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반과 치차등
채반과 치차등
동파육(東坡肉)을 시작으로 동파두부(東坡豆腐), 동파어(東坡鱼), 동파주자(東坡肘子)까지.
소동파를 싹 털어먹으려 했으나 제갈 숙부와 나의 원투 펀치를 경계하는 것인지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소동파는 다음번 초대는 거절했다.
관계가 틀어진 것은 아니었다.
소동파는 고집불통에 깐깐하긴 해도 소심한 성격은 아닌지 나나 친구인 숙부님의 말을 크게 탓하지는 않았다.
결국 계획의 마지막으로 동파육의 레시피를 적어서 소동파의 손에 들려줬다.
“만족하신 듯하여 제가 요리의 방법을 자세히 적어 준비했습니다.”
“정말인가? 이런 고마운 일이! 내 반드시 집에서 만들어봐야겠네. 그리고 내 정말 바빠서 그러니 초대는 나중으로 미루겠네.”
팬티 한 장까지 다 벗기고 싶었으나 일단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 정도에서 참기로 했다.
명품 배우인 제갈각 숙부에게 인정도 받았고 제갈청과 숙모님이 동파육을 먹고 기뻐했으니 만족할만했다.
그렇게 소동파에 대한 대접이 끝나고 나자 나와 제갈청을 기다린 것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본격적인 신혼여행!
인사는 다 끝났지만, 돌아가기 전에 이왕 동경에 왔으니 수도의 여러 곳을 구경하고 가라는 숙부님과 숙모님의 배려로 다음 날부터 제갈청과 최소한의 무사만을 대동한 채 동경의 이곳저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수도는 수도인지 동경은 정말 활기찬 도시였다.
높은 전각과 수많은 사람.
그런 동경에서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것은, 이곳으로 올 때 타고 온 배의 선주가 추천해주었던 동경의 명물.
제갈청과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그것들을 구경했다.
황궁은 밖에서 돌담만 구경했지만, 선주가 추천했던 개보사(開寶寺)의 철탑, 천청사(天清寺)의 번탑, 대상국사(大相国寺)까지,
어찌 전부 절이긴 했는데, 이 시대에 고층의 누각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멀리서도 보이는 웅장한 모습에 제갈청과 둘이 감탄했다.
그리고 부적의 영험함을 올리기 위해 간 김에 한 번씩 불공도 드렸다.
‘부적의 약발이 부족한 듯합니다. 어째서 첫날밤이··· 이런 식이면 다시 십자 쪽으로 갈 수 있을지도···.’
또한 제갈청과 데이트를 즐기다 보니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제갈청이 왜 학을 3마리나 잡았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아 그런데 부인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오?”
“무엇인가요? 노공.”
“다름이 아니라 내가 들고 다니는 이 학우선 아무리 생각해봐도 깃털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은데, 저번에 학을 세 마리나 잡았다고 하지 않았소? 왜 세 마리나 잡았는지 궁금해서 말이요?”
제갈청이 만들어 준 학우선은 밖을 구경할 때 들고 다니며, 햇볕이 따갑거나 하면 제갈청의 머리 위를 가려주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아무리 봐도 깃털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고 학이라는 동물은 새 중에도 상당히 큰 동물이기에 아내에게 물은 것이었다.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제갈청.
“아··· 그게 궁금하셨군요?”
“그렇소. 학이 왜 좀 큰 새이지 않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제갈청이 아주 상냥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사라져서요.”
“응?”
“탄지신통(彈脂神通)으로 학을 맞추었는데, 학이 사라지더라고요, 깃털 몇 개만 남기고. 학이 크기만 좀 크고 생각보다 허약한 새인가 봐요.”
그 말에 그녀의 손과 그녀의 미소를 번갈아 바라봤다.
’첫날밤 이거 마지막 밤 되는 거 아니야?‘
마음속에 아주 조금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전생에 유명한 시인의 시처럼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식사.
이 시대에는 테이크아웃도 유명해 황제도 수도의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다 먹을 정도라기에 제갈청과 둘이 밖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고관대작들만 사는 부촌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오는 것이기에 호위는 두고 제갈청과 둘이 다정하게 걸어 식당이 있는 거리로 향했다.
하지만 가는 도중 이곳저곳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느라 저녁 시간이 좀 늦어서 그랬던지.
이미 치자등이 걸려있는 식당에는 손님이 꽉꽉 차 빈자리가 없었고,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결국 조금 구석진 곳에서 조금 한가한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비 오는 것을 대비하기 위함인지 치자등 위를 대나무 채반으로 덮은 식당이었는데, 제갈청과 내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야릇하게 생긴 여자 주인이 나와 우리를 맞았다.
