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한 돼지고기 (59/344)

천한 돼지고기.

“요리의 이름은 나중에 알려주겠소.”

제갈청을 향해 씩 하고 웃어 보이자 제갈청 또한 웃으며 말했다.

“당 언니가 말했던 재미이군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이름을 말해주면 재미가 없어지고, 재미는 마지막까지 남겨둬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내가 어색할까 싶어, 부끄러운 행동을 숨기고자 말을 돌리려 했던 아내를 위해 이야기를 조금 어울려 주었다.

“아, 그런데 내 장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혹 물어도 되겠소?”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말씀은 잘 안 해주세요. 열아홉 살이 되면 알려주신다고만 하고.”

“열아홉이라?”

중원 나이 열아홉이면 한국 나이 스무 살.

‘들려주실 이야기에 19금 스토리가 있나?’

그렇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자 두 시간이 마치 삭제된 것처럼 사라져 버렸는데, 잘못하면 모두 졸아 동파육의 국물이 몽땅 사라져 버릴뻔한 위기에서 급하게 정신을 차리고, 동파육을 건져 다시 두 시간을 은은한 불에서 찌기 시작했다.

졸아든 동파육 소스의 풍부한 향과 찜기에 쪄지는 동파육에서 흘러나오는 묵직하고 진한 고기의 냄새.

아내의 목이 꿀렁꿀렁하고 움직이고 있을 때 밖에서 하인이 하나 뛰어 들어와 소동파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접각부님 예부랑중 어르신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음식들을 내갈까요?”

“그러게. 만두도 준비하고 말이야.”

“알겠습니다요.”

하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주자 곧 제갈각 숙부께서도 부엌에 나타나셔서는 나를 향해 물으셨다.

“준비는 다 되었는가?”

“물론입니다. 숙부님.”

“나도 준비되었으니. 언제든 내오시게.”

제갈청의 숙부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지자, 곧바로 큰 접시에 동파육 셋팅을 시작했다.

대나무 찜기의 뚜껑을 열자 거칠게 뿜어져 나와 콧잔등을 때리는 진한 향신료의 냄새.

-후욱

수증기가 걷히자 안에서 동파육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노두유와 카라멜라이징한 설탕의 색이 입혀진 구릿빛의 고기.

한여름 해수욕장에서 태닝이라도 한 듯한 구릿빛의 먹음직한 모양새였다.

그런 동파육의 표면에 찜기에서 떨어져 내린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지자, 동파육의 표면이 마치 물 위에 물방울이 떨어져 내린 것처럼 살짝 파문이 일었다.

은으로 된 접시의 테두리에 먼저 데친 청경채를 예쁘게 올리고, 동파육을 건져내 실을 자르고 가운데 조심스레 자리 잡게 했다.

그리고 그 위에 동파육을 졸인 물에 밀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서 부어주었다.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돼지고기 위에 소스를 따라 부을 때마다 흔들리는 동파육의 표면.

얼마나 부드럽게 익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재빠르게 뚜껑을 덮어 그것을 들고 저녁 식사하는 곳으로 향했다.

동파육이 식을세라 걸음을 재촉해 저녁 식사가 이루어지는 전각 앞에 멈춰서자 하인들이 문을 열어주었고 안으로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소동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청운 어서 오게 내 자네의 요리를 무척이나 기다렸네.”

“오셨습니까? 예부랑중 어르신”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소동파.

그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부디 오늘 요리도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동파육을 식탁 한가운데 내려놓고 자리에 앉자 손을 비비며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요리를 바라보는 소동파.

나는 곧 뚜껑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공개했다.

-화악

뚜껑을 열자 풍겨 나오는 다섯 가지 향신료가 어우러진 동파육 특유의 향과 진하게 끈적이는 소스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자 소동파의 목젖이 아내인 제갈청처럼 꿀렁 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소동파가 참지 못하고 동파육에 젓가락을 가져가려 했을 때, 나를 책망하는 숙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이 무슨 짓인가!”

숙부의 외침에 놀란 얼굴로 숙부를 바라보는 소동파.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숙부를 바라봤다.

“아니, 이 친구 왜 그러는가 고생해서 요리를 해온 사람에게?”

그러자 제갈청의 숙부가 버럭 화를 내며 대답했다.

“내 둘도 없는 지기를 대접하는데 어찌 천한 음식인 돼지고기를 낸단 말인가! 이것은 내 지기의 체면을 무시하는 일. 어서 내 지기에게 사과하게!”

아주 엄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제갈청의 숙부.

그 말에 소동파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숙부님께 대답했다.

“예부랑중 어르신이 식저육(食猪肉)이라는 시를 지어 돼지고기를 칭송했다기에 준비한 음식인데 제 생각이 짧았나 봅니다.”

이 시대에는 이미 동파육이 존재했다.

다만 그것이 아직 동파육이라는 이름이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전생에는 동파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여러 가지 학설이 많았는데, 소동파가 돼지고기를 삶아 먹는 것이 취미였는데, 친구와 놀다가 불 위에 올려둔 것을 까먹어 너무 익혀 생겨난 음식이라든지.

