난처한 제안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정치적 대립이라는 건 아주 복잡한 문제이기에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웃으며 이야기한다고 쉬이 풀리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제갈청의 사이가 좋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그녀의 숙부도 조심스레 에둘러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그래도 손님인 조카사위를 어찌 우리 집 부엌에 들인단 말이냐?”

제갈청의 숙부가 난처한 듯 말하자 나의 아내는 내 요리실력을 그녀의 숙부가 의심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부끄럽게도 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노공의 실력이 걱정되어 그러시는 것이라면, 저의 노공께서는 무림에서 용의 별호를 받으신 분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숙부님.”

용의 호칭은 해당 부분에 뛰어난 실력을 낸 기라성 같은 후기지수들에게만 허락되는 호칭이기에 아내의 말에 숙부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용의!? 그렇다면 검룡이나 권룡 같은 한 부문에 뛰어난 무공을 가졌단 말이냐?”

“최근에 용의 별호가 나오지 않았는데, 무림에 새로운 용이라니···.”

요리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용의 호칭을 가진 뛰어난 인재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제갈청의 숙부 부부 둘을 요리와 용을 연결하지는 못했고.

둘 다 내가 뛰어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내가 무공을 익힌 자의 특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자 제갈청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둘을 향해 뿌듯한 얼굴로 외쳤다.

“아뇨, 식룡! 제 노공의 별호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뿌듯한 표정으로 자랑하는데 왜 나에게는 부끄러움이 밀려올까?’

“식룡?”

“시, 식룡?”

무슨 그런 용이 다 있느냐는 표정으로 나와 제갈청을 번갈아 바라보는 두 분.

그 모습에 더욱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제갈청은 그런 둘의 표정이나 나의 부끄러움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아주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무공은 익히지 못하셨지만, 요리실력으로 식룡(食龍)의 별호를 얻으셨으니. 얼마나 뛰어난지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별호를 어떻게 얻으셨느냐 하면 독왕의 생일잔치에서······”

제갈청은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내가 별호를 얻어낸 독왕의 생일잔치의 일들을 묘사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영영 얘는 애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한 건지 나는 분명 복어회를 떴을 뿐인데,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아내의 장르인 판타지.

“면사로 쓰는 얇디얇은 비단처럼 하돈의 고기가 편으로 저며져 당문의 상징인 바꽃이 되었는데, 무림의 호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진짜 꽃인 줄 알고 앞다투어 향을 맡으려고 했다고 해요.”

“저런 그리 얇게 편을 뜰 수 있단 말이냐?”

“정말 이야기로만 들어도 대단하군요.”

제갈청의 이야기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기에 그녀의 숙부 부부는 제갈청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서시의 유라고 불리는 하돈의 정을 맛본 무림의 호걸들이 노공께 별호를 내리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 내리겠냐며 고개를 끄덕였고, 저 멀리 노을로 생전 처음 보는 용 한 마리가 숨어드는 것을 본 누군가가 식룡이라는 별호를 내리자고 제안해 식룡을 별호를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끝내고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제갈청의 모습에 그의 숙부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우리 집안에 대단한 이가 접각부로 들어왔구나! 하하하!”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은 듯했다.

제갈청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무조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기분.

아마도 여긴 딸바보가 아니라 조카 바보.

집안의 유전병인 딸바보 병의 변이형인 모양이었다.

“갑자기 하게 된 혼례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리도 뛰어난 인물에, 둘의 사이가 이렇게 좋은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혹시라도 벽안에 피부가 너무 희다고 미움받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내의 숙부가 대소하며 기뻐하고, 그녀의 숙모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걱정되었던 것을 말하자.

제갈청이 내가 자기 눈을 호수 같다고 했다든지, 백설은 손에 쥐면 사라져 더 가치가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분위기는 활활 타올랐다.

나의 부끄러움도 동시에 활활 타오르고.

그리고 아내의 적극적이고 부끄러운 칭찬으로 그 정도 요리실력이라면, 사이가 틀어진 지금도 친우가 기꺼이 초대에 응할 것이라며 기뻐한 제갈청의 숙부는 아내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 그리 뛰어난 실력이고 식룡이라는 별호를 가졌다면, 그 친구도 참지 못하고 초대에 응할 것이야. 맛있는 요리는 참지 못하는 친구이니 말이야.”

그 말에 숙부님이 언급하는 친구가 내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는지 물었다.

이 시대에 관직에 있으면서 맛있는 요리에 환장하는 분이라면 그분이 보통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라는 분이 혹시 자첨(子瞻)이라는 분이십니까?”