“어서 오시지···?”
우리를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 주인.
‘음식 잘못하는 곳인가?’
손님 보고 놀라는 주인의 행태에 설마 이거 별로 맛있는 집이 아닌가 싶었는데, 마침 안쪽에서 무척이나 배가 부른지 바지춤을 쓸어올리며, 뭔가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남자 손님 넷이 걸어나 오는 모습에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자리 안내를 부탁했다.
“우리 둘이 먹을 것이니 자리를 부탁하네.”
“두, 두 분이 말입니까?”
“안되나?”
“아, 아닙니다. 다만 돈이 조금 더 비쌀 수도 있습니다만.”
아까도 손님 넷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니 4인 테이블만 운영하는 오마카세집(주방장 특선요리 집)인가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렇게 안내를 받은 곳은 작은 방.
무척이나 화려하게 꾸며진 작은 방이었다.
제갈청과 자리를 잡고 먼저 나온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노공, 저도 이런 요리집은 처음인지라 무척 기대돼요.”
제갈청은 부잣집 아가씨라 서민들이 이용하는 식당 같은데는 한 번도 안 가본 것 같았다.
“내 앞으로 이런 곳을 자주 데리고 다니겠소.”
“노공께서는 이런 곳에 자주 다녀보신 것 같아요. 아주 능숙하셔요.”
“허허, 물론이요. 내 여행할 때는 매일 이런 곳에서 밥을 먹었지.”
제갈청과 한참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점소이가 주문받으러 왔는가 싶기도 했지만, 이야기에 빠져 우리 둘 다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제갈청의 옆으로 누군가가 자리를 잡는 것 같은 느낌.
제갈청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다 눈동자를 슬쩍 옮겨 그녀의 옆을 확인했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는데, 갑자기 뇌를 파고드는 충격적 장면.
그리고 부릅떠지는 눈과 자석처럼 따라가는 시선.
자석처럼 끌려가는 눈동자에 맺힌 모습을 확인하자, 알몸에 하늘하늘한 망사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헐벗은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제갈청의 옆에 앉아있었다.
깜짝 놀라 제갈청의 옆을 바라보며 손가락질하자 똑같이 제갈청도 나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는 자기 입을, 한 손으로는 내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 옆에도 누군가가 앉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시야를 가득 메우는 살색의 향연.
‘이, 이게 무슨!’
화들짝 놀라 헐벗은 여자에게서 물러나자 여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불렀다.
“공자님? 왜 그러시죠?”
놀란 얼굴로 아내 쪽을 바라보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달려와 내 뒤로 급하게 숨는 제갈청.
“노, 노공 이게 무, 무슨 일이지요? 저, 저분들은 어째서 옷을···.”
우리의 놀란 모습에 두 여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바닥을 짝하고 치더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 혹시 처음?”
나는 이미 자주 와본 상태라고 거짓말을 한 상태라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있는데, 내 등 뒤에 숨은 아내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는지 어깨에 진동이 느껴졌다.
그러자 질문했던 여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들어오실 때 등롱 확인 안 하셨나요?”
“드, 등롱 말이요? 분명 그냥 치자 등이었는데?”
영문을 모를 말에 멍하니 대답하자 두 여자가 다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등롱 위에 대나무 채반 올려있는 것을 못 보셨나요? 아, 부잣집 아가씨와 공자님이셔서 모르시나 보다. 호호. 치자 등롱 위에 대나무 채반이 올려져 있으면, 밥도 먹고 남녀가 부끄러운 일도 하는 곳이랍니다?”
여자의 설명에 화들짝 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갈청의 손을 잡고 요리집 밖으로 미친 듯이 달려 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 요리집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멈춰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그런데 숨을 몰아쉬는 내 귓가에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
“노공, 정말 자주 매일매일 가셨었나요?”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검지 끝을 살살 문지르는 묘한 동작에 왠지 서늘함을 느끼며, 오해를 풀기 위해 진실을 토해내야 했다.
“새, 생전 처, 처음이요!”
***
초개(草丐) 걸륜(乞輪)은 변경 외각에 폐가에 위치한 총타에서, 글을 쓸 줄 아는 거지들로 이루어진 문개(文丐)들과 함께 구걸하는 거지들인 걸개(乞丐) 들이 물어온 정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종이들을 정리하던 걸륜이 문개들을 향해 물었다.
“쓸데없는 정보들 뿐이구만, 뭐 재미난 소식은 없는가?”
