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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까듶밥 (62/344)

쓰까듶밥

쓰까듶밥

손님을 맞으러 가는 노공의 뒷모습.

아쉬운 마음에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는 제갈청의 귓가에 시비들의 목소리가 따갑게 들려왔다.

“아가씨!”

“아가씨 궁금해 죽겠다고요. 어서 어제 두 분이 식사하러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세요.”

목소리의 주인은 본가에서부터 제갈청과 류청운의 수발을 들기 위해 따라온 두 시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제 둘이 식사하러 간 이야기를 해달라 졸라대던 시비들은, 제갈청과 류청운이 차를 마시는 내내 후원 한쪽 구석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류청운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달려와 제갈청을 졸라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제갈청에게 식사하러 다녀온 이야기를 졸라대는 이유는 제갈청의 야서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제갈청의 접각부.

시비와 제갈청이 은밀이 부르는 별칭 야서(野鼠).

셋의 생각은 비슷했다.

제갈청의 외모가 다른 이들과 다른데도 제갈을 너무 과도하게 좋아하는 모습에 기쁘기도 했지만, 내심 너무 과한 반응에 거짓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던 것.

그러나 제갈청을 통해 들은 요 며칠 동경을 구경하면서 보여주었다는 그의 행동은 정말로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은 과하다는 말을 넘어선 것이었다.

볕이 따가우면 슬쩍 학우선을 들어 제갈청을 위해 볕을 가려주기도 하고, 어떤 곳에 잠시 앉으려 하면 호들갑을 떨며 비단 천을 깔아주기도 하는, 귀한 옥장식을 다루듯 아주 조심스럽게 제갈청을 아끼는 모습.

그러니 어제 둘의 식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척이나 기대되었던 것이었다.

시비들이 졸라대는 통에 제갈청이 어제 잘못 들렸던 요리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볼을 붉히자 시비들이 바짝 붙어 제갈청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서, 설마!”

“응?”

“설마! 입술이라도! 마, 맞추···”

“아, 아니다! 무, 무슨!”

시비들의 놀란 외침에 제갈청은 손을 내저으며 정색했다.

그리고 어제의 일을 시비들에게 설명했다.

“내 그분과 요리 집에 갔었는데···.”

“그것은 저희도 알고 있고요. 그래서 뭘 드셨나요. 어떤 일이 있었나요?”

시비들이 참지 못하고 급하게 물어왔고 그런 시비를 향해 청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치자 등롱 위에 채, 채반이 올려진 집으로 가, 갔었느니라.”

제갈청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시비들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저, 정말요? 어르신 몰래··· 아가씨 생각보다 대, 대담하시군요?”

“예!? 두, 두 분이요?”

“하지만 아무리 급하셔도 그렇지, 거긴 그러니까··· 아주 높은 풍류를 즐기시는 분들이 가시는 곳인데, 정이나 급하셨으면 차라리 객잔에서 방을···.”

“그, 그것이 아니다!”

뭔가 깊은 오해가 담긴 말이 쏟아져 나오자 청은 참지 못하고 시비들에게 소리치며 설명했다.

어제 잘못 들어갔던 요리집에서 예전에는 그런 곳에 자주 다녔다는 노공께 감히 서운함(?)을 드러내고 말았지만, 자신을 혼내기는커녕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하는 야서의 말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는 사실을.

제갈청이 자신을 좀 더 멋지게 바라봐 주길 바랐다는 고백을 말이다.

제갈청의 말이 끝나자 시비와 제갈청의 입에서 같은 말이 쏟아져나왔다.

“귀, 귀여우시다.”

“정말 귀엽지 않으냐?”

“귀엽습니다!”

혼례에 와주었던 당 언니가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귀여워 쥐어뜯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청은 그때는 귀여우면 왜 쥐어뜯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야서가 너무 귀여워 볼을 잡아 흔들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살포시 눈을 감고 너무 귀여운 야서의 볼을 잡아 흔드는 상상을 하는데 들려오는 소리.

-빠지직

깜짝 놀라 손을 내려보자 빈 찻잔이 제갈청의 손아귀에 바스러진 채 잡혀있었다.

“어머!”

무심코 내공을 써 찻잔을 하나 박살 내버리고만 제갈청이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할 때, 손님을 맞으러 간다고 밖으로 향했던 야서의 목소리가 후원 담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내, 부인과 이야기 중에 나온 터라 말을 좀 하고 와야 할 듯합니다. 잠시 들렸다가 같이 가시지요.”

“알겠소이다 소협.”

