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공정(东坡工程)
동파공정(东坡工程)
전생의 소설 같은 곳에 등장하는 흔한 클리셰인 죽음과 관련된 능력의 양대 산맥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환생, 회귀.
환생은 나처럼 전혀 다른 세계에 태어나 맨땅에 헤딩하며 살아가는 것.
물론 전생의 기억으로 아주 조금 도움을 받긴 하지만 개처럼 구르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회귀는 죽기 전 일정 시점으로 되돌아가 꿀을 빠는 것.
나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환생좌님들과는 다르게 회귀쟁이 새끼들은 아주 야비하고 비겁한 편인데, 그치들은 죽어서 다시 일정 시점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을 이용해, 이미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정보로 다른 이들의 업적을 빼앗거나 가로채 이득을 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도적 새끼들이나 다름없다고 할까?
그런 이유로 나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환생좌님들께서는 회귀쟁이의 도둑질을 극도로 혐오하는 편인데, 오늘 나를 분노하게 한 소동파로 인하여 나는 오늘 금기를 하나 깨트리기로 결심했다.
소동파의 업적을 하나 스틸 하기로 한 것이다.
도적질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지만, 그것이 선조님들의 체면보다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분노하게 하여 스스로 금기를 범하게 하다니!’
선조님을 위해 분연히 일어선 후예인 나는 목표를 떠올렸다.
소동파는 생전에 많은 요리와 시들을 남겼는데, 나는 시인이 아니기도 하고, 그가 지었던 시들을 모르니 그의 시를 스틸 할 수는 없었기에, 그의 요리를 훔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의 업적이 완성되기 전 그의 요리의 창시자를 둔갑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동파공정(东坡工程)!
이 작전의 이름이었다.
‘선조님을 모멸한 대가, 동파육으로 치르거라!’
마음속으로 분노를 씹어 삼키며 계획을 생각해보고 있을 때 소동파를 배웅한 제갈청의 숙부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이야기가 좋게 끝나지 않아 한 번 더 기회가 있으면 했는데, 내일도 자첨을 초대한 것은 아주 잘했네. 그나저나 내일은 또 어떤 음식일지 궁금 하구만.”
기분 좋은 미소로 말하는 제갈청의 숙부에게 물었다.
“제가 잠시 들어보니, 숙부님께서는 고려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자첨께서는 고려를 별로 좋아하시지는 않는가 보군요?”
“그렇네, 거란이 세운 요나라와 서하가 강성한 지금 송에서는 막대한 세폐(歲幣)가 요와 서하로 보내지고 있지, 그러니 고려와 같이 요를 견제해야 한다 생각하는데, 자첨은 고려의 사신들을 맞기 위해 백성들이 너무 고통받는다는 생각이네.”
뭐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동파가 백성을 무척 생각해서 고려를 미워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는 숙부님의 말씀.
고려의 사신들을 대접하는 데 드는 비용이 요나 서하에 지불하는 막대한 조공에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고 하셨으니까.
숙부님께 듣기로 선조님들께서 조금 패기로운 행동을 하셨다곤 하지만, 그것은 선조님들의 기상이 조금(?) 패기로운 것일 뿐.
그런 사소한 이유로 실리를 따져야 할 국제 관계에서 대놓고 저리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주 답답하신 상황이군요?”
“그렇다네.”
말을 끝낸 제갈청의 숙부는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히 선조님들을 무시하는 자로 인하여 현생의 처가 식구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면 두루두루 살피는 것이 사위의 도리.
하수는 한 번에 한 가지 목적을 이루지만 고수는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
생각해보니 복수와 처가 식구를 동시에 도울 방법이 한 가지 떠올랐고, 혹시 도움이 필요한지 숙부님을 향해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제가 내일 조금 도움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자네가 말인가?”
“예, 그분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한번 다시 생각하게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다만 도움을 좀 주셔야 합니다.”
내 말에 제갈청의 숙부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고집불통 자기 친구의 생각은 바꿀 수 없을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생각이라도 해보게 한다는 나의 말이 놀라웠던 것 같았다.
“그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어찌, 어찌하면 되는가? 내 무엇이든 도와주겠네.”
“그것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내가 대략의 계획을 설명하자 계략의 천재 제갈가의 후예답게 숙부님은 내 계획에 날개를 달기 시작하셨다.
“오오! 그런 방법이? 그러면 나는 ······이리해야겠군?”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도?”
“그것도 좋지만 ······요리조리 하는 것은 어떤가?”
“오오! 역시! 예, 그렇게 해주시면 아주 좋을 듯합니다.”
“나만 믿게!”