소동파가 지방 관원으로 있을 때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았더니, 백성들이 그의 업적을 칭송해 돼지를 몇 마리를 선물했는데.

불쌍한 백성들이 자기 먹을 것도 없는데 돼지를 선물해줘 미안한 마음에 그것을 회증육(回贈肉)이라는 요리로 만들어 다시 선물한 것에서 발전한 것이라든지.

자기가 먹고 싶어 연구해 만들었다든지.

원래 있는 음식인 홍소육(紅燒肉) 발전한 거라든지, 정말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학설 중에 왕서방 새끼들이 장사하려고 만들어낸 회증육(回贈肉)설은 거짓임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스토리 텔링을 좋아하는 중원인들의 특성상 그럴듯한 스토리가 들어가야 감성 마케팅이 되는 것이기에 스토리를 만들어냈을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

거기에 유명인의 이름이 들어갔다? 그러면 지명도를 올리기 위한 구라일 확률이 이백 퍼센트로 증가한다.

여아흥에 관련된 이야기같이 제갈공명이 만두를 만들었다거나 관우가 언월도를 썼다는 이야기 같은 것은 백 프로 사기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왜냐하면 만두는 송나라 시대에 와서 거의 완성되기 시작했고, 월도(月刀)는 북송과 남송 시대에 군마가 없어 기병을 양성할 수 없는 송나라가 적들의 기병을 막으려고 만든 무기인데, 그전에 있지도 않은 무기를 관우가 썼을 리가 없는 것.

그런 이유로 춘장의 향이 풍기는 스토리가 들어간 내용들은 일단 의심해서 제외하고, 남은 학설 3가지를 섞고 식저육이라는 시를 지은 것을 살펴보면 대충 각이 나온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소동파가, 있던 요리를 변형해서 만든 것.

물론 이 시대의 동파육은 전생의 완성형의 동파육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같다.

오래 조리해서 부드럽게 만들어 먹는다.

제작자의 의도란 것이 있다.

만든 사람이 대체 어떤 의도로 그것을 만들었느냐 하는 것.

예를 들어 게임에서 두꺼운 갑옷을 입고 검과 방패를 든 기사라면 고기 방패의 역할로 앞에서 개같이 뚜드려 맞으며 뒤에 다른 파티원들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역할.

활을 들었다면 안전한 거리에서 공격을 넣는 역할.

다들 게임 속에 만들어진 의도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게임 안의 직업조차 만든 자의 의도를 반영하기 마련인데,

전생에서는 별생각 없는 수많은 중국 요리 중 하나인 동파육이었지만, 이 시대에 와서는 이 고기 요리를 만든 자가 대체 무슨 의도로 이것을 만들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요알못 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처럼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운 사람이면서 이 시대의 배경과 이 시대의 유명한 요리들을 접하게 되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동파육을 왜 어떤 의도로 소동파가 만들었는지 말이다.

소동파를 바라보며 사과했다.

“예부랑중 어르신께서 돼지고기를 좋아하신다 생각해 준비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내가 돼지고기를···”

소동파가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숙부가 끼어들어 호통을 치며 말했다.

“어허! 이 사람! 내 지기가 천한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생각했다니!”

오스카상 뺨칠 정도의 연기.

무림계의 재간둥이 우리 제갈가답게 제갈청의 숙부님은 아주 명연기를 펼치고 계셨다.

소동파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기를 바라면서···

소동파는 지금 화를 참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화가 나는 이유는 그가 동파육을 만든 이유와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소동파가 동파육을 만든 이유.

그가 동파육의 초기형을 만든 이유를 알아보려면 이 시대에 가장 고급 요리 한 가지를 떠올리면 되는데 그것은 연양(軟羊).

양을 키울 목초기가 부족한 송에서는 양을 전부 북방의 유목민들에게서 수입해야 했기에 양은 무척 이나 비싼 짐승이고 비싼 고기였다.

그런 비싼 양의 고기를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 여러 향신료를 섞어 푹 삶아내 그 고기와 기름이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될 정도로 부드러운 상태에서 먹는 것이 연양.

동파육은 그 연양의 마이너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터라 한직과 귀향을 오가는 것을 정기패스로 끊어 이용했던 소동파.

생활은 비루할 수밖에 없었고 고기를 좋아하던 그는 비싼 양고기 말고 다른 고기를 대체해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싸고 맛있는 돼지고기를 푹 삶아 연양처럼 수저로 퍼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 그가 먹던 초기 동파육.

그러니 그에게는 돼지고기가 아주 여러 가지 의미일 것이 분명했다.

결국 숙부님의 야무진 연기에 소동파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이 사람 각 그 무슨 소리인가. 돼지고기가 어찌 천하단 말인가? 그러면 돼지고기를 먹은 사람은 다 천한 사람이 되는가? 세상에 천한 것은 사람이 임의로 그리 정하는 것. 돼지고기도 맛있게 요리해 먹거나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는데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인 천한 것이 아닐 터. 청운이 이리 주게!”