들려오는 노공의 목소리에 제갈청은 당황해하며 손에 든 찻잔을 얼른 시비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

류청운을 따르면서 몇 번 운의 띄워봤지만, 자신은 무공은 익힌 바가 없고 일개 요리사임을 은근히 강조하는 류청운에게 다짜고짜 무공을 익혔냐고 대체 어떤 무공으로 고수들의 입천장을 다치게 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대뜸 맥을 짚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걸륜은 일단 류청운의 겉모습을 살피며 그가 무공을 익힌 몸인지 아닌지를 살피기로 했다.

우선 첫 번째로 살핀 것은 무림인의 흔적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곳인 태양혈(太陽穴).

심법을 익혀 내공을 쌓기 시작하면 넓어진 혈도 때문에 피부가 가장 얇은 태양혈이 두드러지게 솟아올라 보인다.

이것은 신체의 내 외부가 조화를 이루는 반박귀진(返朴歸眞)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무공을 익힌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에, 먼저 류청운의 태양혈을 살피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걸륜은 류청운의 눈썹과 귀 사이의 태양혈을 살피며, 자신을 따라온 문개 초팔랑에게 전음으로 의견을 물었다.

[태양혈(太阳穴)이 밋밋한 것이 네놈이 봐도 무공을 익힌 흔적은 없어 보이지 않느냐?]

걸륜의 말에 문개 초팔랑(楚八郞)이 고개를 앞으로 빼 류청운의 옆모습을 유심히 바라봤고,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걸륜이 초팔랑의 멱을 잡아채며 말했다.

[이놈아 대 놓고 보지 말고 슬쩍슬쩍 보거라!]

자신의 전음과 잡힌 멱살에 목을 어루만지던 초팔랑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혹시 반박귀진(返朴歸眞)의 경지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린놈이 반박귀진이라니. 아무래도 그건 아니지 않겠느냐?]

[하지만 그 독왕이 식룡이라는 별호를 허락했다는 것은 그만한 실력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놈아 그건 요리를 잘해서 잔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다 같이 그리 부르기로 했다고 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대체 정보를 본 것이야 만 것이야?]

[아니, 그것이···]

걸륜은 소리 나지 않게 가슴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답답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결론이 나지 않아 두 번째로 류청운의 손을 살피기로 했다.

무공을 익힌 자들의 손에 생기는 특유의 굳은살이나 검을 쥐는 자들의 손에 나타나는 굳은살인 검견(劍繭) 또한 숨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손이나 살피거라. 내가 왼손을 살필 테니 네놈이 오른손을 살피거라.]

[알겠수.]

앞서가는 류청운의 손을 흘깃거리며 살피자 들려오는 초팔랑의 다급한 목소리.

[오, 오른손에 검견이 있습니다!]

초팔랑의 놀란 외침에 초팔랑과 자리를 바꿔 류청운의 오른손을 살피자, 앞서 걸으며 흔들리는 류청운의 오른손에 검을 쥔 자들에게서 보이는 특유의 굳은살 검견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권의 고수일 수도, 반박귀진 일수도, 검수일 수도 있다고?]

자꾸만 늘어나는 의혹에 걸륜이 난처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초팔랑이 그에 되물었다.

[어찌해야 할깝쇼?]

[뭘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을 끌어내 봐야겠지.]

[숨기고자 하는 실력을 어찌 끌어낸다고? 그냥 먹을 것이나 배불리 먹고 돌아가는 것이···]

애초에 류청운에게 관심이 없고 먹을 것에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초팔랑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지만, 걸륜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내가 실력도 보고 네놈 배도 채워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이놈 내가 누구라고?]

[알고 있습죠. 초개. 풀밭에서도 빌어먹는다는 초. 개.]

비아냥거리는 초팔랑의 뒤통수를 다시금 후려치며 걸륜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일단 거지들을 아니, 개방도들을 데리고 부엌 쪽으로 향했다.

이 새끼들의 목적이 구걸이든 아니던, 결국 이놈들은 이 시대의 언론이자 리뷰어.

어느 시대든 나 같은 소상공인에게 언론은 자연재해 같은 존재.

진실과 상관없이 저놈들의 평판으로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가 결정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가는 길에 후원에 들려 아내에게도 동행을 부탁했다.

“부인, 개방에서 사람들이 와서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고 찾아왔는데 말이요.”

“예? 실력을요?”

내 물음에 조금 놀란 표절을 지은 제갈청이 대답했다.

“용의 칭호에 어울리는지 확인을 하겠다는 것 같은데, 부인도 잘 모르시오?”

“아버지께 무림에 대해 배우긴 했는데 개방에 그런 것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그러면 요리를 선보이시는 겁니까?”

하긴 제갈청도 무림 초행이나 마찬가지니, 그녀가 자세한 내막을 알 리가 없었다.

“그리해야 할 것 같은데 같이 가시겠소?”

“물론입니다. 노공. 저는 노공의 새, 생강장유(生姜酱油)니까요.”

