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맛
중원에는 헐후어(歇後語)라는 것이 있다.
당나라 때부터 시작된 중국어의 4대 숙어 중 하나로.
일상생활에서 만들어진 말재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해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금 이 황당한 상황을 적절한 헐우어로 표현하자면.
저팔계흘인삼과(豬八戒吃人參果), 전부지자미(全不知滋味).
직역하면 인삼과 처먹은 저팔계, 맛을 느끼지 못한다.
돼지 목의 진주 뭐 이런 느낌의 말이랄까?
서유기의 저팔계가 손오공에게서 인삼과를 빼앗아 맛도 모르게 씹지도 않고 삼켰다는 말에서 유래된 헐후어인데, 지금 저 거지 새끼들의 행동에 아주 어울리는 말이라고나 할까?
저팔계는 귀한 인삼과를 맛도 보지 않고 홀랑 쳐 삼켜버렸지만, 거지들은 나의 채소볶음을 밀가루로 만든 잘게 찢은 만두에 싹싹 비벼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 중이었다.
애초에 거지새끼들이 내 음식을 평가해준다고 할 때 예상했어야 했는데,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느긋하게 음식을 먹는 부류의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것.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 바쁘고 배를 채우는 데 급급한 개방 거지들이 음식을 평가하다니.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허탈한 나의 눈앞에서 실로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뜨거운 불에 예술적으로 볶아진 나의 채소 요리들이 바가지 안에서 한데 어우러져 위아더월드를 노래하는 통합과 화합 아니, 환장의 현장.
채소볶음들은 쓰까듶밥으로 하나가 되어 거지들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지, 지금 뭣. 들. 하. 시. 는. 지.”
이를 악물고 한마디씩 뱉자, 눈치 없는 거지새끼들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아, 잠시 기다리시오. 맛을 다 보고 난 후, 과연 식룡에 어울리는지 이야기해줄 테니.”
맛을 본다는 것은 채소가 얼마나 식감을 살리게 잘 익었는지, 간은 잘 뱄는지, 뭐 그런 것을 보는 것일 텐데, 거지들은 품 안에서 한 숟가락충들에게 특화된 것 같은 주걱 같은 숟가락을 꺼내더니 신이 난 얼굴로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뭔가 내 소중한 것이 유린 되는 느낌.
헤헤거리며 허겁지겁 입안으로 채소볶음을 처넣는 거지들의 면상을 쥐어뜯고 싶어졌다.
내 속을 몰라서 저러는 건지 일부러 알면서 열받으라고 저러는 건지.
거지들이 연신 쓰까듶밥을 처먹으며 저희끼리 신이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고 좋다.”
“근데 이거 구걸해서 먹는 음식과 차이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쓰까 츠묵으니까 맛이 한결같지, 이 새끼들아!’
“에라 이놈! 씹고 삼켜야 맛을 볼 게 아니냐. 정신 차리고 맛을 보거라.”
-후르르르륵
“총타주 씹어 먹으라더니, 왜 요리를 물처럼 마시고 계십니까?”
“이놈아 그러니 네가 삼 결인 것이야. 오 결쯤 되면 목구멍으로도 맛을 보는 게 거지이니라.”
아가리에 처넣기 바쁜 똑같은 두 놈들이 서로 저러는 걸 보니 희극도 이런 희극이 따로 없었다.
잠시 후 채소볶음 세 접시와 흰 밀가루 빵인 만두(증빙 蒸餅) 스무 개를,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운 두 거지가 빈 동냥 바가지를 긁어대더니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헤헤··· 소협, 그런데 맛을 보기에 양이 조금 부족한 듯합니다.”
“이리 양이 적으면 아무래도 실력을 확인하기가···”
거지새끼들에게 뻔뻔함은 기본 탑재 예절이니, 총타주의 말에 분노를 참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 드시면 맛을 느끼기가··· 아무래도 힘들지···”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럭 질을 하는 총타주.
“어허 소협 우리를 거지라고 무시하는 것이요? 이리 먹어도 다 맛을 알 수 있소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래 봬도 고관대작 집에서 많이 빌어 처먹어 봐서, 안 먹어본 음식이 없으니. 음식 맛을 모를 거라는 걱정은 하지도 마시지요.”