“어찌 자네가 그를 아는가?”

깜짝 놀라 되묻는 숙부님.

“아, 어쩌다 보니 몇 번 들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를 알고 있는 것은 전생의 지식이기에 적당히 둘러대 위기를 모면하고 제갈청의 숙부의 친우라는 그에 대해 생각했다.

이름 소식(蘇軾), 자 자첨(子瞻), 호 동파(東坡).

그래, 우리가 흔히 소동파라 부르는 북송의 시인이자, 학자, 정치가인 그 사람이었다.

중국 요리를 배우다 보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인물.

동파육(东坡肉), 동파어(东坡鱼), 동파주자(东坡肘子), 동파두부(东坡豆腐)등의 주옥같은 중국 요리들은 만들어낸 인물로 유명한 중화요리에 전설적 인물.

내가 그에 관한 내용을 떠올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 제갈청의 숙모가 말씀하셨다.

“아, 그러면 걱정하시던 분이 예부랑중(禮部郞中) 어르신이시군요?”

“그렇다오. 긴 한직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 동경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너무 대쪽 같이,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아서 말이야.”

“한직 생활도 힘드셨을 텐데, 그러면 청이의 말대로 집으로 초대해 좋은 음식을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눠 보시지요. 동경으로 오신지 얼마 안 되셔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래야겠어. 조카사위 그러면 내 부탁 좀 하겠네.”

제갈청의 숙부께서 나를 향해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셨고, 그렇게 중화요리의 입지전적 인물에게 내 요리를 선보이게 되었다.

뭐 중화요리의 입지전적 인물이라지만 이 시대에는 그냥 요리를 좋아하는 정치가 정도의 포지션이지만 말이다.

결국 며칠 후 소동파를 초대하는 일정이 잡히고, 나는 그가 도착한다는 날 아침부터 제갈청과 하인들을 데리고 연양(軟羊), 마파두부, 소롱포,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특제 춘장으로 만든 작장면까지 만들어 내가 무림에 떨어져 만든 음식을 총망라해서 준비했다.

그리고 회를 좋아하는 소동파를 위해서 잉어와 황하를 이용해 운송해온 전복까지 준비에 회를 떠 정말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대령했다.

메뉴는 새로운 요리를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모험적인 요리보다는 일단 다른 이들에게 먼저 한 번씩 검증을 거친 요리라는 이유와 자기가 먹어본 것을 숙부 내외에게도 대접하고 싶다는 제갈청의 소망이 반영된 메뉴였다.

-치이익

“자 이것을 빨리 내가거라. 면 요리는 식으면 맛이 없으니 바로 드시라고 말씀드리고.”

“예 접각부님.”

제일 마지막 식사인 작장면을 안으로 들여보내자.

식사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던 하인이 헐레벌떡 뛰어와 말했다.

“어르신께서 들라 하십니다.”

“알겠네. 뒷정리를 부탁하고 여유로 음식을 만들어뒀으니, 부족하면 안으로 내오고 혹 남으면 자네들끼리 나누어 먹게나.”

내 말에 요리를 만드는 내내 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하인들인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저, 정말입니까? 가, 감사합니다요.”

기뻐하는 하인들을 뒤로하고 땀을 닦고 의복을 확인한 후, 식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로 향하자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자네의 조카사위가 최근 무림에서 식룡이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이라기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온 것이니, 오늘은 정사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나.”

아마 자리에 앉자마자 소동파는 단호박같이 미리 다짐받으며 제갈청의 숙부를 향해 선을 그은 모양이었다.

첫인상 무척 깐깐해 보였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숙부께서 이 자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것을 눈치챈 모양.

하지만 제갈청의 숙부도 제갈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인물인 듯 아주 능숙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한직을 전전하다 동경으로 되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 걱정이 되어서 그러네.”

둘은 내가 다가가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심지어 내가 빈자리에 앉는데도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상태.

뭔가 인기척을 낼까 하다가 일단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고 해도 내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네.”

“어허 이 사람 고려 문제로 또 관가(官家)의 눈 밖에 나면 어쩌려 이러는가.”

‘응?! 지금 뭐라고?’

뭔가 그리운 이름이 제갈청의 숙부의 입에서 들려왔다.

‘고려, 그래 지금이 고려 시대구나···.’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가 북송 시대 한반도에 존재하던 나라였던 것이었다.

고려라는 이름을 들으니 향수에 괜스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나의 벅차오르는 가슴과 감동을 산산이 깨부수는 소동파의 말.