숙부님은 친구의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 나는 선조님의 모욕당한 체면을 위해서 그렇게 제갈청의 숙부와 나의 연합작전이 진행되었다.
‘아, 그분의 후예와 연합작전이라니.’
가슴안에 감격이 벅차올랐다.
***
다음 날 점심때쯤 되어 제갈청과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오늘 내가 만들 것은 소동파 최대 업적 동파육(東坡肉).
동파육은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요리이기에 일찍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었다.
제갈청과 함께 부탁했던 재료를 살펴보고 요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노공, 예부랑중 어르신께 돼지고기를 냈다가 그분의 기분을 노엽게 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제갈청이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를 한다는 사실에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부인, 걱정하지 마시오. 아마 그분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일 테니 말이요.”
“돼지고기를 말입니까?”
제갈청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껍질이 붙은 큼지막한 돼지고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껍질 붙은 삼겹살의 털을 채도를 이용해 깨끗하게 밀어내고, 달군 웍에 돼지고기의 껍질 부분을 밑으로 해 집어넣었다.
-치이익
달군 웍에 돼지고기의 껍질을 태우는 이유는 돼지고기의 껍질이 뜨거운 웍과 만나면, 채도로 미처 밀어내지 못했던 잔털들이 모두 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껍질은 직화에 태우기도 하고 달군 웍에 문질러 태우기도 하는데, 결국 목적은 털을 태우는 것.
그렇게 돼지고기 껍질의 표면이 모두 정리되면 그것을 약간의 팔각과 대파를 넣은 물에 십여 분 삶아 잡내를 날려준다.
다음 과정은 삶은 돼지고기를 꺼내 주먹만 한 크기의 사각형으로 잘라주고 웍에 기름을 넣어 자른 돼지고기를 튀겨주는 것.
“청 뒤로 물러나시오. 기름이 튀어 혹 얼굴이 상할까 걱정되니 말이오.”
“예, 노공. 그런데 노공께서는 어찌하시려고.”
“아, 나는 나무 뚜껑으로 덮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옆에 바짝 붙어 요리하는 것을 구경하는 제갈청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웍에 돼지고기가 잠길 정도로 기름을 부어 달군 후, 주먹만 하게 자른 돼지고기를 튀겨질 온도가 된 기름 속으로 넣어주었다.
-촤아아아아
-팡 팡팡 파바방
삶은 돼지고기는 지방층 안에 있는 수분으로 인해 튀겨줄 때 팡팡 터지는 소리를 내며 기름이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뚜껑이 필수.
재빨리 돼지고기를 넣고 뚜껑을 덮어 기름이 튀는 것을 방지해준 후 고기의 사면이 노릇하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
솔솔 솟아오르는 튀긴 돼지고기의 향.
뚜껑을 슬쩍슬쩍 열어 안에 돼지고기가 얼마나 익어가는지를 확인하며 사면이 노릇하게 익을 때까지 튀겨주었다.
돼지고기를 튀겨주는 이유는 오랜 시간 삶고 쪄야기에 돼지고기가 되도록 원형을 유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동파육은 튀기고, 찌고, 삶고, 졸이는 네 가지 과정이 모두 필요한 음식.
긴 조리 시간은 고기의 조직을 부드럽게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흐물흐물해져 모양이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돼지고기의 사면이 모두 노릇노릇하게 익으면 다음 과정을 돼지고기를 국물에 넣고 은은한 불로 조리는 것.
사면을 굽긴 했지만, 긴 시간 졸이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모양이 틀어질 수 있기에 돼지고기의 사면을 실로 단단히 묶었다.
물론 묶는 것은 제갈청과 함께였다.
“이리 묶으면 되는 것입니까?”
“아주 잘했소이다. 어쩜 이리 칼각을··· 누가 봤으면 군필이라고···”
“예?!”
“아, 아니요···”
칼각 잡힌 돼지고기를 묶고 있는 실.
아내의 남다른 손재주를 칭찬해준 후, 바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다.
냄비의 바닥에 대파를 큼지막하게 잘라 꼼꼼히 깔고, 위에 생강편을 잘라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실로 묶은 돼지고기를 빽빽하게 올린다.
긴 시간 졸여야 하는데, 고기가 바닥과 붙으면 그 부분만 먼저 익어버려 모양이 뭉개지거나, 바닥과 맞닿은 부분만 간이 깊이 배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파와 생강편 위에 올려주면 돼지고기가 직접 냄비의 밑바닥과 만나는 걸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끓어오르며 대파와 생강의 은은한 향이 돼지고기에 배어들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냄비에 넣어줄 것은 오향분.