걸륜 총타주는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펴며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전생에는 파워 블로거라며 식당에 와서 행패를 부리거나 이상한 짓 하는 애들이 많았는데, 생각해보니 내 처지에서는 이 새끼들이 이 시대의 파워 블로거.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인제 보니 내 요리실력을 평가해준다면서 겸사겸사 아주 한 상 부러지게 얻어 처먹을 심산인 것이 확실해졌다.
그러나 내가 화를 낼 수도 없는 일.
내가 화를 낸다면 이 새끼들은 내 평가에 ‘맛은 모르겠는데 주인장 인성이···’ 같은 내용을 추가할 것이고 차후 내가 요리 관련된 일을 한다면, 선점된 악평이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닐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도 인성질 하면 한 인성질 하는 민족의 후예.
수많은 전장에서 수많은 키보드 워리어와 전투해 다져진 몸.
놈들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전부 내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생의 중국이라면 바보를 의미하는 음식인 달걀부침 두 개를 바로 만들어 상으로 올렸을 텐데.
‘이 새끼들을 진짜 어쩌지?’
엿 좀 먹여주고 싶은데 방법이 쉬이 떠오질 않았다.
***
류청운이 내어놓은 채소볶음 세 접시와 만두 스무 개를 나눠 먹은 걸륜과 초팔랑은 조금 서운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갈가에서 구걸 아니, 제갈가 데릴사위의 무공 및 요리실력을 살피는 것이고, 식룡(食龍)이라는 별호를 가졌다기에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그런 고기 요리를 기대했는데, 식룡이 내놓은 것은 하찮은 풀때기인 채소볶음.
고관대작이나 부자들은 류청운의 채소 요리를 받아들면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 좋아했겠지만. 먹고 나서 뒤돌아서면 배고픈 채소 요리는 거지들이 가장 싫어하는 요리.
간만에 목구멍에 기름칠 좀 하나 싶었는데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거지 주제에 고기 요리를 내놓으라 할 수는 없는 일.
아쉬운 대로 음식을 털어 넣은 걸륜의 귓가에 초팔랑의 전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그런데 총타주 소협의 실력은 어찌 끌어낼 작정이요? 좀 전에 요리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요리사들이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식룡이라 해서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던지 초팔랑이 조금 실망한 투로 말했다.
결륜이 생각하기에는 물론 요리하는 모습은 둘째치고라도 초팔랑의 실망이 요리의 내용 즉, 그의 기대인 고기 요리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실망 대부분을 차지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슬슬 시작을 해봐야지.]
[무슨 시작 말입니까?]
[요리를 좀 더 내오라 해봐야지 않겠느냐?]
[순순히 내올까요?]
[이 초개 걸륜의 체면이 있지. 제갈가에 들어가서 풀때기만 얻어먹고 왔다 하면 다른 거지들이 얼마나 비웃겠느냐. 걱정 말거라.]
걸륜이 자신만 믿으라며 다시금 큰소리를 치는데, 초팔랑의 약간 겁을 먹은 전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그런데 총타주 좀 화, 화난 것 같지 않습니까?]
류청운이 왠지 모르게 화가 좀 난 것 같았지만, 실력을 검증하러 왔다는 자신들에게 해코지할 리는 없는 법.
걸륜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초팔랑을 향해 말했다.
[류소협이 아무리 화가 났어도 칠대세가의 접각부인데, 해코지 같은 것을 할 리 없으니 신경 쓰지 말거라.]
[아니, 그, 그쪽 말고 저쪽 말입니다.]
걸륜이 고개를 돌려 초팔랑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류청운의 부인인 제갈청이 인상을 찌푸리며 두 눈에 푸른 안광을 뿜으며 두 거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꿀꺽
왠지 섬뜩한 귀신같은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대하자 원대했던 계획과는 다르게 자연스레 말이 튀어나왔다.
“소, 소협 그 하, 한 가지만 더 먹고 확인 절차를 마무리하겠소. 우리도 바빠서 말이지.”