“그렇다 하더라도 백성들의 슬픔을 어찌 그냥 보고 있는단 말인가? 내 저 고려 오랑캐 놈들과는 상종할 수 없음이야!”

‘응?! 오, 오랑캐!? 지, 진정하자 청운아 원래 중원 놈들이 저희 빼고는 다 오랑캐라 칭하지 않더냐. 진정! 진정하자.’

뭔가 싸잡아 욕을 먹은 것같은 기분에 살짝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것이 저희 빼고는 모두 오랑캐 취급인 중원의 특성임을 떠올리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갑자기 나의 그런 마음에 기름을 들이붓는 말이 다시금 들려왔다.

“어허, 이 사람 고려와 화친해 요(遼)를 당연히 견제하여야 하는데, 어찌 그리 고려를 미워하는가?”

“그 천한 나라 고려와 무슨 화친을! 그따위 천한 나라와 어찌 상종한단 말인가!”

-와지직

갑자기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자 제갈청의 숙부와 소동파 둘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하더니 물어왔다.

“자네 언제 왔는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네가 온 것도 몰랐구만. 그나저나 자네 괜찮은가?”

“예?!”

제갈청 숙부의 시선이 머무르는 내 손을 보니 어느새 손에 쥔 대나무 젓가락이 반으로 부러져 있었다.

“저, 젓가락이 조금 문제가 있었던 듯합니다.”

나는 급하게 둘러대며 위기를 모면했는데, 다시금 숙부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자네 손은 왜 그리 떨고 있나?”

“예?! 손이요?”

손을 바라보자 부러진 젓가락을 쥐고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나의 오른손.

“소, 손이 대체 왜, 벼, 별일 아니니 이야기들 나누시지요.”

나는 급하게 손을 뒤로 숨기며 둘을 향해 변명했다.

“아무튼 나는 정병을 삼십만도 넘게 양성하며 뒤로 몰래 음흉한 꿍꿍이를 획책하는 천한 고려 놈들과는 상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아니, 저 되놈이 지금 뭐라고?! 감히 우리 선조님들을 향해!’

괜스레 분노가 끓어올랐다.

내가 그렇게 국뽕이 충만한 인물이 아닌데, 선조님들을 깡그리 싸잡아 천하다 비하하는 소동파의 말이 묘하게 분노를 솟아나게 했다.

객지 나오면 고향 개새끼도 반갑고 누구나 국뽕 충만하게 된다더니···.

소동파가 북송 시대 대표적 혐고려 파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에 놀라울 건 아니었는데,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듣는 것은 막대한 차이가 있었다.

뭔가 나의 근본을 훼손당하는 느낌.

면전에서 패드립을 당한 느낌이랄까?

가슴속에서 뭔가가 활활 타올랐다.

또한 선조님들을 모욕하는 것을 듣고 참는다면 후손 실격.

저 오만한 자에게 벌을 내리기로 했다.

‘저자를 제가 그냥 두고 본다면 어찌 후손이라 하겠습니까!’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소동파의 단호박 같은 외침에 분위기가 어색해진 틈을 타, 결심이 섰으니 바로 소동파를 향해 물었다.

“예부랑중(禮部郞中) 어르신 오늘 음식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아, 그렇지 쓸데없는 논쟁을 하느라 이리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준 자네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했구먼. 내 정말 맛있게 먹었네. 정말 하나같이 훌륭하군.”

아까 집에 도착할 때 이미 인사는 나눴기에 내 물음에 친근히 대답하는 소동파.

꼬장꼬장하게 생긴 중년에서 요리 이야기가 나오니 다시 기쁜 얼굴이 된 그, 역시나 요리를 좋아하는 인물다웠다.

나는 곧바로 그를 향해 제안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면 혹시 내일도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내, 내일도 말인가?”

“예, 꼭 맛보여드리고 싶은 요리가 있어서 말입니다.”

“내게 맛보여 주고 싶다고?”

“예, 예부랑중 어르신. 후회는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부랑중 어르신만을 위해서 만들 예정이니까요.”

내 제의에 오늘 먹었던 요리들이 마음에 들었던지 그는 아주 기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나만을 위해서 이런 좋은 음식을 또 맛보여 준다면 내 마다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내 당연히 내일도 오겠네.”

내일 벌어질 일도 알지 못하고 맛있는 요리에 낚여 올라오는 소동파.

그를 보며 다짐했다.

‘선조님을 욕보인 저놈을 제가 내일 이 자리에서 엄히 단죄하겠습니다!’

오늘 나의 요리를 먹고도 나의 선조님을 모욕한 대가로 나는 내일 저자의 중요한 것을 빼앗을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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