버럭 소리를 지른 소동파는 내 손에서 동파육을 낚아챘다.

그리고 주먹만 한 동파육을 하나 젓가락으로 가져가려다 너무 부드러운 동파육이 젓가락에 잡히지 않고 반으로 잘리자 깜짝 놀라, 숟가락으로 그것을 자기의 그릇으로 가져간 후.

무너진 동파육을 숟가락으로 크게 한입 떠 자기의 입 안으로 냉큼 넣었다.

-츄르릅

분명 고기를 입 안으로 넣었는데, 뭔가 국물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은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세상 만족한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리던 소동파.

돼지기름의 고소함, 거기에 폭발하는 육즙과 부드러운 식감.

소동파의 입 안에서 동파육이 물처럼 녹아내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눈까지 지그시 감고 동파육의 맛을 보던 소동파가 동파육에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갑자기 그의 패시브 스킬을 발동해 한시를 짓기 시작했다.

『부자들이 천하다고 말하는 돼지고기.

천하다는 것은 편견일 뿐.

돼지고기의 값은 진흙처럼 싸지만

그 맛은 진흙 속의 진주와 같구나.』

그리고 그의 시가 끝나자 제갈각 숙부께서 웃으며 소동파를 향해 물으셨다.

“자네 분명 세상의 천한 것은 사람이 임의로 그리 정하는 것이고, 단지 편견일 뿐이라 말했는가?”

그러자 소동파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이네,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돼지고기가 어찌 천한 음식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가난한 생활에 먹을 수밖에 없었던 돼지고기를 천한 사람들만 먹는 천한 고기라 말한다면, 소동파 자신도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 그는 제갈각 숙부의 말을 맹렬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그 단호한 대답에 제갈각 숙부께서 소동파를 향해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하는 미소를 지으며 질문하셨다.

“그러면 자네가 고려를 천하다고 말하는 것도 단지 편견일 뿐. 요를 막는 데 고려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그것은 천한 것이 아니겠구만?”

숙부의 물음에 내뱉은 말 주워 담지도 못하고 당황한 표정이 된 소동파.

‘크, 가슴이 웅장해진다.’

감독, 연출, 주연 류청운. 각본, 조연 제갈각.

숙부님은 명품조연이셨다.

제갈가! 정말로 사랑해버리고 말 것 같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제갈가는 곧 제갈청 나는 이미 사랑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웅장해진 내 귓가에 소동파의 헛기침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그것이··· 크흠··· 크흠···”

잠시 후 숙부님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기침만 하던 난처한 얼굴이 된 소동파가 곧바로 나를 향해 물었다.

“그, 그래. 아무튼 이 음식 이름이 뭔가?”

그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동파육(東波肉)입니다.”

“동파육이라면, 내 호와 같구만 서, 설마 나를 위해 만들었다더니! 내 호까지 넣어 만든 것인가?!”

소동파가 아주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맛있는 요리에 자신의 호를 붙인 것에 아주 감동한 모양.

소동파의 동파(東坡)라는 호는 동녘 동자에 언덕 파를 써서 동쪽의 언덕이라는 뜻.

동쪽에 언덕을 쌓고 있으니 고려에 대한 마음이 그런 것.

닉값을 제대로 하시는 분이랄까?

하지만 나의 동파육은 동녘 동자에 열릴 파.

그의 물음에 포권을 하며 공손히 대답했다.

“예부랑중 어른께서 동쪽을 향해 마음을 여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든 고기 요리. 동녘 동에, 열릴 파. 고기 육, 보잘것없는 요리사의 마음이 담긴 요리입니다.”

제갈각 숙부님과 나의 원투 펀치를 얻어맞은 소동파는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 되었고,

이제 소동파의 최대 업적 동파육은 적당히 소문을 내면, 소동파의 고집을 꺾기 위해 보잘것없는 요리사가 그를 위해 만든 요리로 알려져 대대손손 그를 능욕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업적을 능욕으로!

선조님들을 무시당한 보잘것없는 요리사의 복수는 이리도 냉혹한 것이었다.

우리들의 원투 펀치로 소동파는 조금 토라졌지만, 내가 자신만을 위해 만들었다는 동파육의 맛에 흠뻑 취해 금방 풀어졌다.

그리고 자기 잘못을 아주 조금 인정하며 말했다.

“내, 고려를 천하다고 말한 것은 내 잘못임을 인정하네. 아마 자네 핏줄에 고려인이 있었나 보구만. 다만 천하지는 않아도 고려와의 화친은 생각해볼 문제라네.”

핏줄이 아니라 영혼에 있던 것이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끝까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는 소동파의 일관됨.

‘고집불통 같으니! 내일은 그럼 동파 두부로 해야 하나?’

소동파는 제가 만든 요리를 싹싹 털려 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동파를 홀랑 벗겨 먹으려는 나의 계획은 예상하지 못한 손님으로 인해 진행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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