제갈청 볼을 새빨갛게 붉히며 부끄럽다는 듯 고백했다.

소롱포에 생강장유가 한 쌍이라는 뜻이라고 가르쳐 줬더니, 기억하고 있다가 도리어 그것으로 나를 공격하는 부인.

나의 것으로 나를 공격하는 수법.

‘이것이 그 무림에 유명하다는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인가?’

심장에 치명적 일격이 가해졌다.

“큭···.”

내가 가슴을 움켜쥐고 인상을 쓰자 제갈청이 놀란 얼굴로 달려와 나를 부축하며 물었다.

“노공! 왜, 왜 그러시나요!?”

제갈청의 놀란 물음에 가슴을 부여잡고 대답했다.

“너··· 너무”

“너무?”

“귀엽소···”

내 대답을 듣고 제갈청이 장작불처럼 타오를 때 뒤로 눈치 없는 누군가의 배꼽시계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크흠···”

뒤를 돌아보니 높은 거지가 기침을 하고, 낮은 거지가 자기 배를 문지르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동냥해서 먹고살려면 눈치가 있어야 할 것인데, 정말 맘에 안 드는 눈치 없는 거지새끼들이었다.

‘진짜 개방만 아니면···’

아내와의 천금(千金) 같은 시간을 빼앗고, 눈치 없이 배고파 뒤지겠다는 표정을 짓는 거지새끼들을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서며 거지들을 향해 물었다.

“그래 어떤 요리를 보여드리면 됩니까?”

“아 그 소협의 혼례식에 냈다던 그 요리 초식 있지 않습니까? 그 뭐라더라?”

“아, 소롱포 말이군요?”

“그렇소. 그렇소. 소롱포.”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소롱포를 만들어 달라 하는 개방의 거지들 그러나 소롱포는 소의 힘줄을 끓여 굳혀야 하는데, 준비에만 한나절이 걸리니 그걸 당장 만들 수는 없었다.

그리고 된다고 하더라도 그걸 만드는 사이에 아까부터 배고픈 티를 팍팍 내는 거지들이 굶어 죽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소롱포는 힘들 것 같습니다만.”

“어, 어째서?”

내 대답에 당황하는 거지들.

거지들을 향해 연유를 설명했다.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라 지금부터 준비하더라도 내일은 되어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저, 저런···”

“그럼 뭐 아무것이나 선보여주시오. 아, 그리고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소이까?”

“예, 물론입니다.”

거지들과 대화를 끝내고 생각해보니, 내 요리실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으니까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요리를 하는 것이 맞았고, 짧은 시간에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요리라면 단 한 가지 조리법이 존재한다.

중화요리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리법인 볶음.

나처럼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고 호텔에서 설거지 같은 잡일에서 요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코스를 밟으면, 설거지 몇 개월, 재료 손질 몇 개월 등의 과정을 거쳐, 제일 처음 요리다운 요리를 해보는 입문 과정이 바로 볶음 파트.

처음 시작하는 진정한 요리 과정이면서 배우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이 볶음.

그중에서도 채소볶음.

중화요리의 채소볶음은 요리실력을 나타내는 기준이 되는데, 볶음 한 가지만으로도 불 조절, 웍의 활용, 그리고 재료의 이해와 그것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등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소를 너무 오래 볶으면 물러져 채소에서 물이 나오고, 너무 짧게 볶으면 간이 배어들지 않아 맛이 없어지니 화력과 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채소볶음의 핵심.

수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로 만들어지는, 순수한 실력을 볼 수 있는 것이 채소볶음인 것이다.

그러니 곧바로 부엌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 3가지 채소볶음을 만들었다.

청경채, 숙주, 죽순.

세 가지 채소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 세 가지를 볶음을 잘 할 수 있으면 다른 모든 볶음도 문제없이 할 수 있다는 보증이 되는 요리.

세심한 불 조절과 신들린 웍질.

그리고 경험으로 축적된 채소의 특성을 파악한 조리 시간과 간의 완벽한 조화.

“자, 한번 맛들 보시지요. 세 가지 채소볶음입니다. 요리의 시간과 웍의···”

“아이고 잘 알겠소! 자자 어서 맛을 봅시다 총방주!”

그렇게 3가지의 채소볶음을 만들어 거지들에게 대령하니.

내 손에서 냉큼 접시를 빼앗아 간 거지들이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허리춤에 찬 바가지를 꺼내 들더니, 같이 먹으라고 준 따듯한 만두를 잘게 부셔 바가지 안에 넣고는, 세 가지 채소볶음을 골고루 넣은 뒤 뒤섞기 시작한 것.

‘쓰, 쓰까듶밥? 이 거지새끼들이!’

이 새끼들이 갑자기 쓰까듭밥을 만들고 있었다.

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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