위험한 핏줄이 뭐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으니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구걸에 천부적인 감을 타고 태어난 걸륜의 감이 이 앞은 잔칫상이 아니라 상가집 제삿밥이라는 강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
앞으로 한가지 요리만 더 먹고 확인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거지들.
그러나 무슨 요리를 내어도 저놈들에게 정상적인 맛을 평가받기는 소원한 일.
실력도 선보이며 거지들에게 엿 먹일 방법을 생각하는데 아내인 제갈청이 다가와 속삭였다.
[노공께서 힘들게 만든 요리를 저리 험하게 먹다니 제가 다 속이 상합니다. 너무 얄미워서 이마나 코를 손가락으로 튕겨주고 싶네요.]
‘사, 살인을 하겠단 말인가?!’
아내의 갑작스러운 살인 예고에 깜짝 놀라 식은땀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나, 나는 괜찮소. 생각만 하시오. 생각만.]
이미 한번 위력을 확인 못해 아내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하고 말았는데, 화가 난 제갈청이 두 거지의 이마에 딱밤을 때린다면 거지들의 구걸할 때 빼고 사용치 않는 머리는 그대로 삭제될 것이 분명했기에 그녀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제로 거리 레일건 사격이라니!’
토마토케첩이 시야를 가득 수놓는 장면이 상상 속에 떠올랐다 급하게 사라지자, 다시금 제갈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노공 꼭 음식을 만들어 먹여야 하나요? 개방에서 오신 분들이 너무 얄미운데 보여주기만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보여준 다라···]
제갈청은 꽤 속상한 듯 속삭였고. 그런 아내의 말에 생각을 더듬었다.
요리를 선보인다는 것은 물론 맛도 중요하지만, 볼거리도 중요하고, 기술도 중요한 것.
그렇게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생각해보니 두 거지 놈에게 엿을 먹이면서, 요리실력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요리가 하나 있었다.
실력 운운하는 얄미운 거지새끼들의 아가리를 꾹 닫게 할 음식.
채소볶음이 웍과 불, 채소와 볶음 기술에 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음식이라면, 중화요리에 빠질 수 없는 요리 칼 채도(菜刀)의 기예로 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식.
하인 하나에게 급하게 부탁했다.
“지금 바로 시장에 가서 부드러운 두부 한 근을 사 오너라. 꼭 부드러운 두부여야 한다 알겠느냐?”
“예, 접각부님.”
내 부탁을 받은 하인이 밖으로 달려 나가고 그 이야기를 들은 거지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헤헤, 두부 요리도 좋습니다. 소협.”
“두부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아주 좋은 음식이지. 그럼 그럼.”
두 놈이 내 두부를 사 오라는 말에 아주 신이 난 듯 이야기했고 나도 미소를 지으며 거지들에게 대답했다.
“내 아주 든든히 배를 채워주겠소.”
물배를 말이다.
나와 거지들의 대화에 제갈청이 다가와 물었다.
[노공 생각이 나신 건가요?]
[물론이요. 다 부인 덕뿐이요.]
내가 제갈청을 칭찬하자 그녀가 부끄러운지 손등으로 볼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런데 두부 요리는 먹고 나면 든든하지 않던가요? 어떤 요리를 하실지 궁금합니다.]
[먹을 때는 든든하지만 아마 되돌아가면 배가 금방 꺼질 것이요.]
[금방요?]
중화요리는 크게 칼맛과 불맛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제 만들 요리는 칼맛 요리의 최고봉.
채도를 다루는 기술이 숙련 이상에 이르러야 흉내라도 내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중화요리를 만들기 위해 채도를 사용하는 기본방법은 편, 사, 말, 괴, 단,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얇게 편으로써는 것을 편(片 피옌)
편으로 썬 것을 다시 썰어 채로 만드는 것을 사(絲 쓰)
잘게 다지는 것을 말(末 무어)
큼지막하게 덩어리로 떨어내는 것을 괴(塊 콰이)
감자튀김처럼 길쭉하게 썰어내는 것을 단(段 두안)
그중 편과 사를 극한까지 펼치는 요리.
맛으로 납득 아니 손님들의 입이 싸구려라 맛을 확인할 수 없다면 보여줄 수밖에···
‘중화요리 칼맛의 끝판왕을 선보여주마!’