그가 재미난 소식을 찾는 이유는, 보통 정보를 정리하다 보면 재미난 이야기 한둘 정도는 들려오기 마련인데, 요즘 도통 재미난 이야기가 별로 들어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몇 해 전 세간을 뜨겁게 달구었던 호부시랑(戶部侍郞)의 애첩이 그 집 하인과 바람을 피운다는 이야기든지, 고관대작의 딸이 서생과 눈이 맞아 도망갔다든지 하는 뭔가 짜릿한 소식들이 요즘은 너무 뜸한 것.
그런 걸륜의 물음에 문개중 하나가 종이를 살피다가 대답했다.
“아, 제갈가의 딸과 그 접각부가 마침 이곳에 도착해 있다고 하는군요.”
제갈가의 딸이라면 초개도 알고 있는 여인, 그리고 그 데릴사위도 당문에서 벌였던 기행으로 제법 중요하게 다뤄지는 상대.
둘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제갈가의 딸이 어떤 인물인지를 깨닫고 걸륜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허허, 접각부 그놈은 제가 누구와 혼례를 치른 것인지도 모르겠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무림인 중에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불쌍한 놈이구만···. 뭐 그나저나 둘이 동경에 와있다면, 주객낭중(主客郎中)으로 있는 제갈각을 만나러 온 것이겠지?”
“아마 그렇겠지요?”
둘이 그렇게 제갈가의 딸과 그 접각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거지 하나가 뛰어 들어와 종이 뭉치를 전달하고 사라졌다.
“어느 쪽에서 온 정보인가?”
“호북에서 온 정보입니다. 제갈가의 혼례식에 대한 정보인가 이제야 도착했나 보군요.”
제갈가에서 이곳저곳으로 혼례식에 사람을 초대했던지라 제갈가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혼례를 치르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호북 분타에서 출발한 결혼식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정리되어 이제야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넘겨받은 종이를 뒤적거리던 문개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던, 걸륜의 귓가에 문개의 놀란 음성이 들려왔다.
“어?! 조금 이상한 이야기가 올라온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상한?”
걸륜이 고개를 들어 문개를 바라보자 그 문개도 걸륜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요리사라고 했는데, 잔치에 모인 여러 고수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소식이···?”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놈은 무공을 익히지 못한 요리사라고 하지 않았나. 서, 설마?”
결륜이 놀란 이유는 당가에서 복어요리를 만들어 식룡(食龍)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만큼, 혹시나 독으로 고수들을 다치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놀란 걸륜을 향해 뭔가 이해가 안 된다는 문개의 문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다친 부위기 좀 특이하군요.”
“고수들이 어딜 다쳤는데 그러는가?”
“하나같이 무슨 입천장을 다쳤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종이 이리 줘보게!”
걸개는 버럭 화를 내며 문개가 보던 종이를 빼앗아 살펴보았다.
거지 같은 글씨체로 쓰인 종이에는 단 한 줄의 말이 적혀있었다.
‘제갈가의 접각부. 요리 초식으로 잔치에 참석했던 고수 수십의 입천장에 상처를 입힘.’
“이게 무슨···”
안에 모여있던 다른 문개들도 몰려들어 종이를 확인했고, 그중 한 문개가 손바닥을 치며 소리쳤다.
“내부를 상처 입히는 것으로 봐서는 내가 권의 고수가 아니겠습니까? 실력을 숨긴 것인가?”
그 말에 걸륜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놈이 정말 고수라면 자신이 직접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고수들을 일시에 상처 입혔다는 말은 개방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
그냥 방치했다가 혹시라도 무림에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그놈을 직접 확인해봐야겠구먼.”
“직접 가보시려고요?”
“고수들을 상처입혔다는 정보가 사실이라면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그거 혹시··· 또 호북 분타주가 술 취해 실수한 것이면···.”
문개의 물음에 걸륜은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호북의 주정뱅이 분타주 취개(取丐) 구가위 를···
이미 한번 술에 취해 정보를 잘못 취합해 보내주는 바람에 걸왕에게 타구봉으로 삶아지기 직전의 개처럼 처맞았는데, 만약 이번에도 실수했다면 진짜로 개처럼 삶아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걸왕께 그리 처맞았는데 아직 정신을 못 차렸으면, 술 취한 개 한 마리 다시 잡아야겠지. 그리고 뭐 또 주정뱅이 놈이 실수한 것이면, 그냥 요리나 대접받고 오면 되는 일 아닌가?”
걸륜의 호언장담에 문개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제갈가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 초개(草丐) 걸륜이야! 사람 아무도 없는 풀밭에서도 빌어먹는다는 나 걸륜이 제갈가에서 밥 한 끼 못 얻어먹겠나?
무공 수위는 낮지만 빌어먹는 능력 하나로 개방의 총타가 위치한 개봉의 총타주가 된 걸륜이 하는 말에 문개들이 앞다투어 외치기 시작했다.
”총타주 저, 저를 데려가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