오향분이란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다섯 가지 향신료의 가루를 섞은 것을 말하는데, 계피(肉桂), 회향(茴香), 팔각(八角), 화초(花椒), 정향(丁香)을 말한다.
전생이라면 간편한 가루를 팔겠지만, 여긴 그런 것이 없으니 다섯 가지 향신료를 같은 비율로 절구에 빻아 넣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할 것은 설탕을 약한 불로 계속 가열해 카라멜라이징화 시킨 것과 노두유, 마늘 몇 개와 다시 또 팔각.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재료.
소흥노주(绍兴老酒).
소흥노주, 소흥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것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것은 동파육 실격.
진정한 동파육은 소흥주가 주민등록증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유의 향과 잡내를 제거해주는 일등 공신.
이 시대에는 조금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말이다.
“월주(越酒)가 들어가는군요?”
냄비에 소흥주를 부어 넣자 제갈청이 물어왔다.
“그렇소. 이 돼지고기 요리에 가장 중요한 재료라오.”
제갈청이 부른 월주라는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흥주.
생각해보니 전생에 무협지에서 흔히 보던 소면과 만두가 실제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 소흥주 또한 무협 소설의 낭만을 산산이 깨부수는 존재 중 하나였다.
상상하자면.
20세에 검룡의 칭호를 얻고 사대 악인 중 둘의 목을 벤 주인공 류청운이 자신의 강함에 염세를 느낀 나머지 기루(妓樓)에 들린다.
술 한잔으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런데 술 한잔하러 온 류청운의 신분을 단박에 알아챈 기루의 웨이터들이 하층따위에 모실 수 없다며 류청운을 기루의 최상층으로 안내하고, 기루의 에이스라서 아무나 만나주지 않는다는 절세 미녀 루주(樓主)인 제갈청이 직접 등장해 류청운을 모신다.
류청운의 게슴츠레 뜬 눈, 염세적 분위기 이미 한눈에 반해버린 제갈청.
하지만 류청운은 절세 미녀인 루주 제갈청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묻는다.
“여기 술은 무엇이 있나?”
“어멋, 검룡 류청운님. 저희 화월루에는 청운님 같은 분을 모시기 위해서 여아홍(女兒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갈청 주루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류청운이 아주 시크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러면 여아홍으로 부탁하네.”
이제 막 무림에 첫발을 내디딘 후기지수라면 화주나 죽엽청 따위를 마시겠지만, 용 정도의 칭호를 얻고 기루에도 갈 정도가 되면 과시를 위해 클리셰 처럼 마시던 술 여아홍.
무림계 성공한 남자들의 잇템이며 와인 같은 존재 여아홍.
높이 솟은 기루의 꼭대기 층에서 저 밑에 아등바등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음미하는 술 일진데.
그러나···
‘응, 그게 소흥주야.’
여아흥은 그냥 소흥주일 뿐인 것이다.
소흥주는 아주 역사가 깊은 술인데, 진나라대는 여주(女酒), 여아홍(女兒紅), 화조주(花雕酒)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당나라 때는 월주(越酒) 남송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소흥주(绍兴酒)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니 다 같은 놈인 것.
스토리 텔링을 좋아하는 중원인들이 소흥주에 붙인 별칭이 여아홍이고 딸을 낳으면 나무 아래 묻어둔다는 이야기는 중원 놈들이 그냥 술 팔아먹기 위해 만든 이야기일 뿐이다.
딸 낳으면 많이 사서 묻어두라고.
‘아무튼 왕서방 새끼들 장사 스킬은···’
중원 놈들의 장삿속에 혀를 차며 소흥주를 콸콸콸 따라 냄비 안으로 부어 넣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준비되고 나면 냄비를 불에 올려 한 시진(두 시간) 정도를 은은한 불에 졸여주고, 다시 그것을 건져 반 시진을 쪄주면 동파육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기를 끓인 물에 밀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동파육 위에 소스로 뿌려주고 청경채를 대쳐 같이 준비하면, 동파육을 먹을 준비까지 완벽히 끝.
천천히 동파육 냄비가 끓어오르고 냄비에서 올라오는 고기의 고소한 향과 어우러진 향신료들의 향이 부엌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자,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츄릅
옆을 보자 제갈청이 소매로 입을 가리고,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귀염 깜찍한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제갈청을 바라보자, 조금 부끄러웠던지 내 신경을 다른데 돌리려 제갈청이 급하게 물어왔다.
“노, 노공 그런데 이 요리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이름이 정말 궁금한 것인지 아니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것인지 조금 궁금한 질문이었다.
천한 돼지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